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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먹고 싶어-72화 (72/86)

72화

소리를 없애 달라고 말하는 것과 달리 테이젤의 허릿짓은 무자비했다.

스스로 맞춘 입이 몇 번이고 비틀어질 정도로 그는 힘입게 내 허리를 내리쳐 자신의 것을 끝까지 품게 만들었다. 숨을 헐떡이느라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춘 것인지, 그저 얹은 것인지 모를 때가 되었을 때였다.

그는 나를 소파에 눕힌 뒤 자신이 자리를 잡고 일어섰다. 그리곤 다시 자세를 잡으며 자연스레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을 가득 메우는 감각에 자연스럽게 입을 벌리자 이번엔 테이젤의 혀가 찾아왔다. 내 혀를 찾아 얽힐수록 그의 허릿짓은 더욱 속도를 내었다.

내 허벅지를 잡고 더욱 벌린 그가 안을 향해 힘껏 파고들었다. 피스톤질에 걸리적거리는 바지는 어느새 벗은 지 오래였다. 그 또한 나와 같이 새하얀 나신이 되었을 때 즈음, 그는 내게 파정하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온몸의 뿌듯함에 나는 테이젤의 목을 가득 껴안았다. 그 또한 만족스러운 소릴 내며 내 뺨을 쓸어내었다. 잠시간 몸을 겹친 채 후희를 즐기다 테이젤이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테이젤의 눈이 내가 아닌 자신이 벗어 던졌던 옷을 향하는 것을 알자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테이젤의 팔을 붙잡았다.

“가지 마요.”

한바탕 밥을 먹느라 땀을 흘려서 그런 걸까. 추운 것 같았다. 그의 온기가 떨어진 것만큼 자리 잡는 추위에 자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전 어디로도 가지 않아요, 비시아.”

내 말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추위에 팔을 쓸고 있는 나를 가볍게 안아 침대로 향했다. 내 목까지 얌전하게 이불을 덮어 준 뒤에야 그는 내 옆에 자리를 잡고 누운 자세를 취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눈을 빼꼼 내밀곤 여전히 테이젤을 자신의 근처로 이끌었다.

“곁에 있어 줘요.”

“당신 곁에 있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마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테이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갑작스러운 변수 때문에 일정이 생기긴 했지만 나의 특별한 말이 있지 않는 한, 테이젤과 내가 지내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을 빤히 아는 곳에서 나는 이 시간을 여유롭게 지내고 싶었다.

최근 라디트가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찾아오긴 했지만 그가 올 리는 없었다. 그의 성정으로 보아, 내게 거짓말을 한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를 향해 빙그레 웃자 테이젤의 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

“이리도 어리광쟁이인 걸 알았더라면 역시 그때 당신을 홀로 두지 않을 걸 그랬습니다.”

그때?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갑작스러운 일 때문에 나를 홀로 두었던 그때를 말하는 걸까? 그건 내가 자발적으로 나간 건데…….

하지만 일말의 의심 없이 해사하게 웃고 있는 테이젤을 보자 더 이상 말할 자신이 없어졌다. 뭐, 그렇다고 치자. 나는 대답 대신 테이젤에게도 제가 덮은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의 나신이 새하얀 이불 속에 감춰지자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자는 겁니까, 비시아?”

“그렇지 않아요.”

이제 겨우 해가 저무는 것뿐인데 이상하게 졸렸다. 식곤증일까? 아니면 테이젤이 꼼꼼히도 덮어 준 이불 때문인 걸지도 몰랐다. 오랜만에 느끼는 사람의 품은 꽤나 달콤하고 맛났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난 입을 다물었다. 배부르다는 것 외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자신을 향해 달싹이는 테이젤의 입술을 무시한 채 완전히 눈을 감아 버렸다.

간만에 먹어서 그런 걸지도 몰라.

*

아침 해가 뜨기 무섭게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평소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어른이 생활을 했던 탓일까. 평상시와 비슷한 시각에 일어난 걸 확인하곤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그래도 평소보다 개운한 건 오랜만에 밥을 먹어서인지도 몰라.

나는 시선을 돌려 옆을 슬쩍 바라보았다.

여전히 곤히 자고 있는 테이젤을 바라보곤 한 번 눈을 깜빡였다. 작게 숨소리만 내뱉으며 자는 그는 햇살에 반짝여 아름다운 조각상 같았다. 저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정신없이 훔쳐본 후에야 눈을 돌렸다. 아직까진 시간이 있으니 가만히 내버려 두도록 할까.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이불을 걷었다. 오늘부턴 본격적으로 할 일이 있었다. 테이젤을 보내고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침대 밖으로 다리를 내미는 순간이었다.

