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도대체 밥들은 ‘싫어’라는 거부권도 주지 않을 거면서 왜 이렇게 정중하게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말이 허락이었지, 그저 하기 직전의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나 또한 밥이 강제로 먹힌다는 것에 강렬한 거부감은 없었기에 그들을 허락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배부르면 좀 그런데.
차분하게 내뱉는 말과는 달리 그의 손은 바쁘게 내 몸을 거닐고 있었다. 손길이 간다 싶으면 그곳에는 바로 입이 닿았다. 불길이 이는 듯 뜨거운 그의 입술이 지나간다 싶으면 그곳을 달래듯 혀가 닿았다.
“테이젤 잠깐, 이러지…… 하윽.”
여전히 제 몸에 주입되는 과다한 정기에 몸을 뒤로 빼자 그가 목을 빨다 말고 이를 드러내어 살짝 깨물었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몸을 떨자 그가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며 혀로 쓸었다.
“……제게 안기는 것이 싫습니까?”
아니, 그 말이 아니잖아. 이미 극도의 배고픔을 느껴 본 자로서 막상 밥을 먹지 않기엔 걱정이 앞섰다. 지금은 이렇게 그들이 물고 빨며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언제 그런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이 갑작스럽게 심장 마비로 죽은 것도 그렇고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는 일이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울컥해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날 빤히 바라보던 그가 나를 껴안으며 한숨인지 모를 숨을 어깨에 나지막이 내뱉었다.
“울지 말아요.”
그렇게 말하며 그가 조금 더 강하게 날 끌어안았다.
“미안합니다. 당신이 달아서, 참지 못하고 행동한 절 용서해 주세요.”
그 와중에도 머리에 입술 도장을 내리찍는 그의 행동에 밥을 거부하던 것이 머쓱해져 왔다. 미안, 그거 아마 나 때문일 건데…… 스스로 자책하는 그의 모습이 미안해져 살포시 그를 안자 그의 몸이 크게 떨었다.
“테이젤?”
“당신은 정말…….”
정수리에 두었던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던 그가 입술을 찾는 건 한순간이었다. 아까보단 느릿하지만 더욱 달콤하게 찾아오는 그의 혀에 무리 없이 입을 열어 반길 수 있었다.
능숙한 혀 놀림에 저도 제법 그를 옭아맬 수 있었다. 이론 공부를 허투루 한 것은 아니었던지라 어설프지만 최대한 그의 약점을 공략하며 응했다.
하지만 자신을 찍어 누르는 힘에는 어쩔 수 없었다. 또한 이론만 빠삭한 나와는 달리 실전에 능한 그를 당해 내지 못하는 것도. 그의 혀가 입에 침범한 순간 나는 그를 받아들이는 포지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숨을 먼저 헐떡이는 것은 그가 아닌 나였다. 거칠게 숨을 할딱이면서 눈꺼풀을 파르르 떨자 그가 내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그거 아십니까? 당신의 얼굴은 어떤 표정도 귀엽지만 지금이 제일 아찔하게 아름답습니다. 붉게 물들여진 얼굴은 그 어떤 경치보다도 절경입니다.”
내 외모가 어디 빠지는 건 아니지. 스스로의 외모를 수년간 봐 온 터라 그의 말에 쉽게 긍정할 수 있었다. 내가 좀 예쁘긴 해.
“그러니 그 자식 앞에선 이런 표정 짓지 마십시오.”
그는 한 손으로 자신의 단추를 풀며 내 뺨을 손으로 그러쥐었다.
“그와 공유하는 건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그때 단 한 번으로 충분합니다.”
그의 말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게 내 마음대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 딱히 지금 눈앞에 있는 밥에게도 오래 붙고 싶은 마음은 없던 지라 그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저를 바라보는 내 눈빛을 깨달은 것일까. 그는 한숨을 내쉬며 안았던 손으로 등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순진무구한 눈으로 쳐다보시면 제가 괴롭습니다.”
순진무구……? 누가요? 제가요? 바람 빠지듯 웃는 그의 말에 아리송해져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음란한 지식으로만 가득 차 있는 머리는 또 구하기 어려우실 텐데…….
지금 자신이 밥을 주는 것 또한 나 때문에 이뤄진 것을 전혀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테이젤이 불쌍해져 왔다. 어쩌다가 나한테 걸려선, 매번 자신의 행동이 의아하기만 할 텐데 이해해 주는 그가 성직자로 보일 뻔한 참이었다.
“괜찮아요.”
또 밥을 먹는 것이 귀찮기는 했지만, 배가 고파서 정신이 혼미한 것보단 차라리 배부른 상태가 나았다. 그의 등을 살짝 토닥이며 그를 향해 고개를 올렸다.
“테이젤, 저는 정말 괜찮아요.”
내가 그런 말을 하자 그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어느덧 자신의 앞섬을 완전히 풀어헤친 그의 가슴팍이 거칠게 움직였다.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흐앗.”
내 엉덩이를 움켜잡은 그의 손이 빠르게 골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미 그의 끈질긴 애무 덕에 미끌미끌해진 지 오래였다. 더운 욕탕의 공기보다 더욱 뜨거운 그의 손이 닿자 움찔거리며 그의 팔을 붙들었다.
“하아. 당신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사람을 안달 나게 만드는 겁니까.”
내 체향이 그런 걸 어떻게 해! 태어난 걸 부정하라는 그의 말에 그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안달 나게 하는 게 아니라 내 몸의 체향이 너를 안달 나게 만드는 거란다.
조절할 수 있었다면 밥들에게 이렇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을 터. 엄마처럼 능숙하게 남자를 조련하고 또 조련할 수만 있었더라면 밥시간을 제때제때 지키는 성실한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귓불을 잘근잘근 깨물던 그가 둔부를 쓰다듬던 손가락 하나를 안으로 집어넣었다.
