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먹고 싶어-2화 (2/86)

2화

남자의 그 두 마디에 기사들의 대열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를 필두로 무자비한 살육이 행해졌다.

아무리 감정이 없다고는 하지만 처음으로 보는 살육의 현장은 보는 것만으로도 몸을 찔끔거리게 만들었다. 살다 살다 사람 죽는 건 또 처음 보네. 입술을 매만지며 예전 삶을 떠올렸다.

전 삶에는 사람은커녕 개 한 마리가 차에 치이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잔인한 영화라면 치를 떨며 거부하던 부류였던지라 스릴러나 공포물은 웬만하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 나에게 눈앞에서 피 냄새를 뿌리며 싸우는 장면은 아무리 종족이 달라졌다고 한들 온몸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그저 수족관에서 건져 낸 물고기를 해체하는 것을 보는 심정으로 보고 있었건만 점차 시간이 지나니 속이 울렁거리며 토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심하지는 않았지만 전생에서 강도 높은 스릴러 영화를 보면서 치밀었던 감정과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아, 이게 바로 사람 죽는 모습이구나.

한참을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다 이내 두 눈을 완전히 감아 버렸다. 사람들이 고기는 즐겨도 도축의 장면은 꺼리듯이 나 또한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인생이란 참 덧없구나. 내가 죽었던 바로 그때처럼. 눈을 감았는데도 좀 전에 보았던 영상들의 잔영이 남았고, 눈앞에 펼쳐지는 사지가 잘리는 장면은 너무나도 생생해 몸을 절로 떨렸다.

“이젠 포기할 때도 됐을 텐데. 보기보단 끈덕진 놈들이군.”

눈을 감고 있어 모습을 볼 순 없지만 흰 머리칼을 소유한 남성의 목소리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와, 목소리도 끝내준다. 역시 내 목표물다웠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괜히 흐뭇해져 엄마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떴다. 듣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지는 기분이었지만 역시 시각이 빠져서는 맛이 충족되질 않는 법. 나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마자 다시 그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헉.”

하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시체들의 육신에서 흘러나온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으며 군데군데 잘린 팔다리들이 볼품없이 너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원래 자리인 몸통 또한 당연스럽게도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쇠붙이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나지 않더라니. 무언가 내뱉으려던 입술은 이내 힘없이 다물어졌다.

아, 배고픔에 소리를 지를 힘도 없어.

이런 상황에서도 배고픔을 느끼는 내가 처량 맞게 느껴지면서도 우습게도 호기심이 눈을 재빠르게 돌렸다. 스쳐 지나가며 보았던 살덩이들의 단면이 놀랍도록 매끄럽게 잘려 있어 신기했지만 그것에 딱히 흥미가 일지는 않았다.

어찌 사람들이 조각조각 잔인하게 분해된 장면에 시선을 올곧게 바라볼 수 있을까. 남자의 정기를 식사로 하는 우리들조차도 징그러움엔 절로 눈살을 찌푸린다. 애초에 겉모습이 비슷하다보니 마냥 편안하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순간 어질한 느낌과 동시에 미간을 찌푸려졌다. 곧 있으면 원 없이 밥을 먹을 텐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밥맛이 확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눈동자를 아래로 돌렸다. 그리고 순간 내 앞으로 굴러온 머리와 내 시선이 마주쳤다. 내 앞으로…… 내 앞으로?

난 모습을 제대로 감춰야 한다는 자각도 잊은 채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어, 엄마…….

나는 있지도 않은 엄마를 애타게 불렀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죠? 곧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 같은데요.

머릿속을 재빠르게 뒤지며 엄마가 그동안 전수해 주었던 생존법에 대해 재빠르게 훑었지만 굴러온 머리가 다시 천천히 굴러 지면에 코를 짓누를 때까지 적당하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럴 만도 하지.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엄마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정기를 어떻게 먹느냐에 대한 것이었지, 전장 시에 살아남는 방법이 아니었으니까!

