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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32화 (132/171)

132화 유유상종(類類相從)

웅풍장.

등봉현 외곽에 자리한 장원. 현대식으로 보자면 교외에 자리한 장원이라 그런지 번화가와는 달리 경치 좋고 물 좋은 장소에 호화로운 고루거각(高樓巨閣)이 세워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공동괴협 이 소협과 동행자 분. 소검후 천 여협과 검봉 서문 여협이군요. 배첩 확인 완료했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힐끗.

문지기 역할을 맡은 무인이 배첩을 확인하면서 이쪽을 바라봤다.

내 양 옆에는 여전히 소검후와 사형이 매달린 채로 서로를 적나라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에는 서문청하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내 곁에 무려 미소녀가 셋에, 두 명의 미소녀가 양 옆에 내 팔짱을 끼고 있는, 양손의 꽃의 경지에 도달한 상황.

하지만 실제로는 양손의 꽃이 아니라 독이었다.

오른쪽 팔에 매달린 사형은, 지금은 조금 헷갈리기는 하지만 어쨌건 공식적으로는 남자이다.

거기에 왼쪽 팔에 매달린 소검후는 날 좋아하지도 않는 주제에 1년 전 경연부터 계속 쓸데없이 거짓 고백을 하고 있었다.

전혀 반갑지 않다.

“둘 다 떨어지십쇼.”

이제 용봉지연에 입장해야 했다. 파티장에서도 이런 식으로 붙어 있으면 곤란하다.

안 그래도 채화음적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마당에 쐐기를 박는 꼴이다.

내가 용봉지회에 참석한 이유는 검룡이 되기 위해서지 색룡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천 소저가 먼저 이 공자의 팔을 놓는다면 저도 놓겠습니다.”

찌릿.

사형이 맞은편 팔에 매달린 소검후를 노려보며 내게 말했다.

“소녀도 마찬가지예요. 흥! 수치를 모르는 진 소저가 은공의 옆에서 떨어지면 소녀도 떨어지겠어요!”

사형의 말을 들은 소검후가 맞받아친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힌다.

머리가 아프군.

[사형. 곤란해서 그런데 먼저 놓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돌겠네.

나는 사형에게 전음을 보냈다.

[안 돼. 사제. 미안해.]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안 돼’였다.

잠깐, 안 돼?

아니, 사형이 내 말을 안 듣는다고?

내 부탁이라면 팥으로도 메주를 쑤는 사람이 사형이었다. 공동파에 입문 후 처음 대면해서부터 지금까지, 사형은 내 부탁을 안 들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너무 착해서 호구처럼 보이는 우리 사형이······. 내 부탁을 거절한다고?

살짝 충격이다. 마치 말 잘 듣던 아들이 사춘기가 돼서 반항하는 모습을 본 부모의 심정 같은 느낌.

내가 사형에게 뭐라 하려던 그때.

“두 사람 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요!? 이제 곧 용봉지연이라고요! 남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나요?!”

서문청하가 나와 사형, 천소빈 사이에 개입해서 팔짱을 강제 해제한다.

덕분에 나는 두 사람의 구속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고맙군.”

“흥! 공자님한테 감사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에요. 공자님도 체면 좀 신경 쓰세요!”

내 말에 얼굴을 살짝 붉힌 채로 시선을 피하는 서문청하.

어쨌거나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이제 슬슬 용봉지연에 참석해야 했다.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 열린 장원 문 안으로 들어갔다.

장원 내부에는 연회장이 이미 설치 완료된 상황. 멋들어지게 조경된 정원에 차려진 테이블 위에는 산해진미 안주와 함께 술이 올라와 있었다.

무협소설에 허구한 날 나오는, 비싼 술의 대명사인 금존청(金尊淸)과 여아홍(女兒紅)이 테이블 위에 널려 있었다.

여아홍은 딸을 낳은 해에 빚어서 땅에 술독을 묻어 숙성시킨 뒤 결혼식 날에 꺼내서 먹는 술인데, 대체 왜 저렇게 발에 차일 정도로 많은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아무 술에다 여아홍이라는 브랜드를 붙여서 프리미엄 가격으로 비싸게 파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저 공자가 소문의 공동괴협 이 소협인가?”

“옆에 소검후 천 소저가 있는 걸 보니 맞는 모양이군.”

“검봉 서문 소저도 보이는데?”

후기지수들이 나를 바라보며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용봉지연은 구파일방 육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이 중심이 되어 여는 연회. 당연히 파티에 참가할 수 있는 자들은 구파일방 육대세가의 일원이거나, 그들과 인맥 네트워크를 형성한 중견 문파의 후기지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서 다이아 수저와 금수저들의 모임이었다.

여기 있는 자들이 곧 정파 무림의 미래였다.

정파 금수저답게, 입고 있는 옷도 하나같이 휘황찬란한 비단옷들이다.

