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먹고 싶어-22화 (22/86)

22화

“아!”

그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심산으로 손가락에 힘을 주려는 순간 그의 입이 정점을 삼키자 절로 허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몸에 그의 얼굴에 쓰러지듯 기대게 만들었다.

“하응……! 테, 이젤……. 흐아앗.”

“네. 계속 제 이름을 불러 주세요.”

아니, 그거 말고! 씻고 온다는 말이 목 언저리에서 사라질 만큼 그는 강렬하게 날 몰아세웠다. 제대로 된 말을 할 기미를 주지 않겠다는 듯 그는 열심히 혀를 놀리고 있었다. 살살 굴리다가도 힘을 주지 않은 이로 유두를 잘근거리는 그의 행동에 눈을 질끈 감으며 간간이 신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허리를 받치고 있던 그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 엉덩이와 허벅지를 어루만지자 정신이 번쩍 뜨였다. 이대로라면 정말 씻기도 전에 밥부터 먹을 것 같았다.

오, 안 되지. 그 어느 때에도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 종족의 자부심이자 긍지였다. 아무리 잘 차려진 밥이 좋다고 하지만 긍지를 버리면서까지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거기다가 이 밥은 잠깐 자리를 비운다고 한들 차게 식을 리도 없잖아? 흥분감에 신음을 간간이 뱉으면서도 생각이 단호해지는 순간이었다.

“비시아…….”

“화장실!”

“……네?”

갑작스런 내 말에 그가 놀란 듯이 가슴에서 입술을 떼어 내었다. 지속해서 당하고 있던 공격이 일순간 떨어지자 머릿속이 조금 개어지는 것을 느꼈다. 줄곧 닿던 온기가 사라지고 차지하는 허전함에 몸이 살짝 떨렸지만 개의치 않게 말을 이어나갔다.

“오랜만에 일어나서 그런지 씻어야 할 것 같아요. 거울도 보고 싶고……, 더군다나 이런 흐트러진 모습으로 당신에게 안기고 싶지 않아요.”

“비시아…….”

“테이젤……. 이런 제 맘 아시겠죠……?”

최대한 애절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내 맘 알겠지, 응? 이게 다 네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고! 최대한 애절함을 어필하며 바라보자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떨어졌다.

“그럼 가죠.”

“네?”

그는 말과 동시에 내 등에 팔을 둘렀다.

“제가 씻겨 드리겠습니다.”

뭐라고요, 이 새끼야?

그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뭘? 존귀하신 분이 뭘 해 주신다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당신을 혼자 씻게 그냥 둘 순 없습니다. 제가 직접 수발을 들도록 하죠.”

“아, 아니…….”

머릿속에는 혼돈으로 폭풍이 몰아치는 것만 같았다. 아니, 괜찮다니까 왜 이렇게 친절하세요. 가히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가 수발을 든다는 것에 태클을 걸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신이 몽롱했던 터라 몸을 제힘 들이지 않고서도 씻을 수 있다는 데 예전 몸이었더라면 적극적으로 환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욕실은 저 혼자 가야만 했다.

“괜찮아요. 저 이제 쌩쌩한걸요. 혼자 걸을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재빠르게 일으켰다. 그에게 도저히 말로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나로서는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사람이 말로 해서 못 알아듣는다면 행동으로 보여 줘야지!

허리를 숙이며 몸을 일으키기 위해 손을 뒤로 짚었다. 가볍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손바닥에 힘을 실을 때였다. 그런데 사람이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지더라도 코가 깨진다고, 내가 바로 그 짝이었다.

그의 얼굴을 피하기 위해 너무 뒤로 몸을 뺀 탓일까 바로 뒤엔 베개가 있었고 너무나도 부드러운 감촉은 내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미끄러지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이제 막 일어났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무리하시는 겁니까.”

“테, 테이젤…….”

그는 내 어깨를 두르듯이 내 몸을 붙들었다. 넘어진다고 한들 푹신한 이불 위에 쓰러지는 것뿐이었는데 그는 꽤나 다급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괜스레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 죄진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제게 기대질 않는 거죠?”

“…….”

욕실에서의 널 도무지 감당할 자신이 없단다…….

