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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먹고 싶어-23화 (23/86)

23화

다시 한 번 제멋대로 제 입에 넣어질 진수성찬을 생각하며 몸을 경직시킬 때였다.

몸을 샅샅이 훑을 줄 알았던 그의 손길은 예상외로 순순히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제 몸을 쓸던 입술도, 그의 눈길마저 완전히 떨어지자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라? 눈을 재빨리 돌려 아래를 바라보았다. 내 몸에 묻은 것은 분명히 물이었다. 눈으로 부정할 수 없는 찰랑거림이 제 옷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다.

사실을 확인한 뒤 나는 시선을 다시 올려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야…… 내 입에 안 들어올 거야?

“비시아?”

“네?”

“몸이 차가워질지도 모르는 일이니 빨리 물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다시 한 번 떨어지는 그의 말엔 드디어 밥을 먹나 싶어 몸을 잔뜩 웅크렸던 제 걱정과는 달리 순진하게 내 안부를 물을 뿐이었다. 진짜? 정말로 나 안 먹어?

밥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스울 상황이었지만 물에 들어가 있는 내게 그런 사소한 것을 따질 겨를은 없었다. 노파심에 재차 테이젤을 빤히 바라보았지만 그는 한결같이 웃을 뿐이었다.

이상하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만 맞아도 헐떡이던 밥이 자진해서 물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다니,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님 내 능력이 갑자기 사라진 건가?

제 몸을 담근 물에 재빠르게 코를 박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물에서 느껴지는 달달함은 여전히 나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여태까지 배웠던 것 중에서 기억해 내려고 했지만 쓸모 있는 기억은 좀처럼 떠올려지지 않았다. 이런 급작스러운 상황에 대해 엄마에게 들은 것이 없는 것 또한 한몫 단단히 하고 있었다.

애초에 섹스를 잘하는 법만 가르쳐 주었지, 내게 이 고달픈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는지에 대해선 하나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목숨을 길고 가늘게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가르쳐 줘야 할 거 아냐! 스스로의 무지함에 답답해질 지경이었다.

가만, 나만 이런 수업을 안 배웠던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쯤 되자 나를 포함한 우리 종족들이 왜 이렇게 소수로 살아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밥만 먹는다고 능사가 아닌데!

여성이 남성에게 탄압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곳에서의 미모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다. 우리 엄마처럼 능숙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어리벙벙한 사람이라면 나처럼 되거나 누군가의 전속 노예가 되어 평생을 갇혀 지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좋아, 결심했다.

섹스 잘하는 법이나 카마수트라 같은 책만 가득가득한 마을 책장에 정상적인 책 한두 권 정도는 꽂아 놔야 할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대처 방법에 대한 매뉴얼이라던가, 응급상황에 조치할 수 있는 법 같은 거. 생존에 있어서 필수불가결로 필요한 것들을 적은 책을 스스로라도 만들어 볼 예정이었다.

물론, 내가 여기서 잘 살아서 나간다, 라는 가정하에 벌어지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다짐하고 나니 호기심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테이젤.”

“네, 비시아.”

“으음…….”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경직되어 있는 몸은 마치 조금의 물보라라도 일으킬까 싶어 최소한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비시아?”

자신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이 없자 테이젤이 내 이름을 불렀다. 그의 부름에 답을 해 주는 대신 나는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발만 담갔던 다리를 천천히 물 안으로 넣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시선은 그를 향하고 있었다. 혹시나 모를 그의 반응을 보기 위함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태평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효과가 떨어진 것인가?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자 천천히 몸을 아래로 수그리기 시작했다. 다리에만 닿았던 물이 찬찬히 엉덩이에도 찰랑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밥이 이성을 잃고 내게 덤벼드는 일은 없었다. 비가 올 때 정신을 잃고 날 덮쳤던 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는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상쩍은데……. 그를 빤히 바라보며 눈을 찌푸리자 테이젤이 상냥한 말로 한술 더 떴다.

“얼른 들어가 주세요. 몸도 성치 않으신 분이 감기까지 걸리면 위험합니다.”

자신을 챙겨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날 챙기는 그의 말에 내 능력이 괜찮아진 것인지 아리송해져 왔다. 애초에 사람이랑 다른 존재인걸.

그러고 보니 내가 사람이 걸리는 질병에 걸리긴 할까. 죽창 앞에선 만인이 평등해진다는 것은 이미 몸소 체험한 뒤였다. 하지만 질병까지도 평등해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테이젤, 아무런 느낌도 없어요?”

“느낌이요? 감기 걸리는 것에 대한 느낌을 말하라는 겁니까?”

“아뇨, 아뇨.”

자신이 직접 손으로 욕조를 휘휘 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는 테이젤이 점점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런 느낌도 안 드는 걸까? 몸을 기점으로 미약하지만 점점 퍼져 나가는 달달한 향은 제 일족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고 있는 테이젤을 보자 호기심과 동시에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전히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고 있는 그를 실험하기 위해 나는 무작정 물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풍덩!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갑작스레 들어온 나를 견디지 못하고 물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머리끝까지 느껴지는 따스한 온도가 제 몸을 감싸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있던 적이 언제였던가. 하물며 테이젤 덕분에 호의호식하면서 지냈을 때마저도 욕조는 무서워 근처도 가지 않고 있었다. 그간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수 있자 새삼스레 찡해져 왔다. 흑흑 불쌍한 나.

“푸하.”

물속에 얼마나 잠겨져 있을까. 숨을 참기 어려워질 때쯤 머리를 젖히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머릿결을 따라 물보라가 일어나자 나는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 이거 좀 샴푸광고 해도 됐을 것 같아.

풍덩.

그 순간 옆에서 들려오는 다른 물보라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낸 소리라고 하기엔 조금 멀리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자 고개를 돌렸다.

