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내 손자가 어디가 어때서? (104/114)


104화 내 손자가 어디가 어때서?
2023.07.30.


병원에 다녔던 기록과 검사 결과, 짧은 소감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보내는 메시지 등등 얄팍한 수첩은 부지런하고도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산모 수첩이 다소 요란했다면, 연이어 펼친 일기는 단정해서 지극히 일기다웠다.

「20○○년 11월 26일

입덧도 채 가시질 않았는데, 갑자기 복숭아가 먹고 싶어졌다. 말캉한 복숭아 딱 한 입만 먹으면 울렁거리는 속이 가라앉을 것도 같은데…….

우리 아기는 엄마 배 속이 따뜻해서 지금이 겨울 문턱인 줄도 모르나 보다.」

「20○○년 11월 29일

백화점 과일 코너에 가 봤지만, 눈을 씻고 봐도 복숭아는 없었다. 무거운 배를 안고 황량한 겨울 길을 뒤뚱거리며 걷는데 갑자기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솔이에게 전화해서 복숭아가 먹고 싶다면서 엉엉 울어 버렸다. 지나고 생각하니 너무 우습다.

내가 불쌍했던지, 그날 밤 솔이가 복숭아 통조림을 사 왔다. 태어나 그렇게 맛있는 복숭아 통조림은 처음이었다.」

한 편의 일기를 읽어 내린 정혁은 다시금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20○○년 2월 20일

매일 잠에서 깰 때마다 외계인처럼 튀어나온 배를 보며 깜짝 놀라곤 한다. 그만큼 우리 아기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말이겠지?

아가야, 넘어지지 말고 천천히 오렴.」

「20○○년 5월 17일

늦은 꽃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기천사 강림.」

「20○○년 5월 25일

수유를 하다가 문득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는 고추밭에 가 봐야 한다며 야멸차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한참이나 끊긴 전화음을 듣는데 눈물이 뚝뚝 흘렀다.」

「20○○년 6월 15일

아기가 나를 보고 방긋 웃었다. 너무 신기해서 꽃분 씨한테 말했더니, 신생아가 어떻게 웃냐면서 배냇짓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갓난아기 때 이런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거다.

이상하다. 분명 날 보고 활짝 웃는 것만 같았는데…….」

육아일기라고 보아도 무방할 기록물에는 유시우가 태어나기 얼마 전부터 태어나고 6개월 정도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이후로는 차츰 뜸해지더니 뒷부분은 아예 깨끗했다.

뒤집고 구르고 기고……

정혁은 아기가 성장해 나가는 일상의 과정과 다정이 느꼈을 감격을 잠잠한 눈길로 읽어나갔다.

그러다가 돌연 낡은 일기장에 얼굴을 묻었다. 종이 냄새가 폐부를 깊숙이 가르는 순간 어째선지 숨을 쉬는 게 고통스러웠다.

그곳에 적힌 글씨 하나하나가 날아와 박힌 것처럼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리고 쓰렸다.

유다정 너는…….

이러려던 게 아니다. 이런 결말을 바란 건 아니었다. 만약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힘없이 축 늘어진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 * *

방 안을 안절부절 서성이던 선영은 손안에서 울리는 진동을 느끼고 재빨리 휴대폰을 귀에 붙였다.


“어떻게 됐어?”

『민서영 씨, 방금 출국했습니다. 일단 호주 경유해 유럽으로 행선지를 잡겠다고 했습니다.』

민서영. 토끼반 담당 교사였다. 선영의 입가에 한결 편안한 웃음이 물렸다.


“수고했어, 표 비서. 참, 김영준은 어디로 갔어?”

『그게…… 이사장님. 김영준 씨는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뭐어?! 그게 무슨 말이야?!”

선영이 이마를 찰싹 짚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연락이 됐는데, 약속 시간이 되자 휴대폰도 끄고 완전히 잠적했습니다.』

“잠적했다고 하면 다야?! 그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헛짓거리하기 전에 빨리 찾아내!”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은 선영은 시근대며 숨을 골랐다. 그러다가 천하 태평한 딸을 향해 매섭게 눈을 부라렸다.


“너한테 연락 온 거 없어?”

손톱 손질을 하던 현아가 힐끔 눈길을 들었다.


“누구?”

