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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68화 (168/171)

168화 천마의 육아일기

천마전 연무장.

어둠에 잠긴지 오래인 연무장 가운데 그녀가 있었다.

흑의 무복을 입은 금발 자안 미소녀.

백천화였다.

“후우.”

백천화는 휘두르던 검을 꽂아 넣으면서 땀을 닦아내면서 한숨을 낮게 내쉬었다.

“아직 부족해······.”

백천화의 손이 저릿했다.

신교는 강자존의 철혈율이 지배하는 곳. 백도 무림세가처럼 천마의 핏줄이 곧 후대 천마의 위에 오르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따라서 그녀의 형제자매뿐만 아니라 마도명문 칠대마종의 후기지수들, 나아가 오마(五魔)까지 전부 후대 천마를 노리는 경쟁자라고 할 수 있었다.

신교에서는 강자만이 모든 걸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천마가 천마인 이유는 신교에서 가장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천마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소교주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백천화에게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백천화의 어머니는 칠대마종의 일익인 마검종(魔劍宗) 출신 색목인이었다. 검마종은 신교 대대로 검마의 별호를 빼앗긴 적 없으며, 천마도 배출한 적 있는 마도 명문이었다.

그녀는 걸음마를 뗐을 때부터 외가인 마검종에서 제공한 영약으로 개정대법을 받아 혈도를 세척하고 근골을 재정립했으며 마검종의 절학을 이어받아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백천화의 재능은 뛰어났다. 신교의 미래를 논할 수준이었다. 신교의 후기지수들을 모두 발아래 둘 정도로 대단했다.

소교주 자리는 공석이었지만, 그녀의 압도적인 재능과 무위에 모든 후기지수가 강자존의 철혈율에 따라 굴복했다. 일각에서는 소천마라고 암암리에 부를 정도였다. 그녀의 형제자매들마저 후계자 경쟁을 포기할 정도였다. 오마(五魔)들마저 그녀의 재능에 경외를 표했다. 그녀의 외숙부인 당대의 검마도 그녀의 재능을 인정했다.

신교의 모두에게 인정받은 백천화였지만, 그녀는 전혀 만족할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

천마 백무량.

그의 등이 떠올랐다. 초대 천마와 비견될 정도의 재능과 근골을 타고 태어난 절대고수.

그녀가 태어났을 때부터 백무량은 구름 위의 고수였다. 삼류 마인에서 독문절학을 스스로 발전시켜 신교의 정상에 오른 그의 일화는 교내에서는 이미 신화가 되어 있었다.

하늘과도 같은 아버지였다.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에게는 모든 것이 무가치했다.

그녀가 여섯 살이었던 시절, 그녀가 마령심법과 마령검법을 대성해서 자랑하러 갔을 때도, 아버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때 천마가 내뱉은 말을 그녀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고작 그 정도인가.’

그때의 눈동자도 그녀는 똑똑히 기억했다.

그건 정말로 한 톨의 관심도 없는, 무감각한 눈빛이었다. 실망도 기대도 없는, 완전한 무감정이었다.

그 이후에도 똑같았다. 또래 후기지수 중에서 정상을 차지해도, 검마의 인정을 받아도, 소천마라는 별호를 얻어 아버지에게 대놓고 자랑해도.

아버지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고작 그 정도인가.’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칭찬은 바라지 않았다.

차라리 질책이라고 해줬으면 했다. 이게 뭐냐고, 좀 더 강해진 뒤에 오라고 그렇게 혼이라도 내줬으면 했다.

하지만 천마는 그마저도 않았다. 정말로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태도였다.

부정적인 반응도, 긍정적인 반응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제가 당신의 관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백천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질릴 듯이 파고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약관이 되기 전에 화경의 경지를 돌파했고, 이립이 되기 전에 현경의 경지에 올라 전대 천마의 목을 참했다.

