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귓불에서 목선으로, 날갯죽지로 천천히 내려가던 그는 등 뒤에 있는 지퍼를 입술로 물어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비에 젖어 수월치 않게 내려갈 법도 한데 그의 손길에 의해 지퍼가 물 흐르듯이 내려가자 몸을 죄이던 옷이 헐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야외에서 벌거벗겨지는 느낌은 생각했던 것보다 창피했다. 수치심으로 인하여 얼굴이 새빨갛게 타들어 가면서도 손을 단단히 잡고 있는 테이젤 덕분에 그 어느 부분 하나 가릴 수가 없었다.
아니, 테이젤이 손을 놓아준다고 하더라도 이미 내 앞을 점령한 에드아르에 의해서 가릴 수가 없었을 게 분명했다.
헐거워진 옷에 의해 거의 벗다시피 한 상체가 완연하게 드러나자 테이젤의 입맞춤이 다시 시작되었다. 물었던 지퍼를 놓은 채 등에 곧게 뻗은 척추를 타고 빨간 점이 곳곳에 수놓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이에게 내가 잘 보지 못하는 곳을 점령당하는 감각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흥분감을 주었다. 생소한 감각에 몸의 추는 자연스럽게 에드아르에게 기울어졌다.
그의 입술이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몸에 걸쳐진 옷의 면적 또한 점점 적어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노출이 과했던 옷이라 지퍼와 옷을 지탱했던 어깨끈을 제외하고 나니 흘러내려 가는 데에 있어서 거칠 것은 없었다.
물에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었지만 계속 몸에 남아 있길 원하는 내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옷은 땅에 질질 끌려졌다.
옷이 완연하게 벗겨졌을 무렵, 테이젤이 엉덩이를 움켜잡는 동시에 내 속옷 사이를 파고든 에드아르의 손가락이 밀지에 들어간 것은 날 순식간에 절정에 밀어 넣었다.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고개를 치켜들며 신음을 애써 삼켜 내었다.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드는 감각임에도 불구하고 바깥 공기의 차가움은 내가 있는 곳을 간신히 인식시켜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잇새로 흘러나오는 신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앞뒤로 공략하는 그들의 손아귀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쉽사리 끝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절정의 여운으로 인해 몸을 앞으로 쓰러지듯 넘겼다. 차마 내 두 발로 서 있을 자신이 없어 내 눈앞에 있는 이에게 내 몸을 완전히 맡겼다. 온몸을 꽉꽉 채운 양기가 포만감을 가득 선사하고 있어 더욱이 힘든 것도 있었다.
내가 그의 어깨 위에 얼굴을 올리자 귓가에서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웃지 마라. 진심으로 배불러 죽을 거 같으니까.
“비시아, 그쪽에 있는 건 썩 좋지 않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만.”
“네……?”
힘들어 기대어 있는 게 뭐가 어때서……? 등 뒤에서 들려오는 테이젤의 말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테이젤이 내 입에 가볍게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 장난스럽기도 한 그와의 입맞춤에 편안함을 느끼고 있을 때 돌연 안에서 가만히 있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앗, 자, 잠깐만. 아직 애피타이저를 먹은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고!
속으로 내지른 비명은 안타깝게도 에드아르에게 닿질 않았다. 아직 몸에 걸쳐있는 속옷 안으로 선명하게 느껴지는 그의 손은 흠뻑 젖은 밀지를 위아래로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와 동시에 내 입에서 다시 신음 소리가 나온 것은 틀림없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그의 손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날 함락해 나가기 시작했다. 조금 강압적이기도 한 그의 손가락이 잔뜩 성이 나 있는 곳을 꾹 누를 땐 아픔으로 눈가에 물기가 맺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눈물은 테이젤의 입맞춤으로 인하여 단박에 사라지고 말았다.
제 손을 욕망껏 움직이면서도 입술을 쉬지 않는 두 사람으로 인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일 때와는 달리 곳곳에 느껴지는 손길에 어디에 정신을 두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이곳저곳에서 깨어나는 야릇한 감각에 소리를 무던히도 참아 낼 수밖에 없었다.
에드아르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발끝에 다시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서 있을 힘도 없어 그에게 기대어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뭉그러뜨려지는 발가락 끝은 그의 손가락 운율에 맞추듯 움찔거렸다.
자신의 한쪽 다리를 이용해 내 허벅지가 다시 오므려지지 못하게 이미 막은 그는 천천히, 그리고 내가 깨닫지 못한 사이에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뒤늦게 깨달은 내가 달아오르는 창피함에 다리를 모아 보고자 애를 썼지만 한 번 열린 다리는 닫힐 줄 몰랐다. 힘을 써서 닫으려고 하면 클리토리스를 가볍게 문지르는 그의 행동 때문에 다리에 완연하게 힘을 줄 수가 없었다.
“하앗, 하, 하으……!”
앙다문 입매무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는 점점 거칠어져만 갔다. 처음엔 펴 바르듯 주변을 문지르던 손이 점점 한 곳을 향해 집요한 손길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 번 절정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한 곳에만 집착하는 그의 손길에 천천히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어질하던 머릿속 안은 다시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끔 만들었다. 마치 지우개로 깔끔하게 지운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뒤에서 테이젤이 해 주는 애무마저도 지금은 내 부푼 곳을 어루만져주는 에드아르의 손길에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끊임없는 애무로 인해 받아들일 물기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 묻어 있는 물기가 빗물일지 애액인지 모른다고 생각될 즈음에 생각지도 못한 그의 손가락이 안을 파고들었다. 낯선 이물질의 침입에 깜짝 놀라 그의 어깨에 이를 박으며 신음을 터트렸다. 속을 계속 간질이던 갈증을 해소해주는 느낌에 탄성을 지르는 한편, 다시 한번 더 식사를 받아먹을 생각에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배가 그렇게 고팠던 것은 아닌지라 남자의 품에 안겨 여러 번의 절정으로 가게 한 것은 충분히 끼니를 해결할 정도가 되었다. 이미 살을 맞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많이 섭취하지 않았는가. 배고프지도 않는데 맛난 음식이 있다고 해서 억지로 입에 밀어 넣을 정도로 미련한 짓은 하지 않았던지라 약간의 망설임이 일었다.
