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먹고 싶어-80화 (80/86)

80화

그의 말에 마차에서 내리자 수행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다소 허둥지둥하는 얼굴엔 영문을 모른다는 모습이 대다수였지만 절대적인 상관의 명령에 맞춰 멈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곳에 오는 것 자체가 의문이었겠지.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에드아르를 따라 풀숲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잘 닦여진 길이지만 번화가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평평한 흙길이 밟히자 저도 모르게 입술을 벌렸다.

익숙한 곳. 시야보다 몸이 먼저 장소를 익히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저 멀리서 마차의 문이 열리고 에드아르가 나올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

“어딘지 알겠어?”

흠칫. 에드아르의 말에 모르게 몸을 떨었다. 머릿속을 지배하던 허상이 급작스럽게 사라지자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이곳에 당도하니 확실해졌다. 우리 집이 어딘지 모르겠다는 걸. 어딘가에 공간이 열리는 곳이 있을 텐데.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코빼기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면 비밀 문이라고 하긴 그렇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애들과는 달리 어른들은 주기적으로 정기를 취해 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들이 마을 안으로 남자를 끌어들인 것을 본 적은 없었다.

늘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갑작스레 마을에 나타나곤 했다. 우리 엄마도 그때만큼은 별다를 바 없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어딘가에 내가 모르는 비밀 문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래? 그럼…….”

내 말에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산 허리춤에 있는 해를 발견하자 그가 혀를 찼다.

“안타깝지만 오늘은 이만 여기서 야영을 해야겠군.”

에드아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일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국빈을 대동한 행렬을 이런 길바닥에 재우다니. 수행원들 입장에서 불평의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번 불거진 소리는 더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으음 이거 좋지 않은데. 교단에서 나온 이들에게서도 불평의 소리가 일고 있었다. 애초에 이 길을 왜 둘러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대다수였다. 이렇게 되어서야, 부탁했던 나보다 에드아르를 향한 불만이 거세질 것 같아 이를 막기 위해 입술을 여는 순간이었다.

“뭐라고요? 지금 저희들의 폐하를 이런 누추한 길바닥에서 주무시게 만드는 겁니까? 귀빈을 접대하는 방식이 이 모양이라니. 참으로 실망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이들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드높였다. 거센 항의 소리에 에드아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를 향했다.

“그럼 다른 뾰족한 수라도 있나? 여기서 여관이라도 하나 뚝딱 만들어 보인다면 말리지 않지.”

하지만 에드아르의 말은 거침없었다. 애초에 그가 편의를 봐주어야 할 대상에 테이젤과 루드릭이 들어갈 리 만무했다. 에드아르의 차가운 눈초리에 항의를 한 그가 입을 다물었다.

“다른 곳으로 가기에도 이미 늦은 것 같은데. 그냥 여기서 야영을 하든지. 아님 내려가든지. 선택지 하나 정도는 주도록 하지.”

날카로운 그의 말에 우물쭈물하자 그는 드물게 눈을 접어 웃어 보였다.

“아, 내려가는 것을 특히 추천하지. 대신 그대로 당신네 나라로 돌아가도록.”

결국 찍소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수행원을 보자 나는 테이젤과 루드릭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누구의 수행원인지 보고 싶었으나 그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였다. 자신이 모시는 이를 향한 충성심에 이기지 못하고 내뱉은 발언이었건만, 처참하게 무너진 광경에 나는 그 수행원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불쌍한 사람. 어쩌다가 주인을 잘못 만나선.

“넌 어쩔 거지? 마차에서 자도 좋고, 아님 내 곁에서 그대로 자도 좋아.”

“으음 그러기엔…….”

에드아르의 질문에 다시 한 번 더 그들을 바라보았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아까와는 달리 명백한 감정표현에 재빠르게 고갤 저었다. 오늘 밤 에드아르의 거처에서 편하게 머물렀다간 간밤에 돌연사하기 딱 좋을 것만 같았다.

