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남자의 자존심
남궁청의 바지가 내려간 순간.
내 시야에 그의 물건이 들어왔다. 생각보다 크지만 나보다는 작은 사이즈.
‘역시 내가 더 크군.’
크기도 굵기도 전부 나의 승리다. 남궁세가 대공자도 색도의 경지에서는 나를 따라올 수 없군.
“······후우.”
남궁청이 눈을 감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가 눈을 떴다. 남궁청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본 공자의 패배요. 이번 비무는 이 형의 승리요.”
흐흐흐.
비무도 색도도 모두 내가 이겼다.
이 내가! 백도제일검가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펼치는 제왕검형을 꺾었다!
물론 마무리가 약간 이상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이긴 건 나다.
이제 강호 무림에서도 나를 다시 보겠지. 전도유망한 검섹남이자 차기 검성으로.
흐흐.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
“······남궁 공자의 하의를 벗기다니······.”
“공동괴협은 여인만 노리지 않았던가?”
“공동괴협한테 저런······. 취미가······.”
“일전에 검봉 서문 소저의 옷도 비무 중에 벗겼다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의복을 벗기는 악취미라니······.”
“그야말로 일검탈의(一劍脫衣)가 아닌가?”
귓가에 주변 후기지수들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이 새끼들이? 일검탈의? 일검탈혼(一劍脫魂) 같은 멋있는 별호는 어디다 버리고 일검탈의라니!
내가 제왕검형을 꺾었다니까!
“······공동의 복마가 이토록 강할 줄은 몰랐소. 이제껏 본 적 없던 새로운 절학이었소.”
“옥기린 남궁청이라면 행실과는 별개로 검재(劍才)로는 인정받는 남궁세가의 동량지재. 그런 옥기린을 검으로 꺾다니, 이번 용봉지회의 승자는 공동으로 돌아갈지도 모를 일이구려.”
“비록 불완전하긴 하나 남궁의 제왕검형이 패하다니······. 이 소협의 검술 실력이 이리 고절할 줄은 몰랐소이다.”
물론 내가 원하는 반응도 있었다.
그래, 이거지.
내 어깨가 다시 으쓱 올라가려던 그때.
“그런 고절한 실력으로 상대의 의복을 벗기는 것부터가 악취미요! 이런 무례한 행사라니! 정녕 그러고도 이 소협이 백도 무문의 후기지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이오?!”
귓가에 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야, 옷 좀 입어.]
나는 남궁청에게 전음을 보냈다.
여기서는 뻔뻔하게 나가야 했다.
아니 싸우면서 옷 좀 벗겨질 수도 있지. 그게 대체 뭐가 대수란 말인가?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내 전음을 들은 남궁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남궁청을 모시는 미녀 시비 둘, 창천쌍희가 다가와 남궁청에게 바지를 입혔다.
미녀가 바지를 입혀주는 호사를 누리다니. 역시 마음에 안 든다.
“백도 무림의 동도들은 들으시오! 본 공자의 의복이 벗겨진 건 비무 간에 언제건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에 불과하니,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마시오! 이 남궁 모도 찢긴 의복은 전혀 치욕이라 생각하지 않소! 본 공자는 패배를 인정하고, 천 소저한테 다시는 추파를 던지지 않겠소! 천 소저의 마음은 오로지 이 형의 것이오!”
남궁청이 새 바지를 입고 내력이 담긴 우렁찬 목소리로 선언하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흐음.
남궁청이 바지 사건에 대해 꼬투리를 잡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걸 넘어 나를 적극적으로 쉴드쳐줄 줄이야.
이로서 루머는 어느 정도 진정될 것이다.
운이 좋군.
“남궁 공자가 저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구려.”
“희롱을 당하고도 패배를 인정하고 결과에 승복하다니······.”
주변 후기지수들의 말을 나는 무시했다.
남궁청이 괜찮다는데 너희들이 뭐 어쩔건데?
“좋은 승부였소이다. 이 남궁 모한테 공동의 검을 견식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오.”
남궁청이 나를 바라보며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나야말로 좋은 승부였소.”
나는 남궁청의 인사를 받으면서 그에게 전음을 날렸다.
[야, 누가 네 형이야?]
