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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50화 (150/171)

150화 반지

황상의 질문에 나는 미소를 유지했다.

유진휘가 남장여자.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와 같은 회귀자인 황상이라면 눈치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검유희.

전생에는 없었던, 사형과 행적이 겹치는 신비 여고수의 존재 때문이다. 거기에 황상은 천하제일 첩보기구인 동창을 완전히 장악하였으니, 일검유희와 유진휘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을 터.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유진휘가 남장여자라는 의심을 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상당수의 정황 증거를 확보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역시 우리 황상이다. 내가 잘못 가르치지 않았다.

황상이 내게 질문하는 건, 확인 사살과 비슷했다. 이미 거의 99% 확증한 상황에서 내게 묻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답해주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황상이니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전에.

“······질문에는 대답해드리겠사옵니다. 단, 황상께서만 이 대답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황상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사형의 비밀을 알려줄 수는 없다.

“그리하겠습니다. 노야. 이제 말씀해 주세요.”

내 말에 황상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답변을 요구했다.

황상이 그리하겠다면, 그리하는 것이다. 황상은 나와 한 약조를 한 번도 어긴 적 없다. 그러니 이제 믿어도 된다. 나는 황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폐하의 추측이 맞습니다. 검성 유진휘는······. 여인입니다.”

*

이철수의 답변을 들은 순간.

주가율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유진휘가 여인이다.

일검유희와 유진휘와 행적이 겹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정황 증거까지 합산해서 추론한 결과를 노야의 입으로 확인받은 것이다.

“역시······. 그랬군요.”

주가율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의 추측이 맞았다. 검성은 여인이었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품고 있던 의구심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동공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유진휘가 여인이라면, 그렇다면.

다른 어떤 여인보다 그녀가 가장 경계해야할 여인이었다.

‘검성은 타인의 감정과 생각에 공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자.’

유진휘는 겉으로는 호인처럼 보일지 몰라도,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유형의 인간이었다. 그녀는 협객이 아니었다. 협객으로 훈련받은 것일 뿐이다. 하지만 제국의 지존으로서, 억조창생을 다스리는 천자(天子)로서.

아니 노야의 정실부인으로서, 그 정도는 다스릴 줄 알아야 했다. 옛말에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고 했다. 정실부인으로 제가(齊家), 첩 관리를 못 해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자가 어찌 천자로서 나라를 다스리고 대명제국의 황제로서 천하를 평안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유진휘의 관리 또한 그녀의 일이었다.

“짐의 질문에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야.”

주가율의 시선에 노야의 모습이 담겼다.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수십 년 동안 만나고 싶었던 상대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그녀의 전부가, 살아 숨 쉬는 이유가, 삶의 목적이 거기 있었다.

단순한 사랑 같은 저급한 감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녀의 전부를 바칠 상대가 저기 있었다.

주가율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의 심장은 아까부터 계속 고장 난 것처럼 뛰고 있었다.

‘짐의 노야, 어찌 이리 늠름한지요. 후후.’

눈앞의 노야와 아까 비무대에서 본 알몸의 노야가 겹쳐 보였다. 노야의 알몸을 보는 것 자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전생에서도 볼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양물을 되찾고, 수 년 간의 외공 수행을 거듭한 노야의 알몸은 완전한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주가율은 양물의 크기를 떠올렸다. 그만한 양물을 받아내려면, 빨리 성장해야 했다. 지금의 몸으로는 안 됐다. 더 자라서, 노야의 이상적인 여인이 되어서, 그의 정실부인이 되어야 했다.

물론 정실부인 따위의 자리로는 당연히 노야와 그녀의 관계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 자리는 오직 그녀의 자리였다.

다른 누군가에게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특히.

검성 유진휘, 그녀에게는 더더욱.

주가율은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정실부인 자리로 향하는 그녀에게 최대의 연적, 아니 정적은 유진휘라는 사실을.

적사월은 천하제일미녀이기는 하지만 이미 진갑(進甲)의 나이를 먹은 노인에다 노야가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검후 은설란은 공개 고백을 받기는 했지만, 마찬가지로 이미 지천명에 가까운 나이라 그녀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

서하린, 서문청하도 마찬가지다.

흑사룡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유진휘.

그녀는 천하제일미에 노야와 이번 회차에서 가장 오래 함께한 상대다.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당연히 유진휘였다.

주가율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철수에게 말했다.

“······노야, 검성을 조심하세요. 그녀는 위험인물입니다.”

주가율의 말에 이철수가 잠깐 멈칫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상. 사형은 그렇게까지 위험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에 주가율이 입술을 깨물었다.

사형이라니.

거기다가 이철수와 오래 지낸 주가율이기에 그의 말에 깃든 미묘한 감정도 읽어낼 수 있었다. 사형이라는 호칭에 담긴 감정은 분명 친밀감이었다.

벌써 두 사람이 이렇게 친해졌다는 말인가? 주가율의 초점이 점점 사라졌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검성 유진휘.

그 불여우 같은 여자는 대체 노야의 어디까지 파고든 것인가? 들끓는 질투심을 주가율은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잠재웠다.

노야의 앞이다. 추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노야가 아는 황상의 모습으로 있어야 했다. 순식간에 질투심을 가라앉힌 주가율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노야. 짐의 노파심이 너무 과했나 봅니다.”

