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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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물밑작업

헤에, 확실히 생각해보면 그런 이미지가 좀 있긴 했다.

어미 오리를 따라다니는 새끼오리 같다고 할까?

조금 뚱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다가, 사삭하고 마츠다씨를 따라다니는 그런 느낌이다.

“혹시 전부터 아는 사이셨나요?”

문득 궁금해져서 마츠다씨에게 물어보았다.

“아뇨, 소치씨가 세이렌에 들어왔을 때 처음 보았어요. 아, 얼굴은 몇 번 봤을지도 모르겠네요. 요리잡지 같은 곳에서 ‘신성의 재림’이라든가 하면서 소치씨를 엄청 관심 있어 했거든요.”

“‘신성의 재림’이요? 굉장한 이름이네요.”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이렌에 들어오기 전이면 고등학생이라는 얘긴데, 사회의 매스컴에서 관심 있어 할 정도라니.

“그렇죠?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능력도 대단한 친구에요. 물론 지금은 당시보다 더 대단해졌고요.”

왠지 마츠다씨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굉장히 기분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머리에 든 생각을 그대로 입에 올렸다.

“그래도 저는, 소치씨가 일하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실력은 마츠다씨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정말로.

“에, 놀리지 말아요.”

아까 기분 좋다는 표정도 보기 좋았지만, 마츠다씨가 엄청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더 보기 좋았다.

저녁시간 이후에 내일 아침준비가지 해놓고 나서야 겨우 하루 일과가 끝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토베씨도 수고 많으셨어요. 처음해보는 일이라 익숙하지도 않을 텐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에요? 이대로 조리부로 들어와도 충분히 제몫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츠다씨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나를 칭찬했다.

“추어세우지 말아요.”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그렇게 말했지만 꽤나 기분이 좋아졌다.

“추어세우는 거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그런 나를 보면서 조그마하게 웃던 마츠다씨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노다씨한테 연락을 받았었는데 한 삼~사일 정도면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때까지 잘 부탁드릴게요.”

“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츠다씨와 조리실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오자 미무라씨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아, 마츠다씨 이제 끝나셨나보네요.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토베씨도 수고 많으셨어요.”

미무라씨는 그렇게 마츠다씨와 인사를 주고받고는 다시 그릇을 닦는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막내라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츠다씨, 먼저 돌아가세요. 저도 미무라씨 도와주고 들어가 보도록 할게요.”

“에, 괜찮아요. 토베씨. 그렇게 많이 남지도 않았는 걸요?”

하지만 미무라씨의 말과는 달리 대충 훑어보아도 상당한 양의 그릇들이 아직 닦지 못한체로 남겨져 있었다.

“아니에요, 오늘은 저도 조리부의 막내인걸요. 열심히 해야죠. 그렇죠 마츠다씨?”

나의 질문에 마츠다씨는 살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고 이내 밝게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네, 맞아요. 막내면 가끔 막내다운 모습도 보여야죠. 그럼 먼저 들어가 볼게요.”

마츠다씨는 작게 손을 흔든 뒤 먼저 조리부 건물을 빠져나갔다.

나는 마츠다씨를 배웅하고 나서 옆에 걸려있던 건조대에서 식기용 고무장갑을 한 세트 골라서 손에 끼고 나서 미무라씨 쪽으로 향했다.

“정말 괜찮은데…….”

미무라씨는 말꼬리를 흐리다가 마츠다씨가 완전히 나간 것을 확인하고서 말을 이었다.

“괜찮겠어요? 저런 미인을 혼자 보내고 나 같은 거랑 같이 있겠다니.”

말 내용은 자기 비하적인 내용이었지만 그 독특한 말투는 사람을 톡톡 쏘며 놀아나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럴 리 있어요? 그냥 저도 말단이니까 할 일은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나의 말에 미무라씨는 상처입은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역시, 토베씨도 나 같은 여자는 별로구나.”

물론 말투는 여전히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미무라 씨를 도와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중에 탈의실에서 소치씨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미무라 씨는 그런 소치씨의 모습을 보고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미무라씨를 따라서 소치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수고하셨습니다.”

소치씨는 그렇게 인사를 받아주고 나서 문 쪽으로 나가다가 나를 보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토베씨, 설거지하고 계셨네요?”

“아, 네. 미무라씨 혼자서 하고 계시기에 도와 드리려고요.”