망했네. 망했어요. 이런 건 저한테 안 가르쳐 주셨잖아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 버리고 가시다니! 엄마를 보게 된다면 감동의 포옹이 아닌 사랑이 담긴 따스한 손바닥을 먼저 내밀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한담? 머릿속은 새하얗게 질려 버린 지 오래였고 두 눈에는 것은 동강 난 머리밖에 보이질 않았다.

너도 곧 이 꼴이 될 거야. 일순간 너부러져 있는 머리가 빈정대듯이 말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 건 절대로 내가 바라던 결과가 아닌데…….

“너, 누구야.”

기척은 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아주 쉽게 발견했다. 내가 무어라 대답도 하기 전에 내 두 팔은 웬 장정에 의해 단단히 제압당했다.

어째 불길한 예감은 한 치를 벗어나지 않나. 가는 비명 소리 한 줄기 뱉어 보기도 전에 질질 끌려가 그 남자 앞에 무릎을 꿇렸다.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그를 덮친 침입자들은 대강 정리가 끝난 듯싶었다. 그 말은, 모든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 그냥 지나가던 행인인데요…….”

최대한 신경에 거슬리지 않게 조근거리며 말했으나 그게 오히려 남자의 심기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그는 인상을 그으며 나를 쏘아보았다.

으으. 으아아. 밥, 밥이 노려본다. 내 식사가 나를 째려봐!

어떻게든 좋은 인상을 심어 줘야 할 판에 첫인상부터 무섭도록 마이너스로 치닫는 것이 느껴졌다. 망했어. 다시 한 번 더 입술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말해. 누가 널 보냈지?”

“보내다니요! 저는 그냥 자발적으로 이 길을 지나던 것, 뿐인데요…….”

크게 외치다가 그가 한쪽 귀를 틀어막자 서서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을 끝마쳤다. 이런 식이라면 어떤 말을 해도 안 들어줄 것 같았다. 이럴 거면 왜 물어봤데? 사람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 그의 태도에 화가 나다가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엄마, 구해 주세요. 엄마, 엄마! 속으로 울부짖고 겉으로 울상 지으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아. 식사는 내게 그저 사치였나 보다. 이리 허망하게 갈 목숨이었던 걸 왜 난 몰랐을까.

“그 말을 나보고 지금 믿으라고? 믿을 만한 증거라도 있어?”

“믿지 말라는 증거도 없잖아요? 전 정말 억울해요! 정 못 믿으시겠다면 제 짐을 다 뒤지셔도 좋아요. 정말 진짜 결백해요. 전 그저 길을 지나던 것뿐이라고요. 전 몸 쓰는 건 전혀 못 한단 말이에요.”

억울해서 자꾸만 울음이 터져 나오려 했으나 가까스로 참았다. 말로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소용없는 일이 눈물 바람에 해결될 일은 없을 테니까.

배는 고프고 포박되어 있는 손목은 아리고, 그냥 성질대로 다다다 쏘아붙이고 달아나고 싶었지만 내 목숨 아까운 줄은 알아서 잠자코 있었다.

진짜 이번 생엔 이리 쉽게 죽고 싶지 않단 말이다. 내가 무슨 대단한 부귀영화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이 외모를 이용해 잘생긴 남자 한 명 꼬여 애 낳고 잘 살고 싶다는 거 그거뿐인데, 왜 방해하는 거야.

“가방 압수해.”

“예!”

하란다고 진짜 할 줄이야. 당혹에 물들어 저 안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 더듬어 생각해 봤지만, 잘 생각나지 않았다. 엄마가 가방을 싼 것 같은데…….

“헉!”

가방 속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 보던 남자 한 명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한 발짝 뒤로 물러냈다. 왜 저래? 의아하게 쳐다보던 난, 그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돌았어요? 왜 남의 속옷은 꺼내 보고 그래요!”