주가율은 한 발 물러섰다. 물론 진짜로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검성, 앞으로 그대를 더 철저히······. 주시하겠어요. 노야의 정실부인으로서.’

주가율은 전생에서 만난, 무감각한 검성의 얼굴과 이번 생에서 먼 발치에서 본 어린 검성의 얼굴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녀가 그렇게 웃고 있던 그때.

“황상.”

노야께서 말을 걸었다. 주가율의 시선이 곧바로 그를 향했다.

소림사 불공을 명분 삼아 어렵게 나온 궁 밖 외출이다. 노야와 함께 있는 촌각의 시간도 그녀에게는 더없이 소중했다. 노야에게 집중해야 했다.

“말씀하세요.”

“······궁에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건 말씀하세요. 물론 황상께서 혼자 잘 하리라 소신은 믿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혼자서 하기 힘든 일도 있으니까요.”

노야의 말에 주가율의 가슴이 아플 정도로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숨결이 가빠졌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역시 노야다.

그녀를 생각하는 건 오직 노야뿐이다. 노야께서도 대업을 짊어진 몸인데도, 그녀의 일을 돕고자 하다니. 오랜만에 느끼는 온기였다.

노야에게 다시 한번 기대고 싶다.

‘하지만 그래서는 아니 됩니다.’

주가율은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노야에게 기대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됐다.

고작 황실 하나 처리 못 해서, 피만 이어진 이복 오빠들과 금상(今上)조차 처리하지 못해서 노야의 손까지 더럽힐 수는 없다. 노야에게 무능한 여인으로 보이기는 싫다.

수신제가(修身齊家)는 오로지 그녀의 몫. 황실이라는 거대한 집안을 정리하는 것도 오로지 안주인인 그녀의 몫이다.

그러니 빠르게 해결하고, 천자의 자리에 올라 노야를 도와줘야 했다. 저번 생에서 노야에게 받은 은혜만큼, 이번 생에서는 그녀가 노야를 도와줘야 했다.

그러니까 거절해야 했다.

주가율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노야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노야.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알겠습니다. 황상.”

그녀의 거절에도 노야는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주가율도 웃었다.

주가율이 노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노야께서 용봉지회의 승리를 짐한테 바치셨으니, 짐도 그에 대한 포상을 내려야겠지요.”

포상.

그 말을 언급한 주가율의 몸이 떨렸다.

*

황상과 만나서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느라 깜빡 잊어버렸지만, 그녀가 날 독대할 수 있었던 명분은 용봉지회 우승자에게 부상을 하사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부상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포상이라니.’

만년화리의 내단은 이미 받지 않았던가?

설마 다른 극양지보는 아니겠지? 만년화리의 내단을 막 복용한 지금 상황에서 극양지보를 또 복용해봤자 효과는 미미하다.

그걸 황상이 모를 리는 없을 터. 그럼 어떤 포상이지?

내 머릿속에 수많은 상념이 스쳐 지나간 그때. 황상이 품에서 조그마한 목갑 하나를 꺼냈다.

딸깍.

목갑이 열렸다. 거기에는 금강석(金剛石)을 박은 금반지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짐이 노야를 생각하며 직접 의뢰를 넣어 만든······. 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반지입니다. 변변찮은 물건이지만······. 노야께서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반지에 박힌 금강석은 최상품. 통짜 순금의 가격에 섬세한 세공까지 합치면 현대 가격으로 억 단위는 가볍게 넘어갈 정도의 귀중품이었다.

확실히 용봉지회의 부상으로는 차고 넘치는 물품이기는 했다. 왜 하필 반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뭐 황상이 날 위해 준비했다니 받아야지.

황상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반지를 받아 왼손 약지에 착용했다.

내가 반지를 끼는 모습을 본 황상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과분한 포상 감사합니다. 황상.”

“아닙니다. 노야.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궁의 일이 전부 정리되면······. 그때부터 노야를 전폭적으로 돕겠습니다.”“감사합니다.”

나는 황상에게 고개를 숙였다. 내 말을 들은 황상은 웃었다. 내 시선이 그녀의 왼손으로 향했다.

그녀의 왼손 약지에는······.

나와 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

신강 천산.

천마전.

천마신교의 지존이 기거하는 신교의 중심지. 태사의에 천마 백무량이 앉아 있었다.

언제나 따분함만이 가득했던 그의 얼굴에는 드물게 총기가 번쩍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붓이 들려 있었고, 고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탁자에는 문방사우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종이 위에 마지막으로 본인의 수결(手決)을 남긴 천마가 서류의 내용을 읽고 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 정도면 천무지체도 움직이지 않고 못 배기겠지.”

이 서찰로도 천무지체, 유진휘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다음은 극단적인 계획을 사용해야겠지.

천마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옆에 대기하고 있던 마뇌에게 먹물이 마른 서찰을 봉투에 담고 봉인한 뒤 건넸다.

“이 서찰을 공동파 본산에 전하도록.”

“존명!”

마뇌가 오체투지하며 서찰을 받들며 외쳤다.

마뇌의 외침을 들으며 천마는 눈을 감았다.

이제 곧이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천마지체인 그를 능가하는 재능을 지닌 천무지체를 마주할 날이 머지않았다.

그 사실에 천마는 이유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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