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예외는 없다
40대 아줌마의 반라(半裸)라니.
본인도 성적 매력이 없는 걸 아는 모양인지 춘약에 색혼향도 모자라 섭혼술까지 써가며 나를 농락하려 들고 있다.
어차피 안 통하는데 말이다.
여드름 안경 돼지가 최면어플로 미소녀를 함락하는 만화의 성별역전 버전이 이런 느낌일까.
구역질이 나왔다. 눈이 썩는 것만 같았다.
뭐 모용세가주의 첩으로 들어왔을 때는 나름 20대였을 때고 방중술도 익혔을 테니 모용세가주를 사로잡는 건 어렵지 않았을 터.
그 사이에 서서히, 조금씩 모용세가주를 마약에 중독시켰겠지.
세가주를 장악한 다음에는 공자들을 최면어플을 써서 복종시켰을 테고. 그렇게 모용세가를 잡아먹었을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오늘의 청담회 연회를 통해 후기지수들을 약과 여색에 중독시켜 꼭두각시로 만들었을 테고. 중독된 정파 후기지수들의 약점을 쥐고 흔들어 1회차 미래에서는 그녀가 정파 무림을 지배하는 비선 조직 청담회의 실질적인 수장으로 행세했을 터.
눈앞의 구 부인이야말로 1회차 미래 정파 무림의 진짜 비선 실세였다. 전생의 정파 무림은 사형이 아니었더라면 혈교에게 꿀꺽 당했을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올바른 운우지락이 아니라니, 너. 어떻게······. 본녀의 섭혼술을······.”
구 부인의 뺨이 추하게 떨렸다. 두꺼운 분으로 덮어둔 팔자주름이 흔들렸다.
그래.
미래에야 화경의 고수니 초절정의 고수니 오대세가의 가주니 하지만, 지금은 아직 일류에서 잘해봤자 절정에 불과한 애송이들이 여기 참석한 후기지수들이다.
구 부인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섭혼술로 능히 꾀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지금까지 후기지수들을 치마폭에 감싸온 거겠지. 나와 사형에게도 똑같은 술수를 쓰려 했던 것이고.
문제는 내가 보통의 후기지수가 아닌 인생 2회차 구천구백구십구세 간신배라는 데 있었다.
나는 구 부인의 팔목을 잡은 채로 웃으며 말했다.
“······자고로 구름과 비의 즐거움이란 단순한 육체의 교접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오. 구 부인. 서로의 마음 없이 오직 육체만 가지고 즐기는 운우지락은 진짜 운우지락이 아닌, 저급한 짐승의 쾌락이나 다름없소. 섭혼술과 약물을 통해 상대의 이지를 흐트러트린 채로 강제로 교접하다니······. 부인은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채로 짐승처럼 살며 원숭이의 쾌락을 즐길 셈이요?”
나는 구 부인을 바라보면서 색도의 도리를 설파했다.
최면어플, 섭혼술 같은 거야 나도 진작 배우려면 배울 수 있었다.
실제로 동창의 비전중에서도 섭혼술 비슷한 술법이 존재하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알아도 사용하지 않았다.
최면어플로 섹스를 한다? 그건 진정한 섹스라고 할 수 없었다.
진정한 섹스란 신체는 물론 마음까지 서로 통하고 만족시키는 섹스. 오직 육체의 쾌락만 충족시키는 섹스는 반쪽짜리 섹스에 불과하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애송아. 네가 뭘 모르는 모양인데, 정신이야말로 육체의 노예에 불과하다. 너도 본녀의 품에 안겨 천상의 쾌락을 누린다면, 그 시답잖은 정신론 따위는 금방 잊게 될 것이다. 후후후. 본녀의 품에 안기지 않으련?”
내 말을 들은 구 부인이 역으로 나를 꾸짖다가 요염하게 웃었다.
그녀가 유혹하듯 가슴을 흔들었다. 끔찍한 형상이었다.
못생긴 건 죄는 아니다. 하지만 외모가 추한 주제에 마음까지 추하다면.
그것은 죄다.
