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뭐? 그게 무슨, 앗!”
제 몸을 갑자기 돌리는 힘에 미처 대비할 틈이 없었던 난 그가 원하는 대로 자리가 강제로 옮겨졌다. 아까 전엔 벽에 몸을 기대어 측면만을 보였다면 이번엔 제 앞을 훤히 드러나게끔 만들었다.
이렇게 되면 제 몸뿐만이 아니라 얼굴마저 완벽하게 노출되어 버린다. 흘겨보던 바깥이 제 두 시야로 손쉽게 보이게 되자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무슨 짓…… 흐응!”
그는 틈을 주지 않았다. 어느새 뒤에 달린 단추를 풀어낸 그가 옷 사이 안으로 집어넣었던 손을 이용해 가슴을 손쉽게 밖으로 빼내었다. 빼낸 가슴을 가만두지 않고 주무르는 동시에 제 하반신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펄럭이는 스커트 안 얇은 속바지 너머로 거칠게 비비는 손가락에 눈을 질끈 감았다. 잇새를 닫고 신음을 흘리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그의 손가락이 위아래로 움직이면 일수록 흥분을 이기지 못한 소리가 입 틈새를 비집고 나왔다.
“잠깐, 흐아…… 라, 디트 제발……!”
“뭘?”
다급한 말이 절로 나오는 나와는 달리 여유로운 라디트의 목소리가 목덜미 근처에서 내뱉어졌다.
얇은 속바지는 그의 손가락이 노니는 데 있어서 그리 큰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천 너머로의 자극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의 손가락은 도톰한 살들 사이를 비집고 그 속에 닿기 위해 파고들었다.
“뭘 원하는지 똑바로 말해 주지 않으면 난 몰라.”
천 하나를 두고서 전해지는 자극에 몸서리치는 것을 빤히 느끼고 있으면서. 잔인하게도 모른 척하는 그의 목소리에 간신히 신음을 삼키며 입술을 열었다.
“제, 발…… 여기서…… 읏!”
제 목덜미를 갑자기 깨무는 힘에 제대로 혀를 놀리지 못하고 그만 살짝 깨물어 버리고 말았다. 비릿한 고통과 함께 몸을 크게 휘었다. 그의 손가락이 제 예민한 곳을 기어코 찾아 버린 탓이었다.
“왜 그래?”
덜덜 떠는 제 몸을 부드럽게 옭아맨 그가 가슴을 살짝 세게 잡아 죄었다.
“네가 그렇게 안 된다고 하던 바깥에서 흥분해 버렸어?”
여태까지 감미롭다고 생각했던 라디트의 목소리가 이렇게 사악한 악마같이 들릴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흥분? 내가?
그의 말에 재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밥한테 기운을 받는 것으로 만족해서 그런 것이 분명했다. 애초에 제 종족이 성교를 통해 기운을 받지 않았나.
이 모든 것들은 제가 아닌 종족으로 인한 몸의 탓이었다.
“……흐, 흥분 아냐.”
“그래?”
애써 가빠져 오는 호흡을 정리하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그의 모든 말에 괜스레 틱틱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번까지만 하더라도 제가 라디트의 우위에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상황이 역전된 것이 썩 기분 좋지 않았다.
왜 자꾸 이런 전개인 거지? 이번에야말로 밥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나 싶었는데!
뒤에서 만지는 탓에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려고 해도, 목을 지분거리는 그의 입술 탓에 완전하게 바라볼 수도 없었다. 그의 붉은 머리카락이 제 눈동자를 어지럽히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네 몸의 상태가 어떤지 잘 모르나 본데.”
내 몸을 연주하듯이 손가락이 부드럽게 목선 위에 올라탔다. 귓가에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라디트의 웃음소리가 그가 얼마나 기분이 고조되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열기가 담겨 있었다.
“가르쳐 줘……?”
아뇨. 괜찮은데요.
빌어먹게도 욕망에 충실한 몸은 제 다리 사이에 흘러내리는 감각을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스스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들을 구태여 남의 입을 통해서 알고 싶을 리가 없었다.
