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이게 무슨 소리지?
그의 말에 어리둥절해져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갑작스레 날 영원히 책임지고 싶다는 다소 뜬금없는 소리에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설마 그 이야기를 하는 걸까? 조금 전 자신을 놀라게 했던 불쾌한 모임을 상상하자 좋았던 기분이 점차 침체되는 걸 느꼈다.
“비시아.”
나도 모르게 얼굴에 티를 낸 것일까. 날 향해 몸을 돌린 테이젤이 내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떼어 내 귀 뒤로 넘겨 주었다. 내 시선이 자연스레 그의 얼굴로 향할 수 있도록, 테이젤은 손가락 하나하나 조심스레 움직여 내 뺨을 감싸 안았다.
“당신이 그들의 의견에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어요. 애초에 이 이야기가 사전에 당신과 합의한 게 아니라 독단적으로 이뤄졌다는 것만 보고도 알 수 있겠죠.”
상냥한 그의 말에도 나는 뚱한 표정을 쉬이 풀 수가 없었다.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거야? 그들의 만행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다시 달려가 따지고 싶을 정도였다. 예전과 달리 엄마의 진두지휘 아래 약삭빨라진 그들의 행동은 통 제 마음에 들지 않던 차였다.
더군다나 내가 누구보다도 이곳을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을 테이젤이 모를 리 없을 텐데. 나는 테이젤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상황을 이용하고 싶을 정도로 저는 당신에게 진심입니다. 당신이 이로 인해 편해질 수 있다면, 나는 그러고 싶습니다. 당신이 자꾸 불안정한 상황에 휘말리는 걸 보고 있기 싫습니다.”
그는 천천히 날 향해 고갤 숙였다. 자신보다 키가 작은 나를 배려해, 자신의 허리를 숙여 나와 시선을 맞춘 그는 자신의 눈동자로 날 투영하듯이 빤히 바라보았다.
“비시아.”
그의 목울대에 작게 울려 퍼지는 내 이름이 감미롭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비시아, 나는 더 이상 당신이 불편한 나날을 보내는 것이 아닌, 편한 나날을 보내길 바랍니다.”
“테이젤…….”
진심을 담아 말하는 것만큼, 나도 그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지내길 바라고 나를 위해 힘써 주던 것은 늘 테이젤이었다. 그런 그의 곁에 가면 어떤 때보다도 영화를 누릴 것이 보장되어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엄마의 손에서 벗어난다고 한들, 또다시 다른 이들에게 휘둘리는 삶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결심했잖아. 나는 테이젤의 말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그의 달콤한 유혹에 그대로 흔들리기엔 루드릭의 곁에서도 잘 살 수 있었을 터였다. 아니면 테이젤을 만나기 전에 에드아르에게 빌붙어서 잘 살 수 있었을 터였다. 나는 가까이 다가온 테이젤을 살짝 밀어내었다. 나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테이젤, 난 그럴 수 없어요.”
“비시아…….”
눈에 띄게 실망하는 테이젤의 얼굴에 순간 저도 모르게 가슴이 아팠지만 이내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 정도에 마음 아파하면 안 돼.
“제가 테이젤의 곁에 간다면 당장은 기쁠 거예요.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당신을 따라간다면 저는 영원한 짐이 될 거예요.”
“그럴 리 없습니다! 그저 당신이 제 곁에 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한 거니까요.”
“아뇨. 제가 결국 짐이 될 거예요.”
어떻게든 내 결단을 바꾸려는 테이젤을 향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교단에 붙잡혀 그저 아무것도 속박되어 있지 않은 채 테이젤과 함께했던 날을 그리워할 거예요.”
나는 반대로 테이젤의 뺨에 내 손을 올렸다.
“저는 테이젤, 당신에게 아무런 짐도 지워 주고 싶지 않아요.”
이것만큼은 진심이었다. 유난히 상냥하던 그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어떤 꼴을 당했을지, 혹은 아사를 당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그에게 짐을 지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 마음의 짐도.
“……당신은 너무 착해서 탈입니다.”
착하긴. 누가 누구한테 하는 소리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나는 바람 빠지듯 웃으며 그를 향해 작은 입술을 달싹거렸다.
“테이젤.”
여태까지 나 하나만을 위해 테이젤이 양보한 게 얼마나 되지?
“네.”
“테이젤, 테이젤.”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내 손바닥에 제 뺨을 눌렀다. 쓰다듬어 달라는 듯이 어리광을 부리는 그의 행동에 가만히 손을 쓸어 그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제가 상을 주기로 했었던 거 기억나요?”
“분명……. 다녀오면 당신이 상을 준다고 하긴 했었죠.”
잠시 기억을 더듬던 그가 날 향해 가볍게 웃어 보였다.
“어떤 상인가요? 이왕이면 비시아, 당신만큼이나 달콤한 상이 좋은데.”
테이젤의 말에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뺨을 여전히 감싸 쥔 채로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닿았다. 제 몸을 겹치듯 그의 몸에 찰싹 붙인 채로 그의 차가운 입술에 옮기듯 제 온기를 나누어 주었다.
“……이건 어때요?”
“비시아?”
