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62)

0007 / 0062 ----------------------------------------------

#01. 물밑작업

어느 정도 잠이 들었을까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자고 있는 사이에 해가 완전히 졌는지 방안은 어두컴컴했다.

비몽사몽 하는 기분으로 일어나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더듬으며 문으로 향했다.

네하고 대답하며 문을 여는 순간 복도의 불빛이 한 번에 쏟아지면서 제대로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견디면서 실눈을 뜨고 앞을 보자,

그곳엔 싱글싱글 거리는 마츠다씨가 서있었다. 

“마, 마츠다씨?”

난 당황해서 그런 기색을 감추지도 못한 체 얼빠진 목소리로 말해버렸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던 마츠다씨는 작게 웃음을 지으시더니 대답했다.

“찾아와 버렸어요. 후훗”

뭐, 물론 별건 없었고 그냥 얘기나 좀 하려는 김에 겸사겸사 신메뉴로 만들었던 것을 야참으로 준비해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저녁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핸드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벌써 여덟시 반 정도가 되어 있었다.

흠, 시간을 확인하고 나니 조금 출출한 것 같기도 하다.

마츠다씨가 가져온 음식은 고기볶음이었는데 달짝지근하면서 담백한 간장의 맛과 살짝 매콤하게 아려오는 뒷맛이 일품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야참을 먹으면서 마츠다씨가 생활 관련해서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을 들었다.

세이렌에선 기본적으로 주중엔 공통적으로 식사가 나오고 주말에는 개별적으로 해먹거나 사먹는다고 한다.

식사는 당연히 그냥 고급스러운 급식이라는 느낌이지만 수요일의 저녁 같은 경우는 당일 손님들에게 나가는 저녁과 같은 정식요리가 나온다고 했다.

“직원들이 먹는 정식은 조리부서의 견습이나 신참들이 맡고 있어요. 원래 직원 식사는 거의 그분들이 담당하거든요. 근데 아무래도 대량으로 만드는 음식으로는 실력을 쌓기가 쉽지 않으니까 기술을 쌓을 기회를 주기 위해서 수요일에 정식을 먹는 거예요. 물론 직원복지도 되고요.”

마츠다씨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확실히 괜찮은 일인 것 같다싶은 생각이 들어서 입을 열었다.  

“확실히 좋은 제도 같네요.”

내 말에 마츠다씨는 해맑게 웃으며 나의 말을 받아 주었다.

“그렇죠? 저도 수요일마다 제대로 된 요리를 했던 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다른 곳에서는 어느 정도 년수가 쌓일 때까진 거의 기초적인 일만 하지 본격적인 일은 시켜주지 않거든요.

라고 마츠다씨가 덧붙였다.

그 외에도 직원으로서 지켜야할 일, 주의해야할 일, 욕실사용시간이라든가 하는 것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 중 특히 도움이 된 것은 휴양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물론 아직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니 이름과 얼굴을 매치시킬 수 는 없었지만 그래도 들어두어서 결코 나쁠 것이 없었다.

일단 마츠다 리노씨 본인부터 상당히 높은 위치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정식 직함은 조리2부 부부장.

세이렌에 조리부가 3개있고 각 부서에 부장이 한명씩 셋, 부부장이 한명씩 셋이니 조리부 전체에서 통틀어도 위에서 다섯 번째에는 들어간다는 것이다.

또 부부장이라는 직함은 그대로 건실하게 경력을 쌓아가기만 하면 차기 부장내정자로서의 보장도 되는 것이니…

확실히 이정도 규모의 휴양원에서 신메뉴를 개발해볼 수 있는 사람이니까 어느 정도는 높겠거니 했더니 생각이상이었다.

그 다음엔 각 부서의 부장이나 신입인 내가 당장에 만나게 될 사람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사장인 토리에 아카키씨 같은 경우는 꽤 유들유들하고 부드러운 성격이라고 한다.

일에 관해선 엄격하지만 그 외에의 면에선 착한 동네아저씨A같은 사람이라고

“아까도 말이에요, 간부들끼리 따로 모여서 회의를 했었는데 그때 이번 신입들은 기합이 너무 들어갔다가 투덜대시더라고요.”

“기합이요…”

인사를 했을 때가 생각나서 실없게 웃자 마츠다씨도 따라서 활짝 웃어주었다.

“네, 후후. 빡빡한 상하관계 그런 것보단 가족 같은 분위기를 좋아하시거든요.”

웃으면서 그렇게 얘기하던 마츠다씨는 딱하고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아, 가족하니까 생각이 난건데 지금 아카키사장님의 따님이 휴양원에 묶고 계세요.”

“따님이요?”

내가 묻자 마츠다씨는 다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 토리에 미츠루라고 사장님의 외동딸이에요. 작년에 지원했던 대학에서 낙방하고 별관3층에 있는 봄앗이방에서 재수공부를 하고 있어요.”

물론 이런 건 말씀드리면 안 되는 거 였겠지만요…

하고 말하고 나서 바로 풀이죽어버리는 마츠다씨를 다시 북돋아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뇨아뇨, 제가 그런 얘기를 누구한테 하겠고 또 언제 사장님의 따님을 만나보겠어요.”

신입이 하고 말을 끝맺었다.

내 얘기를 들은 마츠다씨는 눈을 깜빡이며 입술을 뾰족하게 모으더니 이내 입술을 풀고 웃으면서 말했다.

