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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먹고 싶어-21화 (21/86)

21화

화를 내려고 했던 행동이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을 연출하자 당혹스러워한 내가 재빠르게 목을 열었다.

“저, 전혀요.”

엎친 데 덮친 격이 바로 이런 걸까. 하필이면 목마저도 잠겨 울먹이는 소리가 나자 재빠르게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아냐! 아니라고! 내가 원하는 감정은 이게 아니란 말이다!

정확한 내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살포시 깔아 내렸던 눈을 다시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다시 자신의 팔로 날 옭아매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안으면 산산조각 나는 유리를 껴안듯이 그의 행동은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울지 마세요, 비시아.”

네? 저요? 저 전혀 안 울고 있는데요.

그의 말에 심퉁스럽게 입술을 내밀었다가 눈물로 얼룩져 번진 시야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우네…….

“당신의 눈물을 보는 게 너무나도 괴롭습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야만스러운 놈과 당신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책하듯이 자신을 탓하는 그의 말에 순간 입을 뻥긋거렸다. 어, 음, 그거 정확히는 너희들이 아니라 내 체향 때문인데……. 그들이 무작정 날 탐닉한 시발점은 어디까지나 나였다.

하지만 그에게 그걸 일일이 설명할 여유는 없어 보였다. 일단 그를 진정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며 그의 품 안에서 살짝 고개를 떼어 내었다.

“아니에요, 테이젤. 그 점에 대해선 제가 잘못했는걸요…….”

빌어먹을 목은 여전히 제 꾀꼬리 같은 아름다운 소리로 돌아올 생각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먹먹한 목이 울먹이듯 그에게 조용히 속삭이자 그는 좀 더 힘을 주어 내 목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역시 당신처럼 순수한 사람이 그런 녀석의 정부일 리가 없습니다.”

아니 그걸 아직도 의심하고 있었단 말이야? 어마어마하게도 의심하네. 순간적으로 혀를 내두를 뻔했지만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걸로 대신 참았다.

약한 고갯짓으로 인해 눈가에 가득 맺혔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자 그가 자신의 입술을 내 뺨에 가져다 대었다. 둥글게 솟아오른 뺨 중턱에서 눈물을 마시듯 그가 입술로 받아내자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내 뺨에서 얼굴을 떼어 내었던 그가 다시 입술을 붙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뺨에서 콧잔등으로, 인중으로 향했던 그의 입술이 도톰한 입술을 찾아 조심스럽게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서로의 입술을 찾듯 가볍게 눌렀던 입술이 숨을 뱉음과 함께 살짝 떨어졌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다시 찾아들었다.

찍어 눌렀던 아까와는 달리 혀를 넣으며 농염하게 입술을 훔치기 시작하자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금없었지만 그와의 접촉이 싫지 않은 참이었다. 더군다나 막 일어난 터라 터질 듯이 배부른 기는 많이 가신 터였다.

“몸은…… 괜찮습니까?”

“네…….”

항시 배부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빼면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정말입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손을 아래로 내렸다. 미쳤니? 또 밥 주려고? 나는 질색하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다시 입술을 찾아드는 그의 완강한 행동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배불러! 배부르다니까!

“테, 테이젤?”

“비시아 당신이 싫다고 하면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결코 내게서 쉬이 떨어지지 않을 듯이 완강하게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은근슬쩍 아래로 향하는 그의 손가락도 혀를 헤집는 도중에 알아차릴 정도면 어지간히도 날 원하는 것이 분명했다.

머릿속으로 한참을 고민하던 난 결국 현실과 타협하며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처음 당시 일주일간을 쫄쫄 굶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배부른 사치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있을 때 먹자고!

서로가 서로의 입술을 열심히 탐하기 시작했다.

숨을 돌리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입술을 찾아 다급히 헤매었다. 각각 내뱉는 숨을 다시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며 모든 것을 탐했다. 거침없이 들이닥치는 혀를 막아 낼 재간이 없었다. 그저 활짝 반기며 모든 것을 허용할 뿐이었다.

“하아…….”

결국 기나긴 숨을 참지 못하고 토해내자 그의 이가 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마저도 안타까운지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내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입을 맞추었을 때 잠시 눈을 감았던 것인지 그는 내 입술을 탐하는 내내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날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비시아, 비시아.”

그는 내 입술에 이를 댄 채 끊임없이 내 이름을 불렀다. 마치 내가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줄 아는지 그는 내 뺨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며 내 이름을 다시 한 번 더 불렀다.

“비시아.”

그거 내 이름 아닌데. 심드렁하게 그의 말에 딴지를 걸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그의 이 아래에 있는 내 입술이 아작 날 것만 같아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이 구역의 미친년이 나를 지칭하는 말이라지만, 여긴 내 구역이 아닌걸…….

“그 연분홍빛 눈동자를 보기 위해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네?”

그의 말에 도저히 입술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시 혼절한 것이 아니었나? 아까 달려오던 그의 반응도 그렇고, 지금 이렇게 애틋한 장면을 펼치는 모양새를 보자니 도저히 잠깐 동안 혼절한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 같지가 않았다.

“테이젤.”