“저도 텐트 하나 만들어 주시면 그곳에서 잘게요.”

“불편하진 않겠나?”

“괜찮아요. 그보다 더한 일도 겪었는걸요.”

물론 그게 너 때문이었지만. 문득 속박된 채로 만났던 첫 만남이 생각나자 억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방 속에 들어있는 거라곤 야한 속옷밖에 없던 날 첩자 취급할 줄이야. 아직도 그때의 분함이 가시질 않자 남몰래 그를 노려보았다.

“그래, 그럼.”

하지만 제 눈빛을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에드아르는 쿨하게 넘겼다. 그의 지휘 아래에 넓고 평평한 지형을 고른 이들이 재빠르게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애초에 야영을 생각해 둔 것인지 그의 짐마차 속에서 텐트로 쓸 천들이 속속히 나오기 시작했다. 빠르고 신속하게 쳐지는 텐트를 바라보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아련하게 덮쳐 왔다.

그가 저쪽에 호화롭게 친 텐트에서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마차에 묶……. 생각해 보니 다시 화가 북받쳐 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에드아르를 향해 뜨거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이렇게나 강렬한 눈빛을 모른 척할 수 없었던 것인지 그제야 에드아르가 날 바라보았다.

“할 말이라도 있어?”

할 말이야 엄청 많지.

“에드아르 기억나요? 우리 첫 만남이요.”

“아아.”

그는 뒷덜미를 긁적이다 손을 멈추었다. 서서히 굳어 가는 그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로 보아 이곳에서 그가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나는 모양이었다. 기억은 하고 있어? 기억해?

“……뭐, 사정을 모르고 그랬던 적도 있었지.”

“사정요.”

내겐 아사 직전으로 갈 뻔한 대사건을 한마디로 함축시키는 그의 말에 빙그레 웃었다. 꺼림칙하게 웃는 내 미소를 본 에드아르의 표정이 점점 더 미묘해져 갔다.

“……물론 내가 조금 성급하게 군 것도 없잖아 있긴 했어.”

생각보다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에드아르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나갈 줄 알았는데. 의외의 구석에 그를 빤히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무슨 일이지?”

자신의 곁에 다가온 심복을 향해 에드아르가 꽤나 반가운 듯이 재빠르게 답했다. 날 힐끔 바라보던 그가 더욱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에드아르는 날 두고 그와 함께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얼결에 혼자 있게 된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어느덧 하나의 커다란 군락을 생성하고 있는 터를 빤히 바라보았다. 엄청 빠르네. 익숙하다는 듯 착착 지어 올리고 있는 이들의 손길은 전문가처럼 빨랐다.

“이곳에서 뭐 하고 계십니까.”

“아, 테이젤.”

내 곁에 다가온 그가 가만히 웃어 보였다.

“이런 곳에서 지루하게 있지 말고 저희 쪽으로 놀러 오세요. 때마침 오늘 저녁을 해결할 식사가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정말요?”

맛난 음식을 노동도 없이 먹을 수 있다는데 마다할 리 없었다. 나는 그를 향해 반색하며 물어보자 그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나는 테이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 그의 거처가 있는 지역에서 식사를 했다.

그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서 정기를 취하는 건 덤. 산속에서 지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음식 솜씨에 입으로 들어가는 숟가락질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하지만 테이젤의 곁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숲속의 해는 빨리지는 편이었다. 어느새 깜깜해진 밤하늘에 나뭇가지에 등불이 하나둘씩 걸릴 무렵, 테이젤의 거처로 에드아르가 다가왔다.

“이만 잘 시간이다.”

그가 내 어깨를 붙잡고 품에 가두며 말했다. 어째 에드아르가 테이젤에게서 날 빼앗아가는 느낌이 났지만 웬일인지 테이젤은 날 순순히 보내 주었다. 에드아르 또한 쓸데없는 논쟁은 피하고 싶었는지 군말하지 않고 날 한 천막으로 안내했다.

