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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먹고 싶어-83화 (83/86)

83화

“미쳤어요?”

그의 말에 기겁해서 소리쳤다.

“뭐?”

다짜고짜 욕설부터 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건 그도 마찬가지인지 얼굴이 찌푸려졌다.

“제가 어떻게 당신이랑! 안 돼요!”

“왜 거부하는 거지? 나쁜 조건은 아니잖아?”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가 이어지자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 걸까?

“당신이 그…… 나의 아버지라면서요!”

“뭐?”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어색한 단어를 꺼내 들자 순간적으로 내 몸을 더듬던 그의 손이 멈추었다. 아무리 내가 배가 고픈 상황이어도 인간이었을 때의 도덕적 관념에서 벗어나는 행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뭐?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사람과 몸으로 하는 계약?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언제 풀어 버린 것인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옷을 추스르며 그를 노려보았다. 멍하니 날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묘하게 번졌다.

“흐음, 그렇게 되는 건가?”

격노하는 자신과는 달리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책임감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보이는 태도에 화가 난 나는 다시 언성을 높였다.

“여태 당신이 그렇게 이야기해 줬잖아요!”

“뭐. 그래도 생물학적 아버지는 아니니 괜찮지 않겠어?”

“네? 뭐라고요? 그게 무슨…….”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뜬금없는 소리에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의 눈이 길게 늘어졌다.

“그러게 아까 내가 하던 말을 끊지 말지 그랬어.”

당당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의 말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사자 앞에서 남사스러운 말을 하려던 그의 말을 다시 들을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숨을 푹 내쉰 난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다.

“……그럼 아까 하던 말들은 다 뭐예요?”

내 반응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재빠르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손짓에 가볍게 불길이 일었다 사라졌다.

“보다시피 이 마력을 사용해서 그녀가 잉태하게 만들었을 뿐, 직접적인 행위로 한 적은 없어. 뭐, 유흥거리로 간간이 즐긴 것은 있다만.”

어, 뭐야. 그의 말대로라면 그가 내 아버지가 되기엔 어딘가 모자란 부분이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난 뭐지? 인간도, 그렇다고 엄마의 종족을 따르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라는 사실이 현실과는 괴리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럼 당신이 내 아버지인 건 아니에요?”

“그래도 이왕이면 맞다고 해 주는 편이 재밌지 않아? 마력도 엄연한 내 힘이니까.”

그는 빙그레 웃으며 내게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지만 좁은 방은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이 넓지 않았다.

“그럼 이제 너랑 나랑 계약 맺어도 상관없지?”

“흐읏……!”

기다란 손가락이 스커트를 옆으로 치우고 아래를 지분거렸다. 미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옷은 그의 손에 방해가 전혀 되질 못하고 있었다.

“사실 내심 궁금했단 말이야. 도대체 어떤 신체로 만들어졌기에 그렇게 인간들이 목을 매는지.”

“다, 당신이 날 만들었다면서요.”

“결과물은 나도 책임 못 져.”

이게 무슨 헛소리야. 그의 말에 바람 소리가 일 정도로 빠르게 고갤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실패작이 나올 때도 있고, 성공작이 나올 때도 있지. 다행히 내가 봤을 때 넌 대성공이야.”

“그렇게 무책임해도 돼요?”

내 말에 그가 내 뺨을 쓸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은 곱상하기 그지없었다. 남자처럼 생기기도, 여자처럼 생기기도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와 아름다움을 견줄 정도로 예쁘다는 것이었다.

“말했잖아? 내 계약은 어디까지나 널 잉태하게 만드는 걸로 끝이야. 그걸 어떻게 굴릴지는 순전히 네 엄마에게 달린 거지.”

“그러면서 실패하면 영혼마저 소멸시키고요?”

“그렇지.”

“사기꾼.”

그의 말에 한마디 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제 몸을 지분거리고 있는 그의 손이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도 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칭찬을 해 주다니 기쁘기 그지없군.”

말이나 못 하면. 눈으론 그를 흘겨보면서 제 아래를 지분거리는 팔을 붙잡았다. 의아한 듯한 그의 시선이 닿자 그의 팔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계약하면 엄마를 살려 준다는 말, 잊지 말아요.”