“흐응!”
제 몸 안으로 들어오는 이물질의 생경한 감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팔을 잡았던 손에 힘이 더 들어가자 그는 내 등을 토닥이며 제 손가락을 좀 더 안으로 집어넣었다.
“여전히 좁군요.”
그의 손가락이 그렇게 두꺼운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가락 두 개를 받아내는 내벽은 사정없이 그의 손가락을 조이고 있었다.
“하, 비시아…….”
헐떡이는 그의 숨소리가 제 머리를 아찔하게 만들어 왔다. 내 몸에 물이 잔뜩 묻은 지금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감각이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도 없게 만들 텐데, 두 번째라 그런지 그는 정신을 아주 놓지 않았다.
자신의 하반신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달려드는 대신 그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날 풀어 주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잘 느끼는 곳을 익숙하게 찾아내 문지르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흐느끼듯 그의 몸에 달라붙자 물이 참방였다. 안 그래도 단내가 폴폴 풍기던 물은 어느새 물에 배스 밤이라도 풀어놓은 것처럼 달짝지근한 향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전에 몸을 담갔던 호수와는 달리 고여 있는 욕조의 물이라 더한 것일지도 몰랐다. 저 스스로가 내는 달콤한 향에 자신마저도 머리가 멍해지는 것만 같았다.
잇새로는 그의 손가락을 받아내느라 앙앙거리면서도 몽롱해진 머리가 저도 모르게 그를 더욱 원하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그의 목을 끌어안자 그의 손가락이 더욱 깊게 삽입되었다 빠졌다.
“흐응!”
내벽을 긁듯이 손가락을 살짝 굽힌 그의 손가락이 몇 번 더 오가다 빠졌다. 자신의 손가락에 묻은 애액을 혀로 핥은 그가 자신의 바지 버클을 풀어 그의 것을 꺼냈다.
“비시아, 이제 들어갈 겁니다.”
거칠게 호흡하며 내게 말하는 그의 소리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시야 속에 확인되는 그의 것에 몸을 멈추었다.
저, 저기요? 평상시랑 사이즈가 다른데요. 평소엔 흥분함에 따라 안에서 더욱 커지는 것이 보통이었다면 지금은 달랐다. 이미 애처로울 정도로 단단하게 곧추선 그의 물건은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처럼 보였다.
저걸 꼭 지금 먹어야 할까?
거부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비 올 때도 이렇게 크진 않았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거나하게 밥을 먹을 것 같자 그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역시 밥은 다음 기회에…….
“비시아, 비시아.”
여태까지가 한계였던 것인지 이미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허덕이는 그에게 내 거절이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자신의 체향에 제정신을 못 차리는 것인지, 이미 눈은 혼탁하게 변해 있은 지 오래였다.
자신의 실험에 장렬하게 희생된 그의 모습이 조금은 미안해져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어쩌겠어. 이 불쌍한 어린 양을 내가 보듬어 살피는 수밖에.
침대가 아닌 욕조인 탓에 그가 자연스레 몸을 누이는 꼴이 되었다. 그 위에 내가 올라타자 그의 것이 한층 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으응……. 크기는 더 이상 안 키워 줬으면 좋겠는데. 엉덩이를 살짝 들어 둔부가 그의 성기에 스치자 테이젤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이미 제 몸에서 내뱉는 윤활제와 욕조의 물로 인해 들어가는 것은 능사도 아니었지만 매번 삼키는 데에 있어선 일말의 망설임이 느껴지곤 했다.
더군다나 나를 빤히 바라보는 테이젤의 앞에서 제 양껏 품는다는 사실과 색다른 자세에서 오는 두려움을 표하기도 했다.
“쉬이, 괜찮아요.”
그 누구보다도 버겁다는 듯이 이를 꽉 깨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다정스레 토닥이는 테이젤의 말에 천천히 엉덩이를 내렸다. 입구가 열리며 그의 것을 다정하게 품어 내려던 찰나, 욕조에 받치고 있던 무릎이 미끄러지며 단번에 그의 것을 받아 내었다.
누구의 숨이 먼저 들이켜진 것일까.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숨을 다급하게 들이마신 우리는 머리를 찌르는 쾌락에 천천히 호흡하고자 애썼다.
물에 섞여진 내 체향 때문인지, 아니면 여태까지 기다려왔던 메인 디쉬의 등장 때문인지 그 어떤 때보다도 머리를 강렬하게 쳐 왔다. 그의 손가락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빠듯함이 몸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비시아. 비시아.”
작게 가 버릴 뻔한 정신을 다잡으려 할 때 그의 손이 허리에 내려앉았다. 그가 원하는 것이 뭔지 알았기에 나는 그의 눈을 살짝 피하며 허리를 다시 들어 올렸다.
조심스럽게 허리를 들어 올리자 모든 내장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오싹한 감각이 전신을 달렸다. 느긋하게 움직이는 자신의 행동에 애가 탈 법도 했건만, 그는 손가락 하나 까닥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흘끗흘끗 바라보는 그의 눈이 맛이 간 것만 보이지 않았다면 평소의 테이젤이라고 말해도 괜찮았을 법했다.
“흐읏…….”
허리춤에서 리듬을 타듯 까딱이는 그의 손을 느끼며 입술을 꽉 깨문 채 아래로 내렸다. 그가 움직이는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쾌락이 척추를 타고 온몸으로 번지자 눈을 위로 치켜들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몸의 균형을 잃고 뒤로 쓰러질 뻔했지만, 허리를 든든하게 잡고 있는 그의 손이 결코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기분이 좋습니까? 안을 꽉 조이고 있군요.”
부끄러운 소리 좀 그만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의 말에 회피하듯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