“김영준 말이야! 공항에 안 나왔다잖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이고, 탄식하며 선영은 가슴을 쳤다. 딸애가 쳐 놓은 사고를 수습하려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얌전히 있으라 신신당부하고 이사장단 회의를 마치고 와 봤더니 유치원이 발칵 뒤집혀 있지 뭔가.

지난번 천막 붕괴 사고 때문에 경찰만 봐도 등골이 오싹해지는데, 또 경찰이 나와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제 딸 같지 않게 기발하게 머리를 쓴 건 사실이나, 위험도가 지나쳤다.


“넌 왜 시키지도 않는 짓을 해서…….”

말해 무엇하랴. 하다 말지만 그조차도 현아는 듣기가 싫은 모양이다.


“엄마가 그랬잖아. 애를 데려와야 한다고. 내가 애 뺏어다가 할머니한테 데려다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엄마가 알아봤는데, 정혁이가 진작 데려갔다더라. 어젯밤 윤 비서에게 전화해 넌지시 떠보니, 가자마자 애 아빠가 데려갔다는 거야.”

하, 현아는 기가 찬 듯 눈알을 반원으로 굴렸다.


“그 할망구 이상해. 내가 검찰 쪽에 손 좀 써 달라고 했더니, 딱 자르는 거 있지? 한마디만 해 주면 그 X 콩밥 먹이는 건 일도 아닌데!”

“그 할망구가 언젠 협조적인 거 봤어? 가만, 이럴 땐 선수를 쳐야지.”

“어쩌려고?”

“직접 손을 못 쓰면 간접적으로 하면 되잖아. 있어 봐. 전화 한 통이면 검사들이 알아서 움직이게 되어 있어.”

선영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은 길게 가지 않았다. 찌푸린 선영의 입가에 대번에 웃음이 번졌다.


“어머, 변 국장님 안녕하시죠? 잘 지내긴요, 유치원 일로 시끄러워 죽겠어요. 네에.”

 

* * *



“말했잖아요. 당분간 업무는 집에서 본다고. 하던 대로 민 실장은 사무실에서 업무 지원해 주세요. 네, 네…… 잠깐만.”

정혁은 통화를 중단하고 목덜미에 휴대폰을 끼웠다. 그러곤 안간힘을 쓰며 찌푸린 시우의 미간에 눈길을 집중했다.


“유시우. 할 수 있어. 남자는 중간에 포기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용기를 북돋워 주자 포기할 듯 말 듯 울상을 짓던 시우가 콧잔등을 잔뜩 찡그렸다. 정혁의 콧잔등도 따라 찡그려졌다.

용을 쓰길 잠시, 퐁 하고 울리는 맑고 청아한 물소리. 눈이 마주치자 시우가 부끄러운 볼을 하고 배시시 웃는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다 했어?”

시우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전무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변기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정혁은 퍼뜩 휴대폰을 귀에 붙였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대리인 선임 건은 전자 문서로 서명할 테니까 메일로 첨부해요. 코스메틱 지분은 지승훈한테 전량 넘기기로 한 것처럼 계약서 꾸려요. 네. 회장님한테 압박 들어오는 건 적당히 무시하세요. 이수경 변호사 영입 건은 민 실장이 직접 사인받으세요.”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찾아보라던 그 사람, 이름이…….”

『김영준 씨 말입니까.』

“아, 김영준. 아직인가?”

『아직은 행방이 묘연합니다. SNS 활동도 접고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알려진 얼굴이라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시간 없으니까 서둘러요. 꼭 찾아야 돼요.”

통화를 마친 정혁은 미심쩍게 일그러진 눈가를 쓸었다.

토끼반 교사와 체육 교사. 시우가 지속적인 아동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한 두 명의 증인이었다.

한데 이상하지. 이쪽 변호인단이 꾸준히 접촉을 시도하는데, 토끼반 교사는 사건이 일어나고 나흘 만에 유치원에 사직서를 냈다. 뜬금없이 해외 유학을 떠났단다.

체육 교사는 어떻고. 갑자기 잠적해 그 역시 오리무중이었다.

* * *

구워진 식빵이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토스트기 위로 튀어 올랐다.

정혁은 집게를 이용해 꺼낸 식빵을 시우의 앞접시에 얹어 주었다. 그걸 빤히 보고 있던 시우가 고개를 든다. 할 말 많은 얼굴이었다.


“왜?”

“어! 탄 거…… 탄 거 먹으면 안 되는데! 엄마가…….”

