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먹고 싶어-60화 (60/86)

# 60화

최근 그의 상태가 좋아 보였던 적은 극히 드물었다.

그의 표정엔 변화가 없다고 한들 그의 몸엔 상처가 계속 늘고 있는 추세였다. 그래도 계속 못 본 체해 달라는 그의 말에 못 본 척하고 있었는데…….

“괜찮아요?”

이건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의 옷으로도 가리지 못한 상처가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붕대를 물들인 붉은 피가 제 앞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이 상처 뭐에요?”

그는 여전히 내게 말하길 거부하고 있었다. 그저 무뚝뚝하게 입만 꾹 닫은 채로 기어코 날 밀치고 방에 들어오고야 말았다.

“말 안 해 주실 거예요?”

단호해 보이기 위해 허리에 손까지 올렸으나 그는 내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아, 예. 그러시겠죠. 너무 뻔한 그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져 허탈한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이런데 누가 날 감싼단 말이야? 새삼 낮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기 싫음 말아요.”

“…….”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크게 다쳐선 뭘 하려고 이 방에 찾아온 거예요?”

셔츠 사이로도 살짝 보이는 붕대는 상반신에 상처를 입었음을 확신했다. 이렇게 크게 다쳐서 날 임신시키겠다고 부득불 찾아온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휴우.”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일절 말을 해 주지 않으니 무엇 하나 알아낼 수 없었다. 답답할 정도로 입을 꾹 다무는 그의 머리를 한 대 때려주려다, 다시 한 번 더 숨을 푹 내쉬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누워요.”

“……뭐?”

“못 들었어요? 누우시라고요.”

그렇게 말하며 난 그의 어깨를 힘주어 밀쳤다. 제 손에 가볍게 움직일 이가 아닌데 그는 손쉽게 침대 위로 제 상체를 눕혀 버렸다. 얼결에 누운 자신의 모습을 그 또한 상상하지 못한 것인지 큰 눈을 뜬 채로 깜빡였다. 나는 허릴 숙여 그의 다리를 들어 침대 위로 손수 올려 주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뭐 하긴요. 잘 준비 중이죠.”

나는 그의 커다란 몸 밑에 깔린 불쌍한 이불을 꺼내기 위해 낑낑대었다. 빼낸 이불을 그의 어깨까지 덮어 주자 여전히 놀란 그의 눈이 내게 닿았다. 뭐야, 무슨 불만 있어?

“…설마 그런 부상을 입고도 하려고 한 건 아니죠?”

그를 향해 아연실색하며 물었다. 설마 그런 부상을 입고도 하려고 설친다면 그건 중독 증세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아무리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들, 쉬는 날도 있어 줘야 할 거 아냐.

그의 머리맡에 베개까지 눕힌 후에야 뿌듯한 표정으로 그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마련된 베개 중 하나를 챙겨 제 머리맡에 둔 후 그와 같은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 올린 후에야 몸을 뉘었다. 내 몸에 몇 배에 가까운 침대는, 성인 두 명이 누워도 넉넉하다 못해 한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얼른 자요. 환자는 푹 자는 게 회복에 좋다고 했어요.”

전생에 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그에게 말했다. 몸이 회복하느라 힘드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금세 지친다나 뭐라나. 이제 제 몸은 회복하면 지치는 것 대신 급격하게 배가 고파지긴 하지만 말이다.

“너는…….”

“네?”

“궁금하지 않은가? 내가 이렇게까지 다쳐서 온 것에 대해 말이다.”

그의 말에 황당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내가 아까 전까지 난리 치던 행동은 궁금하지 않아서 그렇게 하는 걸로 보인 걸까? 그렇게 물어보고 해도 가르쳐 주지 않던 것이 누군데!

“궁금해요.”

하지만 가르쳐 주지 않을 거잖아. 뒷말을 꾹 삼긴 채 눈을 감았다. 말해 보았자 다시 그의 입을 닫게 해줄 뿐일 터였다. 뻔한 미래를 말해서 뭐해.

“……널 찾는 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네?”

돌연 갑자기 말을 틔우는 그의 행동에 깜짝 놀라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인 걸까. 이미 날 향해 고개를 돌린 그와 시선을 마주치자 눈을 깜빡였다.

“마치 이곳을 알고 있는 것처럼 빠르게 접근하는 이들 때문에 수비망을 좁힌 지 꽤 되었다. 그 때문에 널 의심하는 자들이 늘어난 추세지.”

웬일로 순순히 말해 주는 그를 향해 시선을 떼어 놓을 수 없었다. 그의 시야에, 누워 있는 내가 담겨 있었다.

“약삭빠르게도 그들은 카르티자에 지원을 요청한 것 같더군. 그로 인해 조금 잦은 마찰이 일어났을 뿐이다.”

“……혹시 당신도 내가 했다고 생각하나요?”

덤덤하게 말하는 그를 향해 줄곧 의문을 품고 있던 것을 그에게 나지막하게 털어 내었다. 맥시안은 그가 날 믿고 있다곤 했지만 모르는 일이었다. 그저 이용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말하는 말일 수도 있잖아?

불안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서로 제일 가까이 몸을 섞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좀처럼 가까워지질 못하고 있었다. 내 물음에 날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한층 더 짙어졌다.

“아니.”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넌 그럴 수 없으니까.”

