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43화 (143/171)

143화 그녀들의 야합

“흥, 그럼 나중에 또 보자꾸나.”

“진 언니, 이 오빠! 안녕! 다음에 또 봐!”

나는 적사월과 당영령에게 현장 수습을 맡긴 뒤, 사형과 함께 춘약 냄새로 가득찬 방을 나왔다.

드르륵.

문을 열자, 바로 앞에 혈도가 제압당해 혼절한 모용위가 보였다.

스윽.

사형이 내 옆에 자연스럽게 붙었다.

나는 기루 최상층에서 1층까지 계단을 밟아 내려가면서 사형에게 전음을 보냈다.

[사형. 몸은 괜찮습니까? 춘약은 어떻게 됐습니까?]

내 말을 들은 사형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말했다.

[춘약은 해독했어. 이제 괜찮아. 걱정 안 해줘도. 아, 아까 그, 그건 추, 춘약에 취해서 하, 한 행동이니까······. 너, 너무 신경 쓰지 마······. 나, 나는 음란한 여자가 아니니까······.]

사형의 전음이 귓가에 울렸다.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역시 천무지체답게 최상급 춘약도 잠깐 고전하다가 곧바로 해독해버린 모양.

아까 그거라고 말하는 건 나에게 키스한 거 말하는 건가.

사형이 여자라면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 맞다. 현대 기준으로야 잠깐 쪽팔리고 말 일이지만, 유교가 지배하는 중세 무림 기준으로는 단순한 수치 수준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평판과 체면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건 물론, 어딜 가나 손가락질받고 심하면 자살까지 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도덕적 결함인 것이다. 유교적 미덕을 추종하는 세계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적사월과 당영령이 그 일을 발설하지는 않겠지만, 신경 쓰는 건 어쩔 수 없다.

사형이 말하니 괜히 또 아까 사형과 했던 진한 키스가 떠올랐다. 더불어 사형의 아름다운 알몸도. 내 옆에 찰싹 붙은 사형의 붉어진 목덜미가 보였다.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리 춘약에 취해서 한 행동이라지만, 너무 자극적이었다. 내 첫 키스였는데. 입술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 사형이 아니라 사저라고 불러야 하나?

[시, 신경 안 씁니다. 사형. 염려 마십시오.]

나는 사형에게 전음을 보내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오늘따라 계단이 길게만 느껴졌다.

사형과 나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으, 응. 맞아. 사제. 나 아까 혼원일기공을 완성했어!]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건지, 사형이 내게 살짝 들뜬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혼원일기공의 완성이라. 전생보다 훨씬 빨라진 타이밍이다. 구결을 읊어주는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울렸다.

나는 그녀가 읊어주는 구결을 전부 외웠다. 완성된 혼원일기공은 사형이 창안한 혼원공과 전체적으로는 비슷하지만, 화경의 경지에 오른 심득의 영향인지 공능은 혼원공의 상위 호환이었다.

‘혼원공이 혼원일기공의 입문 무공 역할을 하겠군.’

전생과는 달리 혼원공이라는 새로운 무공을 진작에 만들었던 사형이었다. 그 덕분인지 원래 기록에서는 혼원일기공을 운용하려면 현원태양기와 혼천태음기가 필요했지만, 사형이 복원해낸 혼원일기공은 필요가 없었다.

이쯤 되면 복원이 아닌 재창조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역시 천무지체, 아니 대종사의 자질이라는 건가.

[사제를 위해서 혼원일기공을 복원하면서 구결도 좀 더 간략하게 만들고 효율도 조금 개선해봤어. 어때?]

[우제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내 말을 들은 사형의 얼굴이 더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가 애꿎은 손가락을 계속 꼼지락거렸다.

[아니야! 별로 고마워할 것까진 없어. 다, 당연하니까······. 나, 나야말로 미안해······.]

사형이 얼굴을 붉히면서 전음으로 내게 속삭였다.

[······비밀, 그동안 말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줘······.]

사형의 얼굴이 살짝 시무룩해졌다. 그녀의 어깨가 처졌다.

사형이 말한 비밀은 성별을 말하는 거겠지.

탁.