다소 당황한 듯한 테이젤이었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그대로 그에게 내 몸의 무게를 실어 밀어붙였다. 내 힘을 못 이길 리 없는 그였지만 그는 순순히 내가 원하는 행동에 응하며 자신의 몸을 천천히 눕혔다. 근처에 있던 소파에 테이젤이 앉자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의 하반신에 타고 올랐다.
치마가 허벅지까지 올라가며 자연스레 맨살이 드러나자 테이젤의 눈이 자연스레 돌아갔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제 엉덩이를 조금 더 은밀하게 그의 하반신에 비벼 대었다. 이런 내 뜻이 무엇인지 깨닫자 테이젤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깥엔…….”
“쉬이.”
나는 비비던 허리를 들어 올려 그의 입술 위에 검지를 살짝 올렸다.
“맞아요. 밖엔 보초병이 있으니까 최대한 조용하게 해야 해요.”
테이젤이 내 행동에 뻣뻣하게 굳어지자 나는 당황해 재빠르게 검지를 치워 내었다. 어, 어라. 이게 아닌가? 슬쩍슬쩍 테이젤의 눈치를 보았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진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망한 건가? 그렇지만 상도 줄 겸 내 배도 채우고 싶었는데.
“……분명 테이젤이라면 좋아할 것 같아 고른 상인데……. 싫어요?”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그런 건 아니지만…….”
조심스레 의사를 묻자 그제야 테이젤이 정신을 차리며 고갤 저었다.
“항상 적극적이었던 건 늘 저였는데, 이렇게 적극적인 비시아는 오늘 처음 보는 것 같아서 그러는 겁니다. 당신이 너무 사랑스러워서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의 가슴을 딛고 있던 내가 자연스레 허리를 올리자 그는 따라와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덮었다. 내가 했던 키스보다 더욱 뜨거운 그의 혀가 입안을 지배했다.
“수줍기만 하던 당신이 적극적일 정도로 제가 많이 보고 싶었던 겁니까?”
으음……. 눈동자를 굴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고 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무래도 오랫동안 보지 못한 게 이런 효과를 내기도 하는군요.”
내 행동이 정답이었던 것인지 테이젤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단정하게 생긴 얼굴 위로 퍼져 가는 해사한 웃음은 오랜만에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당신이 주는 최고의 상에 꼼짝없이 걸려든 제 잘못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내 허벅지에 손을 대었다. 있는 대로 걷어 올려진 치마 사이로 들어가는 손은 거침이 없었다.
“응…….”
그의 손에 움찔거리자 그는 이마에 작게 입을 맞추었다. 단정함과 기품을 나타내고자 풍성한 프릴이 담긴 드레스보단 몸의 윤곽에 맞는 드레스를 입혀 준 참이었다. 몸의 곡선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덕택에 안엔 이렇다 할 속옷을 제대로 입지 않고 있었다.
빠르게 안으로 파고들던 테이젤의 손 또한 그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나를 한 번 바라보다 이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설마 오늘 하루 종일 이러고 있었던 겁니까?”
“어쩔 수가 없었어요.”
속옷의 자국이 그대로 드러나는 통에 입을 수가 없었는걸. 나도 처음엔 허전해 계속 신경 쓰면서 걸어야만 했었다.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자 테이젤의 얼굴에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렇게 만지지 않으면 몰랐을 뻔했군요.”
설마 안에 속옷을 안 입었을 거라고 생각이야 했겠어. 그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그럼 비시아가 속옷을 안 입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저 한 명뿐이겠군요?”
그렇게 되는 건가? 그의 말에 가만히 고갤 끄덕이다 몸을 파르르 떨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제 중심부위에 그의 손이 닿았기 때문이었다.
“테이젤…….”
“쉬이. 조용히 해야 한다고 한 건 제가 아니라 비시아였습니다.”
분명 내가 먼저 말하긴 했지만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지. 그의 말에 원망하듯 손을 뻗었다. 제 하반신을 만지느라 여념이 없는 그의 하반신을 꽉 채운 바지의 버클을 풀어내었다.
내가 그의 바지버클을 품과 동시에 테이젤이 손을 뻗어 내 허리를 끌어당겼다. 자연스레 그의 품에 안기자 그는 내 허리를 아래로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으응……!”
입구를 비집고 천천히 파고드는 이물감에 제 손가락을 깨물었다. 그에게 주의 주고자 말했지만 정작 그 주의는 나에게 통하는 말이기도 했다. 공공연하게 소리를 내어 즐길 수도 있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에드아르를 만날 때까진 밥을 먹는다는 걸 들킬 수 없었다.
느릿하게 허리를 내린 것과는 달리 빠르게 들어 올렸다. 내 주도가 아닌 테이젤의 손아귀 힘에 이리저리 움직이자 나는 그의 목을 껴안고 어깨에 이를 박았다. 흥분감에 허벅지를 떨자 그가 가감 없이 그대로 내 허리를 내려 자신의 것을 품게 만들었다.
“흣.”
내려감과 동시에 그의 어깨를 씹자 테이젤에게서 낮은 신음이 나왔다. 그에 나는 천천히 고갤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소리.”
작게 달싹이자 그는 내게 시선을 맞추었다.
“당신이 제 소리를 없애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기다렸다는 듯 그의 입술에 제 입을 맞추었다. 그와 동시에 허릿짓도 다시 시작되었다.너를 먹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