그랬다. 그건 속옷이었다. 그것도 엄마의 취향이 반영돼 수위 장난 아니게 야시시한 속옷. 그걸 꺼내 본 그는 뒤이어 가방을 계속해서 뒤지더니 별반 다를 것 없는 나머지 속옷들을 보고는 얼굴이 더더욱 벌게졌다.

너무 빨갛다 못해 마치 성난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렇게 꿋꿋이 가방 수색을 끝냈다. 내 목표물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낮게 웃고 있었다.

“여, 여자 속옷 처음 봐요? 왜 웃어요!”

“아니, 취향이 참 특이한 것 같아서.”

“제 취향 아니…….”

구태여 변명을 덧붙이려다 왜 내가 이런 얘기를 하고 있나 싶어 입을 꾹 다물었다. 수치스럽기도 하고 죽음이 두렵기도 해서 당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위해를 가할 만한 물건은 찾을 수 없습니다.”

가방 수색을 마친 남자의 얼굴은 달아올라 좀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허나 그건 나중 문제고 야무지게 결박된 팔 다리의 줄을 푸는 것이 우선이었다.

“것 봐요. 전 정말 아무 의도도 없어요. 막말로 제가 진짜 그쪽을 잡으러 왔다면 이렇게 순순히 잡혔을까요? 당연히 잽싸게 피했겠죠!”

“그래, 그것도 그래.”

그는 고요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주친 검정색의 두 눈동자가 빨려 들어갈 것처럼 기묘했다. 역시 내 첫 식사감이 될 만했다. 이대로 헤어진다면 두고두고 생각날 게 뻔했다.

“하지만 이대로 보내 줄 순 없지.”

남자의 말에 상반된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생존의 위협, 또 하나는 생존의 환희. 남자가 나를 곁에 두었다가 죽일 가능성과 내가 그를 먹어치워 허기를 채울 수 있다는 두 가지의 가정이 공존했다.

“아직 좀 더 지켜봐야겠어. 묶어라.”

“저, 저기요! 이것 좀 안 묶으면 안 돼요? 얌전하게, 사고 안 치고 조용히 있을게요, 네?”

엄마가 가르쳐 준 남자를 유혹할 때 사용하는 눈빛을 보냈다. 허나 그는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매몰차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 진정한 성취의 기쁨이란 과정의 힘겨움에서 나오는 것이라 했다. 지금은 단지 이후에 물밀 듯이 몰아닥칠 성취감을 위한 시련일 뿐이었다. 그렇게 되도 않는 자위를 하며 남자들에게 내 손목을 맡겼다.

남성의 정기라는 것은 단지 접촉만으로도 일정량 채워지기 때문에, 관계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극한 허기는 해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기운을 차리려면 누군가와 제대로 된 하룻밤을 지내야 했다.

……아, 살기 힘들다.

배고파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복으로 인한 죽음은 수치스러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고 했건만 막상 한계까지 겪으니 생각이 달라졌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혀끝에 대롱대롱 매달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왜 바로 앞에 음식이 있는데도 먹질 못하니! 물론 내가 말하는 음식들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의미의 것이었다.

태양이 물러가고 교교한 달빛이 음영을 드리우는 밤이 되자 그들은 마차를 세우고 야영할 준비를 시작했다.

손이고 발이고 묶여 버려 운신이 불가한 나는 그저 수레에 몸을 기대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제법 바쁘게 움직이는 그들을 눈으로 좇을 뿐이었다.

큰 돌과 자갈이 비교적 적은 터에 자리 잡은 그들은 곧 장작을 모아 불을 붙인 후 큰 솥을 걸었다. 그리곤 사냥을 해서 잡아 온 고기를 슥슥 손질해 굽고 다른 한쪽에선 스프를 끓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앞에 갓 만들어 따끈따끈한 식사가 대령 되었지만 난 입도 댈 수 없었다.

이 밥이 아니라 다른 밥이 필요하단 말이다, 나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