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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호랑이 아저씨 (28/114)


28화 호랑이 아저씨
2022.11.06.


해가 어둑어둑 저물 무렵, 정신없이 경찰서 안으로 뛰어든 다정은 더 나아가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경찰서 내 벤치에 앉아 두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 시우를 보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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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아, 괜찮아?”

뒤따른 도준과 솔이가 부축해 일으키려 하지만 다정은 왈칵 눈물부터 쏟았다. 저리 무사하다는 게 꿈만 같아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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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엄마다아!”

엄마를 발견한 시우가 벤치를 훌쩍 뛰어내렸다. 다정을 향해 달려오는 천진한 웃음이 해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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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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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앙! 우리 애기 어디 가써써어엉!”

아들을 와락 끌어안은 다정은 그 자리에서 어린애처럼 엉엉 울어 버렸다. 정말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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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왜 그래요?”

평소 본 적 없는 엄마의 대성통곡에 해맑기만 하던 시우가 입을 비죽거렸다.

울먹이는 커다란 눈에 물기가 소용돌이치더니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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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음므아아아항! 시우가 잘못해쩌여엉! 으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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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어엉! 엄마 놀라짜나아하아앙. 우리 애기이이!”

엄숙하던 경찰서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애달픈 모자 상봉을 지켜보며 누군가는 흐뭇하게 웃고, 또 누군가는 울컥해서 눈시울을 적셨다.

모자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없자 곤란해하던 담당 경찰관이 도준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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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영상에서 유시우 군을 데려간 사람을 발견하고 동선을 추적한 끝에 찾았습니다.”

안도감에 젖었던 도준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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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잡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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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상착의를 가지고 탐문 수사를 하던 중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찾았습니다.”

울음을 쏟던 다정은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경찰관에게 눈길을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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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요?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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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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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누가 아이를 데려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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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본인은 아이 삼촌이라고 주장을 하는데, 일단 확인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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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이라뇨?”

어리둥절한 다정의 눈길이 경찰관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미처 눈물이 마르지 않은 눈에 한 남자가 잡혔다. 캡 모자를 눌러 쓴 채 씨익 웃는 남자를 본 순간 다정은 호흡이 멎고 말았다.

삼촌…… 그런 단어가 어울리는 인간이었던가.

서남식. 엄마의 두 번째 남편의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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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양반. 내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죄 없는 사람 잡아 와서 귀찮게 하고 말이야! 민중의 지팡이가 이래도 되는 거요?!”

경찰관을 향해 따지던 남식이 억울하다는 듯이 다정에게 눈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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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다정아. 네가 말 좀 해 줘라. 나 삼촌 맞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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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서남식! 너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나!”

눈을 부릅뜨고 튀어 나간 솔이가 남식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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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오랜만에 만나서 솔이 너까지 오빠한테 왜 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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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빠 같은 소리 하네! 너 이거 유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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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애먼 사람 잡네. 내가 유괴할 것 같으면 멀리 도망치지 왜 다정이네 아파트 놀이터에 있었겠냐?”

남식이 나름 항변하지만 솔이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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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똑바로 말해! 우리 시우 데려가서 무슨 짓 하려고 했어?! 네가 콩밥을 덜 먹었지? 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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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너무 그러지 마러. 내가 애를 억지로 끌고 가길 했냐, 아니면 때리기를 했냐. 그냥 다정이 기다리면서 조카랑 좀 놀아 준 게 죄야? 경찰 양반이 말해 보슈. 그게 죄가 되는 거요?”

그쯤 되자 담당 경찰관의 표정도 애매해졌다. 광분한 솔이가 남식의 옷깃을 쥐고 거세게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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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누가 조카야! 입을 확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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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그만두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둘 다 공무집행 방해입니다.”

꾸짖듯이 말하며 두 사람을 갈라놓은 경찰관이 다정에게 다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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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분. 유시우 군 삼촌이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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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이 속고만 살았나.”

답답하다는 듯이 혀를 찬 남식이 주머니 안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모서리는 둥글게 마모되고 구겨진 흔적이 있는 오래된 한 장의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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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쟤 어릴 때 사진인데, 봐봐 똑같잖아. 내가 쟤 오빠라니까.”

경찰관이 눈에 힘을 주고 사진 속 얼굴과 다정의 얼굴을 대조했다. 그가 다정에게 사진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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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진입니까? 확인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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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설이던 다정은 사진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이 사정없이 떨렸다. 그 바람에 그만 허공에서 사진을 놓치고 말았다.

