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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먹고 싶어-51화 (51/86)

# 51화

“흐읏!”

상체가 숙여진 채로 엉덩이를 들쳐 올린 자세가 되자 그의 손가락이 본격적으로 안으로 파고들었다. 제일 긴 중지로 가볍게 파고들면서 입구를 가볍게 펴듯 움직이는 손가락에 자연스레 발끝이 오므라졌다.

“그거 아나?”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다 약하게 잡아당겼다. 그의 손길에 따라 자연스레 고개가 젖혀지자 손가락이 조금 더 안으로 파고들었다.

탄식을 할 새도 없이 이가 맞부딪쳤다. 아직은 쉬이 반응을 보여 줄 순 없었다. 잇새로 신음을 흘리면서도 눈으로 식탁을 직시했다.

안을 휘젓던 손은 얼마 가지 않아 빠져나갔다. 짧은 유흥을 즐기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걸 안 그가 내 몸을 붙잡던 손을 내려 바지 버클을 풀기 시작했다.

“네 몸이 표정보다 더 마음에 드는걸.”

그 순간 식탁 위에서 발견한 나이프를 들어 그를 향해 내질렀다. 아슬아슬한 거리. 조금만 손을 더 뻗었더라면 그의 목에 가차 없이 나이프가 꽂힌 후였을 터였다. 정확하게 그의 목젖을 찾아 겨누는 손짓에 그의 눈이 커졌다.

“……허. 멍청한 줄만 알았더니 무모한 것까지 있군.”

이제 알았냐. 나는 거의 풀어진 옷을 가슴께로 여미며 나이프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날 풀어 줘요.”

“안 된다면?”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개도 까딱하지 않았다. 처음에 잠시 놀란 것을 빼면 여전히 태평한 그의 얼굴에 미간을 찌푸렸다.

“……찌를 거예요.”

“호오, 겁까지 상실했군.”

날 평가하듯 계속되는 그의 말에 기분이 팍 상했다. 나이프의 날이 아무리 무뎌도 가녀린 목 피부라면 승부가 날 것이 뻔했다. 정말 조금만 더 손을 앞으로 뻗으면 그의 목젖이 짓눌러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날 향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찔러.”

“네?”

뭐라고? 이럴 땐 대체적으로 원하는 걸 들어주는 타이밍 아니었나? 순순히 제 말을 들어주지 않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찔러’라니. 보통 미친 반응이 아닌 말에 기함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오로지 살고자 달려온 나완 달리 그렇게 말하는 그의 의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살아 있는 생물이라면 당연하게 목숨부터 구걸해야 함이 마땅했다. 그리고 난 그 행동을 충실하게 지켜 왔고, 그랬기에 그의 행동을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살고자 하는 감정이 결여된 이 같았다.

“뭘 망설이지? 이럴수록 네가 날 죽일 수 있는 성공률은 점점 내려갈 텐데.”

“나, 난.”

내가? 죽여? 사람을? 하고자 했지만, 막상 코앞으로 일이 닥쳐오자 손을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예전에 전쟁터에서 맡았던 구역질 나는 피 냄새가 당장이라도 코끝에 감도는 것 같아 소름 끼치는 순간이었다.

“역시. 넌 하지 못하는군.”

“앗!”

한순간이었다. 그의 손에 붙잡힌다 싶더니 나이프 쥔 손을 제압당했다. 그제야 날 혼란스럽게 하려던 그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손을 휘두르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냥 찌를걸. 분하다!

“곱게 자란 티가 난 네가 사람을 찌를 수 있을 리가.”

흠. 제가 곱게 자란 건 맞지만 나와선 아닌 것 같은데. 나름 칼빵도 맞고, 도망도 치고, 난감한 일이 얼마나 많았는데. 괜스레 억울한 마음에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표정을 발견한 그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

“생각보다 날 즐겁게 해 주는군.”

난 너의 흥미유발촉진제가 아닌데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 내게 가까워져 갔다.

“그래 이왕이면 흥미 있는 것이 좋지.”

“그게 무슨 개소리…… 읍.”