끝날 것 같지 않던 계단이 끝났다. 1층의 전경이 보였다. 넓은 1층을 가득 채웠던 미혼향의 냄새는 이미 전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여기저기 뒤엉켰던 남녀들도 전부 혈도를 제압당해 혼절한 채로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곧 천지회 뒤처리 요원들이 오겠지. 더 신경 쓸 것 없다. 나는 사형과 함께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사형.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사형이 사실 사저라는 사실에 혼란스러웠던 건 잠깐뿐이었다.

이런 사실 가지고 쓸데없이 오래 동요했다면, 그 험한 자금성 한복판에서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 이미 드러난 정보는 빠르게 수용하고 계획을 유연하게 변경해야 했다.

내 말을 들은 사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

유진휘는 이제는 완전히 밤이 되어버린 등봉현을 사제와 함께 걸었다.

소림사 참배객에 더해 용봉지회에 참여하는 후기지수와 그 수행인원까지 모인 등봉현의 밤거리는 불야성(不夜城)을 이루었다.

왁자지껄한 저잣거리 위로 펼쳐진 검푸른 밤하늘과 한 조각 하얀 달을 바라보면서 유진휘는 얼굴을 붉혔다.

보신경을 운용하면 소림사 객당으로 빠르게 복귀할 수 있지만, 오늘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제와 오랜만에 단둘이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이 지나면 또 이런 기회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좀더 함께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느리게 걸었다. 다행히 사제는 그녀의 억지에도 별 말 하지 않았다.

유진휘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이,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한다니······.’

그녀는 성별을 속였다. 사문을 위해서······. 나아가 사제를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기는 하지만 속인 건 속인 거였다. 외인도 아닌, 같은 사부 아래에서 수학한 동문인 사제였다.

그녀가 지금까지 성별을 속였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두려웠다. 미움받을까 봐 겁났다. 거기에 오늘 여인으로서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음란한 행위를 춘약과 투기의 힘을 빌어 사제에게 저지르지 않았던가? 품행이 바르지 못했다. 여인답지 않았다.

그 사실을 사제가 책망할까 봐 유진휘는 두려웠다.

하지만 사제는 책망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말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그녀의 거짓도, 음란 행위도 모두 포용하였다.

‘사제는 바보야.’

유진휘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조금은 화를 내도 될 텐데, 사제는 바보처럼 그녀를 감싸기만 했다. 그렇기에 유진휘는 오히려 더 죄책감을 느꼈다.

유진휘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그때.

[사형.]

이철수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울렸다. 전음이었다.

[······배필이 되겠다고 한 말은······.]

그의 말을 들은 유진휘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빠르게 창백해졌다.

배필.

진소소로 가장해서 적사월을 물리치기 위해 무심코 꺼냈던 도발이었다. 하지만 진심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다. 유진휘는······. 그녀는 사제를 사랑했다.

그러나 유진휘는 이철수의 배필이 될 수 없었다. 배필이, 그의 부인이 되려면······. 아이를 가질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불임이었다. 석녀인 그녀에게 어울리는 건 오로지 육체의 쾌락만 즐기는, 불장난 상대인 정부(情婦)의 자리뿐이었다. 첩의 자리조차 그녀에게는 과분했다.

유진휘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렇기에 천하제일이 되어 법도를 뜯어고치던가, 생사경의 경지에 올라 석녀의 운명을 벗어던지려던 게 아니었던가.

용봉지연에서의 배필 언급은, 사제가 그녀를 여장남자로 생각했기에 상관없었다. 하지만 성별이 들킨 이후에도 적사월을 도발하기 위해, 춘약 기운에 취해서 배필 이야기를 해서 문제였다.

‘나는······. 아직 사제의 배필이 될 수 없어······.’

유진휘의 눈동자가 빠르게 빛을 잃어갔다.

성별을 들켰다. 하지만 배필이 될 수는 없었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렇지만 선을 그어야 했다. 사제가 아무리 포용력이 넓다지만, 그녀가 석녀(石女)라는 사실까지 포용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천하의 그 어떤 사내도 석녀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반드시 미움받을 것이다. 그리고 사제에게 미움받는 건······. 유진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러니 선을 그어야 했다.

