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먹고 싶어-70화 (70/86)

70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모여 있는 사람들과 교단 사람들, 그리고 엄마까지. 모든 것들이 당황스러웠지만 제게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이곳에 데려왔다는 것이 제일 당혹스러웠다.

테이젤 또한 다소 당황한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의 자리가 테이젤이 원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엄마를 향해 돌아갔다.

엄마는 평소보다 더욱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그저 기쁘다는 것처럼 연신 방긋거리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알고 있다는 것처럼 익숙한 자태였다. 설마 이 모든 걸 엄마가 준비한 건 아니겠지?

“엄마.”

“귀한 발걸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시아 님.”

엄마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옆에서 말을 가로채었다.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이를 보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몰라도 일단 좀 떨어져서 말해 주면 안 될까? 꼭 가까이 와야 해?

소리 없는 나의 절실한 의사와는 달리 기어이 곁으로 다가온 그는 두 손을 꼭 모은 채로 내게 허리를 가볍게 숙였다.

“오늘따라 그 미모가 한층 더 빛을 발하고 계시는군요. 저희 교단에 있어서도, 비시아 님에게 있어서도 중대한 날인 오늘을 위해 더욱 기품을 갈고닦은 모습인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분명 여신께서도 이날을 위해 따스한 햇살로 맞이하며 기쁘게 생각하시겠지요.”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는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애초에 오늘은 스케줄이 텅텅 비어 있는 날이었다. 이런 중요한 일정이 있었더라면 몇날 며칠 전부터 야단법석을 떨었을 이들이었는데. 왜 말을 하지 않은 거지?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신경도 쓰지 않은 그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이곳에 있는 분들은 차후 비시아 님이 행선지를 어디로 정할지 결정하게 될 각 나라의 대표들이십니다.”

“저의 행선지요?”

도저히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이곳을 떠날 거라는 갑작스러운 소식은 나를 혼란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이곳에서 그들 입맛대로 길러지는 줄 알았는데 나간다고? 놀란 표정은 쉬이 사라질 수가 없었다. 어딘가 탐탁지 않았다.

“여신님의 가호를 조금 더 여러 이들과 나누게 되는 중대하고도 고귀한 일입니다. 영광스럽게도 그 첫 발걸음을 비시아 님이 행해 주기로 하셨습니다.”

복잡하게 헝클어진 머릿속은 그들이 나열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질 않게 만들었다. 그저 딱딱하게 배열되었다가 공중으로 분해되는 것만 같았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저 멍하니 바라보자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내게 천천히 다가와 가볍게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날 껴안아 주었다.

“비시아. 나의 딸. 네가 어느덧 이렇게 장성해 자립해 나가는 것이 대견하구나. 이제 내 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하지만 엄만 너의 길을 응원하마.”

“……엄마.”

상냥한 그녀의 음성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에 충분했다. 그저 엄마와 나만이 있던 세상. 그곳에서 정기를 찾아 고생하는 일 없이 평생 살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그곳에서 내게 만큼은 상냥하게 대해 주던 엄마는 더 이상 없었다.

엄마가 이렇게 권력에 욕심이 있는 사람일 줄은 자라날 땐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조금 독특한 것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러니 천천히 결정하렴. 너의 미래. 나아가 여신님의 축복을 받을 이들의 영광스런 미래를 위해서도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날 껴안은 팔에 힘을 더했다. 나는 그녀에 맞춰 호응하듯 허리를 껴안으며 그녀의 귀 가까이에 입술을 대었다.

“……엄마 정말로 이러기에요?”

“나는 네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란다.”

부드러운 미풍이 귓속을 간질였다. 여전히 나긋나긋한 미음임에도 불구하고 한결 더 익숙한 목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럼 이건 아닌 것 같아.”

“아가.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단다.”

다시 조우했을 때부터 꾸준하게 말해 오는 걸 무시하는 엄마가 답답했다. 애써 내가 원하는 것들을 말해도 그녀의 앞에선 힘도 없이 사그라질 뿐이었다.

