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먹고 싶어-79화 (79/86)

79화

이게 무슨 일이람.

뒤를 힐끔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거처가 정해짐과 동시에 교단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내쫓듯이 보냈다. 거기까진 좋은데…….

나는 다시 한 번 더 뒤를 바라보았다. 믿고 싶지 않은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었다. 겨우 나 하날 이송하기 위한 행렬이라기엔 비이상적일 정도로 많은 수의 사람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누가 봐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렬은 독보적이었다. 교단에서 최소한의 사람만을 챙겨 준 것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내가 탄 마차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나랑 에드아르, 테이젤, 루드릭까지. 각국의 중요인사들이 갑작스레 일정을 정해 향하게 된 길을 수행원들이 안 참가할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까진 다 좋은데 이 행렬이 명목적으론 나를 위한 행렬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궁금해서 나왔던 이들의 떡 벌어지는 얼굴을 발견했을 때의 참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자세한 사정을 아는 이들을 제외하곤 이 행렬이 그저 나를 위한 낭비적인 규모로 보일 것이 분명했다.

각국의 수행원들이 합쳐졌더니 화려함 또한 세 배는 되어 보였다. 마치 한 나라를 구한 개선장군을 위한 퍼레이드처럼 그 위압감과 위용은 두말할 것도 없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가끔 내가 가는 길에 꽃을 뿌리며 환호성을 지르겠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에드아르네 나라로 들어서면서 점점 빈번히 보이고 있었다.

방금도 마차 안의 공기가 답답해 창문을 열었다가 환호성을 지르는 이와 마주친 참이었다. 나 이대로 에드아르네 나라에 도착할 수 있을까? 도착도 하기 전에 수치사로 죽는 건 아니겠지? 더위가 작열하는 것도 아닌데 얼굴에 자연스레 열이 모였다.

“부끄러워…….”

“뭐라 말했는가?”

그저 작게 중얼거린 말뿐이었는데. 마차와 나란히 말을 몰고 있던 에드아르의 말에 다급하게 고갤 들어 올렸다. 열린 창문 너머로 에드아르의 얼굴이 보였다.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그의 말에 재빠르게 고갤 끄덕였다. 차마 에드아르에게 지금 이 행렬이 부끄럽다고 말할 순 없었다. 나를 위해 거의 모든 것을 양보해 준 이한테,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정도의 뻔뻔함은 아직 단련하지 못했단 말이야.

“어디 불편하시기라도 한 건가요, 비시아?”

“아, 아뇨. 아니에요.”

에드아르의 사이를 가르고 들어온 테이젤이 마차 창문 너머로 바라보았다. 걱정스러운 테이젤의 얼굴에 재빠르게 고갤 젓자 그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불편하면 말만 하세요. 언제든지 행렬을 돌려 우리나라로 가면 그만입니다.”

어……. 그 전에 테이젤이 에드아르한테 맞을 것 같은데. 테이젤의 뒤에서 살벌하게 노려보는 에드아르의 표정에 나는 테이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곤 마차 창문을 반쯤 닫았다.

달그닥거리는 소리와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조금 줄어들자 조금 느슨한 자세를 취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고생이람. 역시 그때 못 정하겠다고 억지라도 부려야 했던 건 아닌지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그럼 뭐 해. 이미 시작된 일을 되돌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한숨을 푹 내쉬며 앞을 바라보았다.

맞은편엔 루드릭이 앉아 있었다. 지루해 몇 번이고 몸을 뒤트는 나와 달리, 그는 다른 쪽 창문 너머로 시선을 던진 채 몇 시간이고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거지? 그의 정신력에 감탄하기에 앞서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에 저도 모르게 계속 그를 바라보게 되었다.

처음에 나와 같이 마차에 탑승하겠다던 루드릭의 말에 깜짝 놀랐던 참이었다. 같이 가는 에드아르도 아니고, 그저 따라가고자 청한 이가 같이 앉겠다는 말에 불같은 에드아르의 모습을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는 순순히 허락해 주었다. 그래서 같이 타고 가게 되었는데…….

곁에서 갖은 말은 다 할 줄 알았던 그는 예상과 달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평상시 루드릭을 생각하면 전혀 그답지 않았다. 혹시 자기 나라 내정 생각하고 있는 건가? 듣기론 무척이나 바쁘다고 들었는데. 여기 이렇게 한가하게 있어도 괜찮나 싶어 그를 더욱 빤히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거라면 괜찮다.”

깜짝이야! 갑작스럽게 고갤 돌리고 날 바라보는 그의 행동에 놀라 심장을 붙잡았다.

“제, 제가 뭘 생각한 줄 알고 그래요?”

“보나마나 쓸데없는 사소한 걱정이겠지. 가령 내 나라에 대한 걱정이라던가 말야.”

“…….”

그의 말에 조용히 입술을 닫았다. 이상한 데서 눈치가 빨라.

“그런데 네 집은 어디에 있기에 이런 외진 곳으로 향하는 거지?”

날 바라보던 그가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번화가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인적이 뜸한 산길로 접어드는 중이었다. 그의 말에 나는 주저하며 입술을 열었다.

“그게…….”