[······그건 춘약에 취해서······. 나, 나온 헛소리야······. 그냥 잊어. 난 장차 공동파의 장문이 될 몸. 사제의 배필이 될 수 없으니까.]

유진휘는 고개를 숙인 채로, 핑계를 대면서 전음을 날렸다.

그녀의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알겠습니다. 사형.]

사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유진휘는 입술을 깨물었다.

배필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간통(姦通)이라면 가능하다. 정부(情婦)가 되어 은밀하게 사통(私通)할 것이다. 그렇게라도 사제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러니 더더욱 지금은 안 되었다.

사제가 장성하고, 언젠가 혼인하게 된다면······. 그 이후에 사제를 유혹할 것이다. 그의 정부가 되어 그의 몸을 사로잡을 것이다. 정부(情婦)로서 사제의 마음을 휘어잡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곁에 있을 것이다. 사제는 마음만 통하면 된다고 했으니까.

그런 왜곡된 욕망이 유진휘의 마음속에 꿈틀거렸다.

‘사제, 미안해. 고마워. 많이 사랑해. 영원히 지켜줄게.’

여자로서도, 사형으로서도, 그리고 미래 공동파의 장문인으로서도.

언제나 사제와 함께할 것이다.

유진휘는 그렇게 생각했다. 기분이 조금 풀렸다. 그녀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걸렸다.

그때.

[사형. 저 말고도 사문의 다른 사람들한테 이 사실, 알릴 생각입니까?]

사제의 전음이 그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사부님은 이미 알고 있었어. 사매한테는 내가 오늘 직접 전부 말할게. 서문 소저는 외인이니까 비밀이야.]

가장 들키고 싶지 않았던 사제에게 이미 성별을 들킨 판국이다.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차라리 이 김에 사매에게도 비밀을 털어놓자. 원래부터 그래야 했었다. 그래야 동문(同門)이라 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올라가서 사매부터 만나도록 하죠.]

꽈악.

이철수가 그녀의 손을 조금 세게 잡자, 유진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유진휘는 사제와 함께 천천히 소림사로 향하는 길을 달밤 아래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소림사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사제의 손을 놓지 않았다.

*

뒷수습을 전부 끝낸 적사월은 다시 능월향으로 변장한 채로 보신경을 운용해 빠르게 객당으로 돌아온 뒤, 객당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적사월의 뺨이 파르르 떨렸다.

‘본녀는 정파 위선자 놈들의 뒤치다꺼리나 해주려고 소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거늘······!’

아무리 혈교와 천지회 일이라지만, 정파의 뒤처리를 사파제일인이 도와주는 꼴이라니.

혈교의 위험만 없었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혈교가 준동하고 혈마가 재림하면 정사마 구분 없이 강호 무림 자체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머리로는 정사마 할 것 없이 혈교라는 해충은 미리미리 삭초제근해야 된다고 납득을 했지만, 가슴으로는 납득이 불가능했다.

입맛이 썼다.

전부 이철수 때문이었다. 이철수, 그를 생각하자 그의 위에 올라탄 일검유희 진소소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천하절색이라고 해봤자 그동안은 적사월의 팔 할 수준에 불과한 능월향보다 추한 여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능월향이 괜히 차기 천하제일미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능월향으로도 충분하다 여겼다.

진소소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적사월은 오만했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진소소를 본 순간 직감했다.

능월향 혼자서는 진소소를 이길 수 없다.

적사월은 그녀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대뜸 거의 친분이 없는 적사월로 등장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였다.

드르륵.

객실 문이 열렸다.

적사월의 시선이 문을 향했다. 거기에는 그녀가 있었다. 은빛 말총머리가 인상적인 신비로운 인상의 미녀.

검후 은설란이었다.

은설란의 은빛 눈동자가 적사월을 향했다. 그녀가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능 소저. 그나저나 별일이군요. 당신이 저를 부를 줄은 몰랐습니다.”

검후의 말을 들은 적사월이 웃었다. 그녀가 여유를 가장하면서, 오른손으로 든 부채를 살랑이며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씀드리죠. 은 여협.”

적사월의 붉은 시선과 검후의 은빛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힌 순간.

적사월의 탐스러운 빨간 입술이 열렸다.

“······소녀와 손을 잡을 생각, 없으신가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