낙엽처럼 팔랑거리며 발치에 떨어진 사진을 발견하고 시우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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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다! 이거 삼촌, 이건 엄마.”

사진 속 인물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 가리킨 시우가 엄마를 향해 방싯 웃는다.

다정이 창백하게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도준이 사진을 주워 건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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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아. 확인해 봐.”

다정은 사진 속 세 사람의 얼굴을 차례대로 보았다.

꽃다발을 들고 굳어 있는 자신과 무뚝뚝한 얼굴로 우측을 지키는 정애. 그리고 반대편엔 삐뚜름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서남식.

고등학교 졸업식 날 찍은 사진은 다정에게 추억이 아닌 끔찍한 기억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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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삼촌이 아이스크림 사 줬어요. 시우 미끄럼틀도 백 번 탔어요.”

울어서 빨개진 코를 하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시우가 활짝 웃으며 만세를 불렀다. 그러기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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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근데 할머니는? 삼촌이 할머니 보러 간댔는데.”

시우가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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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분?”

경찰관의 부름에 다정은 손안에서 낡은 사진을 우그러트렸다. 그리고 가까스로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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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진 먼 친척이라. 죄송합니다.”

경찰관은 가볍게 한숨을 뱉었다. 큰 사고 없이 사건이 종결되어 다행이라는 듯 이어진 그의 말투가 홀가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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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아이도 찾고 오해가 풀렸으면 됐죠. 서남식 씨도 이만 돌아가셔도 됩니다.”

다정은 시우의 손을 잡고 뒤도 보지 않고 경찰서를 나섰다. 그런 다정을 남식이 빠른 걸음으로 뒤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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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다정아!”

주차장까지 따라온 남식이 다정의 팔을 붙잡았다. 그 장면을 본 솔이가 펄쩍 뛰며 남식을 손을 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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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놈아! 어디다 손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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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기집애 성질머리하고는.”

솔이의 도끼눈과 마주한 남식이 혀를 차며 한 걸음 물러났다. 잠자코만 있던 다정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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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이야. 시우 데리고 차에 가 있어.”

다정의 목소리는 언제보다 침착했고 또 무거웠다. 남식과 다정을 번갈아 보며 솔이가 망설이는 듯 하자 도준이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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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말고 시우랑 먼저 가 있어.”

그래. 도준이 있으니 별일 없을 거였다. 그제야 마음을 놓은 솔이는 시우와 함께 돌아섰다.

시우가 한참 멀어진 걸 확인한 다정이 돌연 남식의 가슴팍을 퍽 밀쳤다. 주춤 물러난 남식이 얼굴을 찌푸리며 엄살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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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아. 살살 좀 해라. 오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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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 부르지 마! 소름 끼쳐.”

다정은 세상 모든 경멸과 혐오가 배어난 눈으로 남식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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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섭하게 왜 이러냐?”

툭.

우그러진 사진이 남식의 얼굴을 때리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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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왜 이 사진을 가지고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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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는? 우리 추억이 담긴 사진인데 소중히 간직해야지.”

사진에 긁힌 눈가를 문지르며 남식이 킥킥 웃었다. 그 입가에 물린 웃음에 소름이 돋았다.

추억? 그날 제가 무슨 짓을 했는데.

일그러진 다정의 눈가에 벌건 열기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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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거 내밀면서 할머니 보러 가자고 우리 시우 꼬드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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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겸사겸사. 조카 얼굴도 보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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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대체 원하는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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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거?”

마치 그 말을 기다린 것처럼 남식의 만면에 여유가 묻어났다. 잠시 이죽거리며 뜸을 들이던 남식이 용건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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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좀 주라. 이천만 원.”

다정은 황당한 표정으로 헛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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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런 돈이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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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왜 이래? 너 사는 집 네 명의잖아. 그거 몇억은 하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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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대출받은 거야. 매달 대출금 갚는 것도 빠듯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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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능력 되니까 그렇게 좋은 데 사는 거 아니냐. 넌 이 오빠가 불쌍하지도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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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하나도 안 불쌍해! 설사 이천이 아니라 이억! 이십억이 있대도 너한테는 한 푼도 못 줘! 아니, 안 줘! 또 내 아들 근처에 얼씬대기만 해! 그땐 진짜로 죽여 버릴 거야!”

잔뜩 흥분한 다정의 얼굴에 진심으로 살기가 어렸다. 그랬음에도 남식은 끈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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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팔자 좋잖아. 좀 돕는 게 그렇게 떫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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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 네가 뭔데? 네가 나한테 뭔데? 네가 나한테 무슨 짓을……!”

