소설리스트

20화 (2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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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물밑작업

카페를 나와서 카운터 소녀가 추천해준 미용실이 있는 곳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조그마한 미용실이 하나 있는데, 남자든 여자든 다 깔끔하게 해주는 편이라고 했다.

                  

가격도 원래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니고 거기에, 아도 마키가 추천해 줘서 왔다고 하면 더 잘 해 줄 거라고. 은근히 광고를 하는 눈치지만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가게에서 팔아주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 아닌가. 

                  

겸사겸사 카운터 소녀의 이름도 알게 됐고 말이다. 다음에 오면 꼭 메뉴판을 꺼내는 기술을 밝혀내겠다고 이야기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녀가 이야기해준 방향으로 5분 좀 안 되는 시간을 걸어갔다. 그곳에서 그녀가 이야기해준 단층의 미용실 ‘DR. HAIR’를 발견했다. 음, 척 봐도 미용실이라는 걸 알만한 이름이구만.

                  

깨끗하게 닦여있는 유리로 전면부가 덮여 있어 안쪽이 보였는데 머리를 자르는 자리가 세 자리 정도 보이고, 그곳에서 머리카락을 다듬고 있는 여성과 머리카락을 잘리고 있는 소녀가 보였다.

                  

당기시오라고 붙어있는 유리문을 당기면서 미용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문 위쪽에 붙어 있던 방울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를 자르고 있던 여성은 내 쪽을 보더니 웃으면서 ‘어서 오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잠시 머리를 자르던 곳에서 떨어져서 뒤쪽에 있던 소파로 나를 이끌었다. 

                  

“이쪽에 와서 앉으시겠어요?”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하며 그녀가 안내해준 방향으로 가서 소파에 앉았다. 밖에서 봤을 때 보다 들어와서 보니 더 넓어 보이는 구조다. 인테리어에 꽤 신경 쓴 것처럼 깔끔하면서도 약간 아기자기한 느낌이 나는 게 보기 좋았다.

                  

“혹시 커피나 주스 있는 데 드시겠어요?” 

벽 한쪽구석에 있는 탕비실? 비슷한 곳 앞에서 나에게 물어보았다.

                  

차는 방금가지 양껏 마시다 왔기 때문에 그다지 생각이 없었지만 주스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주스로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옆에 있던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이는 페트병을 꺼내서 유리잔에 담고 빨대를 한 개 꼽아서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금방 끝나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라고 물어온 그녀는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자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소녀의 뒤로 돌아가서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머리를 자르고 있는 여성은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어려보일 려나. 미무라씨가 도달하지 못한 보통체형과 통통한 체형 사이에 끼어있는 @체형에 해당하는 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푸근해 보이는 인상에 살짝 웨이브가 진 갈색의 머리가 매우 잘 어울린다. 외모자체도 꽤 귀여운데 자신에게 딱 맞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어 그 매력이 두 배, 세 배가 되는 모양새다.

키는 평균보다는 조금 더 큰 키? 가슴과 엉덩이도 나올 만큼 나왔는데, 타카하시씨처럼 날렵한 허리라인은 아니지만 보기 좋게 살이 오른 토끼 같은 외모에 나올 곳은 다 나온, 아름다운 여성이다. 단아한 목소리에 아까 보여준 부드러운 미소도 일품이다.

자리에 앉아 있는 소녀는 중학생이나 좀 덜 성숙한 고등학생? 그 정도로 보였다. 살짝 사나워 보이는 눈매에 머리카락이 붙지 말라고 두르는 포를 망토처럼 두르고 있어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딱 저 나이또래의 체형이겠거니 싶었다. 

머리카락은… 충분히 얼굴에 어울리는 검은색 긴 생머리 타입이기는 한데 옆의 미용사에 비하면 뭔가 약간 아쉬운 그런 느낌이다. 물론 미용사의 헤어스타일이 너무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나서 아쉬워 보인다는 이야기지 소녀의 헤어스타일이 이상하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게 미용사가 소녀의 머리를 마저 다듬어 주고 있는데 소녀가 손을 쓱 들더니 미용사의 가위질을 막았다. 

