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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먹고 싶어-50화 (50/86)

# 50화

가는 길은 꽤 멀었다. 이대로 그를 제치고 도망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허리춤에 차 있는 검을 바라보며 고갤 저었다. 단순 장식으로 차고 있는 검은 아닐 터. 저 긴 장검이 제 몸을 겨누는 순간 누가 더 빠를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결국 어디에도 이기지 못한 채 울적한 기분으로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간 곳은 어느 식당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아주 자연스럽게도 아까 마주했던 그가 상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고했다.”

그의 말에 여태껏 최소한의 행동만을 하던 그가 고개를 꾸벅이며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봐도 자기 자리라고 준비한 곳에 착석하자 곧이어 음식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 배고픔은 이런 고픔이 아닌데. 힐끔, 멀지 않은 곳에 그를 바라보다가도 윤택한 고기가 나오는 것을 보자 마음을 고쳐먹었다. 입이 즐거워지는 것쯤은 상관없겠지!

잠시 아무런 소리 없이 접시가 달그락거렸다. 막상 입에 들어가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음식은 아무런 맛이 들지 않을 정도로 불편했다. 생소한 장소인 것만큼 불편한 감정이 제 입에 들어가는 것이 고기인지, 벽돌인지 모르게 만들었다.

“……저어.”

결국 무거운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작은 목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선이 닿자 나는 재빠르게 다음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이곳에 잡혀 온 지 꽤 되었지만 당신에 대해 소개도, 그 무엇도 알고 있지 않아요. 당신은 누군가요?”

“……누구냐니.”

그는 미간을 찌푸리다가 이내 헛웃음을 들이켜며 시니컬하게 날 바라보았다.

“날 모르는 건가?”

내가 그쪽을 꼭 알아야 하는 상황이야? 묘할 정도로 당당한 그의 행동은 제 머리를 갸웃거리게 했다.

“모르는데요.”

오히려 내 말에 당황하는 것은 그였다. 정말로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다 이내 바뀌었다.

“이르헨달의 폐태자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입술을 닫았다. 작게 달그럭거리던 식기는 어느새 멈춘 지 오래였다. 그게 끝?

“이름은요?”

“……이름?”

“네. 어떻게든 절 놓아줄 생각이 없다면 통성명이라도 해야 하잖아요. 전 비시아예요.”

내 말에 그의 표정이 묘하게 맞물리기 시작했다. 마치 듣지 못할 것을 들은 것처럼 한순간도 내게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우리 외에 아무도 없어 조용한 곳인 것만큼 그의 표정 변화는 내게 빠르게 와닿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오래 가질 않았다.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간 그는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차피 알아도 상관없을 텐데. 우리가 만나는 건 밤의 침대 머리맡이 전부일 테니까.”

거 딱딱하게 구네 정말. 융통성이라곤 하나 없는 것처럼 구는 그의 태도에 입술을 삐죽하니 내밀었다. 그렇게 하시던가요.

“그럼 여기가 어디쯤이라는 것 정돈 알려 주세요.”

“이르헨달.”

짤막하게 대답을 하는 탓에 이야기가 통 매끄럽게 이어지질 못했다. 뚝뚝 끊어지는 대화는 오히려 하느니만 못하게 되어 버렸다. 덕분에 입에 들어가는 음식들의 맛을 더더욱 알 수가 없어져 버렸다.

종이를 씹는 기분. 답답한 분위기가 목구멍까지 죄어 오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이걸론 허기도 채워지지 않았던 터라 결국 난 식기를 내려놓고야 말았다. 허기도 맛도 채워지지 않는다면 먹지 않는 것이 나았다.

“먹지 않는 건가?”

“배가 고프지 않아서요.”

내 말에 그는 조금 놀란 듯이 날 바라보았다.

“하루를 꼬박 자고 있었는데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하루요?”

끽해야 몇 시간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시간이 나오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납치 감금 협박에 기절까지. 가련한 여주인공이 겪는 험난한 일을 다 겪자 이렇게 억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구수한 보리밥과 한평생 알콩달콩하고 싶었던 이상과 점점 멀어지는 것도 한 몫 단단히 했다. 테이젤과 에드아르의 등장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했는데 성녀에 이상한 소문까지. 그리고 그 소문에 집착하는 남자마저 나타나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어색함에 접시를 노려보던 고갤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허상에 가까운 소문에 홀리지 않을 것처럼 생겨선, 소문에 집착하는 그의 행동이 궁금해져 왔다.

“왜 그렇게 허무맹랑한 소문에 집착하시는 거예요?”

솔직히 그런 소문 따위에 흔들릴 것 같아 보이지 않은 작자였다. 오히려 나처럼 기가 차 콧방귀를 끼면 모를까.

“복수.”

“복수?”

반문해도 그는 대답하질 않았다. 째깍째깍. 벽에 걸린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정적이 감돌았다. 복수. 복수 다음에 뭐? 말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야지, 자꾸만 끊는 그를 향해 답답함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무슨 복수요?”

“……시끄럽군.”

그 말과 동시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의자가 넘어질 듯 덜컹거렸지만 내 시야엔 의자가 들어오질 않았다. 가까이 다가온 그 때문이었다.

“내가 널 너무 봐주고 있었던 것 같아.”

“네?”

그게 무슨 소리지? 여전히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의 얼굴에 비뚤어진 표정이 자릴 잡았다.

“이렇게 팔팔할 줄 알았더라면 그냥 바로 할 걸 그랬어.”

“무엇을…….”