“가지 마요.”

자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테이젤이 내 손목을 잡으며 눈을 떴다.

“테이젤?”

“곁에 있어 주십시오, 비시아.”

그거 어제 내가 했던 말 아냐? 그의 말에 고갤 갸우뚱거리자 테이젤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알아차렸어요?”

“어제 제가 한 말 아니에요?”

“맞습니다. 하지만 가지 말란 말은 진심이에요.”

“앗!”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나를 다시 이불 속으로 끌어당겼다. 그다지 힘을 주지 않고 있던 내 몸은 속수무책으로 끌려가 그의 품 안에 안착했다. 얼굴의 얼굴과 가깝게 다가가고 나서야 테이젤은 내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잘 잤어요?”

“전 잘 잤어요. 테이젤은요?”

그는 고갤 끄덕여 보였다.

“피곤하진 않고요?”

피곤할 리가. 오래간만에 밥을 먹어 그 어떤 때보다도 쌩쌩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근래 제일 좋은 상태인걸. 그의 질문에 부정의 뜻을 내비치자 테이젤의 미소가 묘하게 길어졌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전 아직도 조금 피곤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돌연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자신의 몸을 내려 내 품 안에 숨어든 그는 허리를 끌어당겨 날 자신에게 밀착시킴과 동시에 얼굴을 가슴팍에 파묻었다. 그의 옅은 숨결이 고스란히 가슴에 닿자 저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떨었다.

“테, 테이젤?”

“이대로 있고 싶어.”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듯 가슴팍에 파고들자 턱에 그의 부드러운 머릿결이 찰랑거렸다. 그저 단순하게 고개를 흔드는 것뿐인데, 가슴에 닿는 그의 말캉한 입술이 잠자고 있던 묘한 기분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테이젤을 밀어내었다.

“안 돼요. 일어나요.”

어제는 하루 상도 주고 밥도 먹을 겸 봐주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려면 지금도 빠듯한 터였다. 자신의 행동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싶었던 건 아닌지 테이젤은 순순히 멀어져 주었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 비시아를 곤란하게 하는 일은 하지 않도록 하죠.”

순순히 협조해 주는 테이젤 덕분에 씻고 치장하는 데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머리를 빗고 있었을 때 즈음엔 테이젤도 자신의 옷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테이젤을 불러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빗어 주었다. 그는 그것이 싫지 않은 듯, 가만히 내 손길에 눈을 감았다.

“테이젤.”

“네, 비시아.”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테이젤을 바라보며 빗을 내려놓았다. 나를 향해 의심 하나 품고 있지 않은 선량한 사람. 첫 만남이 조금 어긋난 것을 빼면 그만큼이나 친절하고 배려심 많았던 이는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랬기에 그를 향해 말할 말이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감겨있던 테이젤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어도 따라오실 건가요?”

이기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겐 그가 원하는 행동대로 하지 않는다고 말해 놓고선 내 이기심만을 가득 채우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향해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테이젤은 여태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테이젤은 그런 나를 향해 조금 난처하다는 눈빛을 보내다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따라 웃어 보였다.

“물론입니다, 비시아.”

“고마워요.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줘요.”

나는 그와 함께 거처를 나섰다. 나를 데려다준다는 테이젤의 말을 부득불 거절하고, 그를 머무는 방에 데려다주고 난 뒤에야 발걸음을 옮겼다. 제법 빠르게 움직인 발은 거침없이 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의 문을 열자 화들짝 놀란 이가 행동마저 멈춘 채 날 향해 입을 벌렸다.

“비, 비시아?”

“어머, 라디트.”

뜨악한 표정의 라디트완 달리 나는 태연스럽게 라디트를 맞받아쳤다.

“간만이야? 날 속이고 난 뒤로는 처음 보네.”

내 말에 라디트의 표정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더불어 안절부절못하는 폼이 꽤나 장관이었다. 이래야 내가 원래 알던 라디트지.

“비시아. 난 그런 게 아니라…….”

“흥.”

나는 변명하려는 그를 향해 가차 없이 콧방귀를 꼈다. 그를 놀리는 것이 재밌었지만 오늘은 그를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예하를 보러 왔는데 어디 계셔?”

“예하께선 저쪽 방을 사용하고 계시긴 한데……. 왜?”