“물론이야. 악마들도 거짓말은 안 하거든.”

그래 놓고 교묘한 말장난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문제겠지만 말이다. 도저히 확신을 받지 않고선 이 계약을 그대로 진행시킬 순 없을 것 같았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내 뒤통수를 치면 어떻게 해.

“그리고 엄마를 설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요.”

그제야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런, 한 번의 계약에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는 거 아냐?”

“이왕이면 교단을 설득할 때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하.”

그의 말에 굴하지 않고 뻔뻔하게 굴자 내 여전히 내 몸에 닿고 있던 그의 손이 떨어졌다. 시니컬하게 앞머리를 쓸어 넘기는 그의 얼굴은 아까완 달리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아까는 여자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아름다움을 갖추었다면 지금은 남을 제압할 정도로 위압적인 얼굴이 날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저 노려보는 것에 굴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자유를 걸고 온 것만큼 여기서 쉬이 포기할 순 없었다.

“날 태어나게 해 주셨으면 응당 그에 대한 책임은 지셔야 할 거 아니에요? 그게 마력이든, 뭐가 되었든 말이에요.”

“건방지군.”

조금 전과 다르게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입술에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올 때마다 냉기가 몰아치는 것 같았다. 방 안의 온도가 뚝 떨어진 것처럼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지만 개의치 않은 채 꿋꿋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뒷말 나오지 않게 행동거지 잘 하는 것이 좋을 거예요.”

“한낱 매개체 주제에 감히 악마에게 겁을 주려는 거야?”

“그럴 리가요. 그저 서로의 신용은 확실히 하자는 거죠.”

그는 내 말에 무언가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뻥긋하던 입술은 굳게 일직선을 긋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달랐다. 화나 보이던 아까완 달리 처음 마주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묘한 얼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참 꼼꼼한 성격이로군. 나에게 이런 성격이 있었던 것 같진 않았는데 말이야.”

“당신이 만든 게 아니니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렇지만 기본적인 건 마력의 주인에게서 파생되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빙그레 웃었다.

“역시 넌 내가 여태 만났던 것들 중에 특별해.”

칭찬인 것 같았지만 내 마음에 썩 들지 않으니 답을 하지 않았다. 그 또한 딱히 답을 바라는 건 아닌지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아까 언제 화냈는지 모를 정도로 그의 웃음은 환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왜 자꾸 다가와?

“역시 네 엄마와 계약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 시대착오적인 발상의 염원은 그렇다고 쳐도, 덕분에 널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야.”

그의 손이 내 뺨에 닿았다. 뺨에 닿았던 손은 이내 흐르듯 아래로 내려가 입술을 지분거렸다. 그가 내게서 뭘 원하는지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설마 이대로 계약 계속할 생각은 아니죠?”

“그럼, 아니야?”

그건 아니지만. 의아한 듯이 날 바라보는 그의 행동에 연신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와서 타인과 몸을 섞는 데에 거부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가 아까 전부터 계속 중얼거리는 말 때문에 기분이 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네 얼굴에 그녀의 얼굴과 내 얼굴이 묘하게 섞인 것 같기도 하고.”

“묘한 기분 드는 말 그만해요. 자꾸 그런 괴상한 소리 지껄이니까 이상한 생각이 자꾸 든단 말이에요.”

결국 타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질색하며 제 몸을 만지작거리는 그의 손을 때리자 그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

“무슨 생각?”

저렇게 질문하는 사람 치고 모르는 사람 못 봤는데. 질문의 의도가 뻔한 그의 말에 고갤 돌리자 그의 몸이 한층 더 내게 밀착했다. 양다리 사이에 자신의 허벅지를 끼어 넣은 그가 무릎을 세워 제 아래를 비볐다.

“부도덕한 것도 악마가 즐기는 유흥거리 중 하나인 거 몰라?”

손을 내려 가슴을 지분거리면서도 잘도 그런 말을 하는 그의 말에 짜증이 샘솟았다. 착실하게 반응하는 몸이 아니었더라면 진즉에 그를 때려눕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으응, 그 입 닫아요. 제발.”

“제발?”