말은 투박하기 짝이 없었으나 묘하게 자신을 믿어 주고 있다는 느낌이 확연하게 드는 대답이었다. 여전히 날 바라보는 시선이 얼굴에 콕콕 와 닿자 민망함에 헛기침을 빠르게 내뱉었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어째서 자신을 이렇게까지 믿어 주는 것일까. 정말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다른 이들처럼 의심 정도는 해 볼 법했다. 결속력이 단단하다고 스스로 일컫던 이들이라면 더더욱 외부에서 온 나를 의심하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저 정말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

확인하듯 재차 물어보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했다. 오히려 내가 한 번 더 말한 것이 민망해질 정도로.

결국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다시 정면을 바라보고 누웠다. 매번 보던 천장이 유독 달라 보이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거 처음 아냐? 새삼스러운 생각에 이불을 꽉 쥐었다. 매번 밥 먹고 난 뒤에 자기만 바빴는데. 그와 몸을 섞지 않아도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딘가 낯설기만 했다.

약간 낯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괜한 생각에 혼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어린아이처럼 두근대는 거지? 이미 몸 섞을 대로 섞은 밥인데. 소설처럼 손 한 번 닿을 수 있을까 하는 전전긍긍의 두근거림이 제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같은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만으로 초조해하는 지금의 상황이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다시 한 번 더 그를 바라보았다.

뭐야. 자라고 하는 제 말을 진심으로 들은 것인지, 그는 어느덧 눈을 감고 조용히 숨만 색색거리며 내뱉고 있었다. 괜히 혼자 흥분해 콧김을 씩씩 뿜어낸 것 같자 민망함에 다시 고갤 돌렸다. 환자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담. 이래서야 그가 말한 대로 내가 정말…….

“잠이 오질 않나?”

“까, 깜짝이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순간적으로 심장을 뱉어낼 뻔했다. 인기척 좀 내 주고 말하면 어디가 덧나? 터질듯한 심장 고동을 애써 무시하며 고갤 다시 돌리자 어느덧 눈을 뜨고 다시 날 바라보고 있는 그가 있었다.

“아, 아뇨. 곧 잘 거예요.”

오늘 맥시안 그 자식 때문에 결국 낮잠도 설친 터였다. 배가 만족스럽게 부르진 않았지만 하루 굶는다고 해서 죽지는 않을 터였다.

“얼른 자.”

“그럴게요.”

“내가 고프겠지만 오늘 밤만 참도록 하고.”

“무슨 소리예요!”

결국 참지 못하고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애써 무시하던 자신의 감정이 들킨 것만 같아 흥분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누가 들으면 욕구불만인 줄 알겠네!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

“헛소리인가?”

더 이상 허튼소리를 내뱉으면 그 입을 막을 심산으로 베개를 손에 꽉 쥐는 순간이었다.

“나는 꽤 진심이었는데.”

“네, 네?”

“여태 공들인 게 며칠인데. 그리워할 법 되지 않았나?”

그는 그렇게 말하며 비뚜름하게 웃었다. 아까의 먹먹한 표정은 어디로 가고, 평소의 재수 없는 그가 있자 씩씩거리다 그와 정반대로 몸을 돌아 눕혀 버렸다.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신다면 내일 방문을 잠가 버리겠어요.”

“뭣 하러 그런 쓸데없는 수고를 들이는 거지? 열쇠는 내게 있는데.”

그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얼른 자요.”

“또 그 소리군.”

어떻게 하라고. 그를 이겨낼 방법이 도저히 없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당해 낼 재간이 없자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었다.

어둠을 가르고 팔이 앞으로 다가와 내 허리를 끌어당겼다. 순간적으로 놀라 몸이 뻣뻣하게 굳자 뒤에서 작게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자도록.”

“이,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안질 못하니 적어도 유사행동은 해야 잠이 올 것 같아서 말이지.”

그의 말에 당황해 입술만 연신 뻐끔거렸다.

“저는 누가 붙어 있음 잘 못 자는데요?”

“그럼 혼자 밤을 새우도록. 난 누구의 말대로 피곤하니 이만 눈을 붙여야겠어.”

그렇게 말하며 기어코 그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목덜미를 간질이는 숨결에 몸이 더더욱 뻣뻣하게 굳는 건 두말할 것 없는 사실이었다.

정말 그의 욕망껏 안고 자려는 것인지 딱 달라붙은 그의 행동에 몸을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이래서야 도대체 어떻게 자라고. 원망스런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

한숨도 자지 못할 거라는 제 생각과는 달리 저도 모르게 곯아떨어진 수면은 오후까지 푹 잠들 수 있게 만들었다. 눈을 뜨자 옆자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휑한 빈자리만이 날 반기고 있었다.

당연한 건데. 왜인지 모를 허전함이 제 몸을 휩쓸고 지나가자 재빠르게 고갤 저었다. 간밤에 그가 날 껴안고 놔주지 않은 덕택에 생긴 일시적인 감정이 분명했다.

시종을 불러 새로운 날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어느덧 사용인을 부리는 데에 있어 익숙해진 난 그녀의 도움으로 옷을 입고 있을 때였다.

“비시아!”

으. 아침부터 보이는 싫은 이의 모습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몰상식한 그는 분명 노크하는 법조차 잊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등의 단추를 잠그다 말고 놀란 시종이 재빠르게 가리는 동안 난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적어도 노크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요?”

“그게 문제가 아냐.”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목을 덥썩 잡았다.

“부른다.”

“누가요?”

“널 의심한 이들이 아침 회의에 널 소환했어.”

그의 말에 맥시안한테 손을 잡힌 것도 잊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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