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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물밑작업
기차에서 내려서 사와자카역을 나왔다.
역시 쭉 도쿄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면접보랴 이것저것 하느라 몇번 온곳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골마을은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뭐, 사와자카정도면 시골마을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미안할 정도로 번성한 곳이기는 하지만 역시 대도시들에 비하면 촌구석이라는 느낌이다.
역전에서 나름대로의 번화가는 갖추고 있지만 도쿄에 비해 규모도 작고 엉성한 느낌이 태반이다.
그게 당연한 거긴 하겠지만.
정도의 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꺼내서 시각을 확인했다.
한시 사십분.
역에서 휴양촌으로 들어가는 셔틀버스가 매시 30분마다 한시간간격으로 있다고 했으니 완벽하게 놓쳐버렸다.
두시 삼십분에도 버스는 올테니 그것을 타기로 하고 일단 거리를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미리 알아본바에 의하면 사와자카마을은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진다.
일단 첫번째는 주택지가 모여있는 주택지구, 하베 쵸
두번째는 주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지구의 성격을 띄는 시마바 쵸
세번째는 내가 일하게 될 세이렌 종합휴양지가 있는 휴양촌(정식명칭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 사용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네번째가 주로 관광객, 휴양객들을 대상으로한 관광지구인 카이센 쵸
현재 내가 있는 역전 번화가는 시마바 쵸에 속한다.
시마바 쵸는 역시 주민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상업지구인 만큼 실생활과 연관된 가게들이 많이 보인다.
이 주변에서 살게 된 이상 빨리 이 근처 지리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되겠지.
몸만 딸랑왔다고 할정도로 짐을 거의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당장은 쇼핑할 시간이 별로 없으니 일단 생필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의 위치를 체크해두었다.
어느 정도 주변을 돌아보고 다시 핸드폰을 꺼내서 시각을 보니 거의 버스가 올 시간이었기에 빠른 걸음으로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버스정류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덕에 두 시반 버스는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열심히 걷고 있을 때 앞에서 뒤뚱뒤뚱 걷고 있는 커다란 쇼핑봉투를 발견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160cm정도 되어보이는 여성이 자기 몸집에 두 배정도는 되어보이는 쇼핑봉투를 품에 앉고 겨우겨우 걷고 있었다.
저게 바로 무절제한 쇼핑의 표본이구나.
이럴 때 딱히 남을 도와줘온 타입도 아니었고 버스시간도 촉박했기에 더 속도를 올려서 쇼핑봉투를 지나쳤다.
"저.. 저기"
쇼핑봉투를 지나쳤을 때 뒤쪽에서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나를 부르는 소리겠지.
알고는 있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부탁을 들어줄 의리는 없다.
"저.. 토베.. 씨? 토베씨 아니신가요?"
더더욱 빠르게 다리를 놀려서 쇼핑봉투를 떨구자고 마음먹었을 때 쇼핑봉투가 나를 또 다시 불렀다. 이번엔 나의 이름으로...
우물쭈물 하며 뒤를 돌아보았지만 역시 커다란 쇼핑봉투와 부르르 떨리고 있는, 쇼핑봉투를 안고 있을 팔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멈춘것을 알아챘는지 그녀는 으으으으~차아아~ 하는 오히려 힘이 빠지는 기합소리를 내며 쇼핑봉투를 내려놓았다.
쇼핑봉투를 내려놓은 뒤에야 그녀를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약간 보랏빛이 도는 웨이브머리에 눈꼬리가 약간 처져있는 커다란 눈, C컵이 못된 B컵정도 되어보이는 풍만한 가슴, 약간 맹해보이지만 그게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생김새...
살아오면서 몇 명만나보지 못했다고 할 정도의 미인이고 또 다른 이유로도 잊지못할 미인이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그녀가 세이렌 종합휴양지의 스탭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아마 마츠다 리노.
나이는 나보다 세살많은 정도이지만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세이렌에 들어갔기때문에 거의 10년가까이 일해온 베테랑이다.
내가 면접을 보러왔을 때 직접 면접을 봤던 면접관이기도 하고 또한 합격통지 전날 전화로 미리 결과를 알려준 여성이다.
그녀는 여간 힘든게 아니었는지 짐을 내리고 나서도 쉽게 허리를 펴지못하다가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바로세웠다.
그리고는 나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
"..."
"......"
"......"
"...저기, 마츠다씨 맞으시죠?"
침묵을 참지못하고 내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그제야 그녀는 표정이 밝아지며 내쪽으로 다가왔다.
"아, 역시 토베씨가 맞군요.. 다행이다.. 다른 사람을 불러세웠으면 어쩌나하고 걱정했어요."
불러세워놓고 걱정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고서 마츠다씨는 그 다음말을 잇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렸다.
뭐, 딱 얼굴만 아는 사이고 부탁하는게 그다지 쉽지는 않겠지. 성격도 그다지 적극적으로는 안 보이고..
종이봉투쪽으로 다가가서 스윽하고 들어올렸다.
확실히 무겁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무거운 정도는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무겁다기보다는 부피가 커서 들기가 불편한 정도랄까
"세이렌 종합 휴양지로 가시는 거죠? 같은 방향이니까 들어드릴께요."
내 말을 들은 마츠다씨는 고마움과 부끄러움이 범벅이된 표정을 지었다.
말로 설명하기가 힘든데 정말로 그런 표정이다.
"고..고마워요."
흠.. 이런것도 나쁘지는 않은가.
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저.. 마츠다씨 혹시 지금 몇 시죠?"
"에.. 지금이.."
마츠다씨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백치미가 있어보이는 주인과는 다르게 은근히 세련된 맛이 있는 시계다.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긴 하지만.
"음.. 두시 삼십사분이네요."
어휴..
마츠다씨는 약간 낙담한 내 표정에 더더욱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마츠다씨도 눈치 챘는지 기운이 쪽 빠진 표정을 지었다.
"늦어버렸네요.. 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