무언가 말해 주려고 해도 말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우리 집이 있는 곳을 나도 모르고 있는걸. 알면 진작에 앞장서서 길을 가르쳐 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에드아르가 알아요.”

“뭐? 넌?”

“저는…….”

다시 한 번 더 입술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혹여 내 계획을 알아챌까, 엄마한테 묻지도 못한 상태라 정확한 지칭을 말하기도 어려웠다.

“성인이 될 때까지 마을에 갇히다시피 살았다고 하지 않았나?”

“네. 그렇긴 하죠.”

“그런데 집을 모른다?”

그의 말에 가만히 고갤 끄덕였다. 진짜야. 정말이라니까? 눈앞에 펼쳐지던 공간이동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모른다는 것뿐이었다.

“흐음…….”

내 행동에 루드릭이 눈을 가늘게 떴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지만 네 존재는 참 흥미로워.”

“그, 그래요?”

“마치 이곳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달까.”

뜨끔. 그의 말에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설마. 예전에 했던 의심의 싹이 꽃피는 순간이었다. 정말로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평범한 이들은 자신보다 고귀한 존재를 만나게 되면 두려워하는 것부터 시작하지. 그들에게 우리는 제멋대로 하는 무서운 이들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넌 달라. 그 어떤 이를 만나도 당당하지.”

그의 말에 의문의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왜 떨어야 하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높은 지위를 가졌다고는 하나, 결국 다 같은 사람 아냐? 존경심과 예를 갖춰 대할 순 있었지만 무서워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어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걸 보면 네가 가끔 다른 곳에서 온 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뭐. 네가 나랑 몸을 섞고 있을 땐 그 어떤 때보다도 사람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끼지만.”

하필 느껴도 그런 때라니. 그의 말에 기가 차 입술을 꾹 닫았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람 같지 않을 때가 정기를 취할 때인데. 정반대로 말하는 루드릭의 말에 안도 아닌 안도를 했다. 아무래도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루드릭조차 내 정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도대체 어떤 산골 마을이었길래 그러지?”

내가 말을 하지 않자 그는 은근슬쩍 다른 화제를 전환시켰다.

“아마 말해도 모를 거예요. 저희 마을 사람 빼고는 장소조차 모르는 곳이거든요. 모든 것들을 마을 내에서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어요.”

“그런가. 그런 곳이 아직도 있을 줄이야. 덕분에 이번 기회에 구경할 수 있겠군.”

그는 흥미롭다는 듯이 날 바라보았다.

“네가 나고 자라던 장소도 구경할 수 있음 더더욱 좋고.”

“그런 곳이 궁금해요?”

“장소가 궁금하기보단 네가 있던 곳이라 궁금한 거다.”

그의 말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런가? 딱히 루드릭이나 테이젤, 에드아르가 나고 자란 곳을 궁금하지 않은 나로선 부드러운 그의 말이 어색한 참이었다. 애초에 그들이 어디에서 자랄지 뻔하게 보이는 것도 있긴 하지만.

그의 말에 연신 고개만을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루드릭은 날 빤히 바라보더니 갑작스레 손을 뻗어 양 문에 난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루드릭?”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시선을 돌리자 그는 맞은편에 앉았던 제 자리에서 벗어나 내 옆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그 생각만 계속하는 중이야. 그러지 않으면 당장 이 마차를 돌려 내 나라로 가자고 하고 싶으니까.”

“그건…….”

“알아. 네가 원하는 거였으니까. 그러진 않을 테니 걱정 말길.”

난감해하는 날 알아채고 그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 턱을 붙잡은 그가 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단둘이 있는 장소에서까지 아무런 행동도 안 할 거란 생각은 하지 마.”

“아앗…….”

그의 입술이 내 말캉한 입술을 삼켰다. 다소 난폭한 그의 행동에 손을 떨자 그마저도 잡은 채로 마차로 밀어붙였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유흥을 즐길 수 있게 해 줘야 하지 않겠어?”

“그치만…….”

“안 된다는 말은 받아 주지 않겠어.”

그렇게 말하며 그의 얼굴이 아래로 떨어졌다. 제 목덜미를 샅샅이 훑은 그의 입술은 거침없이 가슴골로 향했다. 교단에서 마련해 준 옷은 평상시 여성복에 비했을 때 다소 노출이 작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 틈을 찾아낸 그의 손이 망설임 없이 안을 향했다.

“흐읏.”

가슴의 정점을 찾아낸 그가 가볍게 꼬집었다. 한 손으론 가슴을 주물럭거리며 한 손으론 제 허벅지를 붙잡아 자기 다리 위에 올렸다. 자연스레 양다리가 벌려진 자세를 취하자 그가 자신의 하반신을 내게 밀착하는 순간이었다.

똑똑. 마차 너머로 노크를 하는 소리에 놀라 그를 밀쳤다. 다소 아쉬워하는 듯한 루드릭의 눈빛이 닿았지만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에, 에드아르?”

여전히 커튼과 창문을 치지 않은 채 재빠르게 말을 걸자 밖에서 에드아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했다.”

그의 말에 재빠르게 원래의 몸치장으로 돌리려던 제 손이 우뚝, 멈추었다.너를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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