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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먹고 싶어-67화 (67/86)

67화

건물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많은 사람이 버선발로 뛰어나오듯 우리를 격하게 맞이했다. 그 속에서 여전히 얼떨떨하게 있는 나를 발견하자 거짓말처럼 눈물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비시아 님.”

반가움에 눈을 반짝이는 그들과는 달리 나는 건성으로 받아들였다. 이곳에 돌아온 이상, 내 신세가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에 그들이 좋지 않았다. 차라리 테이젤이나 에드아르가 발견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들이라면 이곳 경비의 허술함을 탓하며 은근슬쩍 나를 자신들 나라로 데려가려고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에드아르랑 테이젤은 어디에 있지?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았으나 맞이하는 무리 중에 그들의 모습은 간데없었다. 날 데려오진 않더라도 맞이하는 자리엔 있을 줄 알았는데. 묘한 기분에 눈을 깜빡였다. 설마 날 안 찾은 걸까?

날 맞이하는 이들은 몇 번이고 내 주위를 뱅글뱅글 맴돌며 상태를 체크했다. 혹여 어디라도 다쳤을까봐 난리를 떠는 모습에 질색하고 있을 때였다.

“칼레아 님! 무사히 오셔서 다행입니다!”

칼레아? 그게 누구지? 나만큼이나 격렬하게 맞이하는 그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화사하게 웃고 있는 이를 발견했다.

“어, 엄마?”

엄마의 가명에 놀랄 새도 없이 침이 마르는 것조차 아까운 것처럼 그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정말이지 여신님의 은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비시아 님을 수월하게 찾아낼 수 있었던 건 모두 칼레아 님 덕분입니다.”

그들의 말에 몸을 멈추었다. 지금 내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나를 찾아낸 것이 교단이 아니라 결국 엄마였다고?

“엄마가 날……?”

그녀는 나를 힐끔 바라보다 이내 더욱 입꼬리를 올리며 손사래 쳤다.

“어머, 제 덕택이라뇨. 이 모든 것들이 교단의 힘이죠.”

서로에게 공을 돌려주는 그들의 행동에 기가 차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내가 있는 곳을 정확히 짚어 낸 것은 다름이 아닌 엄마였다. 대대적인 군사를 모집해 나를 찾아도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해 낙담하고 있을 때 찾아온 것이 그녀였다고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떻게 날 찾아낸 거지? 정작 운반된 나조차도 그곳의 정보를 전혀 알 수 없어 탈출에 난항을 한차례 겪었던 차였는데. 자연스레 시선이 엄마에게 박혔다.

“어떻게 날 찾아낸 거야?”

엄마는 그저 날 향해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상냥하다고 했을 미소였지만 반대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이게 엄마가 바란 일은 아니지?”

“그럴 리가.”

엄마는 여전히 묘하게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등 뒤로 넘겼다. 전혀 나이 차가 느껴지지 않는 모녀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의 탄성이 절로 자아내졌다.

“자자, 이렇게 밖에만 있지 말고 들어오시죠.”

우리 둘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그가 흐뭇함을 숨기지 않은 채 안으로 안내했다. 묘하게 대답을 회피하는 엄마의 행동이 수상쩍었지만 천년만년 밖에만 지낼 것은 아니었으므로 순순히 안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하치만 꽤 많은 건물을 지나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안내는 끝나지 않았다. 한 측에 마련된 아카데미는 애초에 멀어진지 오래였다.

“어디까지 들어가는 거죠?”

“비시아 님을 위해 더욱 안전한 장소를 마련했습니다.”

나를 위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내 발걸음은 더욱 깊은 곳으로 향했다. 것보다 여기 이렇게 넓었나? 새삼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이었다.

“이곳입니다.”

한 건물을 벗어난 곳엔 탁 트인 넓은 정원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곳엔 그리 높지 않은 크기의 아담한 건물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름답게 조각된 모형이 곳곳에 전시되거나 붙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아름다움은 쉽게 둘러볼 수가 없었다. 건물 외벽을 빽빽하게 매울 심산인지 에워싸고 있는 무시무시한 장병들 때문이었다.

“오늘부터 여기서 생활하시게 될 겁니다.”

“네?”

그의 말에 당황해 다시 건물을 바라보았다. 무시무시한 사람들 때문에 집인지 수용소인지 모르겠는데요? 싱글벙글한 그와는 달리 나는 난감해 침을 삼켰다.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더한 곳에 갇혀 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필요한 가구만 제자리에 있는 탓일까. 간소하면서도 세련된 집 내부는 제 기분을 일시적으로나마 기쁘게 만들었다. 그럼 뭐해 바깥 풍경이 살벌한데.

“잠시 제 딸과 단 둘이 있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갑작스러운 엄마의 말에 놀라 고개를 돌리자 신관이 미소를 방긋 지었다.

“물론입니다. 앞으로 저희와 함께할 시간은 얼마든지 많을 테니까요.”

이미 신뢰도는 만렙을 찍은 것인지 그는 순순히 자리를 비켜 주었다. 등을 돌려 문을 열려던 그는 다시 한 번 더 우리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편히 쉬시길.”

문이 닫히며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에워싼 이들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역시. 날 감시하는 이들이구나. 지켜 준다는 명목하에 제게 보이지 않는 새로운 족쇄에 한숨을 쉬며 엄마를 바라보았다.

고고한 그녀의 자태는 이곳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왜 날 거기에 내버려 뒀어?”

“어딜 말하는 거니?”

그녀의 말에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처음 나왔을 때요.”

“덕분에 그 근처에서 그를 발견할 수 있었잖니.”

“그라면 혹시 에드아르?”

엄마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하지만 네가 도망칠 줄은 몰랐단다.”