그는 내 턱을 끌어 올려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또 알 수 없는 얼굴. 얼굴이 특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지, 또 알 수 없는 얼굴이 눈앞에 마주하고 있었다. 장난기 어린 얼굴은 눈을 반짝이며 내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싫은데.”

그 말과 동시에 그는 내 입술을 집어삼켰다. 겨우 추스르고 있던 옷을 아래로 끌어 내리는 것도 그때였다. 내 손아귀 아래서 힘없이 있던 옷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그는 나를 한층 더 벽으로 밀었다.

“날 즐겁게 해 주기로 했던 거, 잊었어? 네가 수치심을 느낄수록 날 즐겁게 만들어.”

뭐?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웃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양쪽 허벅지를 다 넣어 내 다리를 더 벌린 그는 자신의 것을 꺼내 들었다.

“흐, 으응……!”

안을 파고드는 선명한 느낌에 발뒤꿈치가 자연스레 들어 올려졌다. 마땅히 짚을 것이 없어 그의 어깨를 잡곤 고갤 숙였다. 찰랑거리는 금빛의 머리카락 속에서 피처럼 붉은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안으로 완전히 파고들기가 무섭게 그의 것이 단박에 뒤로 빠졌다. 그리고 쏟아지듯 이어지는 피스톤질에 제 몸이 정처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으로 파고들 때마다 새로운 감각에 도저히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오늘 그를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때문은 아니었다. 얼굴만 그런 줄 알았더니, 아랫도리도 그런 것인지 안에서 모양은 변환시키는 것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제 안을 비비는 느낌인가 싶다가도, 다시 파고들 땐 강하게 쳐올리는 감각이 전혀 색다른 모습을 형상하게끔 만들었다.

“어때? 날 조금 더 흥미롭게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흣, 하앙, 응…… 닥, 쳐요.”

정신없이 쳐올리는 와중에 저런 쓸데없는 말을 지껄일 수 있는 그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가 어떤 이인지도 까먹은 채 거칠게 답하자 박는 행동이 조금 더 강해졌다.

“흐읏!”

강하게 쳐올리는 감각에 저도 모르게 다급하게 숨을 뱉어 내며 그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또다. 또 다른 감각이 제 몸을 휩쓸었다. 적응하지 못한 몸이 바르르 떨자 그가 내 허벅지를 잡아 더욱 벌렸다.

“……예상외야. 넌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성공작이군.”

차분하지만 잔뜩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생각이 바뀌었어. 넌 합격점이야.”

그렇게 말한 그가 내 어깨에 자신의 이를 박아 넣었다. 따끔거리는 통증과 동시에 절정에 오르자 그 또한 안에 깊게 파고들며 파정했다.

파르르 몸을 떨며 호흡을 진정시키려 애쓰자 그가 안에 있던 자신의 것을 꺼내었다. 흠뻑 젖다 못해 허벅지에 흐르는 것을 그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쓸었다.

“옷 입어.”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할짝이며 언제 주웠는지 모를 내 옷을 던져 주었다. 느긋하게 일 좀 진행하면 어디가 덧나나? 그를 향해 한껏 투털거리면서도 옷을 주워 입었다. 흐트러진 머리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밤이니 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네 엄마를 설득시켜 달라고 했지.”

“그, 그렇죠.”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고갤 갸우뚱하면서도 순순히 끄덕였다. 그는 턱을 매만지더니 이내 빙그레 미소를 띠며 내게 말했다.

“역시 귀찮으니 빨리 끝내는 게 좋겠군.”

그렇게 말하며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몸이 어질하는 충격이 제 몸을 짓눌렀다. 중력이란 중력은 모두 제 몸에 가해지는 느낌에 도저히 눈을 감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버텨내어 눈을 뜨는 순간 나는 전혀 다른 풍경과 직면해야 했다.

“비시아?”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재빠르게 고갤 돌렸다. 그곳엔 얼떨떨한 표정인 루드릭이 자릴 잡고 있었다. 그의 손엔 여전히 우리 집에 있던 카마수트라가 있던 참이었다.

“여긴 어디지?”

“저도 모르겠어요.”

“……비시아?”

그 순간이었다. 또다시 제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재빠르게 고갤 돌렸다. 그럴 순 없을 텐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제 눈앞에 엄마가 있었다.

이런 젠장.너를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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