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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물밑작업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벌써 다섯시가 다 되어 있었다.
곧 저녁을 먹을 시간인 것이다. 그래도 잠깐 쉬고 갈까 싶어 몸을 쭉 피고 스트레칭을 하곤 그대로 베개를 베고 누워버렸다. 그렇게 얼마정도를 뒹굴었을까.
그저께 마츠다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수요일의 석식은 정식으로 나온다고 했었지 아마.
평소에 일반 식사로 먹는 밥도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었는데 정식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 기대가 되었다.
천천히 생각해보니 이렇게 정식요리를 먹어본 일도 드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친 모두 계시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없는 집이었지만 부모님이 여행을 다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셔서, 또 외식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셔서 중고등학교의 수학여행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정식을 먹어본 일도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대학생 땐 생활비를 벌어서 사용해야 했으므로 그런 사치는 더더욱 꿈도 꿔보지 못했었고.
그런 생각을 하며 침대에서 뒹굴 거리는 사이에 어느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저녁을 먹을 준비를 하고 아래층에 있는 직원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으로 내려왔을 땐 이미 어느 정도 식사준비가 되어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꽤나 도착해 있었다. 정식요리여서 그런지 평소와는 다르게 각자 먹을 만큼 퍼서 먹는 게 아니라 테이블 위에 각각의 개인상이 놓여있고 그 위에 전체요리가 몇 가지 놓여있는 식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디에 앉아야 할지가 약간 막막한 감이 들었다. 다들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앉아있는 것 같기도 해 비집고 들어가기가 그런 점도 있었고 또 비집고 들어간다고 쳐도 어디가 있는 자리고 어디가 빈자리인지 판단하기도 애매하였다.
“토베씨.” 그렇게 뻘쭘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을 돌아보자 식당 우측 창가 앞쪽의 테이블에 앉아서 날 부르고 있는 마츠다씨를 볼 수 있었다. “자리가 없으시면 이쪽으로 오세요.” 자신의 왼쪽에 있는 빈 의자를 당기며 그녀가 말했다.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가 있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갔다.
그 6인용 테이블엔 마츠다씨를 제외하고도 3명이 더 앉아있었다. 조리1부의 나카가와 스미코씨, 센다 토오야씨 그리고 조리2부의 소치 류나씨였는데 셋 모두 이름이나 얼굴정도만 외웠을 뿐 제대로 된 이야기는 한 번도 나눠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졌다. 내가 자기소개를 하며 같이 앉아도 되겠냐고 묻자 센다씨가 흔쾌히 합석을 수락해 주었다. 그 뒤에는 마츠다씨가 분위기를 잘 주도하면서 내가 나카가와씨, 센다씨, 소치씨와 친해질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나카가와씨와 센다씨는 어렸을 때부터인 친구사이로 중학교가 갈렸던 것을 제외하면 유아기부터 지금까지 쭉 같이 붙어있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 거기다 집까지 가까운 이웃사이라고 - 이야기를 하면서 지켜본 둘의 관계는 연인에는 가깝지만 왠지 모르게 둘이 어느 정도 사이를 부정하고, 거리를 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둘 다 7년차로 어느 정도 경력이 붙어가고 있는 사람들 이었고 털털하고 쾌활한 성격들이 특히 참 좋았다. 이 사람들과 친해지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치씨는 조리2부의 스텝으로 사토씨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스트레이트로 취직을 하여 4년차임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한 살이 어렸다.
살짝 블루끼가 도는, 블루블랙색의 컬이 들어간 세미 롱헤어에 동글동글하고 큰 눈망울, 앙다문 입이 인상적이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느껴본 인상은 살짝 과묵한 편이지만 할 때는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또 마츠다씨를 상당히 존경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다섯이서 나누는 대화는 주로 마츠다씨가 소재를 꺼내고 그 주제로 센다씨와 나카가와씨가 복작복작하게 이야기를 키워놓으면 그걸 다시 마츠다씨가 알맞게 가공하여 나와 소치씨에세 던지는 형식이었다. 그러다보니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도 소외되는 사람 없이 즐거운 분위기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그런 마츠다씨의 능력과 배려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도 맛있었고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저녁식사 시간이 끝났다. 좀 아쉽다 싶으면서도 사람들과 헤어져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방으로 돌아와서 오늘 입었던 제복을 잘 개어서 접어놓고 편안한 사복으로 갈아있었다. 머릿속으로 오늘 배운 것들을 잘 정리하고 있는 사이에 종업원들이 씻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세면도구들을 챙겨서 대욕탕으로 이동했다.
대욕탕에 들어가니 한산한 시간답게 손님 몇몇만 눈에 띌 뿐 아는 사람들은 없었다. 가볍게 준비를 하고 탕에 들어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가벼운 탄식성이 절로 나왔다.
센류인 휴양시설의 주력이 온천보단 주변경관이나 산림에 주로 맞춰있다곤 하지만 온천물 또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걸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조용히 온천물에 몸을 담구고 휴식을 취하다보니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목욕을 끝나고 방에 들어왔을 땐 거의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딱히 볼 것은 없었지만 적막함을 달래기 위해 tv를 켜고 조그만 미니 냉장고에서 시원한 냉수를 꺼내서 한잔 따라 마셨다.
탕에 들어가 있는 동안 몸이 따뜻하게 데워졌고 목욕을 하면서 수분을 많이 배출해서인지 벌컥벌컥 넘기는 냉수가 꿀맛 같았다. 물 한잔을 다 마시고 새로 한잔을 더 따라서 마시려는 찰나에 똑똑 하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침대에서 일어나서 현관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네, 토베씨. 마츠다 리노입니다.” 현관문 너머에서 마츠다씨의 나긋나긋하고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고나서 바로 현관문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마츠다씨가 서 있었는데 마츠다씨도 방금 씻고 나왔는지 아직 머리카락이 완벽히 마르지 않고 살짝 젖어있고 몸에서는 은은하게 카모밀레 향기가 났다.
굉장히 맡기 좋은 냄새여서 나도 모르게 킁킁거리고 말았는지 마츠다씨는 부끄러운 듯 약간 얼굴을 붉히곤 산짝 고개를 숙인체 입에 아스라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 모습을 보다보니 -또 코를 울린 것도 포함해서- 나도 왠지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일단 화제도 돌릴겸 또 이렇게 세워 놓는 것이 실례라고 느껴져서 마츠다씨에게 들어올 것을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