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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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물밑작업

“아, 토베씨 이건 저쪽으로 옮겨주세요.”

“이것들 껍질 좀 깎아주시겠어요?”

“아 그건 이쪽이요.”

마츠다씨의 진두지휘아래 박스를 옮기거나, 야채를 다듬거나 하는 보조 업무를 맡았다.

식료박스를 옮기는 일은 마츠다씨도 도와주었는데, 수산물이 들어있는 상당한 무게의 아이스박스를 두세 개씩 포개서 씩씩하게 옮기는 마츠다씨의 모습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나도 힘들어서 네 개 이상은 도무지 들지 못하겠는 박스를 말이다. 나름대로 체력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저 그런 자만이었던 것 같다. 

폭풍 같은 아침준비시간이 지나고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가지려고 했다. 

마츠다씨가 끓여준 차에 간단한 다과를 먹으면서 “토베씨, 많이 힘드시죠?”라고 시작해서 몇 마디 나눈 게 다인 것 같은데, 소매를 부쩍 걷어 올린 마츠다씨의 “그럼 점심준비도 힘내서 해봐요.” 라는 말과 함께 점심준비가 시작됐다. 

점심준비는 아침준비보다 더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아침식사 같은 경우는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재료를 뺀 나머지 정도는 전날 미리 준비할 수 있고, 메뉴자체도 비교적 단순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그래도 아침과 달리 부식재료가 들어오는 간격이 뜸했고 마츠다씨가 담당하는 어패류 요리만 해나가면 되는 거라서 이것저것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기 보다는 반복적인 일이 많았다.

그리고 요리자체는 전부 마츠다씨가 담당하는 것인데 야채류와는 달리 어패류에는 내가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마츠다씨만 너무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자꾸 들기도 했다.

그래도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하나씩 멋들어진 요리를 완성해가는 마츠다씨의 모습은 참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이런 게 프로구나 라는 생각과 그녀의 집중력과 요리에 대한 완고함에 또 한 번 감탄했다. 평소에 자주 보여주던 부끄럼쟁이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느꼈다. 이렇게 열심이니까 상처투성이인 딱딱한 손에서도 그렇게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거구나. 

한시반쯤 되어서 손님들의 점심식사가 끝나고, 그제야 조리부의 직원들이 식사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점심식사를 할 때는 당연히 조리2부의 직원들이 다 같이 조리실안에 있는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였다. 그러다보니 얼마 전에 만났던 소치 씨나 동기인 미무라 씨도 볼 수 있었다.

식사는 작은 들 상에 1인분씩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걸 받아서 자연스럽게 마츠다씨의 왼쪽자리에 앉았는데, 소치씨가 그걸 보더니 쪼르르 따라와서 마츠다씨의 앞자리에 앉았다. 미무라씨는 나에게 간만이라는 인사를 건네면서 내 앞자리에 앉았다. 마츠다씨가 구석에 자리를 맡아 놓고 있어서 나와 마츠다씨, 미무라씨와 소치씨 이렇게 넷이서 밥을 먹는 구도가 짜였다.  

“조리부에서 일해 보니까 어떤 것 같아요?”

마츠다씨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음, 어떤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일도 거의 다 마츠다 씨가 해주셨고 전 구경만 한 수준인걸요.”

나의 대답에 미무라씨가 치고 들어왔다.

“와~ 정말요? 저는 첫날부터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미무라씨의 말에 마츠다씨가 보충을 해주었다.

“아니에요, 토베씨가 엄청 도와주신걸요. 오늘따라 식재료가 특히 많이 들어왔는데 만약 혼자하거나 무츠에씨랑 둘이 있었어도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하긴, 토베씨는 겸손한 사람인 것 같으니까요. 그래도 노력한 만큼은 자신감을 가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깔깔거리면서 장난식으로 말하는 미무라씨는 꽤 쾌활하고 밝은 사람인 것 같다. 

그렇게 근황이야기나 이것저것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소치씨는 자신의 밥상에 머리를 박다시피 하고 젓가락만을 이용해서 깨짝깨짝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소치씨는 어때요?”

문득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소치 씨가 눈에 들어와서 가벼운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그러자 내 질문에 소치 씨는 놀라서 목이 막힌 듯 켁켁 거리다가, 젓가락을 놓고 고개를 들어서 나를 보았다. 목이 막혀서 그런지 살짝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얼굴이 빨개진 게 살짝 위험한 생각이 들게 만들…기는.