다소 실망한 듯이 엄마는 말투를 늘어트렸다. 날 그곳에 떨어트린 것도 결국 계획 중 일부였다니. 어디서부터 내가 그녀의 계획에 동참하고 있는 것인지 아리송해질 지경이었다. 어쩌면 내가 일평생 배웠던 카마수트라도 생존보다는 그녀의 계획을 위해 배운 건 아니겠지?

“왜……? 왜 그런 거야?”

“왜, 라니. 딸. 넌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어울린단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이라면 왕족들을 말하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엄마는 내가 루드릭과 함께하는 것은 단호할 정도로 반대하지 않았던가.

“그럼 내가 그곳에 계속 남아 있어도 되는 거 아니었어?”

“이르헨달의 폐태자를 말하는 거라면 절대로 안 돼. 실패한 자는 이미 가치로써 충분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잖니.”

“그런 말은…….”

자연스레 그를 폄하하는 말에 인상을 살짝 찌푸리는 순간이었다. 엄마의 섬섬옥수가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딸.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나긋나긋. 여전히 상냥한 목소리와 하께 그녀의 시선이 점점 가까워졌다.

“너는 그딴 이들과 어울리지 않는단다. 네 소문이 그저 허튼 것일 것 같니?”

“엄마도 그 소문 알고 있었어?”

“그럼. 누가 흘린 건데.”

그녀의 말에 천천히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 소문들, 엄마가 그랬던 거야?”

믿을 수가 없었다. 내게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사안을 내가 알기도 전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퍼트리는지, 그녀의 의중을 전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내게 비밀로 한 것 자체만으로 의아함의 연속이었다.

“왜……? 왜 그런 거야?”

“너는 왕이 될 아이야.”

어느새 양어깨를 잡은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무시하는 자들은 다 발아래 두렴. 그것이 너의 삶이란다.”

“하지만 그건 엄마의 생각뿐이잖아.”

전생엔 살아가는 것은 다른 이들과의 공존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삶에 쫓기듯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곤 했지만 생을 이어나가는 것도 결국엔 공존할 수 있는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부정하면서도 은연중에 제 행동들이 밟히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은근슬쩍 밥들을 가볍게 보았던 것이 생각나자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건 그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뿐이었다. ……그뿐이야.

“아가야. 네가 아직 어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것 같구나.”

그녀는 얼굴은 점점 가까이 다가와 어느덧 내 이마에 맞닿았다. 오른손을 들어 올려 내 뺨을 가볍게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은 내 온도와는 달리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지내 보면 그것이 다라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아니, 권력자의 삶이 편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겐 거기까지의 욕심은 생기지 않고 있던 차였다. 애초에 생존만 제대로 보장된다면 어디든 괜찮다는 일념 하나로 이곳까지 오게 된 거였는데.

“그치만 나는…….”

말하다 말고 인상을 찡그렸다.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꽉 잡고 있는 엄마의 손아귀 힘에 말을 이어나가기가 힘들었다.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손을 피하자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알겠니? 너는 나를 위해서라도 되어야 해.”

“어, 엄마.”

그녀의 커다란 눈이 오늘따라 유난히 무섭게 보였다. 희번득한 그녀의 눈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 자꾸 뒷걸음질 쳤다.

“알겠지?”

결국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내게서 만족스러운 대답이 나오고 나서야 그녀는 다시 원래의 엄마로 돌아갔다. 오롯이 내게만 상냥하고 친절한 엄마로 돌아온 그녀는 옛날과 같이 내 머리카락을 빗겨 주기 시작했다.

고운 손길이 비단결 같은 머릿결을 빗어 줄 때마다 옛 추억으로 빠져가는 느낌이었지만 기분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쎄한 구석이 그녀에 대한 의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

“비시아!”

다음 날 해가 뜨기 무섭게 내가 머무는 건물 안으로 들이닥치는 이가 있었다. 오랜만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치장하던 손길을 멈추고 숨을 헐떡이는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도착한 건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온 건지. 테이젤은 날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입만 뻥긋거릴 뿐 제대로 된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잘못 보는 것처럼 한참이고 눈을 깜빡이더니 내 고개가 움직일 때 즈음에야 그가 날 와락 껴안았다.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 정말이지 당신은 도대체……!”

거칠게 안는 그의 품은 여전히 따뜻해서 가만히 그를 끌어안았다. 그의 시점에선 나라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거였으니 소스라치게 놀랄 만했겠지. 비록 그의 심정을 다 이해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조금이라도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해 등을 토닥여 주었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에드아르는요?”

내 말에 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왜 묻느냐는 표정이 일순 지나갔지만 이내 빙그레 웃으며 말끔히 지워 내었다.

“그가 알아내기 전에 제가 먼저 왔습니다.”

아아, 그래서. 언제나 덤으로 붙여 주는 초특가 행사처럼 다니던 이들이 어쩐 일로 혼자인가 싶었다.

“흉악한 이에게 잡혔다고 들었습니다. 어디 몸 상한 곳은 없으시죠?”

“아…… 네, 뭐.”

그의 말에 어정쩡하게 대답을 뭉그러트렸다. 처음엔 테이젤과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알 수 없었다. 그는 정말로 흉악한 이가 맞았을까?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여기 있으신 데 불편함은 없고요?”

생활은 순조로웠다. 적어도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내게 이렇다, 저렇다할 상황은 없었지만 말이다. 갇혀 있는 게 불만이긴 했지만 이곳에 머무는 엄마를 생각하면 쉽사리 뱉어 낼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난 순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딱 하나. 불편한 게 있는데.”

“뭐죠?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재빠르게 말하는 그를 향해 은근슬쩍 목에 팔을 둘렀다.

“테이젤, 당신이 필요해요.”너를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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