궁금증은 얼마 가질 않았다. 턱을 잡은 그가 내 입을 자신의 입술로 틀어막았기 때문이었다. 말을 하느라 살짝 벌어진 입술 틈을 비집고 혀가 들어왔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그의 혀가 내 혀를 옭아매듯 탐닉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제대로 성립되질 않았다. 아냐 난 이 상황을 원한 게 아니라고! 그저 어색한 상황을 타파하고 싶어 계속된 질문 공세가 그의 이상한 버튼을 자극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자, 잠깐……!”

그를 밀쳐 내며 간신히 입을 떼어 내었지만 다시 입술을 찾아오는 강압적인 입은 내가 숨을 쉴 틈조차 주질 않았다. 아랫입술을 핥고 깨물어 틈을 만들어 내었다. 집요할 정도로 안을 탐닉하는 그의 움직임에 바르작거리던 행동이 점점 멈추기 시작했다.

턱을 붙잡고 있던 손은 점차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목선을 타고 내려가 하늘하늘한 실크로 이루어진 잠옷 사이를 간단하게 파고들었다. 잠옷 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탓에 가슴에 쉽게 닿자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우왁스레 잡던 아까의 손길과는 달리 본격적으로 희롱하려는 듯 손가락의 움직임이 묘해지기 시작했다. 어깨에 걸쳐진 끈을 밀쳐 내어 점점 벗기는 한편,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이 날 흥분감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이래서야 안을 맛이 나질 않는군. 아까 응하던 것처럼 행동해 봐.”

집요하게 감싸던 입술을 간신히 떼어 내며 그가 작게 속삭였다. 비뚤어진 표정은 여전히 숨기지 않은 채 이죽거리는 그의 행동에 조금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급작스러운 상황에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하다 보니 날 만만하게 보는 것이 분명했다. 날 뭘로 보고? 감았던 눈을 떠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눈을 뜰 줄은 예상치 못했는지 마주친 그의 시선과 와닿은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해 달라니 분부대로 해 줘야겠지. 놀라는 눈에 마주 웃으며 그의 목에 제 팔을 감쌌다. 의자에 엉덩이를 떼어 냄과 동시에 몸을 감싸고 있던 옷이 더욱이 아래로 떨어졌지만 개의치 않고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덮었다.

이래 봬도 17년간 카마수트라만 배워 온 사람으로서 섹스로 걸려 온 도발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가 했던 키스를 고스란히 그에게 돌려주자 제 몸을 더듬는 그의 손가락이 일순 떨렸다.

“하.”

흔들림은 아주 잠시였다. 입맞춤이 점점 농밀해질수록, 처음에 멀찍하게 떨어졌던 몸이 점차 붙기 시작했다. 서로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를 정도로 몸이 딱 붙었을 때 즈음 그의 손이 엉덩이 골에 닿았다.

“……흣.”

이미 여기저길 만져진 탓에 자연스레 흥분이 잇새 사이로 흘러나왔다. 제멋대로 떨리는 몸을 내색하지 않고자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미 내비친 행동까지 멈출 수는 없었다. 몸은 응하면서도 차가워진 머리가 아주 잠깐 식탁으로 눈을 향하게 만들었다.

“참지 마.”

뺨에 입술을 스치듯 지나간 그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엉덩이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은밀하게 더 파고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차피 모든 것들을 내게 맡기면 편한 것을. 뭐 하러 참고 있지?”

그의 말에 여전히 입술을 앙다문 채 말하길 거부했다. 내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어떻게 말해. 처음엔 오기로 시작했던 식사가 점점 밥한테 빠져 향락과 환희에 감싸진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알면 웃을 거잖아.

그리고 비단 식사뿐만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기도 했고.

“뭐,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두고 보도록 하지.”

“무슨……, 응!”

엉덩이 골을 은근하게 만지던 그가 아래로 손을 내려 치부를 건드렸다. 엉덩이를 감싸던 천은 그의 행차에 어떠한 걸림돌도 되질 못했다. 잔뜩 늘려진 팬티 안에서 그의 손가락이 자유롭게 놀려지자 나는 고갤 치켜들며 더더욱 입술을 깨물었다. 닿을 듯 말 듯 애매하게 비비는 손가락은 내 모든 것들을 이미 알아차린 것처럼 은근하게 문질렀다.

천천히. 주변을 문지르다 애를 태우는 행위에 눈을 감았다, 더욱 세밀하게 느껴지는 감각에 결국 다시 뜰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안으로 닿으면 좋을 텐데. 애태우는 그의 행동에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뒤로 점점 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질 입구에 닿으려는 순간 그는 재빠르게 팬티 안에서 손을 빼내며 교묘하게 웃어 보였다.

“충분히 젖어 있군.”

말하지 않아도 인지하고 있는 사실을 괜스레 입으로 읊는 그의 자태에 얼굴을 붉게 태우자 그의 얼굴에 미소가 가늘게 길어졌다. 뺨을 더듬던 그의 손가락이 아래로 흘러내려 가 내 턱을 매만졌다.

“그 표정도 마음에 들고.”

“아!”

대화할 틈을 주나 싶더니 그는 가차 없이 날 뒤로 돌렸다. 갑작스럽게 틀어지는 몸의 균형에 제대로 잡지 못하고 비틀대자 그는 친절히도 손을 내밀어 제 손을 붙잡았다.

“여길 붙잡아.”

여기……? 그가 안내하는 대로 얼결에 잡은 곳은 식탁이었다. 매끄러운 대리석에 미끄러지는 손끝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주춤거리자 그의 손이 턱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내려 갔다.

“그래. 거기.”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는 가히 악마의 유혹처럼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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