돌연 그가 입을 맞춰 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틈을 타 벌려진 입속으로 가차 없이 혀가 들어와 헤집기 시작했다. 제 혀를 엮어 오는 그의 행동에 나이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어떻게든 휘두르려 노력했지만 간단하게 그의 손아귀에 저지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발버둥 칠수록, 나이프를 쥔 손에 힘을 줄수록 그의 입맞춤을 깊어져 갔다. 마치 내가 키스로 제압당하길 바라는 것처럼 입안을 훑었다. 혀뿌리까지 훑듯이 탐닉하는 그의 행동에 나이프를 든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제 혓바닥을 마찰하는 그의 행동이 마치 삽입했을 때의 느낌을 주었다. 발버둥 치며 고개를 저어도 그는 다시 내 고개를 돌려 키스했다. 떨어지는 입술을 붙잡아 다시 제 입술과 혀로 정신없게 만들었다.

짤그랑.

코로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도 잊었을 무렵, 결국 손에서 나이프를 떨구자 간신히 그의 입술이 떨어졌다. 질척한 입술이 떨어짐과 동시에 다급하게 산소를 찾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이, 이……!”

시뻘게진 얼굴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카마수트라에 적혀진 키스의 방법이란 방법은 다 겪어본 느낌이었다. 내가 이론만 알고 있다면 그는 실습까지 완벽하게 끝마친 느낌이랄까. 졌다는 느낌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그는 제 입가를 엄지로 닦으며 내가 떨어트렸던 나이프를 들어 올렸다.

“아무래도 너랑 제대로 하려면 이런 날붙이 따윈 없는 곳에서 해야 할 것 같군. 언제 지금처럼 달려들지 모르는 일이니깐 말이다.”

그의 말이 어처구니없어 노려보자 그의 입가가 빙그레 호선을 그었다.

“그녀를 정중하게 모셔 가도록.”

그가 단 한마디로 축객령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여태 문밖에서 내내 서 있었던 것인지 재빠르게 문을 열고 날 데려온 이가 들어왔다. 식탁이 난장판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그가 내 어깨를 끌어당겼다.

다급하게 뒤를 돌아보았지만 강제적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해서 간신이 닫히는 문 사이로 그를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쉼 없이 재촉받으며 복도를 가로지르기에 할 수 없이 한숨을 쉬며 그에 응했다. 복도를 지나 내가 묵었던 방으로 도착하는 순간 그는 가차 없이 내 발목에 족쇄를 채운 뒤 방을 떠났다.

쾅. 유난히 큰 소리로 닫히는 문을 바라보다 이내 침대 위에 털썩 누워 버렸다.

“하아…….”

미친놈과 오래 붙어 있었더니 정신이 피폐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피로에 지친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내일은 제발 그 자식 안 보게 해 주세요.

*

제 눈을 사정없이 쪼아 대는 햇살로 인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꾸만 흐려지는 시야를 바로잡으며 간신히 뜬 눈엔 익숙지 못한 침대 천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아…….”

어제 디저트만 섭취해서 그런 것일까. 기분이 석연치 않았다. 저보고 곡기 끊길 일을 자기와 함께하자며 저주한 놈과 밥을 함께해서 그런가? 적당히 버틸만한 상태에서도 찝찝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릴 때였다.

“일어났어?”

“꺄악!”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제 몸이 찌뿌둥하다는 사실마저 잠시 잊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심으로 놀랬다. 저도 모르게 내뱉은 고음의 비명과 제 팔에 오소소 돋은 소름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뭐, 뭐야?

“이야. 아침부터 힘차네. 소리도 막 지르고.”

비명을 지르면서 놀란 저와 달리 생글생글 웃는 초면의 이는 능글맞기 짝이 없었다. 아니 여기 사람들은 다른 이들 놀라게 하는 것이 예의인 걸까? 무작정 날 납치한 이도 그랬고, 지금 내 눈앞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이도 그랬다.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이 아직까지 제멋대로 쿵쾅거리고 있었다. 이래서야 연약한 제 심장이 제대로 남아날 리 만무했다.

“누구세요?”

