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먹고 싶어-74화 (74/86)

74화

믿을 수가 없었다.

대주교가 내게 말해 준 것들이 귀에 제대로 들어오질 않았다. 내가 가기 직전의 그들의 모습은 거의 전멸하기 직전의 모습이나 마찬가지였다. 나 때문에 카르티잔의 세력 외에도 교단의 공격을 맞아 그들은 여차하면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이겼다고?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건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정말로 오고야 말았다. 위풍당당한 모습을 숨기지 않은 채 드러낸 그의 얼굴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루드릭……?”

나는 내 거처에 스스로 들어온 그를 보고서도 여전히 믿을 수 없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내가 보던 그 루드릭 맞아? 성안에 갇혀 그 외엔 그 어떤 식사도 못 하게 만들던 그 루드릭?

“진짜 루드릭이에요?”

전에 보았을 때보다 더 수척해진 그의 얼굴은 조금 더 날렵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뜻 다가가지 못한 채 경계하자 그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말했지 않나?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말이야.”

“루드릭!”

그의 입에서 소리가 떨어지고 나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알던 그가 맞았다. 꼭 데리러 가겠다며 외치던 그가 맞다는 것을 느끼자 나는 반가워 그의 품에 안기려는 순간이었다.

멈칫. 양팔까지 벌려 그의 품에 다가갈 준비를 했지만 그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를 안을 자신이 나질 않았다. 안 그래도 수척해 보이는 애를 내가 본의 아니게 정기를 뺏어 먹으면 어떻게 해.

내가 뜻하는 바만큼 먹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발걸음은 쉽사리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내가 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자 머리맡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환영 인사 하다 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는 손을 뻗어 내가 걸어오지 못한 공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메꾸었다. 내 걱정이 괜한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는 날 가볍게 끌어안았다.

“내가 그립지 않았나?”

달콤한 목소리. 바빠 그의 얼굴을 떠올릴 틈은 없었으나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품 안에서 고갤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보고 싶었어요.”

내 말에 그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나도 보고 싶었다.”

날 껴안았음에도 불구하고 팔팔한 루드릭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양팔로 꽉 끌어안을 수 있었다. 다행이야. 무사해서 다행이야. 마지막을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내 잘못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지울 수가 없어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잘만 살아 있는 것을 보니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긴 거지?

“어떻게 이긴 거예요?”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자 루드릭은 자신만만한 입꼬리를 더욱 끌어당겼다.

“어떻게 이겼을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알아. 궁금해서 물어보았는데 오히려 역질문을 당하자 양 뺨을 부풀어 올렸다. 답을 알면 내가 물어봤겠냐. 이런 내 맘을 알아차린 건지 그는 내 뺨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어쩌면 네 소문이 맞을지도 몰라.”

“네?”

무슨 소문? 그의 말에 고개를 기울이자 그의 허리가 숙여지며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정말로 널 데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승리를 기원하는 여신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내 입술에 스치듯이 입을 맞추었다.

“네가 가르쳐 준 방법이 꽤나 먹혔거든.”

“방법? 먹혀요……?”

내가 무슨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여전히 알쏭달쏭한 말에 결국 머리를 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가르쳐 줬지? 죽일 뻔한 건 아니고. 밤 기술에 대한 것도 아닐 테고. 설마…….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향해 올려다보자 계속 빤히 날 바라보던 루드릭의 눈빛과 마주쳤다.

“그래. 네가 저번에 안으로 끌어들였던 방법을 썼던 것처럼, 우리 또한 그들을 겉에서부터가 아닌, 내부에서부터 찬찬히 공략해 내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부드러운 내 머릿결을 종종 즐기던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감각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렇게 쉽게 무너질 줄 알았더라면 진즉에 그럴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어. 견고한 척 다하더니 그들 또한 속은 있는 대로 썩어 외부인을 반길 것이 아니었더군.”

“그, 그래요?”