“할 말이 있어서.”

순순히 말해 주는 그를 향해 여전히 차갑게 대꾸했다. 너한텐 안 말해 줄 거다.

충격을 받은 듯, 중얼중얼거리는 라디트를 뒤로 하고 나는 그가 말한 문을 향해 가 가볍게 노크를 했다. 손등이 문에 두어 번 맞부딪치자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섰다.

“비시아 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는지요.”

나를 향해 반갑게 맞이하는 인자한 얼굴이 보이자 나는 라디트 때문에 풀어졌던 얼굴을 굳혔다. 저 능구렁이 같은 얼굴 뒤에 무슨 말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동전의 앞, 뒷면 같던 이들을 떠올리며 나는 재빠르게 본론으로 들어섰다.

“에드아르랑 만나고 싶어요.”

“에드아르 님이라면 분명히……. 서대륙의 황태자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는 서류에 쓰던 깃펜을 잉크에 꽂았다. 덥수룩한 수염이 그의 고갯짓에 따라 좌우로 흔들렸다.

“그러고 보니 황제께선?”

“테이젤과는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후 배웅해 드렸어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렇습니까. 그렇담 다행입니다.”

내 말에 그는 다시 한 번 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털거리며 웃는 웃음이 서재의 딱딱하던 분위기를 다소 녹였다.

“비시아 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에드아르 님에겐 금방 기별을 넣도록 하죠. 머무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시면 되실 겁니다.”

“고마워요.”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비시아 님의 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음 좋겠군요.”

네가 무엇을 하던 봐주겠지만 네 본분을 생각하라는 말. 역시 마지막까지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의 태도에 더욱 환히 웃어 주었다. 그러자 그의 너털웃음이 더욱 커졌다. 자기 딴엔 본심을 숨기고 말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생각하겠지.

“많은 도움이 되고 있으니 너무 염려 마세요, 예하.”

“그렇다면야.”

나는 그를 향해 가벼운 목례를 하고 문을 나섰다. 그와 동시에 아직까지도 안절부절못하던 라디트와 눈이 마주쳤다. 너 아직도 안 갔어?

“무슨 이야기 했어?”

“알아서 뭐 하려고?”

여전히 차가운 내 말에 그는 꼬리를 말았다. 내가 너무 심했나?

“……화났어?”

“안 날 리가 없잖아?”

“화 풀어, 응? 앞으론 다 이야기해 줄게.”

그의 말에 점점 화가 풀리려다가도 돌연 어제의 일이 생각났다. 그런 일들을 빤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끝끝내 비밀로 부쳤던 라디트를 생각하자 눈썹이 다시 치켜 올라갔다.

“미안하지만 난 라디트 너 앞으로도 쭉 못 믿을 것 같아.”

“그치만…….”

내 말에 충격을 받은 라디트는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렇게 하면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단 말이야.”

“뭐? 누가?”

“높으신 분들이.”

“허.”

그제야 라디트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했던 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딘가 묘하게 여유 있는 행동들과 미소. 그것들이 다 누군가에게 배워 행동했다는 것을 알자 나는 맥빠진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돌연 한 생각이 들자 나 또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 너 그럼 그들한테 네 성별뿐만 아니라 날 좋아한다는 것마저 들킨 거야?”

“성별 밝힐 때 홧김에 그만.”

이 바보! 나는 라디트를 향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능구렁이들한테 약점을 잡혀 버리면 어떻게 해. 평상시엔 차갑기 그지없던 애가 나만 연관되면 어쩜 이렇게까지 팔푼이가 되는 건지. 못마땅한 표정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면서도 나는 은근슬쩍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아냐, 라디트.”

“아니야?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여 주면 틀림없이 그런다고 했는데, 아니야?”

“아냐. 난 네가 너일 때가 제일 좋아.”

“조, 좋아? 날?”

내 말에 깜짝 놀라며 얼굴을 붉히는 라디트를 향해 나는 조용하게 속삭였다.

“응. 난 네가 좋은걸. 내 말만 잘 들으면 내가 평생 네 곁을 떠나지 않고 아낀다고 약속할게.”

라디트의 눈이 반짝이는 걸 보며 나는 가만히 나보다 조금 더 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라디트를 구워삶고 난 뒤에야 나는 겨우 거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간만의 혼자 즐길 수 있는 시간. 티타임이라도 하며 느긋하게 지내 볼까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비시아.”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발을 멈추었다.

“에드아르.”너를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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