전대미문의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열여섯에 초절정에 오른 그녀도 충분히 뛰어난 재능이지만, 아버지인 천마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그래서였던 걸지도 몰랐다.

‘천무지체라니, 위선자 정파와 비열한 사파의 후기지수를 신교로 초대한 이유도 필시 그것이겠지.’

천무지체 공동신협 유진휘.

달리는 천고일재라 불리는 천하제일기재. 백도 무림에서는 이미 그 이름을 드높이는 신진 고수라고 들었다.

몰락한 공동파의 절학을 뛰어난 오성으로 전부 복원하였고, 새로운 절학을 창안하였으며, 열다섯에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으며, 화산파 검룡 진패선과 사파의 흑사룡 위소련을 전부 격파한 천재 중의 천재.

천 년에 한 번 나오는 기재인 유진휘, 그 이름을 언급할 때마다 아버지의 눈빛에 드물게 총기가 반짝이는 걸 백천화는 몇 번이나 봐왔다.

‘어째서······.’

백천화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입술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신교제일 후기지수의 영명(榮名)을 얻었을 때도 눈길 하나 안 주던 아버지였다. 그런데 어째서, 이제 와서.

신교도 아닌 백도 정파의 후기지수에 관심을 둔다는 말인가?

‘······대체 어느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지······.’

백천화의 마음속에 들불 같은 어두운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건 질투와 시기였다.

인정은 바라지도 않았다.

칭찬도 바라지도 않았다.

차라리 질책이라도, 아니 욕이라도 한마디 듣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의 관심을 차지한 상대였다. 백천화의 마음속에 열등감의 불길이 타오르던 그때.

“백천화.”

그녀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백천화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그가 있었다.

신교의 지존, 당대 천마.

그리고 아버지인 백무량이었다. 홀연히 나타난 천마의 모습에 백천화가 즉시 오체투지했다.

“아버님을 뵙습니다.”

천마의 시야에 엎드리는 백천화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핏줄을 이은 십수 명의 자식 중에서 그나마 재능이 가장 뛰어난 자식. 그래서 대공녀의 칭호를 내렸다.

그러나 그뿐, 초월적인 재능을 보유한 천마의 눈에는 그저 조금 더 뛰어난 개미에 불과했다.

‘전혀 성장하지 않았군.’

오랜만에 봐도 그랬다. 그의 딸은 여전히 화경의 벽 따위 앞에서 헤매고 있었다.

비슷한 또래에 화경의 벽을 돌파한 유진휘나, 초절정이지만 한 수를 숨기고 있는 이철수에 비하면 비교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하찮은 재능이었다.

그녀보다 못한 다른 신교의 떨거지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원래라면 신경을 기울이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생각할 천마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철수가 했던 말이 맴돌고 있었다.

가족을 사랑해야 한다.

백천화는 지금 이상의 잠재력이 있다.

천마의 재능은 고작 그 정도인가.

같은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일어나라.”

천마의 말에 백천화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마가 품에서 비급서 하나를 꺼내 백천화를 향해 던졌다.

슈우우우우우우우우우!경력이 담긴 비급서가 백천화를 향해 섬뜩한 파공성과 함께 날아들었다.

단순한 던지기가 아니었다.

‘시험······?’

백천화의 눈동자가 떨렸다. 단 한 번도 그녀를 돌아봐 주지 않던 아버지가 그녀를 처음으로 시험한 것이다.

백천화의 심장이 뛰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몸에서 마기가 피어올랐다. 백천화가 금나수의 묘리를 응용해서 날아드는 비급서를 잡아챘다.

보이지 않는 기파가 비무장에 휘몰아쳤다. 비급서에 실린 경력이 그녀의 손을 타고 찌르르 울렸다. 반탄력이 그녀의 기혈을 헤집었다.

백천화는 고통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의 심장이 아직 두근거렸다.

‘아주 쓸모없는 건 아니군.’

천마의 시선이 딸을 향했다.

