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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먹고 싶어-31화 (31/86)

31화

“여기가 맞아?”

“아, 맞다니까요. 제가 지름길로 가고 있다고 몇 번을 말해요?”

“하지만 아무리 봐도 길이 없잖아!”

“그럼 혼자 산으로 돌아가시든가요. 저는 그 짓 못 합니다.”

사람이다!

귀에 들리는 소리는 명명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설마 어떤 동물이 미쳤다고 사람의 언어로 대화를 하겠어. 반색하며 그쪽으로 몸을 트는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며 사람이 튀어나왔다.

“이거 봐요! 여기에 그 석상이……!”

“세상에…….”

사람을 보았다는 사실에 그저 감격하여 눈을 동그랗게 뜨는 나완 달리 그 둘은 나를 보는 순간 멈추었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내가 여태까지 기대었던 석상과 같이 뻣뻣하게 굳어 버리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뭐야, 왜 그러는 건데?

“저, 저, 저 저건…….”

여전히 굳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가 날 향해 손가락질했다. 혹여 아까 풀었던 단추가 문제인 건가 싶어 재빠르게 옷차림새를 확인했지만, 풀었던 단추는 잘 마무리되어 있는 상태였다.

“저 외모는 설마…….”

“지금 저만 보고 있는 건 아니죠? 헛것이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손가락은 여전히 날 향하고 있었다. 혹시 내 뒤에 있는 호수를 가리키는 건 아닐까 싶어 옆으로 살짝 몸을 틀었지만 우습게도 손가락은 날 따라왔다.

뭐야,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 거지? 내가 너무 예뻐서 그러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하고선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지금 내 미모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여, 여신님!”

“네?”

하지만 그들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가관이었다. 누구라고요? 근본 없는 소리에 도저히 반문하지 않고선 배길 수 없었다.

“여신님이시여!”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술 더 떠 자리에 무릎을 털썩 꿇은 그들은 날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아니, 그게 누구냐니까?

제 머릿속에서 ‘여신’ 하면 신화 속 전설의 인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미묘하게 미간을 찌푸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내가 예쁘다고 한들, 사람을 신으로 잘못 보는 멍청이들은 없을 터였다.

아니면 그 멍청이들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던가.

“그 얼굴! 그 생김새! 당신은 틀림없는 여신님의 외양을 갖추고 계십니다!”

오, 안타깝게도 내 앞에는 정말로 날 여신으로 착각한 멍청이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내 미모가 예뻐서 언젠가는 한번 큰일 나겠구나 싶었지만, 정말로 여신으로 추앙받을 줄이야. 상상도 못 한 발언이었다.

“제가요……?”

“물론입니다! 저기 저 석상 보이십니까?”

급히 내게 존댓말을 하는 이들의 말대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내 뒤에는 여전히 내가 기대었던 석상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부식되어 제대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우연이지 않고서야 여신님과 똑 닮은 외양을 가진 사람이 여신님의 석상 밑에서 쉬고 있을 리 없습니다.”

뭐? 저걸 닮았다고?

그의 헛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 석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나마 자리를 잡고 서 있는 것이 용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석상은 부식되어 얼굴이 뭉개져 있었다. 이 석상의 본래 모습을 알고 있지 않는 한, 거의 알아보기 힘들 것 같았다.

부식으로 인하여 기이하게 생긴 석상과 눈을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진짜? 진심이야? 내가 저걸 닮았다고?

믿을 수 없어서 그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도저히 정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게 어떻게 나랑 닮았다는 거야. 저 부식된 석상을 내 예쁜 미모랑 견주다니. 미친 거 아냐.

어처구니없어 그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손목을 덥썩 움켜잡았다.

“당신은 여신님이 현신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네?”

“여신님의 가호를 받으신 것이 아닌 이상, 이렇게까지 닮을 리 없습니다! 신성한 기운이 당신의 뒤에서 요동치고 있어요!”

이젠 신흥종교 영업하는 사람처럼 구는 그들이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저희랑 같이 가시죠.”

“같이 가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신흥종교집단의 단골 멘트마저 뱉자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 자식들. 알고 보면 이 세상에서의 또 다른 신흥종교집단 아니야?

“거, 거기가 어디인데요?”

“여신님을 모시기 위해 교육받는 곳입니다.”

“하지만 저는 신분이…….”

“괜찮습니다. 저희 여신님께선 신분의 높낮이를 가리지 않으시니까요.”

그게 아니라 내가 인간이 아니라서 딱히 신분을 나타낼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인데. 지들 멋대로 받아들이는 그들을 향해 정직하게 밝힐까, 하다가도 이내 입술을 다물었다.

제 귓가를 찌르는 새소리가 잠시 정신을 퍼뜩 들게 했다. 이곳에서 그들과 헤어지게 된다면 나는 다시 산속에 홀로 버려지게 되는 셈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잘 곳 있어요?”

“물론이죠!”

“먹을 건……?”

“여신님을 위한 자리인 걸요! 필요한 모든 것들은 저희 종교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오오……. 숙식이 제공되는 곳이라면 조금 더 끌리긴 했다. 어차피 마땅히 갈 곳도 없었고 며칠간이라면 충분히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마음에 들면 아주 그냥 눌러앉아서 살아 버리는 거고.

“남자들은요……?”