“네, 비시아.”

아니, 네 입술 말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마저 감격스러운 것인지 다시 찾아오려는 테이젤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으며 나머지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제가 얼마나 자고 있었던 거죠?”

“……정확히 그날로부터 오늘까지 사흘째 잠들어 있었습니다.”

나년, 나가 죽어라!

역시 진수성찬 뷔페라고 막 먹는 것이 아니었다. 과다한 정기를 흡입한 탓일까, 사흘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잠들었다는 말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탈 날 줄 알았으면 입에 대지도 않았지!

“아무리 당신의 이름을 불러도 그 기다란 눈꺼풀이 들어 올려지지 않는 끔찍한 기분을 아십니까?”

알 리가 있니. 소화시키느라 열심히 자고 있던 내게 물어보는 의도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전 당신의 섬섬옥수를 잡아도 커다란 눈동자가 날 바라보지 않는 그 고통스러운 기분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습니다.”

“테이젤…….”

나름 착실하게 병문안을 왔다는 것 아닌가. 그의 말에 심통해져 있던 내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래, 병문안이라도 자주 와야지. 누구 때문에 내가 이 꼴을 당했는데.

생각해 보니 괘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칼에 찔린 것도 그렇고, 비 오는 날에 강제로 진수성찬을 먹이게 한 것도 모두 내 의사로 한 것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잖아? 감히 밥 주제에 주객전도를 해?

“당신을 제 나라에 데려가겠습니다.”

“네?”

굳은 결심을 다지는 것도 잠시. 아무런 맥락도 없이 나를 자신의 나라로 데려간다는 말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뭐? 어딜 데려가?

“그저 당신을 인질이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어리석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젠 달라요. 당신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집니다.”

“아니, 잠깐…….”

이대로 사건이 잠잠해지면 틈을 타 도망가려고 했던 내 계획이 틀어지고 있었다. 험난하기 짝이 없던 그의 곁이 그를 따라간다고 해서 잠잠해질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만약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다가 이번엔 칼빵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러모로 소름 끼치는 죽음이 삽시간에 머릿속에 재생되어 지나가자 나는 그에게서 몸을 조금 뒤로 빼었다.

“테, 테이젤. 너무 섣부른 생각이…….”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에요, 비시아.”

사람이 말을 하면 끝까지 좀 들어라. 내 말허리를 검으로 베어 내듯 깔끔하게 잘라먹은 그는 애절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저도 당신이 이렇게까지 제게 중요한 사람이 될 줄 몰랐습니다. 이번 일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시아, 당신이 침대에 누워 있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깨어나지 않는 당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자책하며 곁에서 잠도 제대로 청하지 못했던 끔찍함은 더 이상 맛보고 싶지 않습니다.”

오……. 뭐라고? 그의 말을 듣다가 막판에 놀라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지금 쟤 말은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내내 내 옆에서 잠을 청했다는 거 아냐. 그의 깜찍한 집착에 나도 모르게 입가의 미소가 사라졌다.

역시 안 되겠어. 한시라도 빨리 이 미친 곳을 탈출하는 것이 내 신상에 이로울 거야.

“저, 테이젤.”

“네. 말씀하세요. 비시아.”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천천히 고개를 내 쇄골 아래로 내리기 시작했다. 입고 있던 내 잠옷이 그의 턱에 걸려 아래로 딸려 내려가자 비단에 가려졌던 가슴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는 아직 어디에도 흣……!”

손은 일절 사용하지 않은 채 가슴골에 고개를 파묻은 그의 얼굴이 목표를 찾아내고 크게 입을 벌렸다. 윗가슴을 크게 들이마시며 혀끝으로 할짝이자 저도 모르게 허리를 움찔거렸다.

“계속 듣고 있습니다. 말하세요.”

그의 평온한 말과는 대비되게 나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율이 일기 시작했고 그는 지속해서 내 가슴을 희롱했다.

아니, 말하라며! 이러는 건 반칙이잖아!

어떻게든 입을 열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며 신음을 참아내었지만 어느샌가 내 허리를 둘렀던 그의 손이 나의 마른 등을 쓰다듬자 결국 항복하며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이 목소리가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비시아는 잘 모를 겁니다.”

“테이젤, 잠깐, 잠깐만요……!”

“안 돼요. 이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본격적으로 가슴을 빨기 시작했다. 뒤로 내빼려는 내 허리를 손으로 잡으며 더 이상 도망조차 칠 수 없게 만들었다. 애타는 느낌에 엉덩이를 들썩이자 그는 손가락을 아래로 내려 옷 첨단 위에서 굴곡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에 정신이 아득하게 날아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사흘 동안 씻지 않은 내 밥을 스스로 자처하는 테이젤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거울을 안 봐서 그렇지 머리며 온몸이 얼마나 꾀죄죄할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씻지 않아도 괜찮았던 건 어디까지나 내가 필사적으로 몸가짐을 한 덕택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제 막 자고 일어난 부스스한 몸에 성욕을 느끼는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었다.

막말로 얼굴에 눈곱이라던가 입가에 침 자국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해! 그 모습으로 식사를 한다는 것은 단연코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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