“대부분이 썩어 있던 이들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니 버틸 수 있을 리가. 그들은 알아서 자멸하기 시작했고, 밖에서 조금만 건드리니 먼지처럼 사라졌지.”

빗어 내리는 듯한 그의 행동에 내 머리카락이 공중에서 가볍게 흩날렸다. 굽이치는 머리카락이 그의 손길에 의해 흘러내리자 그는 만족스러운 듯이 날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렇게 약속을 지키러 왔어. 너를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

그렇게 말한 그는 천천히 손을 내려 내 손을 잡았다. 놓지 않겠다던 그 손이 그의 손에 잡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비시아. 널 데리러 왔다.”

“루드릭.”

그의 말에 설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화책 속 왕자님 같은 멘트에 잊어버렸던 연애감정이 싹트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에 새삼스럽게 설렐 수가 없었다. 그를 만나기 전에도 이미 숱한 다른 왕자를 차고 온 지 오래였다.

나는 그들의 곁에서 안주하는 공주로 남아 있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서 루드릭한테 특별함을 줄 순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밥들에게 공평하게 대하기로 마음먹은걸.

나는 루드릭의 손에서 제 손을 비틀어 빼내었다.

“……미안해요, 루드릭. 그럴 순 없어요.”

“왜지?”

조금 날카로워진 그의 음성에 나는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애초에 내가 세운 계획 속에 루드릭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터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도 한몫했다. 내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루드릭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야기는 간단하게 들었다. 날 선택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니에요. 그건 교단 측에서 원하는 것들일 뿐이에요.”

단편적인 교단의 말을 요구하는 루드릭의 말에 재빠르게 고갤 저었다.

“저는 달라요.”

내 말에 잠자코 지켜보던 루드릭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뭘 원하는 거지?”

“자유. 저는 자유를 원해요.”

“자유…….”

그 말에 루드릭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어쩌면 그 또한 카르티잔에서 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내 말을 들어줄지도 몰랐다. 구속된 평화로움보다 자유가 주는 달콤한 맛을 말이다.

턱을 쓸던 그는 다시 한 번 더 내 시선을 맞추었다.

“내 곁에서 살아가는 걸로는 안 되나? 너에게 이르헨달 안에서의 자유를 보장해 주지.”

달콤한 유혹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에 들었다면 혹했을 말. 하지만 그것도 결국 교단에 편승하는 제안이었기에 나는 단호하게 고갤 저었다.

“미안해요. 그것도 할 수 없어요.”

내 말에 루드릭의 표정이 묘해졌다. 길게 늘어진 숨이 꽤나 답답하다는 듯 움직이는 발끝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런……. 널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위해 만사를 제치고 왔거늘.”

“정말 미안해요.”

그의 말에 괜히 움찔해져 사과의 말을 번복했다.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제일 바쁠 시기에 나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온 그에게 거절의 말과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는 연신 저자세를 취하는 날 가만히 끌어안았다. 그리곤 내 머리 위에 자신의 턱을 가만히 올리곤 작게 중얼거렸다.

“뭐……. 미안해 할 필욘 없어.”

“네?”

“내가 이대로 널 놓칠 거라고 생각하나?”

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려는 순간, 그는 돌연 날 껴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너를 가지려고 갖은 짓은 다 하던 이다.”

“그게 무슨…….”

“이번에도 너를 온전히 가질 수 있다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는 소리다.”

“네? 하지만 루드릭,”

“내가 그립지 않았나?”

그렇게 말하며 등을 끌어안은 그의 손이 점차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보자마자 물었던 말을 다시 한 번 더 말하는 루드릭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렇게까지 내 대답의 확신을 듣고 싶은 걸까? 재촉하듯 답을 요구하는 그의 행동에 마지못해 입을 열어 답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응!”

말을 끝마칠 수가 없었다. 어느새 치마 속으로 파고든 그의 손이 내 엉덩이 사이를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여기 말이야.”