그것보다 지금 상황에 대해서 인지나 해 달라고! 자신이 안 먹어 준다는 것도 아니었는데, 라디트의 성급한 행동은 저를 많이 곤란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편한 침대를 두고 왜 밖에서 이렇게 하는지도 몰랐다.
흥분으로 인해 자꾸만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기울어지자 라디트가 자신의 몸에 기대게 만들었다. 그의 몸에 기댈수록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버텨 내었지만, 그의 손가락이 좀 더 깊숙이 들어올수록 지탱하기 힘들었다.
“그거 알아?”
쓸데없는 탐구열이 샘솟기라도 했는지 아까부터 자꾸 무언가를 가르쳐 주려고 하는 그의 말에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제 속바지를 옆으로 밀고 안으로 침범한 손가락 때문에 더더욱 말을 아꼈다.
“너 아까부터 흥분 안 했다고 할 때마다 더 민감해져.”
“뭐? 아냐!”
아차. 그의 말에 놀라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밀고 말았다. 제 목소리에 한껏 즐거워진 라디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바깥이 신경 쓰여?”
“그야 물론…… 하읏.”
얄밉게도 질문은 해 놓고, 대답할 수 없게끔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 이미 속바지 너머로 잔뜩 만져 민감해진 도톰한 속살을 가르고 안으로 침범하는 그의 손가락에 저도 모르게 발끝을 세웠다.
금방이라도 이 손을 이용해 그를 때려 버리고 싶었지만 완전히 그럴 수 없었다. 겨우 지탱하는 팔이 빠지면 그의 품 안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되는 순간, 나는 이곳에서 그를 먹어 버리게 될 것이다.
“그래? 그럼 자꾸 신경 써 봐. 내 손길 말고.”
그렇게 말하며 그가 유륜을 손가락으로 빙 돌렸다. 아니,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하지 말라니까?
“느끼지도 말고.”
“흐아, 하읏……!”
기어코 길게 세운 손가락이 제 안을 파고들었다. 벌벌 떨리는 속살을 가르고 깊숙이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손가락은 의외로 금방 가던 길을 멈추었다. 입구 주변을 그저 맴돌 듯 빙글거리며 원을 그리자 참지 못하고 그의 팔을 붙잡았다.
“저런, 느끼지 말라니까?”
“그치만 네가……!”
“내가 뭘?”
소름 끼치게 목덜미에 입김을 살짝 분 그가 질벽을 꾸욱 눌렀다.
“말해 봐.”
“하응!”
그의 말에 눈을 찌푸리면서 항의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넣은 손가락을 축축하게 적시고도 남은 애액이 다리를 타고 흐른 지 오래였다.
완전히 갈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가지 못하게 자꾸 끊어 주는 그의 행동에, 입은 점점 단어를 잊어버린 채 신음만 달게 내뱉었다.
“안 말하면 난 아무것도 몰라. 계속할 거야.”
“응, 하아, 아응.”
“네가 싫어하는 바깥에서 일을 치를지도 몰라.”
그렇게 말하던 그는 문득, 움직이던 손가락을 잠시 멈추었다.
“……아니면 그렇게 하길 원하고 있었던 건 아니야?”
유륜만 만지작거리던 그가 거칠게 가슴을 움켜잡았다. 놀라 바람을 입에 삼키는 순간 그의 손가락이 안으로 쭉 밀고 들어왔다.
“흐응!”
갑작스러운 침입에 긴장과 함께 저도 모르게 그를 조였다. 곧 있을 움직임이 느껴지길 기다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깊숙이 들어온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왜……? 눈을 감고 오기만을 기다렸던 감각이 오지 않자 허무함마저 들었다. 고개를 찬찬히 돌렸다. 라디트와 시선을 마주치자 그가 입매를 올렸다.
얄밉게도 그는 끝까지 말을 아꼈다. 여태까지 감았던 태엽의 끝이 달한 것처럼 그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그저 날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원하는 것처럼.
“…….”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저도 모르게 흔들리는 허리를. 부정하면서도 은연중에 긍정하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에 애달프게 우는 자신의 몸이 장소와 관련 없이 밥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지금 라디트가 원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악마 같은 그가, 내 입술을 스스로 움직여 자신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
“나는…….”