“탄 거 아니야.”

그러자 시우가 제 접시를 빤히 보며 눈을 깜빡이다가 다시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린다.


“까만데!”

“까만 게 아니라 바짝 굽는 게 캘리포니아 스타일이야. 전문 용어로 겉바속촉이라는 거야.”

“…….”

“먹어 봐. 한 번도 안 먹어 본 어린이는 봤어도 한 번만 먹어 본 어린이는 본 적 없어.”

“…….”

강권해 보지만. 시우는 말똥말똥 눈만 깜빡인다. 제 아들이지만, 이럴 땐 약간 얄밉다. 미움을 담아 빤히 주시하던 정혁이 한숨을 쉰다.


“기다려.”

그러곤 잽싸게 토스트기에 빵을 한 장 더 집어넣는다. 겉바속촉으로 태운 빵은 제 앞으로 옮긴다.


“먹어.”

다시 시간이 지나 밍밍하게 구워진 빵을 접시에 얹어 주며 말하지만 까다로운 요구는 끝이 없었다.


“어…… 우유는요? 목 막히니까 우유 먼저 마셔야 돼요.”

“…….”

아들을 보는 정혁의 눈이 퀭했다.

* * *

가을로 접어든 계절은 냄새부터 달랐다.

외출을 위해 시우는 오전 내내 입고 버티던 파자마를 벗고 스웨터를 껴입었다. 스웨이드 소재의 바지까지 매치하자 가을 남자가 따로 없었다.

정오를 넘겨 집을 나선 정혁은 대기하고 있는 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시우와 함께 달려 도착한 곳은 아동심리 프로그램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클리닉이었다. 며칠 전 병원 검사와 더불어 수경에게 소개를 받은 곳이었다.

수속은 민 실장이 밟아놓은 상태였다.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걱정은 없지만 혹여 있을지 모를 문제를 대비해 당분간 시우는 유치원 대신 이곳에서 놀이를 통한 심리적 안정 치료를 받을 예정이었다.


“안녕하세요! 유시우입니다!”

시우가 아동심리 전문가를 향해 씩씩하고 공손하게 인사했다. 동그란 안경을 쓴 40대 여자 선생님은 웃는 모습이 푸근하고 정감 넘쳤다.


“시우야, 안녕. 우리 시우는 엄청 씩씩하구나.”

“어…… 네! 시우 씩씩해요.”

“정말 그렇구나. 시우는 아빠를 닮아서 씩씩하고 잘생겼구나?”

“어!”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던 시우가 고개를 휙 젖히고 정혁을 보았다. 그러고는 곧장 선생님을 향해 말했다.


“아니에요. 잘생긴 건 아빠 닮고 씩씩한 건 엄마 닮아서 그래요! 그치, 아빠아!”

정혁은 퀭한 눈길을 내렸다. 이렇게 씩씩한데 심리 치료가 필요할까 싶다.

* * *

시우를 클리닉에 맡긴 뒤 경찰서로 향한 정혁은 유치장을 향해 익숙한 양 걸었다.

처음엔 아이가 보고 있다는 핑계로 접견 장소를 서장실로 변경했지만, 편의 봐주기가 주특기인 서장의 대우가 이후로는 영 뜨뜻미지근했다.

그도 그럴 게 다정은 여전히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 중이었고, 지인과의 접촉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변호사 접견을 제외하곤 모두 거부당했다.

그나마 판사 사칭으로 신고한다는 협박이 아직까지는 통해서 하루에 한 번은 철창을 사이에 둔 채 다정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언제나처럼 철창에 바짝 다가섰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변호사 없이 조사에 응할 필요 없어.”

“네, 알고 있어요.”

다정이 애써 방싯 웃는데 어째선지 어제보다 더 수척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시우는요?”

“클리닉에. 괜찮아 보이는데, 그래도 그렇게 하는 편이 낫다고 해서.”

“누가요?”

“이수경.”

다정은 살풋 찌푸려 웃었다.


“이젠 호박마녀라고 안 하는 거예요?”

“보니까 이젠 마녀가 아니더라고.”

정혁도 킥 소리를 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시우는 잘 먹고 잘 자요?”

그 대목에서 정혁은 웃음 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다정. 네 아들 까다로워서 못 키우겠어.”

다정은 까르르 웃었다. 유치장에서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였다.