“그들을 잡아 네 손에서 놓아주지 마렴.”

내게 간신히 들릴 정도의 소리. 더욱더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한 엄마의 말이 각인이 되듯 뇌리에 박혔다. 앞에 있는 모두를 깔보는 발언을 서슴없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천천히 허리를 펴며 내게서 손을 떼어 내었다. 다시금 해사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은 화려하게 생긴 독초 같았다.

엄마가 멀어지자 다소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으로 그가 다시 곁에 왔다. 엄마한테 뭐 하나 책잡힌 적이 있는 걸까? 유난히 엄마의 행동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들의 행동이 의아했지만 질문 대신 입술을 꾹 다물었다.

“대륙 각지에 있는 나라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각지의 공평함을 위해 모든 분을 모셨으나, 카르티자는 내전이 악화됨으로 인해 조금 더 늦게 오시게 될 예정입니다.”

“내전이 악화되어요?”

놀라 다급하게 묻자 의아한 시선이 닿았다.

“네. 금방 종전될 거라고 하니, 너무 심려치는 마시지요.”

납치되었던 이가 걱정하는 투에 놀라기라도 한 것일까. 순순히 답하면서도 그는 힐끗힐끗 날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 이상 반응을 하지 않자 그는 시선을 다시 가라앉혔다.

내전이 더욱 악화되었다는 것은 루드릭의 활동이 활발해졌다는 것을 뜻했다. 안 그래도 자신의 본거지를 침입당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무리해서 활동하는 건 아니겠지? 괜스레 자신을 다시 데려올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그가 생각나자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럼, 비시아 님. 여신님의 은총을 받을 국가를 골라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요?”

“꼭 지금 당장 고르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중대한 사안이니까요. 신중하게 고르고 싶으신 비시아 님의 의견 또한 존중합니다.”

그의 말에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날 바라보는 이들 중에선 각 나라의 대표들 말고도 사신으로서, 수행인으로서 온 이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중엔 표정이 장난스러운 이도, 진지한 이들도 많았다. 테이젤과 에드아르를 따라온 이들 중엔 나를 향해 비난을 서슴지 않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묘한 시선을 보고 있자 나는 조심스레 입술을 떨어트렸다.

“조금 시간을 가져도 될까요? 아직은 어딜 향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참석하지 않은 나라도 있고. 일단 어느 나라로 가야 좋을지 잘 모르는 것만큼 한 분씩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그럼 어느 분으로 먼저 고르실 겁니까?”

고갤 돌려 한 사람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테이젤.”

내가 그의 이름을 호명함과 동시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황제의 이름을 스스럼없이 부른다는 무례함을 생각하기도 전에, 그는 내 손끝을 잡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절 처음으로 불러 주어 영광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테이젤은 내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에 주변에선 쉬이 웅성거리는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테이젤이 일어서자 나는 곁에서 같이 벙쪄 있던 이를 향해 바라보았다.

“제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데려가도 괜찮을까요?”

“무, 물론입니다.”

테이젤을 향해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은 그가 뻣뻣하게 응했다.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재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나를 꾸며 주던 이들이 재빠르게 내 뒤를 향했지만 테이젤이 그들을 막아 세웠다.

“저와 비시아만 가겠습니다.”

다소 난처한 듯이 눈빛을 주고받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아무래도 내 거처에 있는 수십 명의 보초들을 믿는 눈치였다.

“그럼 갈까요, 테이젤?”

나는 일부러 테이젤과의 친밀감을 드러내기 위해 그와 손을 잡았다. 다시 한 번 더 그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는 일이 생겼지만 꿋꿋하게 그의 손을 잡고 그곳에서 벗어났다.