내 말에 나를 빤히 쳐다보던 소치씨는 내 쪽으로 씩씩하게 걸어왔다.

“저도 도울게요.”

그리고는 자신도 고무장갑을 꺼내서 미무라씨와 나의 옆으로 붙었다.

“아니에요, 들어가서 쉬세요. 이런 거는 막내들이 다 할 테니까요.”

내말에 소치씨는 조금 애매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이다가 얘기했다.

“미무라씨는 그래도 동갑이지만 토베씨는 연상이거든요? 막내막내 하셔도 조리부에서는 저도 막내인데 어떻게 여기서 그냥 돌아가서 쉴 수 있을까요.”  

하면서 자신도 수세미를 손에 잡았다.

근데…….

“미무라씨 나랑 동갑 아니었어요?”

미무라씨도 나와 마찬가지로 4년제 대학을 나온 뒤에 1년간 직업학교를 수료하고 세이렌에 들어온 거라고 들었는데.

“아, 저는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갔거든요. 걱정 마세요. 제 친구들은 토베씨랑 동갑 맞으니까.” 

하긴 뭐, 맞는 말이다.

그렇게 미무라씨와 소치씨, 나 이렇게 셋이서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소치씨가 설거지를 시작하고 나자 남은 그릇들이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미무라 씨와 내가 둘이서 하는 속도가 쓱쓱이라면 소치씨는 혼자서 쓱쓱쓱쓱쓱하는 수준으로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소치씨, 굉장하네요.”

내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걸 들은 소치씨는 저도 계속 막내였다니까요, 라고 얘기하며 말을 이었다.

“이대로 면 나중에 헹굴 때 일이 몰릴 것 같으니까. 미무라씨와 제가 그릇을 닦고 토베씨가 헹궈주세요.”

“아, 네.”

저렇게 빨리 닦아서 보내주는 데도 헹구고 나면 음식물이 전혀 남아있지 않고 뽀득뽀득하게 닦여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미무라씨가 나에게 건네는 그릇에 덜 닦여진 부분이 남아있으면 빠르게 포착해서 다시 한 번 닦을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미무라씨와 소치씨가 넘겨주는 그릇을 헹궜는데 소치씨가 워낙 빠르게 그릇을 닦아서 건네주다 보니까 남은 량이 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설거지가 금방 끝나게 되었다.

“두 분 다 감사해요. 저 혼자 했으면 얼마나 걸릴지 몰랐었는데.”

마지막으로 주방에 남은 물기나 기자재를 정리하는 중에 미무라씨가 이야기했다.

“아니에요, 다들 도우면서 하는 거죠.” 그렇게 이야기한 소치씨는 남은 그릇의 물기를 마저 제거하고 선반위에 수납했다. 

모든 정리가 끝나고 주방을 소등한 뒤, 밖으로 나왔다.

“저는 기숙사라서 그만 가볼게요. 수고하셨습니다.” 미무라씨는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숙사쪽으로 향했다. 

“소치씨도 별관이신가요?” 

“네.”

내 물음에 소치씨는 짧게 대답했다. 

그 뒤로도 몇 가지인가 물어보았지만 소치씨는 단답형으로 딱딱 그 대답만 하였을 뿐이었다. 별관까지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답답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러다보니 딱히 할 말이 없는데도 이것저것 말을 붙여보았다. 하지만 이 주제를 얘기해도 금방 끝나고, 저 주제를 얘기해도 금방 끝나다보니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래 봤자 한 주제 당, 무슨 음악 좋아해요? 뉴에이지. 이 정도 수준의 길이였지만 말이다.- 

그러다 마츠다씨의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마츠다씨는 대단하죠? 보면 저랑 나이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는 것도 아닌데, 실무경력도 벌써 10년 가까이 쌓으셨고 이 나이에 벌써 세이렌에서 차기 주방장 급이면…….”

“아니거든요!”

내가 마츠다씨에 대해서 생각나는 대로 입에 올리고 있을 때 소치씨가 지금까지 들려주지 않았던 큰 목소리로 내 말을 끊었다.

“네, 네?”

“마츠다씨는 그 정도로 대단하다고 표현할 수 없거든요! 더 멋지고 더 훌륭한 분이에요. 10년 가까이 근속했는데도 고작 세이렌에서 차기 주방장 급 인거에요. 벌써 차기 주방장 급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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