“안 그럴걸요?”

확실히 그러했다.

그러했다고 해서 별로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따뜻한 볕 아래에서 이불을 털어내던 중에 문든 그젯밤 마츠다씨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던 것이다.

둘째 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되었다.

라고하면 좋겠지만 어제까지는 부대시설의 위치나 각종 주의사항을 반복해서 숙지하여야 했다. 특히나 종업원의 일을 하는 만큼 시설의 위치를 외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당장 업무에 관련된 일이라면 충분히 설명을 해줄 테니 문제가 없겠지만 손님들이 시설의 위치를 묻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슌베이씨가 이런 논지로 강조를 하셔서, 어제 중으로 그것만큼은 완벽히 숙지할 수 있었다.

그것에 관련해서, 어제 저녁을 먹고 나서 하라 고이치씨 -우리보다 2년 앞선 3년차 선배로 유격부소속이다.- 주관 하에 간단하게 구두테스트를 봤었다. 미즈가와씨와 미무라씨는 가볍게 통과하였고 나도 한두 번 말을 절기는 하였지만 위치자체는 틀림없이 대답을 하고 통과를 하였다. 

문제는 사카라기씨였는데 “에, 그러니까 주방의 왼쪽이… 에…” 같은 느낌으로 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오전 내내 자기는 길치끼가 좀 있다고 울상이었던 것 같다.- 몇 번인가 다른 곳들을 더 물어본 하라씨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챘는지 사카라기씨를 데리고 시설을 한 바퀴 더 순회하고 나서 내일, 즉 오늘까지 위치를 완벽히 파악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셋 나, 미즈가와씨, 미무라씨는 각각 관리부, 회계부, 조리부로 나뉘어져서 견습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배속된 관리부는 휴양원내의 모든 비품, 시설, 가재들을 유지하고 말 그대로 관리를 하는 부서이다. 워낙 다양한 업무들이 있는 만큼 관리부 안에서도 몇 가지 그룹으로 나뉘어서 일을 하게 된다고 관리부부장인 마나베 토무라씨가 말씀해 주셨다.

비품의 수량을 파악하고 부족량을 청구하는 등의 일을 하는 계원조 

객실, 탕, 장비류 등의 시설물을 보수하고 관리하는 시설조

객실내부의 정돈, 청결상태를 담당하는 객실조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서 관리부의 업무가 돌아가게 되며 내가 오늘 하게 될 일은 그 중에서도 객실조의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이후엔 5년차 선배인 사토 치즈에씨를 따라서 객실을 돌며 일을 배우게 되었다.

사토씨는 5년차 선배이긴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세이렌으로 들어온 터라 나와 나이가 동갑이었다. 사토씨는 이 근방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일을 시작하는 게 보편화된 일이라고 말하면서 그것 때문에 이렇게 불편한 일이 종종 생겨버린다고 푸념을 놓았다. 그러다가 

“그렇게 됐으니까. 토베씨도 둘 만 있을 때는 편하게 말을 놓아줬으면 좋겠어.” 

갑자기 톡하고 쏘아 올렸다.

“네, 네?”

내가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하자 사토씨는 눈을 옆으로 흘겨 뜨면서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러니까, 동갑끼리 막 선배님하고 그러기는 싫으니까 토베씨도 편하게 말을 해달라고”

“아니 그래도 그런 건…”

“쯥!”

“으, 응.”

사토씨가 살짝 인상을 쓰면서 노려본 것만으로 상황이 끝나고 말았다.

사토씨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침구류를 정리하고 객실의 먼지를 쓸어내고 닦아내고 지저분한 부분이 없는지, 부족한 물건은 없는지 꼼꼼하게 파악하고 이것저것 노하우들을 전수해주셨다.

“그래봤자 다른 부서로 가버리면 거의 쓸모없는 지식이 되겠지만 말야.”

얘다! 싶어서 열심히 가르쳐봤자, 더 적성에 맞는 부서가 있다며 다른 곳에서 뽑아가 버린다느니 하는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사토씨는 느려지거나 흐트러지는 것 없이 깔끔하게 객실을 정리해나갔다. 

사토씨의 이야기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면서 사토씨를 천천히 관찰해보았다.

160초중반대쯤 되어 보이는 중키에 살짝 브라운 끼가 도는 흑발.

그 매끄러워 보이는 흑발을 단발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오른쪽에서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잡아주고 있는 조그만 삔.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간 고양이눈.

크진 않지만 볼륨감 있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가슴.

그리고 무엇보다 걸을 때마다 긴 치마위로 언뜻언뜻 윤곽이 잡히는 가늘고 긴 다리와 탄력 있어 보이는 둔부….

마츠다씨처럼 누구나 돌려세울만한 미인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준수한 얼굴에 저 털털하고 쾌활한 성격까지.

사토씨도 마츠다씨 못지않게 매력적인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교육이 끝났다고 판단했는지 그녀는 나에게 직접 투입해서 객실을 정리해보라고 하였다. 알았다고 대답하고 옆 객실로 들어가려하자 거기가 아니라며 나를 말려 세우곤 복도 끝 쪽에 있는 방으로 데려갔다. 

“자, 여기가 관리부견습생들이 담당하게 될 봄앗이방야.”

사토씨는 고양이눈으로 나를 흘겨보면서 살짝 미소를 입에 문체로 말했다.

그녀의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운 모습인데 왠지 그걸 보면서 섬뜩함을 느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