그리고 구 부인은 추한 외모에 추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 대역죄인이었다.
“싫소. 그대 같은 아줌마한테 내 동정을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소. 추하고 늙은 외모와 그보다 더 추한 마음가짐이라니. 부인께서는 양심도 없구려.”
“뭐, 뭐야?! 이 놈이······!!”
내 말을 들은 구 부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운우지락은 곧 음양의 조화를 뜻하며, 진정한 음양이기의 조화를 위해서는 심신(心身)이 모두 통해야 하는 법. 심(心)이 없는 신(身)만의 쾌락은 음양의 조화라고 할 수 없소이다. 그러니 날 유혹할 생각은 접어뒀으면 좋겠구려.”
“······내 네 얼굴이 제법 반반하여 본녀가 직접 네게 천상의 쾌락을 내려 본녀의 정부(情夫)로 삼으려 하였겄만······. 감히 건방지게 본녀의 미모를 모욕할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한 걸 후회하지 않도록 해라!”
도발에 넘어간 구 부인의 눈빛에서 혈광이 반짝였다. 그녀의 전신에서 핏빛 기세가 휘몰아쳤다.
아무리 봐도 대외적으로 호신용 무공만 익혀 고수의 호칭도 못 받은 하수라고는 보일 수 없는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제법 무공에 자신이 있는 모양. 여기서 나와 사형을 한꺼번에 처리하려는 걸 보면 최소 절정, 아니 어쩌면 초절정의 고수일지도 몰랐다.
뭐, 상관없다.
나에게는 사형이 있으니까.
나는 다른 손으로 재빨리 수신호를 날렸다. 그 순간.
옆에 앉은 사형의 몸이 흐릿해졌다. 번쩍! 검은 섬광과 함께 그대로 사형이 구 부인의 손목을 잡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감히······. 감히······. 누굴 건드려······.”
사형의 입에서 북해의 빙산보다 서늘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사형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졌다. 그가 무겁게 가라앉은, 죽은 눈동자로 구 부인을 응시했다.
사형의 몸에서 압도적인 검은 기세가 피어올랐다. 사형이 의념을 온전히 해방하자 최상층 전체에 무형지기의 압박감이 내려앉았다.
좋아.
역시 우리 사형이야. 이 맛에 검성을 키우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품에 걸어둔 호각을 꺼내 불었다.
이제 천지회 수습만 기다리면 끝이다.
*
유진휘가 입술을 깨물었다. 구 부인의 완맥을 순식간에 제압한 그녀의 눈동자가 까맣게 죽었다.
‘감히······. 그 더럽고 추한 몸으로 사제를······. 나의 사제를······. 유혹하다니······.’
유진휘의 심장이 뛰었다.
구 부인이 이철수에게 접근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유진휘는 놀랄 정도로 들끓는 살심(殺心)을 이성으로 간신히 찍어 눌러야 했다. 찢어 죽이고 싶었다. 추한 늙은이가 감히 소중한, 사랑하는 사제에게 주름진 손을 가져다 대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참아야만 했다.
사제가 말했으니까. 말하기 전에는 움직이지 말라고. 그녀는 사제의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는 사형이었으니까.
사제의 유일한 편인 사형이었으니까. 그래서 참았다.
하지만 사제의 수신호가 떨어진 순간, 유진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제압을 우선하라는 사제의 부탁을 듣고 간신히 이성을 붙잡은 상황이었다.
“너, 너무 열 내지 말려무나. 후후후. 본녀는 여인이라도 괜찮다. 특히 진 소저 그대 같은 어여쁜 천하절색이라면 더더욱······. 자, 본녀한테 안겨라. 본녀가 사내들로서는 결코 줄 수 없는, 오직 여인만이 줄 수 있는 쾌락을 네게······.”
구옥련이 유진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당황하고 있었다. 이철수. 그는 풍류공자 중의 풍류공자. 여색을 밝히는 망나니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말이 풍류공자지 사파라면 색마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사파 쪽에서는 공공연하게 그를 쌍발색검이라 부르는 데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섭혼술을 사용하면 쉽게 넘어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도리어 그녀를 비난했다. 늙고 추하다고.