아까부터 자꾸 왜 형으로 부르는 거야? 내 말에 남궁청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하하하하. 천 소저의 마음을 가져간 건 물론, 이 남궁 모의 마음도 가져갔으니 형이 아니면 뭐라고 불러야겠소? 게다가 본 공자처럼 이 형 또한 풍류를 아는 사내일 터. 존경의 의미를 담아 나이에 상관없이 형님으로 모시겠소이다. 이 형은 본 공자와 호형호제하는 것이 싫으시오?]
내 머릿속에 넉살 좋은 남궁청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 새끼가 미쳤나? 남자 놈의 마음을 내가 왜 가져가?
나는 속으로 기겁했지만, 그렇다고 놈의 호형호제를 안 받아줄 수도 없었다. 장차 정파 무림의 비선실세가 되려면 당연히 정파 무림에서 인맥을 쌓아둬야 했다.
그리고 남궁세가 대공자에 훗날 화경의 고수가 되는 남궁청 정도라면 일부러라도 인맥을 만들어야 했다.
물론 전생의 미래에서 남궁청은 화산파 검룡과 함께 구파일방 육대세가 비무행 도중이었던 사형을 급습해서 패배한 뒤, 스스로 단전을 폐하고 세가주 자리도 내놓았지만 말이다.
‘현생에서는 그럴 일이 없도록 해야지.’
어쨌거나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 이번 생에서는 내가 남궁청을 포섭해서 미래에 그럴 일이 없도록 방지하면 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마음대로 해라. 그나저나 너도 받았냐? 청담회 배첩.]
[역시 이 형도 받았구려! 하하하하하! 역시 풍류를 아는 형님과 저는······.]
[거기 가지 마라.]
남궁청이 청담회 멤버로 합류하는 걸 차단하는 것이다.
청담회는 수상한 구석이 잔뜩 있는 비선 조직. 전생의 남궁청을 조종한 것도 청담회니 시작부터
[가지 말라니······.]
[조금······. 걸리는 느낌이 있어서 말이지. 정 그렇다면 내가 먼저······.]
[알겠소. 그 정도야 뭐, 어렵지 않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음을 보내는 남궁청.
눈빛을 보니 연기는 아니다.
[하하하하. 대신 다음에 이 남궁 모가 여는 연회에 이 형을 초대할 터이니, 필히 참석하셔야 하오.]
[그러지.]
언제 밥 한번 먹자 수준의 약속을 나눈 뒤에 나는 남궁청과 전음을 끝냈다.
모든 일을 마무리한 나는 당당하게 걸어서 소검후에게 갔다.
어쨌거나 대외적인 명분은 소검후를 지키기 위해 싸운 거니, 그녀에게 의례적인 대사를 해줄 필요가 있었다.
보는 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많은 데다, 일검탈의라는 빌어먹을 별호가 또 붙었으니까.
이미지 세탁을 시도해야 했다.
“흐흐흐. 약조대로 승리하고 왔소. 천 소저.”
나는 연습했던 상남자의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천소빈을 향해 예의 바르게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천소빈의 얼굴이 떨렸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요. 이 공자. 역시 소녀가 연모하는 분다운 실력이에요!”
천소빈이 어색한, 국어책 읽기 같은 목소리로 연기하면서 내게 웃어 보였다.
아니 연기 아까는 잘 하더니, 갑자기 왜 저렇게 발연기를 하는 거야.
[야, 너 연기가 왜 그래?]
골든 라즈베리 여우주연상 급 발연기를 선보이는 천소빈에게 나는 전음으로 말을 걸었다.
내 전음을 들은 천소빈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내게 전음으로 말했다.
[이봐요, 당신. 왜······. 절 위해 나서준 거죠? 당신 말대로라면 전 당신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용하려는 여자잖아요?]
뜬금없는 질문.
하지만 자기 객관화는 드디어 아주 잘 되어 있었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용하려는 여자······.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내가 볼 때 넌 날 진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검후 선배와 내가 맺어지는 게 싫어서 내게 구애한 거니까 말이야.]
[그, 그건······.]
내 말을 들은 천소빈의 몸이 움찔했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왜, 모를 줄 알았냐?]
내 눈치가 몇 단인데.
그 정도도 모르면 자금성을 지배하는 구천구백구십구세의 권신이 되기 전에 이미 목 잘려서 효수당하고도 남았다.