나 지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른 것 같은데 이제 그만 먹으면 안 될까? 나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에드아르를 올려다보았다. 애무에 집중하던 에드아르가 내 눈빛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짙은 남회색 동공이 날 마주하고 있었다.
“후우. 걱정 마라. 널 겁주려는 것이 아니다.”
“앗…….”
“그냥……. 잠깐만. 잠깐만이면 된다. 내 말을 들어줘.”
말이요? 무슨 말? 몸과 몸의 커뮤니케이션? 정말 말이라도 하고 있으면 섭섭하지나 않지. 나는 그의 말에 한숨을 쉬며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아무래도 그는 전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후우, 그래. 사전에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비를 흠뻑 맞은 내가 잘못이니 봐준다. 만약 그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젖었던 거라면 얄짤도 없을 것이었다.
밥이 아무리 먹어달라고 노래를 불러도 먹는 사람이 우선 아닌가. 내가 배부른 게 먼저지. 암암.
내가 그의 어깨에 매달리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허락의 뜻으로 알아들은 에드아르가 천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뜨거웠던 손가락과는 달리 빗물에 젖어 차가운 손길이 뜨거운 내 안을 차가운 열기로 이끌고 있었다.
처음엔 입구를 가볍게 맴돌던 손가락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손톱 끝만 겨우 들어오던 손이 천천히 길이를 더해가 안으로 파고들며 천천히 상하 운동을 했다.
검 연습을 많이 해 굳은살이 잔뜩 박인 기다란 손가락이 내 안 깊숙이 들어오자 나는 엉덩이를 들썩였다.
테이젤의 가는 손가락과는 또 다른 느낌이 색다른 감각으로 이끌어 주고 있었다. 한 손가락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두 손가락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버거움에 입으로 호흡을 내뱉었다. 자연스레 그를 움켜쥐는 손가락에 힘이 더해졌다.
차츰 그의 손가락이 내 몸 안의 온도에 익숙해질 무렵 또 다른 손가락이 불쑥 안을 파고들었다. 자, 잠깐만! 크기가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놀라 고개를 치켜들자 재빠르게 에드아르의 입술이 찾아들었다.
연신 입술을 깨무느라 붉어진 내 아랫입술을 빨아들이며 혀를 집어넣는 그의 행위에 제대로 된 신음조차 흘리지 못하며 그의 손가락을 받아내야만 했다.
손가락은 점점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개의 손가락으로 굵기를 늘린 손은 내 안 이곳저곳을 누르며 내 반응을 살피듯 움직이고 있었다.
아까는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아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 거라면, 지금은 머릿속이 새까맣게 변하고 있었다. 몸에서 주는 쾌락 외엔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위도 아래도 완벽하게 정복당해 그의 손길을 온전히 감내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빙글 돌면서 스쳐 지나간 부분에 나는 발끝을 오므리며 허리를 들썩였다. 몸의 시간이 멈추는 듯한 짜릿함에 무심코 그의 혀에 이를 가져다 대었다.
반자동적으로 벌려지는 입술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그와의 입술 사이에 공간이 생기자 그의 입술에 묘한 미소가 어려졌다.
“……여긴가?”
그의 질문에 옷자락만 세게 쥘 뿐이었다. 그런 건 안 물어봐도 괜찮단 말이야.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새빨간 홍시가 터트려졌다. 머뭇거리며 그의 말에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늦춰줬던 손가락이 천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테이젤 때 느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그의 손길이 닿자 폭죽이 이는 것 같았다. 그의 손길이 마약이라도 되는 듯 누를 때마다 그의 손가락을 잡아먹듯이 쪽쪽 빨아 당겼다.
그가 그곳만을 향해 속도를 더해 가자 나도 모르게 그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맞춰 허리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들어갔다 나오려는 손가락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물어 당기며 그의 손가락을 완전하게 받아 내었다.
손가락이 누르고 내려갈 때마다 나는 점점 계단을 밟으며 호흡을 가삐 했다. 완전한 정상에 올랐을 때 나는 안에 들어온 손가락을 꽉 물며 파정을 맞이했다.
“흐읏, 하아 하아…….”
가쁜 호흡의 그의 귓가에 고스란히 남겼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봇물 터지듯 다리 사이에 흐르는 애액이 금세 빗물과 함께 섞여 떨어졌지만 밀지에 가득 찬 꿀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여운의 절정으로 아직 떨고 있는 안을 한두 번 휘저은 그가 손가락을 빼내며 내 속옷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속옷이 내 몸 사이에 긴 은실을 늘어트리면서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가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테이젤이 그의 행동을 도와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끈을 풀어 나갔다. 속옷이 완전하게 벗겨지고 이제 내 몸에 걸쳐진 것이 실오라기 하나도 없게 되자 눈앞에서 그가 천천히 허리춤의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아. 난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완전히 발가벗은 나에 반해 그들은 모든 옷을 다 갖추고 있었다. 몸에 있는 단추라는 단추는 다 여민 그가 보이자 목까지 얼굴을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이게 미친 짓임을 알고 있었다.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무려 적의 수장인 이들과 섹스를 하고 있다니, 그 어떤 이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만약 누구 한 명이라도 낌새가 이상해서 이곳에 들어오면 내가 죽는 건 시간 문제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직,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