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먹고 싶어-59화 (59/86)

# 59화

결국 그의 상처에 대해 자세한 것은 물어볼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잠에서 깬 것은 늦은 오후가 되고 난 후였다. 당연하게도 그는 내 곁에 없었다. 그 뒤로도 물어보기 위해 기회를 틈탔지만 그는 내게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몸에 한 번 늘어나기 시작한 상처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묵은 상처 위에 새로운 상처가 자리 잡곤 했다. 처음엔 그저 묵인해 달라는 그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나날이 새로운 상처가 자리 잡혀 가는 그를 그저 침묵하며 바라보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내게 말을 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물을 때마다 그는 화제를 돌리며 나를 거칠게 탐할 뿐이었다. 상처가 난 곳을 손으로 쓸면 아파하면서도, 끝끝내 그는 말하지 않았다.

도대체 뭘까.

요즘 따라 주변의 경비가 삼엄해졌다는 시종의 말을 언뜻 들은 바 있었다. 하지만 방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질 않는 내겐 여전히 똑같은 풍경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들을 수 있는 거라곤 늘 같은 소리, 늘 같은 풍경일 뿐이었다.

그리고 늘 같은 사람.

“……왜 왔어요?”

“보고 싶어서?”

그의 말에 와락 표정을 구겼다. 입에 침은 바르고 저런 말을 하고 있는 걸까.

“할 말이 없다면 나가 주세요. 제가 워낙 바빠서.”

“뭘 하기에?”

안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을 막 하기 직전에 끊긴 참이라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빨리 나가란 말이야. 나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은 티를 내기 위해 이불을 팡팡 쳤다.

낮잠 잘 거야.

“그런 거 있어요.”

“어이쿠. 바쁘시다니, 제가 귀한 시간을 축내는 건 아닌가 모르겠군요.”

알면 좀 꺼져 줄래?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실 쪼개는 맥시안은 발걸음을 일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좀 가! 가란 말이야! 부르면 오겠다는 말과는 달리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그가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다. 제 무료한 시간은 매일 가져다주는 책이면 충분했다. 맥시안이 달래 주는 무료한 시간들은 절대로 고맙지 않았다.

웃는 낯짝을 향해 경멸하듯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으레 그랬던 것처럼 바라는 것이 있어 방에서 떠나지 않는 거겠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응.”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내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다. 으, 그냥 그 거리에서 말해 주면 안 될까요?

“바깥엔 나가 봤어?”

“아뇨.”

그의 말에 즉각적으로 답했다. 그날 이후로 내가 방 밖으로 식사시간을 제외하곤 나가지 않는다는 건 이미 저명한 사실이었다. 오죽하면 문을 지키는 이들이 내가 잘 있는지 하루에 한 번씩 안을 확인하겠는가. 맥시안의 시선이 시종에게 아주 잠깐 닿았지만 이내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날 이후로 한 번도?”

“한 번도요.”

“다른 이들이랑 접촉해 본 적은 없고?”

“그럴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 텐데요.”

내 방문을 지키는 이들은 맥시안의 부하였다. 하루 일과를 그에게 보고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지는 꽤나 오래전이었다. 가시 돋친 내 말에 그는 뜻 모를 웃음을 짓더니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너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어.”

“여기서요?”

“아니. 밖에서.”

그는 밖을 보던 시선을 거둬 다시 날 바라보았다.

“네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는 소문 말이야.”

“……설마 그 소문을 제가 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그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한다면 살아 있길 장담하기 힘들 거라던 그의 말이 생각나 몸을 경직시켰다. 아주 당연하게도 내게 그런 소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은 없었다.

“그럴 리가.”

맥시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여길 안 나갔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걸.”

그걸 아는 사람이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오던가. 명백히 자신을 의심하고 있기에 찾아온 것이겠지. 빤히 보이는 거짓말에 입을 샐쭉이자 그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진짜야. 애초에 소문이란 말은 거짓말이기도 하고.”

“뭐라고요?”

이게 진짜. 도가 지나친 장난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자려고 마음먹었던 이불을 걷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맥시안. 장난이 지나치신 거 아닌가요?”

“그럴 리가.”

뻔뻔하게 웃는 낯짝에 손이 올라가지 않는 지성인이라 다행이었다. 빨리 그를 내보내고 화풀이할 것이 필요했다. 무의식적으로 제 침대를 힐끔 바라보다 다시 그를 향해 바라보았다.

“할 말이 없다면 이만 물러가 주시죠. 당신 말대로 저는 아주 바쁜 사람이라서요.”

“정말 네가 한 게 아냐?”

순간, 맥시안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네?”

“네가 이곳의 정보를 몰래 흘리고 다니는 게 아니냐고.”

“그게 무슨…….”

그는 내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엔 더 이상 웃음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최근 교단놈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어. 중구난방으로 움직이던 움직임이 점점 한곳으로 모이는 느낌이지. 바로 이곳으로 말이야.”