“응? 왜?” 미용사가 소녀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됐어.” 라고 말한 소녀는 망토처럼 두른 포를 풀고는 일어나서 허리를 약간 숙이고는 각진 스펀지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툭툭 털었다.

“왜, 아직 안 끝났는데…” 미용사가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소녀는 대답했다.

“손님이 먼저 지, 내 머리가 먼저야? 바보 아냐?”

미용사는 소녀의 앙칼진 목소리에 ‘우으’ 하면서 귀여운 신음소리를 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애써 태연한 체 했다.

미용사랑 소녀가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딴 척을 피우면서 벽들을 훑어봤는데 그러다 몇 개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음, 저 소녀와 미용사의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무슨 대회에서 우승한 듯 트로피와 상장을 들고 있는 사진도 있고, 또 지금보다 꽤나 어릴 때의 모습으로 둘이 끌어안고는 카메라 쪽으로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아마 가족, 이나 아니면 꽤 어렸을 때부터의 친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말하자면 가족, 자매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기가 약한 젊은 언니에 틱틱대는 동생. 둘 다 미녀다 보니 옆에서 보기에는 꽤 흐뭇한 광경이다.

“저, 이쪽으로 앉으시겠어요?”

그때 나를 부르는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용사가 약간 수심에 찬 표정으로 의자 옆에 서서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소녀는 옆에 있는 타월을 집고는 머리를 감으러 가는 것으로 보였다.

미용사에게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미용사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수건을 나의 목 뒤에 둘러주고는 포를 감아주었다.

그리고 거울을 매개로해서 서로 눈을 마주보고는 입을 열었다.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음, 요새 날도 좀 더워지는데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겠어요. 그다지 뜨는 머리는 아니라 한 이정도? 까지 잘라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왼손을 들어서 머리카락의 반보다 조금 더 얕은 곳을 한 움큼 잡으면서 대답했다.    

“네, 앞머리도 자를까요?”

“한 1/3 정도만 잘라주세요.”

미용사는 내 머리에 스프레이로 물을 서너 번 뿌리고는 이리저리 머리카락을 만졌다. 

“머리 넘기는 방향은 지금 그대로 해드릴게요.”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그녀에게 머리를 맡겼다. 

곁눈질로 옆을 보니 플라스틱 커튼안쪽에서 한창 머리를 감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자매, 신가 봐요?” 

“네, 네 살터울이에요. 용케 알아보셨네요.” 미용사는 대답하면서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티격태격해도 꽤 사이가 좋은 자매인가 보다.

“미용사랑 손님 치고는 상당히 친밀해보여서요.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래도 보기 좋더라고요, 그렇게 싸우는 것도. 저는 외동아들이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그런 식으로 가벼운 잡담을 주고받는 사이에 머리를 다감은 소녀가 머리에 타월을 터번처럼 두르고는 다가왔다. 타월로 머리에 남은 물기를 가볍게 툭툭 털어내고는 내 오른쪽 자리에서 헤어드라이어를 뽑아서 자신의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면서 머리를 자르는데 옆에서 소녀가 자신의 머리를 말리면서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미용사의 손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식으로 찰칵 거리면서 내 머리를 자르던 가위에서 약간 씹히는 소리가 나면서 살짝 싸한 느낌이 들었다.

거울로 미용사의 얼굴을 살펴보니 ‘아, 큰일 났다. 어떡하지.’이런 표정으로 눈가가 반짝 거리는 게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이 보였다.

아, 내 머리가 큰일 났구나. 이런 느낌이 바로 들 만큼. 미용사의 표정이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토끼처럼 너무 귀엽게 보여서 그냥 더 짧게 잘라도 되요. 라고 말하려는 찰나에 옆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가 들려왔다.

“야!” 

                  

옆을 돌아보니 소녀가 시퍼레진 얼굴로 미용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미용사는 그런 소녀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외쳤다.

“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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