‘느, 늙다니! 추하다니! 본녀는 이제 불혹을 갓 넘긴 원숙한 숙녀란 말이다······!’
안 그래도 화경의 벽에 부딪힌 채로, 환골탈태를 하지 못해 초절정의 경지에서 하루하루 늙어가던 구옥련이었다.
그녀에게 늙었다는 말은 역린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철수가 그런 폭언을 내뱉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계집에게 제압당해버린 것이다.
일검유희 진소소. 그녀의 경지가 절정에서 초절정 사이로 추측된다는 정보 정도는 그녀도 미리 파악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기껏해야 초절정 초입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 구옥련이 혈교를 통해 입수한 정보는 그랬다.
그래서 안심하고 이철수부터 제압한 뒤 진소소를 처리하려 했다. 공동파라는 배경이 있는 이철수는 함부로 할 수 없지만, 혈혈단신 무적(無籍)의 신비고수인 진소소는 처리해도 뒤탈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일검유희의 무력은 그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순식간에 공간을 장악한 기도, 일수에 그녀를 제압한 금나수의 수법은 초절정 수준이 아니었다.
화경.
화경의 절대고수가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환골탈태를 통해 노화를 방지하고 항시 이십 대의 외모를 유지하는 화경의 고수 말이다. 게다가 완맥을 제압당한 탓에 혈마지존의 힘을 강신시키는 술법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니 남은 건 그녀를 유혹해서 빈틈을 만들어 음약을 하독하는 것뿐이었다. 구옥련는 어금니에 매달린 음약 주머니를 혀로 핥았다.
실제로 그녀는 사내와 여인을 가리지 않고 운우지락을 즐기며 흡정공을 사용하여 채양보음과 채음보음을 모두 하는 색공의 고수.
일검유희 같은 절색의 미녀라면 오히려 환영이었다.
구옥련의 말을 들은 유진휘의 얼굴이 굳었다. 이 추한 요녀가 감히 사제에게 손을 댄 것도 용서하지 못할 중죄다. 그런데······. 이제는 사제에게 바치리라 결심한 그녀의 순백지신에 손을 대려 하고 있었다.
역시 용서할 수 없었다.
“지금 무슨 망발을 하는······.”
흥분한 유진휘가 그녀를 더 압박하려던 순간.
푸웃!
구옥련이 입 안에 있던 춘약 주머니를 이로 터뜨리면서 입으로 분출하며 춘약을 하독했다. 유진휘의 얼굴 정면에 음약이 뿌려졌다.
유진휘는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지만, 구옥련이 정제 또 정제해서 순도와 농도를 극도로 높인 비전의 춘약은 유진휘의 피부를 통해 그녀의 체내로 파고들었다.
“흐윽······!”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유진휘의 입술에서 신음이 흘렀다. 그녀의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동안 남장을 통해 간신히 억눌렀던 그녀의 색욕이 통제에서 풀려나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아, 안 돼······! 네년······. 대체 무슨······.”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본녀의 춘약을 정통으로 맞았으니, 오늘 내로 운우지락을 나누지 않으면 기혈이 터져 죽을 것이니라! 네년이 화경의 고수라도 예외는 없······.”
“다, 닥쳐!!”
자신만만하게 웃는 구옥련의 혈도를 유진휘가 거칠게 제압했다. 아혈과 마혈을 제압당해 말도 못 하고 몸도 뻣뻣하게 나무토막처럼 굳은 구옥련이 바닥에 쓰러졌다.
유진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색욕이 몸 안에서 싸우고 있었다.
몸이 뜨겁다. 가슴이 아플 듯 뛰었다. 갈증이 일었다. 목이 말랐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뜨거운 몸으로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그래 그.
사랑하는 그.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천하가 모두 그를 져버리더라도 그녀만큼은 그의 편이 되어주기로 결심한.
사제 이철수.
일그러진 시야 속에서 오로지 이철수의 모습만이 선명하게 비친 순간.
유진휘의 이성이 그대로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