이 말을 그에게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씁쓸하게 모든 것을 토로하고 싶었다. 내 몸의 체향이 물과 만나면 유혹하는 페로몬이 과다분비 된다고. 그래서 비 오는 날에 참지 못하고 성교를 나눴던 것도 다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모든 걸 말하고 편해지고 싶은 기분이 가득이었다.

하지만 뜬금없는 그 말을 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페로몬? 정기? 차라리 이곳에 내가 차원 이동을 했다고 하는 것이 더 믿음직한 말이 될 터였다. 나는 꺼이꺼이 울고 싶은 심정을 꾹 참았다.

그는 더 이상 내 허락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지 다짜고짜 무릎 밑에 손을 넣어 날 들어 올렸다. 내 몸을 자신의 가슴에 기대게 하여 자못 편한 자세로 안아 들자 나는 허우적거리지 않고 자연스레 그의 목에 내 손을 올릴 수가 있었다.

음? 잠깐, 이렇게 하면 내가 벗어나질 못하잖아?

“테이젤! 잠깐만요!”

“가볍네요.”

“네?”

“좀 더 먹어야 할 것 같아.”

미친놈아, 뭘 더 먹여!

그의 말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싹해지는 체험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이미 가벼운 신체 접촉으로 끊임없이 간식으로 주는 중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먹이겠다고? 진심이니?

나는 고개를 재빠르게 저었다. 필요 없어! 필요 없다고! 마치 전생의 할머니 집에 방문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침을 먹고 뒤 돌면 간식이 있고 먹고 뒤 돌면 점심이, 그마저도 먹고 나면 막 따온 신선한 과일이라며 손에 손수 쥐여 주던 그 거절할 수 없는 친절함이 지금 막 펼쳐지고 있는 기묘한 상황이었다.

“테이젤.”

“왜 부르시죠?”

“이젠 제가 걸을게요. 아깐 제가 손을 잘못 디딘 것뿐이에요. 별다른 상처도 없고, 제 두 발로 걷고 싶어요. 되도록 혼자요.”

특히 마지막 말을 강조해서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정말로 진심을 다해 그를 향해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일렀던 모든 남자가 거절할 수 없게 만든다던 옷자락을 살짝 잡는 것까지 잊지 않고 행했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거짓 눈물을 글썽이자 그는 걷는 걸 멈추고 고개를 아래로 살짝 내렸다.

“안 돼요.”

아, 그러세요…….

단호하게 말하는 거절하는 그의 말에 순간 머리가 백지상태가 되어 버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왜지? 왜 안 통하는 거야? 설마 내 실력이 아직 미숙한 건가? 백 퍼센트를 자랑하던 엄마의 비장의 무기마저 통하지 않자 자신의 미숙함을 한참 동안 되살펴 보아야만 했다.

“걱정 말아요. 정말로 씻겨 주기만 할 테니까.”

그게 네 멋대로 할 수 있는 거였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고민하지도 않지.

그의 고막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째서 그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 걸까. 자신이 견고하게 믿고 있는 이성에 명치 맞을 수 있다는 걸!

결국 그는 날 안고서 욕실까지 당당하게 입성할 수 있었다. 침실과 견줄 정도로 넓은 욕실을 발견하자 나는 이곳이 정말로 전쟁터가 아님을 다시 한 번 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인간세계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내 발로 이동했던 건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첫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고행길이 따로 없었다. 열여덟 살까지 띵까띵까 놀면서 카마수트라나 지겹게 보며 살던 때가 급격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날 한 손으로 든 채 욕조의 수도꼭지를 돌렸다. 그의 손짓 한 번에 콸콸 나오기 시작하는 물을 보며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였다. 이대로라면 정말 그의 손아래에서 다시 한 번 과식을 하게 될 것만 같았다.

나는 이미 부른 배를 더욱 든든히 하고 싶었던 것뿐이지 다시금 만찬을 즐기고 싶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왜 내 사전엔 적당히가 없는 건가요. 왜 쫄쫄 굶거나 너무 많이 먹거나 이런 것이죠? 도대체 왜 이렇게 극단적인 건가요!

하지만 그 물음에 답을 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넓은 욕조 안이 점차 물로 찰랑거리자 나는 그 끔찍함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의 목에 얼굴을 묻어 버렸다. 저 물이 채워지는 것을 감히 보고 있을 간덩이가, 아직 내겐 존재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 겁니까.”