“본좌가 옛날에 쓰던 비급서다. 이제 본좌한테는 쓸모가 없으니, 네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천마의 말을 들은 백천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비급서에 적힌 글자가 보였다.

파천마황공(破天魔荒功)이라는 글자가 백천화의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행적을 전부 외우고 있는 백천화였던만큼, 그녀는 파천마황공이 어떤 무공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천마 백무량, 그녀의 아버지가 삼류 마인이던 시절부터 투마(鬪魔)의 자리를 거쳐 천마의 위에 오를 때까지 재능과 삶을 투자해 평생을 다듬었던 절학.

투마 시절 백무량의 독문절학이 거기 있었다.

“저, 절 주시는 겁니까?”

“알아서 처리하라는 거다. 원한다면 익혀도 좋다. 지금의 본좌한테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물건이니까.”

익혀도 좋다.

그 말을 들은 백천화의 시야가 흐려졌다.

비록 지금은 필요 없다고 말은 하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전수하지 않은 천마의 독문절학이다.

그런 절학을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에게 건넨 것이다. 이건 따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본인의 전인으로 삼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투마의 진전을 이어도 된다고 허락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돌아본 적 없던 아버지였는데, 그런데 어째서. 이제 와서.

백천화가 눈물을 닦아냈다.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하군.’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딸을 보면서 천마는 알 수 없는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감사 인사를 들으니 왠지 낯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신선하면서도 낯설었다.

천마는 화제를 돌렸다.

“딱히 고마워할 일은 아니다. 곧 천마지연이 열린다고 들었다. 본좌가 갈 테니, 제대로 준비하도록.”

천마는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은 뒤,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 채로 허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백천화는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그녀의 눈물이 비급에 뚝뚝 떨어졌다.

*

색마와 천마와 일대일 대담을 나눈 뒤부터는 별일 없었다.

내가 건넨 조언을 천마가 얼마나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좌우지간 마교 내전의 불씨는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말로 안 되면 다음 수단을 쓸 수밖에.

“사제, 천마무제는 어떤 대회야?”

“그건······.”

사형의 질문에 나는 사형에게 곧이곧대로 답했다.

천마무제.

천마에게 바치는 무(武)의 제전이라는 이름의 이 대회는 백도 무림의 용봉지회처럼 마도제일 후기지수를 가리는 무림대회였다.

하지만 마교답게 정파의 용봉지회와는 대회 진행 방식이 근본부터 달랐다.

정파의 용봉지회가 예선과 본선으로 나뉘어진 전형적인 토너먼트형 대회라면, 마교의 천마무제는 서바이벌이었다.

천산에 존재하는 만마곡, 그 천장단애 밑바닥에 존재하는 마경에 후기지수들을 혈혈단신으로 떨군 뒤 알아서 살아남으면서 기관진식을 돌파해 다시 지상까지 올라온다.

그것이야말로

문제는 만마곡 아래 마경은 오랫동안 마기가 모인 탓에 흉포한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문자 그대로 마경이라는 게 문제인데.

나야 동창 요원 시절 각종 생존술을 배웠으니 괜찮지만, 사형이 살짝 걱정되기는 했다.

“그렇구나.”

내 말을 들은 사형은 담담한 말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경, 괜찮아. 사제. 마경에서도 내가 지켜줄 테니까.”

사형이 배시시 웃었다.

하긴.

내가 누굴 걱정하는지. 마경에 마물이 얼마나 되건 사형이 전부 잡아서 한 끼 식사로 냠냠 맛있게 먹을 게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좋아. 사제, 그럼 이제 가자.”

덥석.

사형이 내 손목을 붙잡은 채로 말했다.

“이제 곧 연회니까.”

그렇다.

사형의 말대로 오늘은 천마지연이 열리는 날.

드디어 기록으로만 접했던 소천마 백천화를 포함한 마교 측 후기지수를 만나는 날이었다.

소천마 백천화라.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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