그저 밥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수저를 쥐고 말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쟁취하여 밥의 머리 꼭대기 위에 서 볼 것인가.
갈팡질팡하던 난 이내 눈을 감았다. 주린 배의 감각이 슬며시 돌아올 뻔한 찰나에 기적같이 만난 그였다. 원초적인 욕구는 인간이었을 때보다 극도로 선명하게 느끼게 된 지금의 몸으로는 제 본능이 아우성 지르는 것을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애초에 인간이었을 때도 조금이라도 배를 곯는다 싶으면 그 누구보다도 힘차게 밥을 달라던 아이였는데, 그 성격 어디 갈 리 없었다. 자존심도 어디까지나 자신이 살아있을 때나 치켜세워지는 것이었다.
죽으면 다 쓸모없는 거잖아. 그깟 말 한 번 해서 수저만 쥐면 그 뒤로는 알아서 밥이 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길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여태까지의 행동과 경험들이 다음 상황을 대략적으로 예상하게끔 했다. 그 간절함과 기대감에 저도 모르게 제 목에 맺힌 침을 넘겼다.
“……네가 움직이는 게 좋으니까.”
“뭐?”
괜히 못 들은 척 되물으며 꿈쩍도 안 하는 그의 표정에 질색하다 입술을 꽉 깨물며 그를 노려보았다.
“네가 움직이는 게 좋으니까 여기서 해도 좋아.”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그가 느릿하게 깜빡이더니 이내 웃어 보였다.
“그래. 그 대답을 기다렸어.”
여태까지 애타던 감각이 급작스럽게 침입하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치켜들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전신에 전류가 흐른 것처럼 몸이 뻣뻣해져 왔다.
그의 팔을 잡고 있던 손끝이 새하얘질 정도로 세게 붙잡은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참고 참았던 감각이 오는 것이 이렇게 달콤한 것일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하악!”
탄성을 지르며 몸이 무너져 내렸다. 힘을 잃은 무릎이 바닥과 마주치기 전에 라디트는 제 몸을 끌어안았다.
“이제 시작인데, 이러면 섭하지.”
제 귓가를 간질이는 목소리가 여전히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더욱 어지럽혔다. 뭐?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생각을 제대로 정돈할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도 제대로 인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머리보다 몸이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제 몸속에 가만히 있기만 하던 손가락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잘 정돈된 손톱과 손가락이 선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는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질벽 구석구석을 살피듯이 빙 원을 돌리다가도, 제 몸이 살짝이라도 움찔거리기라도 한다면 그때부터 그는 집요하게 그 부분만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하, 아! 자, 잠, 잠깐, 흐읏!”
조금이라도 천천히 해 달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그의 행동은 단호했다. 멈추는 일 하나 없이 격렬하게 제 몸을 흥분 속으로 가라앉히고 있었다.
“안 돼. 내가 얼마나 참았는데. 네 입에서 그 달콤한 속삭임을 듣기 위해 노력한 나에게 포상은 줘야지?”
자기가 직접 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포상을 논하며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그의 행동에 결국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오랜만임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은 감각들은 그의 손길을 열렬하게 환영하고 있었다. 너무 환영하고 있어서 정신이 온전할지 모른다는 게 단점이었지만.
손가락이 제 몸을 가르고 들어와 찔꺽대는 소리가 공기 중을 타고 새어 나왔다. 이미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도 잊어버린 지 오래라 입술 사이론 계속해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도 신음은 완벽하게 묻히지 않았다. 만일 완전히 묻혔더라면 나는 이성도 잃어버린 채 그에게 매달려 애타게 이름을 부를 것이 분명했다.
이 소리가 얼마나 남들에게 들리지 않을까. 갑작스레 드는 생각은 제 몸에 긴장감을 돌게 만들었다. 발끝이 오므라들고 저도 모르게 질벽을 수축하며 그의 손가락을 감쌌다.
아, 이러면 정말 라디트의 말대로 더욱 민감해지는 것 같잖아.너를 먹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