“교단이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혹시 테이젤과 에드아르 외에 다른 이들이 도와주기라도 하는 걸까?

“외부인이 이곳을 알고 있기란 쉽지 않아. 더군다나 다른 나라가 알기엔 더더욱.”

맥시안이 내 뺨을 가볍게 잡았다. 이내 뺨을 붙잡은 손은 하관 전체를 덮어 누르기 시작했다.

“이래도 정말 네가 흘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발뺌하는 거야?”

“저느…… 모르느 일이애오.”

그의 손 때문에 제대로 말을 하기 어려웠다. 어눌한 발음이 입 밖으로 나가자 그의 눈이 찌푸려졌다.

“정말?”

그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야. 이곳에 갇혀 있다시피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내가 소문을 퍼트리고 싶어 한들 내 말에 복종하는 이가 어디에 있다고. 상냥하지만 제약적인 이 방에서 호의 이상의 정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문뜩 떠오르는 검은 이를 생각하다 재빠르게 고갤 저었다.

“하…….”

단호한 내 고갯짓에 맥시안이 한숨을 내쉬며 풀어 주었다. 거친 행동에 저도 모르게 다시 침대에 주저앉아 버렸다. 초조해 보이는 맥시안이 재빠르게 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럼 도대체 누구인 거지?”

내가 알 턱이 있나. 나는 짓눌린 턱을 매만지며 맥시안을 노려보았다.

“그 사실 때문에 처음으로 결속력이 깨질지도 모른단 말이야.”

“네?”

“이곳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소문 때문에 부하들이 수군거리고 있어.”

그거참 안타깝군요. 안 좋은 소식이긴 했으나 나에게 직결되는 일은 아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맥시안을 멀뚱하게 바라보자 잔뜩 화난 얼굴이 내게 확 닿았다.

“아직도 모르겠나? 왕자님은 너 때문에 위험부담을 감안하고 계신 거라고.”

“……네?”

아무래도 이 성의 식사는 주기적으로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매번 헛소리를 하는 이들이 늘어나니 말이다. 그게 왜 나 때문인 거야? 저번에 책임 전가한 것을 복수하기라도 하는 듯이 말하는 맥시안의 말에 똑같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왜 제 탓이에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저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얌전히 있단 말이에요.”

“왜냐고?”

그는 시니컬하게 웃으며 날 가리켰다.

“왜냐면 왕자님이 네 편을 들어주시기 때문이지.”

아. 이번엔 난청인가. 헛소리에 이어 착란증세까지. 아무래도 그에게 부탁해 날을 잡아 대대적으로 검사를 해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가 내 편을 들어 줄 리 만무했다.

“헛소리하지 말아요.”

“나도 헛소리라고 치부하고 싶어.”

뚝. 하고 맥시안은 웃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사실이지. 몇 가신들이 위험하다고 널 의심하는 와중에 그 의심마저 차단시킨 이가 왕자님이시다.”

그의 말이 어떨떨하게 들려왔다. 나보고 어쩌라고? 그래 봤자 제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는 여전히 날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 흔한, 이름조차 알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그는 자신의 신분만 알려 주었을 뿐, 결코 이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나를 신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만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 이가 바깥에서 날 옹호한다는 사실은 꽤나 현실성 없게 다가오기만 했다.

“저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어떨떨함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맹세코 그런 일을 한 적조차 없는걸요.”

“그렇겠지.”

전혀 믿지 않는 투의 그가 한숨을 쉬며 내게서 떨어졌다.

“왕자님이 네게 전혀 말할 생각이 없는 것 같길래 알려 주러 온 것뿐이야.”

왜 하필? 모르는 것이 좋았다. 불안한 심장은 아까부터 요동치고 있었다. 그저 이용가치가 끝나지 않은 자라 감싸 주는 것뿐일 텐데. 어째서 불안한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게 하고 싶었던 말이면 이만 가 주세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하지 않은 짓을 의심하며 달려온 맥시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를 밀어내듯 방으로 쫓아내곤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날 걱정하듯 시종이 눈치를 보았지만 개의치 않은 채 침대에 누워 버렸다.

“조용하다.”

진작에 보내 버릴걸. 그랬더라면 낮잠도 자고,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을 텐데.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제 머릿속엔 톡톡히 기입된 상태였다.

그가 나를 위해 제 부하들의 반발까지 사고 있다. 그 말은 한동안 제 머릿속을 맴돌아 아무런 생각도 못 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뭘 믿어야 하는 거야…….”

제 몸을 돌돌 감싸듯 이불을 끌어안곤 제 얼굴을 푹 숨겨 버렸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감당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들 그가 나의 동의 없이 날 데려온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맥시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날 감싼 것도 사실이었다. 도대체 왜? 제 계산보다 내가 필요가 없으면 버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속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갑작스럽게 밖에서 도는 다소 허무맹랑한 모함에도 대처할 수 없었다. 어느덧 그와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