한 번은 속았어도 두 번은 당할 수 없었다. 잔뜩 날은 세운 채로 경계하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덧대어졌다.

“나, 음…….”

자기소개를 물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즉답하지 않은 채 잠시 말끝을 늘어뜨리던 그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제부터 널 지켜볼 사람.”

그의 말에 고갤 갸웃거렸다. 혹시나 싶어 시선을 아래로 내려 아랠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제 발목을 단단하게 채운 족쇄는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묶여 있는데도요?”

“응. 묶여 있는데도.”

그렇게 말하며 그는 제 입술을 실룩샐룩 대기 시작했다. 이윽고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어제 소식 잘 들었어. 엄청났다며?”

“어제……?”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식당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해 내고 얼굴을 화르륵 붉혔다. 아냐. 설마. 그래도……. 아무리 모두가 밖에서 대기하는 식당에서 일을 치렀다고는 해도 벌써 소문을 타고 흘렀을 리 없었다.

“나이프로 왕자님을…….”

“으악! 그만! 그만 말해요!”

결국 참지 못하고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최악의 상황이 들어맞고 있는 걸 순순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게 뭐라고 벌써 소문이 났대. 밥 맛있게 먹여 줬으니 그에 걸맞은 보답 좀 줄 수도 있지.

“그래서 내가 온 거야.”

“……아니 정말 필요 없는데…….”

애초에 이곳엔 누군가를 찌를 수 있는 날붙이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탈출을 원천봉쇄하려는 것인지 주변은 너무나도 단조로운 물품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명령이야.”

아 그놈의 명령이요. 그의 말에 짧게 탄식하며 입술을 다물었다. ‘명령’이란 단어가 붙여졌다면 상황은 내가 개입해서 될 것이 아니었다. 들어줄 것도 아니었고.

“응?”

“왜 그래?”

“우리 좀 구면인 것 같지 않아요?”

내 말에 그가 픽, 하곤 웃었다.

“너 정말 태평하구나. 적지에 홀로 있다면 조금 더 긴장을 하고 있는 편이 좋을 거야.”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여전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는 없었다.

“저…….”

“편하게 말해.”

꼭 사람 놀리는 것처럼 빙글빙글 웃는 그를 향해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간신히 참아내었다. 참자. 참는 거야. 어제 날 납치해 온 이와 간신히 접선할 순 있었지만 결국 원하는 만큼의 정보는 얻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곳에 탈출해야 한다면 적어도 정보가 필요했다.

“여긴 어디예요? 정확히 어디에 위치한 곳이죠?”

“뭐야. 아직도 그런 걸 모르는 거야?”

그는 내심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순수하게 아직도 정보를 캐내지 못한 내 행동력에 감탄하는 듯했다. 뭐, 어떻게 알아내라고. 아무도 나한테 안 말해 줬는걸.

“여긴 이르헨달의 버려진 땅이야.”

“이르헨달……?”

“아, 이국의 사람은 모르려나.”

그는 가만히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여태까지 가볍게 짓던 표정을 살짝 눌렀다.

“이르헨달. 카르티자의 옛 이름이기도 해.”

“카르티자……? 아!”

그제야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실 어제 내가 그에게서 듣고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건 전혀 듣지 못했던 나라의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교단의 아카데미에 들어서면서 배운 수업내용으로 지도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지만 이르헨달, 이라는 나라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모르는 건 아닌가 봐.”

그의 말에 어떤 말도 쉬이 하지 못하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기억으론 카르티자는 현재 최악의 재정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라 안에서 발발한 내전이 지속됨으로 인하여 민심이 크게 떨어졌고, 최악으로는 통제를 벗어난 귀족들이 제멋대로 정치를 굴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내전을 일으킨 핵심인물이 누구였더라?

그를 따라 덩달아 무거워진 표정에 돌연 가볍게 표정을 풀었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눈을 반달로 접은 그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말을 돌릴 필요도 없겠지.”

“네?”

그의 얼굴이 제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웃느라 접었던 눈을 떴다.

“난 널 이곳에서 영원히 내보낼 생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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