어느새 귓가로 내려온 그의 고개가 차분하게 속삭였다.

“내가 달래 주지 않아 꽤나 외로웠을 텐데.”

그렇게 말하며 그의 손가락이 더더욱 안을 파고들었다. 꽉 다문 안을 강제로 열어 제 속살을 부드럽게 문지르자 나는 파르르 떨며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루, 루드릭. ……아냐, 아니에요.”

“하지만 몸은 정직하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서서히 달아오르는 정점을 거침없이 손가락으로 짓눌렀다. 문지름과 동시에 자극을 주는 감각에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덜덜 떨림이 심해질수록 안으로 파고드는 손가락 또한 더욱 집요해졌다.

“못 만난 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손에 기쁜 듯이 정직하게 반응하는군.”

그렇게 말하며 그는 손가락 하나를 세워 안으로 밀어 넣었다.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기쁘게 그의 손가락을 받아들였다.

“잠깐, 루드, 릭…….”

“다시 한 번 더 말해 봐.”

귓가엔 아까보다 조금 더 낮아진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동하는군. 이름을 불러 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다른 느낌이 들 줄이야. 이름을 가르쳐주길 잘했어.”

보상인 것처럼 그는 안에 있던 손가락을 더욱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손가락은 두 개로 늘어나고 내 헐떡임은 더욱 거세졌다.

“비시아.”

결국 제 몸을 유지할 수 없어 그에게 기대다시피 늘어진 내게 그가 감미롭게 속삭였다.

“말해 봐. 다시 한 번 더.”

“루드릭…….”

그의 말에 홀린 듯이 답하자 그는 내가 느끼는 곳을 찾아 익숙하게 비볐다.

“흐읏!”

겨우 그의 두 손가락에 가볍게 절정한 나는 빠르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소매를 잡던 손은 어느새 아래로 내려가 그의 팔뚝을 잡고 있었다. 한없이 늘어진 내 몸을 대신하여 엉덩이를 단단하게 받치고 있던 그의 다른 손에 은근슬쩍 엉덩이를 주물렀다.

“이래도 날 따라가지 않을 건가?”

악마가 이런 걸까. 약해진 틈을 타 밀어를 주는 그의 말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안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물어보는 그의 말에 울먹이며 고갤 저었다.

“그, 그건…….”

안 된다고 했잖아. 난 자유를 원한다고! 울먹거리는 눈물 때문에 쉬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품 안에서 어깨를 들썩이자 그는 천천히 내게서 손을 떼어 내었다.

내가 가까스로 그의 손에서 벗어나 두 다리로 자유롭게 설 수 있게 되자 그는 양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그래. 알았어. 네가 그걸 원한다면야.”

이제야 알아듣는 그의 말에 나는 얼굴을 폈다.

“그럼 다음에도 또 오지.”

“네?”

“이곳에 머무르며 네 생각을 바꿔 보겠다는 말이다.”

그의 말에 기가 차 멍하니 있자 그는 날 희롱했던 손가락을 할짝댔다. 외설적으로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에 얼굴을 붉히자 그의 얼굴에 미소가 걸쳐졌다.

멍하니 제대로 배웅조차 못 하는 날 두고 나가는 루드릭을 보며 나는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어떻게 하지.”

루드릭은 상상조차 못 한 인물이었다.

이대로 버티면 교단 측에서 극단적으로 행동할 때가 될 거고, 나는 테이젤과 에드아르가 처음에 중간지점으로 두었던 그곳으로 가겠다고 말하려고 하던 차였다. 그곳에서 그 둘을 번갈아 가며 만날 거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흐읏…….”

나는 떠난 루드릭을 떠올리며 아직 흥분한 중심부위를 쓸었다. 절정에 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민한 제 중심부위가 아까의 감각을 그대로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끌어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일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래도…….

“더 먹고 싶어졌어.”

나는 아무도 듣지 않는 방에서 작게 중얼거렸다.너를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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