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눈은 전혀 웃지 않고 있는 라디트가 내 침으로 범벅되어 있는 자신의 손가락을 핥았다. 색정적인 모습에 이상하게 몸이 오싹거리며 떨려 왔다. 서, 설마.
“아까 전처럼 사람이 언제 올지 모르니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는 게 좋을 거야.”
“자, 잠깐 라디트……!”
그는 내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선 본격적으로 부딪치는 허릿짓에 놀라 재빠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믿을 수 없어. 아까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제게 쾌락을 주었다면 이번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자꾸만 앞으로 넘어가려는 몸을 겨우 지탱해도 제 자궁을 찌를 듯한 그의 격한 움직임에 압박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리 입을 틀어막아도 힘이 없는 손은 신음을 번번이 놓치기 일쑤였다. 애초에 모든 감각이 그의 살과 맞부딪치는 곳에 집중되고 있었다. 순간 입을 틀어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자꾸 잊히고 있었다.
“하, 잊을 수 없게 만들어, 줄게.”
격한 숨을 토해 내며 그가 점점 내게 허리를 숙였다. 제가 민감하게 느끼는 곳만 찌르는 것이 아닌, 무작정 모든 곳을 다 찌르는 탓에 질벽 전체가 얼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날 네 몸에 새기겠어.”
항상 높은 고음만 쓰던 라디트의 목소리에서 짙은 저음의 소리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제 목에 따끔한 감각과 함께 그의 붉은 머리칼이 목덜미에 쏟아졌다. 마치 피를 빠는 흡혈귀처럼 이를 박음과 동시에 드디어 그가 내 안에서 사정했다.
“큭……!”
“하앙!”
오랫동안 박았던 것만큼이나 짙고 많은 양이 제 안에 울컥거리며 터져 나오자 저도 모르게 입을 막던 것을 놓치고 탄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안을 꽉 채우고서도 모자란 것인지 결합부를 타고 뚝뚝 떨어지는 감각이 선연하게 느껴지자 엉덩이를 살짝 떨었다. 눈물이 잔뜩 맺힌 두 눈동자는 더 이상 바깥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멍한 눈동자로 흐릿하게 보이는 해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하아…….”
나른한 한숨을 내쉰 그가 천천히 내게서 자신을 빼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쓸려 얼얼해진 안을 빠져나가는 감각마저도 민감해 몸을 떨었다. 잘게 신음을 내뱉으며 움찔거리는 제 몸에 그가 잠시 행동을 멈추었지만 이내 자신의 것을 완전히 빼내었다.
때마침 제 귓가를 두들기는 수업 마치는 종을 들으며 힘없이 벽에 손을 짚었다. 뭐라도 잡지 않으면 바로 바닥에 무너질 것 같았다.
아, 입어야 하는데.
제 한쪽 다리에 걸쳐진 팬티를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최소한 휴지로라도 닦고 난 뒤에 일을 처리하고 싶었지만, 닦을 만한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른해서 그냥 뻗고 싶은 몸을 간신히 움직여 허리를 숙였다. 아직 정액을 가득 머금고 있는 안을 처리하지도 않은 채 팬티를 입고 나자 찜찜함에 몸서리쳤다.
“으으, 찝찝해.”
허릴 숙일 때까지만 해도 푸르렀던 하늘이 몸을 완전히 일으켜 세우자 노란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배부른 감각도 한몫 단단히 해 제 몸을 지탱할 수 없게 했다. 결국 비틀거리던 몸은 얼마 가지 않아 완전히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비시아!”
깜짝 놀라 자신을 부축하는 그를 향해 힐끗 눈동자를 돌렸다.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젖가슴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있는 나와 달리 그는 재주도 좋게 벌써 완전한 복장을 갖춘 채로 날 바라보고 있는 참이었다.
괘씸함에 한 대 때려 주고 싶었지만 입술을 삐죽 내밀고선 그를 피해 눈을 돌려 버렸다. 지금 상황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눈동자가 전부였다. 짜식. 운도 좋아요.
“괜찮아?”
너 같으면 괜찮겠니. 격렬하게 박은 장본인이 안부를 묻자 황당한 눈으로 라디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 네가 한 짓을 몰라서 묻는 거야?
말도 해 주기 귀찮을 정도로 힘이 들어 그저 빤히 바라보고 있자 그가 천천히 제 옷을 입혀 주기 시작했다. 이곳에 다니는 재학생답게 차분하고 빠른 손동작으로 군더더기 없이 옷을 완전히 입히자 그는 갑작스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를 여전히 안고 있는 채로 말이다.
“뭐, 뭐야?”
“가야지.”
어딜?
당황해 입술을 뻐끔거렸지만 그의 결심은 이미 완벽하게 세워진 것인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듬직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평소와 같았으면 설레어 버리는 포인트였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나는 기겁하며 그의 옷자락에 제 손가락을 간신히 걸쳤다.
“……너, 괜찮아?”
“나?”
“그래. 너.”