테이젤과 나는 빠르게 발걸음을 이동했다. 거리가 멀어 꽤 걸리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말 없이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긋지긋한 보초병들을 헤치고 문을 열어 제 거처로 들어가자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몸을 돌려 테이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왜 저에게 바로 오지 않으신 거예요? 오신다고 약속하셨으면서.”

그를 향해 간신히 편하게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질문이 물밀 듯이 터져 나왔다.

“그것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저는 이런 일 전혀 듣지도 못했어요.”

“듣지도 못했다니, 비시아, 당신과 사전에 협의된 일이 아니었습니까?”

내 말에 놀란 듯이 되묻는 테이젤을 향해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협의되었다면 이렇게 당황하지도 않았겠지.

“전혀요.”

내 말에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비시아. 당신에 대한 소문은 알고 있습니까?”

“네. ……어느 정도는요.”

어디까지나 내 귀로 들은 것은 아니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얼마나 휘황찬란할지, 그 소문을 직접 목격하는 날은 수치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희 쪽으로 공문이 왔습니다. 소문의 성녀를 직접 모실 수 있는 나라를 정할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라며, 참석할 나라는 오라는 말과 함께요.”

그래서 라디트가 묘한 말을 내뱉은 걸까? 괜스레 그가 괘씸해져 입술을 앙다물었다. 라디트라면 애초에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거짓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자 분노와 함께 배신감이 훅 치고 들어왔다.

“당신의 소문을 완전히 믿는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소문을 그저 헛소리라고 치부하고 신경도 안 쓸 나라는 없을 테지요. 이곳에 참가한 이들 모두 만약 진담일 시, 당신을 꼭 가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단언하는 테이젤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라의 이득. 루드릭도 처음엔 나를 그저 이용할 가치로 보던 적이 있었다. 혹시 테이젤도 그런 걸까?

“……그래서 제 부탁을 무시한 건가요?”

“그럴 리가. 비시아, 당신에게 향하려던 도중 덜미를 붙잡힌 것뿐입니다. 제가 당신의 부탁을 무시할 리는 없어요.”

테이젤은 깜짝 놀라 재빠르게 부정의 말을 내뱉었다. 내가 그를 향해 실망할 새도 없이 전면 부정을 하는 테이젤을 보자 웃음이 자연스레 입가에 맺혔다.

“그렇담 어쩔 수 없었다는 거네요. 알겠어요.”

그의 말에 빙그레 웃으며 화답하자 그제야 테이젤의 얼굴이 펴지며 내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제야 내가 여태껏 테이젤의 손을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애써 풀지는 않았다. 딱히 기분 나쁜 건 아니었다. 간간이 미세한 디저트를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그럼 에드아르에게 찾는다는 말은 못 전하신 건가요?”

“비시아가 생각하기엔 어떨 것 같아요?”

그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로 내게 장난스레 물어보았다.

“제가 전해 줬을지, 안 전해줬을지요.”

여전히 짓궂은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는 테이젤을 믿어요.”

그렇게 말하자 돌연 테이젤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다소 놀랬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던 그는 옆으로 고갤 돌려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여전히 꼭 맞잡은 채 놓아주지 않는 덕택에 손을 타고 달아오르는 온기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당신에겐 못 당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조금 더 다가왔다. 맞잡은 손에 이어 팔이 가볍게 맞부딪쳤다.

“맞아요. 전해 줬어요.”

“역시! 고마워요, 테이젤.”

나는 그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줄곧 꾸며 오던 행동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엄마의 의도대로 날 처리하기 전에 내가 한발 먼저 앞서서 행동해야만 했다.

“비시아.”

에드아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갑작스레 테이젤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할 말이 있어요.”

“뭐예요? 이곳은 보초병 외에 아무도 없으니 조금 작게만 말한다면 얼마든지 편하게 말해도 돼요.”

“저와 함께 가요.”

“테이젤?”

“당신만 원한다면 비시아의 거처를 영원히 제가 책임지고 싶습니다.”

뭐?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놀라 눈을 깜빡였다.너를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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