제일 중요한 정보이기도 했던 물음에 그들의 얼굴엔 단박에 의아함이 가득 찼다. 아무래도 뜬금없이 남자를 논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겐 충분히 이상해 보일 터였다.

“제가 남자 공포증이 조금 있어서요…….”

“아, 그거라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남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정말요?”

예스! 에드아르에게 납치되었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 충분히 배부른 상태에서 덮침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물어본 말이었는데 거의 없다니. 그야말로 듣던 중 제일 반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거기다가 날 향해 올망올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악한 느낌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래. 뭔 일이야 있겠어. 아무리 내 인생이 다사다난하다고는 하지만, 겨우 고생길이 피기 시작하는 지금에서마저 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좋아요. 갈게요.”

“오오오오, 역시……!”

“여신님의 외향을 닮은 것만큼이나 성격도 고우시군요.”

초면부터 낯부끄럽지도 않은 것인지. 칭찬 일색인 그들을 향해 조용히 볼을 붉혔다. 내가 좀 외모도 곱고 마음도 예쁘긴 하지.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몸이 저절로 베베 꼬였다. 워낙에 예쁘고 잘난 이들 틈에 있다 나와서 그런지 더욱 자신감이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도 나쁘진 않네. 이들이라면 적당히 속여 먹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럼 가시죠!”

“갑시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투덜거리면서 나온 이들 주제에 어느새 싱글벙글이 되어선 앞장서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맡는 친근한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 사람들 속이라면 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거기서 내 능력을 제대로 조절했으니 이젠 좀 더 능숙하게 페르몬도 조절할 수 있을 터였다.

앞장서는 그들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덧 제 배에 붙었던 살이 말끔하게 사라졌다고 느꼈을 때 즈음, 나는 또 다른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곳은 처음에 만났던 그들이 설명해 준 것처럼 정말 쾌적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매번 쓸데없는 일로 불러 교육을 시키는 것 외엔 씻고, 자고, 먹는 것까지 다 보장해 주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보급해 주는 물품 또한 최상품이라 웬만한 호화로운 생활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테이젤이 내게 해 준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십칠 년간 저 스스로 해 왔던 때를 생각하면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더군다나 이곳은 알고 보니 미래의 신녀들을 뽑기 위해 양육하는 곳이라고 한다. 여신의 부르심을 받기에 충분히 자격이 보이는 이들을 무작위로 데려와 교육을 시키는 곳. 황제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자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곳이었다.

교육 또한 지루하다는 점만 빼면 이곳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지식을 배우는 느낌이 들어 설레기도 하였다. 아무렴, 나체들을 보면서 그 자세에 대해 공부하고 빼곡하게 외우던 때보단 낫지. 아무렴.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 바로 정기를 취할 수 있는 곳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으악!’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남자가 별로 없다고 말했을 때부터 의심해야 했건만. 이제야 제 행동에 후회를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이곳에서 환생해 난생처음으로 제대로 된 지식을 교육해 준 덕분에 내 머릿속에 드디어 카마수트라 말고 다른 것들이 들어오긴 했지만, 이건 너무 하잖아. 내게 제일 중요한 정기가 없다니!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사람들이 여자밖에 없을 때부터 느꼈던 불안감을 소중하게 느끼고 도망쳐야 했었다.

알 수 없는 꺼림칙한 촉은 조상님이 등 뒤에서 빨간 불을 왱왱 울려 주고 있다는 거라던데. 진작 들을걸!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그런다고 해도 시간이 되돌려지진 않았다.

혹시나 모를 찰나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눈을 희번득 뜨며 돌아보자 옆에 있던 친구가 놀라 나처럼 똑같이 눈을 주위로 돌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무시무시한 사제님이 있기라도 해?”

“뭐? 아니. 왜?”

“너 눈이 무서워서…….”

그녀의 말에 일순 침묵했다. 이곳에서도 내 외모는 여전히 인기를 얻는데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었다. 남자 말고도 여자에게도 먹히는 외모라니. 성별 불문하고 먹히는 제 외모에 자화자찬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런 내가 눈을 사납게 뜨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니, 아무리 내게 빠진 애라고 한들 놀랄 수밖에 없을 터였다.

“뭐 찾는 게 있어서.”

가볍게 일축하며 그녀를 적당히 넘겼다. 그리고 완전히 거짓말도 아니니까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찾는 게 있긴 하지.

물건이 아닌 동시에 이곳에 없는 거라서 매우 유감이긴 했지만 말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정기를 빨아먹고 배를 채울 수 있는 남자. 정확히는 남성의 정기가 필요했다. 배가 터지도록 부른 상태에서 탈출한 덕에 며칠간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버텨 낼 수 있었지만, 슬슬 한계가 보이던 참이었다.

아무리 배를 채우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내 주식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아침 예배 때도, 점심 교육시간 때도, 저녁 식사시간 때도, 심지어 으슥한 밤의 시간대에도 보이는 것은 여자들뿐이었다.

밥이 없어! 매 식사 시간 때마다 눈앞에 차려지는 화려한 만찬들은 그저 제 입에 달콤한 디저트일 뿐이었다. 아무리 디저트로 배를 채워도 배가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것처럼 허기는 점점 제 몸에 차오르고 있었다.

내 인생은 왜 이런 걸까. 왜 나에겐 중간이 없는 건지 새삼 삶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배부름과 배고픔 둘 중 하나는 꼭 견뎌야 하는 삶이라니, 정말 극단적이잖아.

너를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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