간신히 말을 내뱉은 제 목은 잔뜩 갈라져 있었지만 그의 멍한 눈동자를 보아 그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익숙치 않은 목은 큼큼거리며 간신히 그를 향해 말을 이어 나갔다.
“너, 그게…… 평소랑 달라 보여.”
“내 평소랑?”
“그래. 그…… 라디트 같아 보이지 않아.”
“뭐?”
황당하다는 듯이 말한 그의 말에 아차 싶어 재빠르게 수정했다.
“그러니까, 항상 보던 차가운 라디트가 아닌 것 같다고.”
“……아.”
그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 곰곰이 생각을 하듯 진중한 표정이 불안한 내 눈동자를 연속으로 깜빡이게 만들었다. 뭐야, 들었으면 말이라도 좀 하라고!
“그, 그리고 여자끼리 이렇게 안고 있다는 걸 들키면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그 말을 듣는 동시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갑작스레 돌리는 눈동자에 괜히 놀래 몸을 움츠러들자 그가 살짝 입가에 미소를 걸쳤다.
“뭐 어때. 여자가 이렇게 들지 말라는 법 있어?”
제 고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 버리고선 그는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원하는 보건실에 도착할 때까지 이제 막 수업을 끝마친 이들이 우릴 빤히 바라보고 있었지만 라디트는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래. 그게 평소 그의 모습이긴 하다만…… 대놓고 뚫어져라 다가오는 시선에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올렸다.
어째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란 말인가요.
체감상 1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았던 기나긴 시간이 지나고 간신히 도착한 보건실에는 때마침 아무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쉰 나와는 달리 라디트는 익숙하다는 듯이 푹신해 보이는 침대 위에 날 올려놓았다.
드디어 벽이나 흙먼지가 잔뜩 쌓여 있는 길바닥이 아닌, 문명의 발달과 혜택을 받은 문물에 몸을 누이자 그렇게 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역시 사람은 문명에서 떨어지면 안 돼.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베개에 얼굴을 문질렀다. 제 볼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천의 감각이 이렇게 좋을 수 없었다.
이불의 푹신함을 양껏 느낀 후에야 라디트의 존재를 다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보통 무게가 아닐 저를 여기까지 들고 오느라 고생했을 그에게 다정한 한마디라도 건네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었겠지만, 지금의 내겐 그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애초에 내 몸이 이렇게 된 원흉은 다 라디트 때문이기도 했고. 온몸이 얼얼하고 성하지 않은 나에 반해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 있는 표정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뭘 봐. 이씨.
“비시아.”
“어?”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놀라 재빠르게 표정을 풀었다. 혹여 노려보고 있는 눈동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넌 어떻게 여기 오게 된 거야?”
왜 갑자기 궁금해하는 거지? 혹여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물어보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라디트가 내뱉는 말 속에선 그런 기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순순히 오게 된 경위를 말해 주었다. 물론 자신의 정체와, 에드아르, 테이젤에 관한 이야기들은 쏙 빼놓고.
“그럼,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거네?”
“그렇겠지?”
애초에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엄마는 마법같이 다른 공간도 잘만 만들어 내던데. 왜 나는 아직까지 그런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지 알 수 없었다. 그거 내가 제일 많이 탐내던 스킬이었는데.
알 수 없는 얼굴로 생각에 잠긴 라디트를 보고 있자 단아하게 얼굴을 가리고 있는 붉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제 몸에 스치고 지나갔을 때도 매우 부드러웠다.
저런 모습만 보면 정말 남자라곤 생각조차 할 수 없는데 말이야. 나는 조심스레 그를 향해 입술을 열었다.
“그럼 라디트, 넌 왜 이곳에 오게 된 거야?”
내 말에 라디트의 눈동자가 날 향했다. 떨리는 눈동자가 잠시 주변을 헤매다 다시 내게 내려앉았다.
“집안 때문에.”
“집안?”
그렇게 말하기 시작한 라디트는 털어놓듯 나지막한 소리로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하늘에서 점지해 주는 성녀가 나타나지 않는 이 나라에선 백성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가짜 성녀를 뽑는 일에 힘써 왔다고 한다. 최대한 성녀와 비슷한 외견과 힘을 가진 사람들을 뽑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고, 그래서 생긴 곳이 이 건물이었다고 한다.
“우리 집안에선 성녀가 나오기로 유명했어. 그리고 그 명성 덕분에 가문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그런데 왜 네가 온 거야?”
“여자아이가 태어나질 않아서.”
응?
그의 말에 눈을 커다랗게 깜빡였다. 아무리 여자애가 태어나지 않아도 그렇지 남자애를 여장까지 시키면서 오게 해야 하나? 얼떨떨한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자 라디트는 빙그레 웃으면서 내 눈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좀 자 둬. 피곤하잖아.”
“하지만…….”
아직 뒤에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님 아직 멀쩡해? 나랑 더 하고 싶은 말로 들어도 되는 걸까?”
뭐래, 이 미친놈이. 그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자 라디트의 입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큭큭대며 나왔다.
“푹 자. 다음 시간에 깨워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