차마 말을 잇지 못한 다정은 주먹을 꼭 움켜쥐었다.

이런 요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그가 용납도 수긍도 되지 않았다.

다정의 눈시울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도준이 그녀의 어깨를 돌려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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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아, 여긴 내가 정리할 테니까 그만 가. 시우 기다려.”

도준의 말에 다정은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돌아섰다.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자 남식의 한숨이 깊어졌다. 다시 다정을 따라가려 하지만, 어슬렁대는 걸음은 곧 가로막히고 만다.

빼빼한 남자가 제 앞을 막아서는 장신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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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식 씨. 오늘은 그만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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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은 뭐요? 아! 혹시 형씨가 내 매제요?”

대꾸 없이 한숨을 삼킨 도준은 긴말 필요 없다는 듯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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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돌아가시고 나중에 연락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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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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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 옷 벗자.”

집으로 돌아온 다정은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욕조에 물부터 받았다. 어딘가 날이 선 엄마의 지시에 시우는 즉각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뒤집어 들춘 옷에서 작은 머리통이 쏙 빠져나왔다. 하의까지 벗겨 욕실 바닥에 팽개친 다정은 바디워시를 듬뿍 짜 시우의 몸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이를 다루는 손길이 어딘가 평소보다 초조하고 거칠었다.

깨끗하게 씻겨야만 했다. 그 인간이 더러움이 제 아들에게 옮겨붙지 않도록.

시우를 씻겨 나와 로션까지 발라 주고 잠옷을 입힐 때였다. 쉬지 않고 움직이던 다정은 어느 순간 맥이 턱 풀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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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야. 엄마가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된다고 했잖아.”

대뜸 꾸짖는 말이 튀어 나갔다. 아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순간 치솟는 감정을 삼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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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삼촌 나쁜 사람 아닌데. 할머니 보러 간다고 아이스크림도 사 주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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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시우야. 그 사람 시우 삼촌 아니야. 모르는 사람이야. 나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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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음…….”

시우가 혼란스러운 듯 입술을 감아 물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뭔가가 울컥 치받았다. 차가운 이마를 쥐고 숨을 고른 다정은 다시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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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야. 앞으로 그 사람이 말 걸거나 같이 가자고 하면 무조건 다른 어른한테 도와 달라고 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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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눈치가 빤해 일단 고개는 끄덕이고 보는데 여전히 불안했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다. 할머니랑 엄마랑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 주니 경계가 느슨해졌을 거다.

다정은 한결 부드러운 몸짓으로 시우를 품에 꼭 안았다. 잃어버렸던 동안을 생각하면 이렇게 아들을 윽박질러선 안 되었다.

두 팔 가득 안긴 형체의 온기를 느끼자 불안과 두려움에 들썩이던 가슴도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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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우, 엄마가 했던 말 기억해? 엄마가 따라가도 되는 사람 누구누구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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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엄마랑 이모랑 대표 삼촌이랑, 또…… 꼬뿐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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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똑똑해 엄마 아들. 오늘처럼 엄마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사진 보여 준다고 따라가면 안 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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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씩씩하게 대답한 시우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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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호랑이 아저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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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아저씨?”

다정이 눈을 키우자 작은 입이 조잘조잘 설명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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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그라미 기차! 시우랑 호랑이 아저씨랑 똥그라미 기차 타고 하늘로 슝 갔잖아.”

차정혁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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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저씨가 왜 호랑이 아저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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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여기 호랑이.”

시우가 두 손으로 제 머리 좌우를 짚어 보이지만, 다정은 여전히 고개만 갸웃거렸다. 엄마라도 아이 표현을 다 알아듣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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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아저씨는…….”

뭐라 말해 줘야 할지 고민하던 다정은 이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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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아저씨도 안 돼. 앞으론 호랑이 아저씨도 따라가면 안 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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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호랑이 아저씨 나쁜 아저씨 아닌데!”

무구한 눈이 확신에 차서 외쳤다. 살며시 아랫입술을 깨문 다정의 목으로 무언가가 삼켜졌다.

어느새 시우와 자신의 삶에 이렇게까지 스며들었다. 하지만 더는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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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알아, 시우야. 호랑이 아저씨 좋은 아저씨야. 그래도 따라가면 안 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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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네에…….”

어딘가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시우는 엄마의 당부에 그러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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