알면 안 해 줄 거니? 나는 침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히 그때의 상태라면 그 어떤 말로도 그를 멈출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 그게…….”

“설마 아직도 부끄러우신 겁니까? 당신은 정말 알 수가 없군요.”

나도 내 몸에 대해서 아무리 공부해도 알 수가 없는데 밥인 너라고 알 리가 있겠니…….

“그래서일까. 더욱 당신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지금도, 그리고 당신을 만나기 전도요.”

그는 물이 채워지길 기다리며 내 뺨에 천천히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 하지만 내 뺨에 그의 부드러운 입술이 내려앉아도 나는 하나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눈은 자꾸만 테이젤과 욕조를 번갈아 가며 물이 채워질 시간을 가늠하고 있었다.

아아, 제발……. 천천히 채워져라. 나는 수도꼭지에 애원하는 눈길을 보냈다. 왜 사물을 꼬실 수 있는 능력은 제게 주지 않은 건가요. 엉엉 울고 싶은 눈빛으로 애절하게 바라보았으나 수도꼭지가 갑자기 막혀 물이 단수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 안 돼.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물이 가득 채워지기 전에 그를 이곳에서 나가게 하던가 아님 이 자리에서 내가 떠나야만 했다.

어떻게 하면 그가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 동안 그의 입술이 내 목을 향했다. 턱선에 잘게 키스하던 그가 이를 세워 내 목을 살짝 깨무는 통증에 비로소 그를 향해 다시 고갤 돌렸다.

“물이 채워지기 전 조금만이라도 당신의 체향을 마시고 싶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깨문 곳을 달래 주듯 혀로 부드럽게 핥았다. 날 지탱하고 있는 그의 손이 은근한 손길로 엉덩이를 헤쳐 은밀한 곳을 쓰다듬자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찔거리며 그의 목을 살짝 죄었다.

침대에 있었던 때와는 달리 그의 손길을 피할 수 있는 곳이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손에 지탱하고 있었던지라 몸을 뒤로 뺄 수도 없어 손길을 온전히 받아내자 손가락이 원피스형인 잠옷을 헤치고 얇디얇은 천을 건드렸다.

“흐앗!”

씻기기만 한다며! 씻겨 주기만 한다며! 얄팍하게 믿었던 그의 믿음의 배신에 화풀이하듯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팬티의 천을 옆으로 살짝 밀어내었다. 여린 살을 한 손가락만으로 위아래 희롱하기 시작하자 내 허리가 점차 구부려지기 시작했을 때.

“……아.”

그는 낮게 숨을 토하며 내 쇄골 위에서 얼굴을 떼었다. 밥을 주다 말고 갑작스러운 그의 멈춤에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을 바라보자 어느새 욕조 물은 꽉 차다 못해 흘러넘쳐 그의 발을 적시고 있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다 못해 핏기가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온도도 적당하네요.”

그의 웃음에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명치를 칠 뻔한 오른쪽 손을 간신히 저지할 수 있었다. 망했다. 어떻게 하지?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이런 내 기분을 전혀 알 리가 없는 테이젤이 손에 물을 묻혀 발끝을 적셨다. 그의 기다란 손가락이 발가락을 희롱하듯 훑다 지나갔다.

으악, 물이다! 물!

“어때요, 비시아? 물이 차거나 뜨겁진 않으신가요?”

“어, 어, 네? 어…… 괘, 괜찮은 것 같아요.”

물이 닿았다는 사실에 당황한 나머지 목욕하지 않는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순순히 답해 버리고 말았다. 더듬긴 했지만 온순한 내 대답에 그가 방긋이 미소를 지었다.

“다행입니다.”

그렇게 말한 그가 나를 물에 더욱 가까이 데려가기 시작했다. 멈춰! 그 행동을 멈추라고!

하지만 여느 때처럼 그래왔듯이 내 마음의 소리를 테이젤이 들을 리 만무했다. 제바람과는 달리 그는 달랑 들어 올렸던 그때와 같이 나를 욕조 안으로 집어넣었다. 참방이는 물소리와 함께 내 몸이 닿자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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