지금까지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소검후는 전생의 검후를 동경한 나머지 그녀처럼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 정도로 검후의 사생 팬인 소검후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검후의 남편이 되는 건 죽는 것보다 싫겠지. 현대로 치자면 아이돌 열애설을 보는 팬덤의 입장 같은 거다.
그래서 고백 같은 극단적인 수를 쓴 거고. 안 봐도 뻔하다.
[······그건······. 그, 그렇다고 쳐요! 그래요! 당신의 생각대로라면, 당신한테 저는 천하의 몹쓸 년이로군요! 그런데 대체 왜 당신한테는 천하의 몹쓸 년인 제 편을 들어준 거죠? 당신 바보인가요?!]
소검후가 다시 내게 전음으로 물었다.
그녀의 붉어진 얼굴이 보였다. 나는 천소빈의 떨리는 눈동자를 마주하면서 연습해뒀던 멋진 대사를 내뱉었다.
[그야······. 넌 남궁청은 나보다 더 싫어하니까.]
[그, 그게 무슨······.]
[네가 날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안다. 날 이용하려고 했던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사내대장부가 되기로 결심한 몸. 여인의 사소한 사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너에 대한 감정과는 별개로 네가 곤경에 처했으니 도왔다. 대장부로서. 그뿐이야.]
소검후가 밉상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장차 검후를 내 여인으로 만들려면 그녀 역시 포섭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소검후와 관계를 개선해야 했다. 그렇다고 호구처럼 퍼주기만 하는 건 아니고, 밀당을 잘 해야겠지만.
지금은 당길 때다. 옥기린과의 비무는 나에게도 이득이라 받아준 거였지만, 그런 속내를 그대로 드러낼 정도로 나는 어리석지 않았다.
최대한 소검후를 위해서라며 포장하여 그녀에게 빚을 지운다. 게다가 나는 단순한 외인이 아닌 그녀의 사문인 항산파의 은인. 장문제자인 그녀는 이 상황을 쉬이 넘어갈 수 없을 터.
‘기사멸조의 죄를 범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이상한 수작은 못 부리겠지.’
사문의 은인이라는 내 위치를 악용하여 빚이라는 이름의 항거할 수 없는 부담을 그녀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소검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가 입술을 우물거리더니, 홱하고 발길을 돌려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반응에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뭐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탈주하는 이유가 뭐야?
내가 당황하던 그때.
“하하하. 이 형. 한 잔 받으시오.”
턱.
남궁청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잔을 건넸다. 나는 술잔을 바라보다 정중히 거절했다.
“미안하군. 금주 중이라.”
“웬 금주요?”
“술은 정력에 좋지 않아.”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손길을 내 어깨에서 떨쳐내면서 말했다.
그렇다. 알코올은 정력, 정확히는 발기에 좋지 않다. 그렇기에 나는 술을 멀리하고 있었다.
내 말을 들은 남궁청이 말했다.
“그렇구려. 정력이라, 그렇다면 이 남궁 모의 하물을 본 소감은 어떠시오? 그래도 나름 튼실하다고 자부하고 있소만. 하하하하하. 어쩌면 천하제일일지도 모르겠구려.”
그가 내게 말한다.이 새끼가? 갑자기 이야기가 왜 거기로 넘어가는 거지?
그런데 뭐?
본인의 양물이 천하제일이라고?
다른 건 몰라도 색도의 일대종사로서 양물 비교에서 질 수는 없다.
천하제일은 나다.
아니, 젤크와 케겔, 행잉으로 단련된 내 양물은 천하제일을 넘어 옛 진의 노애, 신라 지증왕, 러시아의 그레고리 라스푸틴, 이탈리아의 자코모 카사노바 같은 역사적 위인과 함께 고금제일을 논할 수준이었다.
“내 물건이 천하제일이야.”
“허어. 무슨 그런 말씀을. 비무라면 몰라도 양물이라면 이 남궁 모가 천하제일이요. 창천쌍희도 보증했으니 믿어도 좋······.”
남궁청의 말에 내가 다시 철저한 팩트로 내 하물이야말로 천하제일이라고 반박하려던 그때.
“······이 공자의 물건이 훨씬 거대합니다.”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남궁청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일검유희, 아니 사형이 있었다.
잠깐.
사형?
사형의 돌발행동에 내가 경악한 그때.
남궁청이 사형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 소저가 그걸 어찌 아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