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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49화 (149/171)

149화 가족 - 삽화

용봉지회가 끝났다. 의관을 정제하라는 명에 따라 나는 비무대 밖에 세워진 임시 천막을 빌려 제대로 된 무복을 갖춰 입었다. 아까는 알몸을 가리기 위해 급하게 옷을 걸친 거라서 그대로 황상과 대면하기는 조금 그랬기 때문이다. 동창 놈들이 그래서 의관을 정제하라고 명한 거겠지.

말끔한 새 흑색 무복으로 갈아입고, 허리춤에는 철검을 차고, 마지막으로 머리에 동백기름까지 바른 나는 동경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여전히 하남자 같아서 마음에 안 드는 얼굴이지만, 그래도 꾸미니 조금 잘생겨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화장실 거울로 보면 잘생겨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빗으로 머리를 빗어 단정하게 만들었다.

그때.

“이 소협 계시오?”

천막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익숙한 목소리. 검룡이었다.

“무슨 일이지?”

의관 정제가 끝난 내가 검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광기 어린 눈빛은 전부 사라진 그는 멀끔한 명문 귀공자의 얼굴과 깔끔한 핫핑크 무복을 입은 채로 나를 바라보면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이 소협 덕분에 무아지경을 방해받지 않고 심득을 얻어 새로운 경지에 올라설 수 있었으니, 이 진 모한테는 각골난망(刻骨難忘)할 대은(大恩)이라 할 수 있소이다! 앞으로 이 형(兄)이라 부르겠소!”

바른 생활 사나이처럼 허리를 숙인 진패선. 그의 눈동자가 활활 타올랐다.

아니.

뭐 이렇게 날 형아로 모시는 사내놈들이 많아. 부담스럽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제 뭐라 하기도 지친다. 뭐, 이렇게라도 정파 내부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면 나야 좋은 일이다.

어쨌거나 진패선의 재능도 사형만큼은 아니지만, 천하제이검 정도는 되니까.

정파 무림의 비선실세가 장래희망인 나로서는 일단 유망주들과 친분을 쌓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음대로 해라.”

“감사하오! 이 형!”

부담스럽게 눈을 반짝이는 진패선. 그러고 보니 이 인간도 전생에 청담회 회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현생에서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청담회 파티에 참여했던 후기지수들은 나와 사형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용봉지회 출전권을 박탈당해서 탈락당했기 때문이다.

진패선이 청담회에 참여했다면, 그 역시 출전권을 박탈당했을 터.

하지만 그는 용봉지회에 멀쩡하게 출전했다.

남궁청이야 내가 청담회에 참여하지 말라고 언질을 줘서 참가하지 않았다지만, 진패선 이놈은 왜 안 간 거지?

진패선은 재능과는 별개로 음주가무와 풍류를 제법 즐기는 성격이었다. 풍류공자, 망나니라 불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샌님처럼 빼는 성격도 아니었다.

뭐.

직접 물어보면 되겠지.

나는 진패선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진 소협.”

“말씀하시오. 이 형.”

“진 소협도 분명히 모용 공자의 초대를 받았을 터인데······.”

“청담회를 말씀하시는 거구려. 원래라면 참석하는 것이 예의겠으나······.”

진패선이 사정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했다.

사형과의 비무 패배로 절치부심하여, 사형을 따라잡기 위해 밥 먹는 시간 빼고 오로지 검법 수행에만 매달렸기에, 연회 참가도 검법 수행을 위해 사양했다는 것이 진패선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하지 않은 것이오. 진정한 검객이라면 술 한잔하는 시간조차 아껴 검을 휘둘러야 하는 법. 이 형과 유 대협이 이 진 모한테 내린 가르침이요.”

“과연 그렇군.”

나는 진패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과는 달리 진패선과 유진휘의 비무가 훨씬 빠르게 일어난 덕분에, 진패선의 열등감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여 전생과는 달리 청담회 초대조차 거부하고 검술 수련에만 매진한 모양.

좋은 변화라면 좋은 변화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이만 공주 전하를 만나러 가야 하니,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얘기를 또 나누도록 하지.”

“알겠소. 이 형. 살펴 가시오! 다음에 또 오늘처럼 검을 겨뤄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구려. 하하하하하하하하!”

궁금증을 해결한 나는 진패선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내 말을 들은 진패선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처럼이라는 말을 유난히 강조하는 진패선. 뭐지? 또 아까처럼 알몸 비무를 하자는 것인가? 설마, 아니겠지?

나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끼면서 천막을 나가 발걸음을 옮겼다.

“공동파의 이철수. 왔군.”

내가 나가자마자 환관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기분 나쁠 만한 말투와 오만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어차피 양물이 없는 놈들이다.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고자의 삶에 대한 묵은 트라우마가 저런 식으로 발휘되는 것일 뿐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50년 경력 환관이었으니.

물론 이렇게 나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는 건, 아까 비무장에서 본 내 하반신의 거룡(巨龍)을 보고 생긴 열등감에서 기인한 거겠지.

이해한다.

나 또한 환관일 때, 대물남에 대한 열등감을 품은 적이 있으니 말이다.

흐흐흐.

“따라오도록. 공주 전하께서 기다리신다.”

동창 무사가 앞장섰다. 나는 그를 뒤따랐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등봉현의 지현(知縣)이 머무르며 업무를 보는 관청인 현청이었다.

회귀 이전이야 뻔질나게 드나든 관청이지만, 회귀 이후에는 처음이라 살짝 낯설었다.

공주가 머무르고 있어서 그런지 관청 입구는 포졸뿐만 아니라 동창 무사까지 함께 경비를 서고 있었다.

“공동파의 이철수를 데려왔다.”

“안으로 들어가시오.”

