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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먹고 싶어-81화 (81/86)

81화

“쉿. 나야.”

버둥거리기 무섭게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눈동자를 돌렸다. 익숙한 목소리에 이어 어둠 속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이자 허우적거리던 팔을 멈추었다. 내 행동이 잦아든 것을 깨닫자 날 속박한 이의 손 또한 서서히 힘이 빠졌다.

“루, 루드릭?”

속박하던 손을 완전히 풀어주자마자 나는 재빠르게 소리쳤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네가 나가는 걸 보고 따라 나왔지.”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한 나라를 책임지는 이의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가솔들은 그가 나간 것을 알긴 하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에게 충성스럽던 부하들이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너의 집으로 향하는 문인가?”

이런 내 생각을 알 리가 없는 루드릭은 태연스럽게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의 손이 정확하게 균열을 가리키는 것을 보아 내가 헛것을 보는 모양은 아니었다. 그의 말에 주저주저하다 작게 고갤 끄덕였다.

“아……마도요.”

“이 문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거지? 아무리 봐도 이 숲이 저 너머로 연결되는 것 같진 않은 것 같은데.”

“글쎄요…….”

그의 말에 어느 것 하나 확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아는 것이 없는 것도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었다. 미온적인 반응이 이어지자 어이없는 표정이 된 루드릭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뭐야? 네 집 입구라며?”

“집이라도 오랜만에 보면 좀 생소할 수도 있죠.”

오랜만은 아니고 처음이지만. 더군다나 이런 입구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이라면 더더욱. 엄마가 날 얼마나 무지하게 가르쳤는지 다시 한 번 더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균열은 열려 있는 채였지만 갑작스럽게 생긴 것만큼 액면가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나는 텐트를 치기 위해 사용했던 밧줄을 들어 제 허리에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남은 부분을 루드릭에게 건네었다.

“이거 들고 있어요.”

“왜지?”

순순히 줄을 들었지만 의아한 표정의 시선이 닿았다. 줄을 묶는다면 이유는 한 가지 아냐?

“이 문이 언제 닫힐지 몰라서요. 만약 문이 사라지고 제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 끈을 이용해서 절 찾아 주세요.”

“흐음……. 알겠다.”

다소 당황한 표정이지만 다행히도 루드릭은 쉽게 납득하고 고갤 끄덕였다. 왜 문이 닫힐지도 모르냐고 물어보지 않아서 다행이야. 만약 그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면 아까와 똑같이 제대로 된 대답도 못 하고 뻘뻘댈 것이 뻔했다.

나는 제 허리춤에 묶인 끈을 한 번 당겨 보았다. 이어진 줄이 루드릭의 손을 가볍게 끌어당기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괜찮아야 할 텐데. 만약 문이 닫히더라도 잘리는 것이 아닌, 집까지 이어지길 바라며 나는 조심스레 앞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균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아무것도 없었다. 화려한 효과나, 몸에 가해질 충격에 눈을 질끈 감았지만 제 방문을 드나드는 것만큼이나 아무렇지 않은 느낌에 눈을 깜빡였다.

괘, 괜찮네? 밖을 향해 손을 쑥 뻗어 보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뭐 해?”

“아, 아니에요.”

머쓱해진 표정으로 루드릭을 바라볼 생각도 못 한 채 재빠르게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마을이 아닌, 집으로 연결되어 있는 균열은 날 바로 우리 집 앞에 데려다 놓았다.

오랜만이네. 괜스레 그리운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어렸을 적 기억이 카마수트라로 뒤범벅되어 있다고 한들 이곳에서 지냈던 기억마저 퇴색시킬 수는 없었다.

어렸을 적 친구들이랑 놀던 것과 엄마와 단둘이서 지내던 것. 식사를 하지 않아도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아 유년기를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다는 것까지.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에 저도 모르게 집을 빤히 바라보았다.

제일 좋았던 건 역시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거지. 카마수트라를 배웠던 것만 제외하면 놀고먹었던 생활이 그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과거 회상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손을 뻗어 현관문에 손을 대었다. 새삼스레 이질적인 감각이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만들었지만 나는 과감하게 문을 밀었다.

끼이익. 무거운 문이 내 손에 쉽게 열렸다. 이방인이 없는 우리 마을은 문을 잠글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패물을 모으는 것이 취미인 것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잠글 일은 없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하나도 변하지 않은 집이 날 맞이했다. 거실부터 방까지. 심지어 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마저 그대로이자 감정이 북받치는 순간이었다.

“호오. 여기가 너의 집인가?”

“으아아!”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소리쳤다. 까, 깜짝이야! 언제부터인지 내 옆에 와 있는 루드릭의 모습을 보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의 옷을 붙잡았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루드릭? 왜, 왜 들어와요? 갑자기 닫히면 어쩌려고요! 줄은? 줄은 또 어디 갔어요?”

“아, 그거. 저기 묶어 놨다만.”

급박한 나완 달리 태평한 그의 손가락이 균열 너머의 나무를 가리켰다. 튼튼한 나무 기둥에 묶여 있는 끈을 발견하고 조심스레 제 허리에 묶인 끈을 당겨 보았다. 팽팽. 따라오지 않고 잘 묶여 있다는 것에 한숨 덜었지만 여전히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저거 믿어도 돼요?”

“일단은 꽉 묶어 놨는데.”

“하……. 그래요.”

그의 말에 진지하게 답을 할 자신이 없었다. 당혹스러웠지만 그가 없었더라면 자신 또한 저렇게 했을 생각이 제 목을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에게 시선을 거둬들인 후 다시 집을 바라보았다.