“이럴 때만 내 아들이에요?”

철창 사이로 뻗은 손이 다정의 뺨을 보듬어 쥐었다.


“날이 쌀쌀해. 춥진 않아?”

“여기 경찰서 신축건물이에요. 난방 잘 되니까 걱정 말아요.”

걱정을 잠재우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던 정혁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시우 검사 결과 나왔어.”

웃음기 어린 다정의 얼굴에 긴장이 스쳤다.


“짐작하는 게 맞아요?”

“맞아.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어.”

다정은 절망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감쌌다. 어린아이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화가 치밀었다.


“신경과민이나 불면증 환자들한테 주로 처방되는 약인데, 다행스럽게도 검출된 양은 미미하대. 부작용도 없다니까 염려 마. 그리고 인조손톱 말인데…….”

정혁은 오현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조손톱의 검사 결과에 대해 짧게 설명을 마쳤다.

다정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수용할 건 수용하고 앞으로를 생각해야 할 때였다.


“학대 정황을 목격했다는 증인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어.”

“알고 있어요, 변호사가 말해 줬어요.”

항시 다정이 불안하지 않게 부정적인 면은 전부 배제하고 사건 진행 과정을 모조리 설명해 주라 일러둔 참이었다.


“조금만 견뎌. 변호인들이 증인들을 최대한 압박할 거야. 무고나 위증의 경우 크게 처벌받는다는 걸 강조할 거랬어. 잘될 거야.”

증인들이 모두 잠적했다는 건 모르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굳이 알릴 필요는 없을 테다.

* * *

정혁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유다정 씨. 잠깐 가시죠.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철커덩. 유치장의 쇠창살 문을 열어젖히며 담당 경찰관이 말했다.

다정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변호사 접견도 끝나고 정혁도 다녀갔는데 누가?

게다가 철창 밖으로는 못 나가게 하더니, 어쩐 일로 담당 경찰관이 지난번 갔던 서장실 쪽으로 방향을 튼다.

예상했던 대로 담당 경찰관이 서장실 문을 노크했다. 그러자 안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어오라 말한다.

안으로 들어서자 경찰서장 장만수가 소파 곁자리로 물러나 있다. 상석은 백발의 노인에게 내어준 지 오래였다.


“그럼 말씀 나누십시오.”

첫날 시우가 왔을 때를 빼고 서장실을 허락하지 않던 장만수 서장이 굽실거리며 또다시 제 방을 양보하고 밖으로 나갔다.

조금 놀란 채로 엉거주춤 섰던 다정은 꾸뻑 허리를 접었다.


“안녕하셨어요, 회장님…….”

“그래.”

인자한 눈길을 뿌리는 박 회장의 음성이 나긋나긋했다.


“제가 사정이 있어서 이런 몰골로 인사를 드려 죄송해요.”

박 회장은 눈썹을 들추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앉으라는 눈짓만 해 보였다.

망설이던 다정은 이내 그녀의 대각선 자리로 가 앉았다.


“어떠냐?”

“괜찮습니다.”

“피차 안부 물을 사이는 아니니, 본론만 말하마.”

“그러세요.”

“정혁이가 결혼하자고 했다는 게 사실이냐?”

다정은 긴장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여의치 않은 상황을 알면서 여기까지 찾아와 던지기에 질문이 너무 뜬금없었다.

뭐라고 대답하는 게 현명할까. 돈 많은 남자 발목 잡을 생각으로 아이까지 낳아서 기르고 있다는 손가락질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었다.


“예, 사실입니다. 전…… 차정혁 씨와.”

“내 손자가 결혼하자고 애원하고 매달렸는데도 걷어찼다는 것도 사실이고?”

“……애원이라고까지 할 만한 건 없습니다. 걷어찼다는 말도 가당찮고요. 하지만 결혼하자는 말을 거절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심려하지 마세요.”

“아니, 왜에?”

“예?”

“왜 거절을 하느냐고! 그 녀석이 어디 많이 모자란 게야? 인물이 네 눈에 안 차니? 아니면 말 못 할 하자라도 있는 게야?”

다정은 냅다 손사래를 쳤다.


“아, 아뇨! 차정혁 씨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냥 제 문제예요.”

“아 글쎄! 뭐가 문제기에 내 손자를 퇴짜 놓느냐 묻지 않니. 내 손자가 어디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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