동창 무사의 말에 포졸이 내 모습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끼익. 현청의 육중한 문이 열렸다.

그 이후로 독대를 위해 검을 잠시 반납하는 등의 수많은 복잡한 절차를 거친 끝에, 나는 지현이 머무르며 업무를 보는 관아의 중심지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원화제 주가율.

아니 아직은 태평공주인 그녀는, 지현이 쓰는 고급 의자에 앉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호위마저도 없었다.

말 그대로 독대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상의 입술이 우물거렸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큰절을 올렸다.

“공주 마마를 뵙습니다.”

이렇게 관청에서, 의자에 앉은 황상에게 절을 올리니 전생이 생각 났다.

황상을 옥좌에 앉힌 이후, 자금성 태화전의 용상에 앉은 황상에게 이런 식으로 절을 한 적도 있었다.

내 절을 받은 황상이 살짝 당황했다. 그녀가 의자에서 일어나 엎드린 내 두 손을 잡아 일으켰다.

황상이 눈을 내리깔면서 말했다.

“이, 이러지 마세요. 노야. 지금은······. 그때처럼 단둘이니 과례(過禮)를 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짐과 노야 사이니까요.”

황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례라. 그래, 확실히 전생에서도 그런 말을 그녀가 했었다. 우리 사이니까 예를 갖출 필요는 없다면서 그녀는 내게 각종 특혜를 내렸다.

구석(九錫)을 포함해서 각종 특권을 하사받은 게 그런 이유에서였다. 솔직히 구석 그거 수여 받아봤자 역신(逆臣)이라고 욕만 먹는 물건이라 안 받고 싶었는데, 황상이 받으라고 떼를 써서 받은 거다.

덕분에 나는 어전에서 허리춤에 칼을 찰 수 있고, 종종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며, 절도 생략하고, 조회 때 의자에 앉아도 되는 특권을 전생에서 누렸다.

그래, 그랬었지. 황상과 함께 있으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전생을 기억하는 유일한 상대니까. 가족이니까 그렇다.

“알겠습니다. 황상.”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황상이 수줍게 웃었다.

스윽.

그녀가 내 품에 안겼다. 황상이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면서 말했다.

“이제야 짐이 아는 노야의 모습이군요. 노야, 짐은 노야가 또 보고 싶었습니다. 헤어져도 자꾸 노야가 떠오릅니다. 노야······.”

황상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내 앞에서만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도 여전하다. 나는 그런 황상의 갈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황상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화려한 꽃향기가 코 끝을 스쳤다.

“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신도 항상 황상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소신은 황상의 충신(忠臣)입니다.”

내 말을 들은 황상이 살짝 움찔했다.

그녀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작은 손으로 살짝 닦아내면서 말했다.

“······충신, 그렇지요. 짐의 충신은 오직 노야뿐입니다.”

황상이 살짝 웃었다. 평소 무표정한 얼굴로만 일관하던 황상이 내게만 보여주는 미소다. 왠지 흐뭇하다.

나는 품에 안긴 황상을 살짝 떼어놓은 뒤에, 그녀 앞에서 다시 절하면서 말했다.

“약조한 대로, 용봉지회의 승리를 가져왔나이다. 폐하. 폐하께 용봉지회의 승리를 바치겠나이다.”

내 말을 들은 황상의 표정이 살짝 묘해졌다. 그녀가 나를 다시 손잡아 일으켜주면서 말했다.

“노야의 활약은 짐이 잘 봐서 알고 있습니다. 노야께서는 현생에서도 무공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더군요.”

황상이 웃었다.

그녀가 내 활약을 봤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다. 본선의 시작부터 끝까지.

오직 내 비무만 참관했던 황상이니까 말이다. 나는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황공합니다. 폐하.”

“아닙니다. 결승에서의 활약도 인상 깊게 봤습니다. 노야.”

그녀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한 발짝 더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노야가 그토록 되찾길 원하던 양물의 모습도 똑똑히 보고 기억했습니다.”

황상의 말에 나는 살짝 당황했다.

만천하에 알몸이 드러난 건 사실이니, 황상이 양물을 봤을 거라는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할 줄이야.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무리 가족 같은 사이라지만, 가족끼리 알몸을 보이는 건 좀.

부끄럽다.

내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 모습을 본 황상이 웃었다. 그녀가 내 귓가에 다시 속삭였다.

“아주 튼실하고 우람한 양물이더군요. 노야께서 대체 왜 양물을 되찾기 위해 역천의 대법까지 강행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황상이 양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쥐는 것처럼, 양물의 사이즈를 재현했다.

이거 지금 놀리는 건가? 쓸데없이 더 부끄럽다.

“추, 추하고 망측한 모습을 보여드려 화, 황송합니다. 폐하······.”

내 모습을 본 황상이 계속 웃었다.

그녀가 내게 다가오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추하다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황상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짐은······. 단 한 번도 노야를 추하다고 여긴 적 없습니다. 노야는······. 짐의······. 아니.”

그녀가 한 발짝 물러섰다. 황상의 시선이 똑바로 내게 향했다.

“······소녀의······. 하나뿐인······. 가족······. 이니까요.”

황상이 옅게 웃었다.

그녀의 말에 나도 마주 웃었다.

그래, 그녀의 말이 맞다. 현대와 무림을 통틀어 그녀는 하나뿐인 내 가족이다.

“알고 있습니다. 황상.”

“그,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말은 자제해주십시오. 노야.”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약조한 겁니다. 노야,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고······. 노야께 드릴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황상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나와 함께 있던, 풀어진 얼굴로 헤실헤실 웃는 가족의 얼굴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철혈의 황제, 폭군의 얼굴로 변했다.

그녀가 나를 황제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공동신협 유진휘는······. 남장여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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