“네, 네?”

아직 다 넘기지 못했어! 하는 표정으로 소치 씨가 겨우 입을 열어 대답했다. 

“아뇨. 죄송해요. 그냥 소치 씨는 오늘 어떠셨나고 물어보려고 한 거였는데.”

급하게 새 잔에 물을 떠와서 소치 씨에게 건넸다. 소치 씨는 벌컥거리며 물을 마시고는 겨우 진정한 듯 보였다. “뭘 어떻긴 어떻겠어요. 저는 매일 하는 일인데.”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 그런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쿨하게 말하는 모습이 굉장히 귀여웠다.

동생 같았다면 - 실제로 동생이기는 하지만 -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물론 그랬다간 큰일 나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한번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모른척하고 말이다.

그런 식으로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미무라 씨가 이야기했다.

“헤에, 소치 씨는 굉장히 귀엽네요.”

“네?”

소치 씨는 마치 고양이가 깜짝 놀랐을 때 온몸을 곤두세우는 것처럼 놀랐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렇게 놀랐다.

그러고 보면 미무라 씨도 나랑 동갑이었든가. 그랬던 것 같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귀엽다고 이야기 한 것 치고는 굉장히 강한 반응이었다.

그 뒤 미무라 씨와 소치 씨는

“귀여워!” “안 귀여워!” “아니, 귀여워!”이런 식으로 마치 꽁트를 하듯이 티격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미무라 씨가 나에게 물었다.

“토베 씨가 보기엔 어때요? 남자의 시선에서 말해줘요.”

“우… 그게 말이죠.”

확실히 귀엽다. 라고 말하기는 좀 그랬다. 아직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니고, 선배라는 게 좀 껄끄러우니까.

어찌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미무라 씨는 이번에 마츠다 씨에게 물었다.

“마츠다씨, 맞죠? 소치 씨 정도면 굉장히 귀여운 거잖아요 그쵸?”

미무라 씨의 물음에 마츠다씨는 살짝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래도 표정을  보다보면 지금 상황을 꽤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뜸을 들이던 마츠다씨는 검지를 들어서 소치씨를 가리켰다.

소치씨의 얼굴이 물음표모양으로 변할 때 쯤, 마츠다 씨가 입을 열었다.

“만약 귀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 될 테니까, 그러네요. 소치씨는 귀여운 거 에요.”

그리고는 선언하듯이 소치씨에게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소치씨는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는데 왠지 눈까지 멍해진 그런 뻥 찐 표정이었다. 그 뒤로는 왠지 소치씨가 고분고분해져서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밥을 먹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조리실로 이동했다.

“토베씨, 이제 딱 반 남았네요. 서로 조금 만 더 열심히 노력 해봐요.”

마츠다씨가 해맑게 웃으면서 이야기해주는데 정말로 치유 받는 느낌이 들었다.

“네, 열심히 할게요.”

그리고는 다시 잡무로 들어갔다. 마츠다씨가 준비하는 동안 그녀의 동선을 최대한 줄여주기 위해 도구나 재료를 옮겨주거나, 밖에 있는 스탭들에게 마츠다씨의 전언을 전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그녀의 말벗이 되었는데 나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 그 특유의 미소를 계속 보여주면서도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일을 진행해나갔다.

정말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가 아까 있었던 일로 화제가 넘어갔다.

“후후, 아까 소치씨 정말 귀여웠었죠?”

마츠다씨의 질문에 살짝 부끄러운 기분도 들었지만 선선히 긍정했다.

“네, 확실히 귀여우시더라고요.”

“맞아요, 정말 귀여운데. 본인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머리도 그냥 질끈 묶고 다니고, 말투도 좀 남자아이 같고 말이에요.” 

실은 그렇게 씩씩한 모습이 귀여운 걸지도 모르죠. 라면서 마츠다씨는 웃었다.

확실히 그런 갭에서 귀여움이 온다는 것도 부정하긴 힘들지.

“아무튼, 굉장히 고마운 친구에요. 처음 세이렌에 들어왔을 때부터 저를 엄청 따라줬거든요. 요즘도 거의 마찬가지지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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