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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물밑작업
"흠... 그럼 어떤 것 부터 얘기해 볼까요."
마츠다씨는 커피잔에서 입을 땐 후 작은 웃음을 띄우면서 말했다.
천천히 세이렌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마츠다씨는 자주 들르는 카페로 가자고 말했고, 당연히 나도 그 편이 편할테니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를 따라 도착한 카페는 '에벤스'라는 이름의 진득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테이블이 대여섯개 밖에 되지않는, 그렇게까지 넓지는 않은 아담한 크기의 가게였으나 살짝 어두운듯 하면서도 은은한 밝기의 조명과 부자의 살롱에 온듯한 인테리어와 만나 오히려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어때요? 꽤나 악취미인 가게지요?"
내가 분위기에 뻥쪄서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자 마츠다씨는 웃으면서 얘기를 살짝 돌려주었다.
"네? 네에..?"
"분위기는 부자의 응접실이나 뭐 그런 느낌이겠지만 실제로는 부자의 악취미에 불과하는 가게에요."
"오너가 예상치 않게 유산을 꽤나 상속받아서 무슨일이나 할까 하다가 차린 가게죠, 이렇게 토베씨 처럼 뻥찐사람들을 구경하고 싶어서"
마지막 말을 할때 마츠다씨가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속삭이듯이 말해서 왠지 얼굴이 살짝 화끈거린다.
물론 뻥쪄있던것도 부끄럽고...
"그래, 그럴려고 만든거지 흉보라고 만든 가게가 아니란 말이지."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와서 돌아보니 타이트한 정장을 입고 긴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성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까봤던 홀서버와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는 걸 봐서는 아마 이 카페의 직원 중 한사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안녕 메이코. 오랫만이네"
"오랫만까지야, 지난주에도 와놓고선."
메이코라고 불린 여성은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마츠다씨와는 원래 그런 사이인지 둘은 그런식으로 몇 마디씩을 나누었다.
그렇게 마츠다씨와 이야기를 하던 메이코씨가 이내 나를 힐끗보더니 웃으면서 말을 걸어왔다.
"근데 이쪽분은 누구시죠? 리노의 남자친구?"
순간 얼굴이 화악 달아오른 내가 부정하려고 했으나 그것보다 먼저 마츠다씨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체 파닥파닥거리면서 말했다.
"아, 아니야. 토베씨는 그런게 아니라 세이렌의 스탭인걸.."
"뭐야, 아니었나. 뭐 아무튼."
메이코씨는 잠깐 유감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표정을 정돈하고는 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본의 아니게 이런저런 실례를 해버렸네요. 카페 에벤스의 오너인 타카하시 메이코라고 합니다. 토베씨라고 했던가요..?"
"아 네, 토베 류노스케라고 합니다."
오른손을 내미는 메이코씨, 타카하시씨의 손을 잡고 가볍게 악수를 했다.
뭐라고 해야할까... 굉장히 자연스러운 동작이어서 나도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는 느낌으로 악수를 했다.
"흐음.. 토베.. 류노스케씨라.. 그럼 리노를 잘 부탁드려요."
타카하시씨는 말꼬리를 늘이는 척 하다가 빠르게 말을 내뱉고는 빠른 걸음으로 카운터로 돌아가 버렸다.
마츠다씨는 잠깐 발끈한 표정을 했으나 이내 또다시 얼굴을 약간 붉히고는 나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토베씨.. 메이코랑은 중학교 때부터 동창이었는데.. 확실히 나쁜 얘는 아닌데 조금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얘라.. 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아니에요. 이런 걸 가지고 폐라뇨.."
오히려 마츠다씨 같은 여성과라면...
정도의 생각도 들었지만 당연히 입밖으로 낼 수 는 없었다.
그 후로 왠지 적막이 찾아왔다.
마츠다씨도 테이블 밑으로 손만 꼼지락거리고 있고 나도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뻘쭘히 찻잔만 쳐다보았다.
그러다 드물정도로 맛있다, 라는 느낌이 드는 커피 맛에 차를 마셨다 찻잔을 놓았다를 반복했다.
가만히 있으려니까 점점 더 부끄러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먼저 마츠다씨에게 말을 걸기로 마음 먹었다.
원래부터 여기에 온 것도 나름대로의 정보를 듣기 위함이지 이렇게 멍하니 있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니까...
"저 마츠다씨"
"네 , 네 말씀하세요."
"제가 채용되었다는 얘기만 들어서, 전에 따로 전화를 해봤었는데 정확한 업무내용 같은 거는 현장에 와서 직접 들으라고 하던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건가요?"
"아.. 그런거면 저한테 전화하시는게 빨랐을텐데.. 흠, 일단 정확하게 얘기해보자면 토베씨가 맞게 될 업무 자체는 없어요."
"네?"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묻자 마츠다씨는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제가 이상하게 얘기했나요.. 음.. 일단.. 세이렌이 어느 정도 크기의 휴양원이지는 아시고 계시죠?"
"네"
크긴 크지만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은, 그 정도의 크기로 알고 있다.
"휴양원의 크기가 크다보니까 필요한 직원의 수 도 많고 그 업무도 다양해요.
이를테면 저 같은 주방스탭도 필요하고 수련활동으로 찾아온 학생들을 가르칠 스탭도 필요하고... 그런 식으로 여러가지 종류의 직원이 필요하다보니까 당연히 많은 사람들을 채용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기 쉽죠."
라고 말하고 잠깐 뜸을 들인 뒤 마츠다씨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렇게나 사람들을 머릿수로 채워넣다보면 저희가 손님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총량은 늘어날지 몰라도 당연히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게 되겠죠.
그럼 이 근방에서 제일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세이렌의 이름에도 흠집이 갈 것이고, 그렇개 되면 꾸역꾸역 몸집만 부풀린 대가가 찾아오겠죠."
확실히 직원의 숫자는 늘었는데 손님의 숫자가 줄어든다면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해지겠지..
"흠.. 죄송해요. 또 약간 이야기가 빗나갔던거 같네요... 아무튼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면접으로 걸러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저희 사장님의 생각이에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그 사람에게 시키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생긴게 세이렌의 유격제도에요. 그 사람에게 가장 적성에 맞는 일이라고 판단 될 때까지 어느 부서에 소속되지 않고 다양한 부서를 돌면서 업무를 수행하는 거죠."
"아.. 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확실히 특이한 방침이기는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인원을 배치하는 것보다 효율적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