“이곳이 오늘 밤 네 거처야.”

문 앞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바짝 긴장한 채 고갤 빳빳이 세우고 있었다.

“이분들은요?”

“널 지킬 사람. 그때처럼은 되면 안 되잖나?”

그때? 그의 말에 고갤 갸웃거리다 스쳐 지나가는 기억에 입을 모았다. 설마……. 이름도 가물가물한, 날 겁탈하려는 이가 생각나자 에드아르를 빤히 바라보았다. 예상치 못한 것까지 신경 써 준 그를 보고 있자 미소가 지어졌다.

“고마워요. 잘 자요, 에드아르.”

내 말에 그는 고개를 까딱이고 뒤돌았다. 그가 등을 보임과 동시에 나 또한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마차에 묶여서 한없이 부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던 때와는 달리 나만을 위한 천막까지 갖춰지자 입술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출세했네, 나.

장시간을 마차 안에서 지루하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푹신해 보이는 침대를 발견하자 절로 하품이 나왔다. 그물망 위에 몇 겹이나 올린 이불에 불과했지만 흔들리는 마차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몸을 뉘운 난 재빠르게 수마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흔들. 깊은 수마로 빠져들기 직전 내 몸을 흔드는 무언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처음엔 그저 착각인가 싶어 몸을 가볍게 틀었지만 다시 한 번 더 내 팔로 정확하게 느껴지는 기척에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누구…….”

쓸데없는 일로 깨운다면 한소리 단단히 할 심정으로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기껏 큰 소리를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뭐지? 잘못 느꼈나?”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누군가의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잔잔했다. 결국 난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 밖을 향해 고갤 빼꼼 내밀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머릴 내밀기 무섭게 보초를 서던 이의 질문이 이어졌다.

“누가 이곳을 방문한 적 없었나요?”

“아뇨. 아무도 이곳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래요?”

그들이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렇담 도대체 누구지? 자신의 어깰 흔든 느낌은 분명한 사람의 손이었다. 여전히 고갤 빼꼼 내민 채 밖을 둘러보아도 어느덧 어둑해진 밤길을 함부로 다니는 이는 없었다.

잠깐, 아무도 다니지 않아? 거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재빠르게 보초를 서던 이를 향해 말했다.

“저 잠시 나갔다 와도 될까요? 금방 다녀올게요.”

“어디 가십니까? 따라가겠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그렇지만…….”

계속 내 말꼬리를 붙잡으며 따라가려고 하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부탁이에요. 이 이상 숙녀를 곤란하게 만들진 말아 주세요.”

내 말에 어리벙벙한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몸을 빳빳하게 굳혔다.

“헉.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그제야 순순히 응하는 보초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천막 밖으로 몸을 빠져나왔다. 나는 발걸음을 빨리해 에드아르와 처음 만났던 곳을 향했다.

다시 한 번 더 그곳을 샅샅이 훑어보며 주변을 관찰할 예정이었다. 그를 향해 모르겠다고 답은 했으나 여기까지 온 에드아르를 위해서라도 아무런 득도 없이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적어도 민폐는 끼치고 싶지 않은걸.

거기까지 생각하며 풀숲을 헤쳐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어?”

낮에는 볼 수 없었던 이질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피부에 느껴지는 감각은 허상이 아닌 것처럼 제 눈에 명백하게 보이고 있었다. 허공에 벌어진 균열이, 그리고 그 틈에 흐릿하지만 어렸을 적에 지루할 정도로 누비던 곳이 보였다.

우리 집!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르려는 것을 간신히 막은 채 주변을 재빠르게 둘러보았다. 누가 이 균열을 생기게 한 건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낮과 마찬가지로 주변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이건 어떻게 생기게 된 거지? 궁금증에 균열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이었다. 풀숲에서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재빠르게 고갤 돌렸다.

“누구……!”

말하기가 무섭게 빠르게 다가온 이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너를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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