“테, 테이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욕조 밖에서 멀뚱히 지켜보던 그가 어째서인지 욕조 안에 들어와 있었다. 뭐야. 너도 씻으려고?

“비시아…….”

그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비단 욕조에 담긴 물의 온도 때문이 아닌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테, 테이젤.”

님. 얼굴이 좀 많이 이상한데요. 그의 온화하던 얼굴은 간데없었다. 그저 이 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주체하지 못하는 비 오던 날의 그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키스해도 될까요?”

“네, 네?”

“아니, 키스하고 싶어졌어요.”

뭐라고요? 헐떡이는 그의 숨소리가 제 귓가에 다가오자 그제야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실험도 적당히 해야 했는데!

“지금 당장.”

“네? 아니, 읍.”

그의 말에 화들짝 놀래며 도리질 치려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그는 내 뒷덜미를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선 이내 입을 내리눌렀다.

그의 키스에 입을 단단히 봉하여 열지 않으려 애썼으나 제 입술을 샅샅이 핥듯이 움직이는 그의 행동엔 어쩔 수가 없었다. 입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혀가 제 입안으로 침범하여 이곳저곳을 훑기 시작했다.

키스만으로는 부족한 것인지 제 목을 바치고 있는 손 외에도 다른 손이 재빠르게 가슴을 찾아내어 그대로 움켜잡았다. 물에 젖어 찰싹 달라붙어 제구실을 못 하는 옷 위로 그의 손이 자유자재로 노닐기 시작했다.

“하아, 테이…… 으응.”

겨우 자신을 놔주는 그의 행동에 간신히 숨을 틔어 내뱉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마저도 눈을 감지 않고 바라보던 그가 다시 한 번 더 제 입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여유라고는 전혀 없는 그의 입술이 닿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더 닿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이 아무리 급박해도 그렇지 아까랑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조금 당황스러워졌다. 여유만만하던 모습 어디 가셨어요?

“테이젤, 아흣…….”

“비시아, 더 크게 울어 주세요.”

이상한 걸 요구하는 그의 말에 흐려지던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갑자기 개 풀 뜯어 먹는 그의 소리에 뭐냐고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열던 참이었다.

“아, 하읏!”

갑작스러운 힘에 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목덜미를 쓰다듬던 손이 어느덧 아래로 내려가 제 엉덩이를 세게 쥐어짜듯 잡은 탓이었다. 터지면 지가 다시 채워 줄 것도 아니면서. 그를 향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술을 찾아 들었다.

아까의 손길이 자신도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인지 다급하게 찾던 처음의 키스와는 달리 달콤했다. 혀로 살살 굴리며 내가 따라올 수 있을 만한 느긋함으로 이끌자 비로소 내 입에는 아픔이 아닌 달아올라서 흘리는 신음으로 바뀌었다.

“당신만 보면 미칠 것 같습니다. 제 밑에서, 제 아래에서만 울어 주세요.”

아까부터 울어 달라는 그의 말이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울어 달라는 거야. 자꾸 울어 달라는 말에 단 하나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으…… 응애?

“눈감고 잠들어있는 당신을 보며 온갖 상상을 다 했습니다.”

속으로 어떻게 울어야 할지 수십 가지의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입술을 살짝 떼어 날 잡아먹을 듯 응시하며 말했다.

“역시 당신은 깨어 있는 모습이 좋습니다. 비시아의 그 눈동자가 열에 들떠 날 바라보는 게 좋아요.”

자세히 보니 날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조금 단정치 못했다.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호흡은 그 어떤 때보다도 빠르고 거칠었다. 내가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 팔을 꽉 붙들고 있었다.

“당신 자체가 미약 같습니다.”

헉 어떻게 알았지. 내 몸은 인간에게 있어 달콤한 미약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물에 닿으면 작정하고 반응하는 미약.

“역시 당신을 가둬놓고 하루 종일 내 아래서 울리고 싶어요.”

“테, 테이젤.”

순간적으로 말하는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여태까지 나긋한 눈동자로 부드럽게 쳐다보아 왔던 것이 테이젤이라면, 방금 그 순간만큼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저도 모르게 몸이 오싹할 정도의 날이 벼려진 모습에 눈을 깜빡였다. 그의 애무에 자연스레 젖어 가던 몸이 일순간 식을 정도로 강렬한 감각이 저를 옭아매었다.

이런 날 발견한 것일까. 내 얼굴을 보더니 이내 당황해하며 원래의 그의 표정으로 얼굴을 되돌렸다.

“젠장, 뭐 하는 거야 난…….”

그는 무어라 변명을 하려다 다물었다. 대신 여태까지 날 주무르던 손을 올려 나를 강하게 껴안았다.

“정말로 당신을 씻겨만 주려고 했습니다. 물을 받기 전까지 한 행동은 그저 장난이었을 뿐, 당신을 안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테이젤.”

응……. 좀 그럴 것 같긴 했어. 저 스스로가 한순간 능력이 사라진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테이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한계치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당신이 겨우 일어난 사람인 것도 알고, 아픈 사람인 것도 아는데…… 도저히 멈출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운 겁니까.”

날 껴안았던 것 그대로 얼굴을 내려 내 목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대었다. 크게 들이마시던 그의 숨이 목덜미에 적나라하게 닿자 그는 입술을 열어 제 입안으로 살을 빨아올렸다.

“당신은 어째서 달콤하지 않은 곳이 없죠? 당신이라는 것 자체가 꿀로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그러라고 만들어진 몸이니까. 머쓱한 상황에 그를 마주 안은 채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자 그가 자신의 몸을 내게 좀 더 밀착했다. 조금 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하반신을.

“당신을 가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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