“이게 네가 살던 집인가?”

“네.”

“생각보다…….”

그는 집을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뜸 들였다.

“아담하군.”

뜸 들인 동안 마땅히 맞는 단어를 찾기 위해 고민했을 루드릭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폐태자가 되어도 늘 커다란 집에서 살던 그로써 우리 집이 다소 충격적일 수는 있었다. 그래. 코딱지만 하다고 하지 않은 게 어디야. 생각보다 정상적인 단어를 뱉어 준 그를 향해 마음속으로 경의를 표하며 집을 둘러보았다.

내가 떠났을 때와 전혀 변하지 않은 집 안 풍경만큼이나 안에 있는 물건 또한 마찬가지였다. 책장도 책상도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어렸을 적 궁금함에 내가 한 번씩 뒤지던 것들이었다.

모든 것들이 그대로였다.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카마수트라도 여전했다. 날 따라 하듯 집 안을 뒤지던 루드릭이 책장에서 한 책을 빼내더니 이내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탐닉하기 시작했다. 열중하는 그의 모습에 고갤 절레절레 저으며 시선을 돌렸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가 나 대신 새로운 것을 찾아내 줄 거란 생각을 한 것이 바보였다.

“역시 이곳밖에 없는 걸까?”

결국 마지막으로 내가 선 곳은 한 번도 열지 않은 미지의 문이었다. 엄마가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곳. 어릴 적엔 이상하게 그녀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세계에 태어났다는 호기심에 모든 것들을 나뭇가지로 쑤시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저 문만큼은 열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녀의 말을 듣기 위해서라기보단 무서움이 지배했던 것 같았다. 정말 드물게 내 눈앞에서 문을 열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저도 나는 안을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손으로 조심스럽게 밀자 허무할 정도로 문은 내 힘에 따라 밀어졌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건들지 않았던 금단의 문을 연다는 생각에 손이 주춤거렸지만 그만두진 않았다.

문을 완전히 열어젖힌 난 황당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이게 끝이야?”

여태까지 내가 왜 이곳을 두려워했는지 모를 정도로 안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서재로 보이는 듯한 방 안엔 물건조차도 별로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낡은 책상, 낡은 의자, 그리고 낡은 책장까지. 모든 것들이 오래되어 금방이라도 삐걱거리거나 부서질 것처럼 보였다.

이상한 솥단지를 하나 발견해 냈지만 안은 깔끔하기만 했다. 심지어 한동안 쓰지 않았던 것인지 손으로 안을 쓸어내자 뽀얀 먼지가 하나 가득 따라왔다.

겨우 이곳을……. 미지의 적이 이렇게 볼품없었다는 사실이 날 힘 빠지게 만들었다. 겨우 이런 것들을 무서워하면 떨었다는 생각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닫았을 리는 없는 일이었다. 그 엄마가 내게 신신당부할 정도면 무언가 있긴 있겠지.

나는 다시 책장부터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책상 위에 놓인 한 책을 발견하였다. 책을 펼치자 안엔 딱딱한 활자 대신 정갈한 글씨체가 안에 적혀져 있었다.

“일기?”

하루하루의 일과를 간략하게 적어 놓은 듯한 내용은 누군가의 일기인 것 같았다. 엄마의 일기인 걸까? 나는 앞으로 넘겨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써 왔던 것인지 엄마의 일기는 다소 드문드문했다.

정신없이 엄마의 일기를 읽고 있을 때였다. 다음 장을 넘기려는 순간 갑작스러운 손이 내 손을 멈추게 만들었다.

“뭐 하는 거예요? 미안하지만 루드릭, 저는 지금 바쁘니까…….”

조용히 카마수트라나 계속 읽은 것이지. 갑자기 장난을 치는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안녕?”

내 옆에서 손을 막고 있는 이는 루드릭이 아니었다.

“누, 누구세요?”

새까만 머리에 새빨간 눈. 너무나 정형적인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재빠르게 저었다.

“내가 누구냐고 말하면 알아?”

네가 말하는 거 봐서요. 그의 말에 대답 대신 노려보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엄마의 손님이세요?”

“으음. 결과적으로 말하면 일단 그렇다고 할까.”

일단은 뭐야 또. 그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자 결국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장난이야. 난 널 이곳으로 부른 사람이야.”

“절 불러요?”

“그래. 아까 문 봤지? 그거 내가 연 거야.”

그의 말에 입술을 벌렸다. 왜? 엄마의 손님이라는 이가 왜 날 이곳에 불렀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내가 목적이었더라면 이 집이 아니더라도 만날 곳은 많이 있었을 텐데.

“……왜요? 왜 그렇게까지 한 거죠? 볼일이 있다면 그냥 천막에 모습을 드러내면 될 텐데.”

그는 내 말에 빙그레 웃기만 했다.

“설마……. 자고 있을 때 제 어깨를 흔들어 깨운 사람이 당신이에요?”

“오, 많이 컸구나. 생각도 할 줄 알고. 옛날엔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였는데 말이야.”

어린아이를 다루는 듯한 그의 말에 이유 없는 분노가 울컥 샘솟았다.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한 그의 행동에 비해 나는 그가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애초에 만난 적도 없으니 기억하고 있을 리 만무했지만.

뚱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자 그는 눈을 접으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 방을 너에게 보여 주고 싶었거든. 이곳은 네가 태어난 곳이니까 말이야.”

네? 갑작스러운 출생의 비밀에 어안이 벙벙해졌다.너를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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