나 같은 좋소 문파 후기지수가 용봉지연에 참석하는 건 드문 일이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흐흐흐흐. 다들 나를 주목하는군.’

여기에 옥기린 남궁청을 상대로 오늘 비무에서 내가 이긴다면?

단번에 무림 사교계의 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속으로 상남자의 웃음을 짓고 있던 그때.

“이 소협 옆에 있는 여인은 누구지? 천하절색이 따로 없군.”

“천하제일요녀 적사월과도 비견될 정도로 절세의 미모일세.”

“······내 오늘 새로운 미의 세계를 접했네. 개안한 기분이로군.”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모가 저런 것이라면, 옛 하은걸주의 마음도 이해가 되는군.”

“공동신협과의 친분으로 신비고수 일검유희가 공동괴협 이 소협과 동행한다고 들었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그럼 저 절세미녀가 일검유희라는 말인가? 일검유희가 절색이라는 세간의 소문이 진실이었군!”

사람들의 시선이 사형에게 향했다. 사형을 향한 극찬이 쏟아져 나왔다.

후기지수들의 시선을 받은 사형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부끄러운 모양이다. 사형이 내 팔뚝에 다시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사, 사제······.]

내 귓가에 사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짜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물컹하고 부드러운 가슴 감촉이 팔뚝으로 느껴졌다.

“흥.”

그 모습을 본 소검후가 사형을 찌릿 노려보더니 반대편 왼쪽 팔뚝에 달라붙었다.

“······허어······. 소검후도 몰라서 일검유희까지······!”

“공동괴협의 여인 홀리는 솜씨가 천하제일이라더니, 과연 그런가보오.”

“괜히 색협이라는 별명이 붙었겠소?”

“소검후 천 소저의 몸도 마음도 가져갔다는 소문이 진실인 모양이오.”

귓가에 후기지수들이 나를 보고 쑥덕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 꼴을 안 보려고 둘을 떼어놓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내가 속으로 한숨을 쉬려던 그때.

“이거 본 공자보다 먼저 와 있었구려. 공동괴협 이 소협.”

입구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재수없게 나보다 더 잘생긴 남궁세가의 대공자, 옥기린 남궁청이 있었다.

나를 보며 사람 좋게 껄껄 웃는 그의 양옆에는 사형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아름다운 미녀 둘이 있었다.

“남궁세가의 대공자가 왔군.”

“옥기린 남궁청이 오늘 공동괴협과 소검후의 마음을 놓고 서로의 무를 겨룬다지?”

“화화공자와 풍류공자의 만남이라. 그야말로 일대사건이라 할 수 있겠군.”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딱 어울려.”

남궁청이 내게 말을 걸자 주변 후기지수들의 평가가 들렸다.

유유상종이라니.

내가 저 망나니랑? 기가 찬다. 색도의 일대종사인 나를 한낱 망나니와 동급으로 여기다니.

기분이 나쁘다.

남궁청은 옥기린이라는 별호처럼 학창의를 걸치고 검을 찬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미녀들의 팔짱을 풀고 내게 다가오며 웃었다.

“잘 지내셨소? 이 소협. 소협께서 일검유희 여협과 사통하는 관계인 줄은 미처 몰랐구려. 일검유희 여협이 천하절색이라더니, 과연 소문이 틀리지 않았소.”

남궁청의 시선이 사형을 향했다. 호탕하게 웃으면서도 사형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남궁청.

“······처음 뵙겠습니다. 남궁 소협. 절색이라는 말은······. 세간 사람들이 저를 보고 덧붙인 허명일 뿐입니다. 무인은 미모가 아닌 무(武)로서 스스로를 증명하는 법. 저는 껍데기에 불과한 미모 따위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남궁청의 말에 사형이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사실상 꺼지라는 말을 곱게 돌려 말한 수준이었다. 그래, 이래야 우리 사형이지.

“하하하하. 그렇구려. 소검후 천 소저도 오랜만이오.”

“흥. 전 당신과는 할 말 없어요!”

남궁청의 말에 콧방귀와 함께 과시하듯 내 곁에 달라붙는 천소빈.

“할 말이 없다라, 좋소. 조금 있으면 천 소저도 본 공자와 할 말이 생기게 될 터이니.”

실실 웃던 남궁청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그가 손을 올려 수신호를 보내자, 그를 뒤따르던 두 명의 미녀가 남궁세가의 무사들을 부리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제법 고절한 무공을 익힌 몸놀림이었다.

‘저 둘이 그 유명한 창천쌍화인가?’

남궁청이 어릴 때부터 그를 보좌해온, 남궁세가 방계 출신의 전속 시비이자 최측근.

당연히 무공도 배우고 있었다.

단순한 기녀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자, 이제 무대가 만들어졌으니······.”

남궁청이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연회장으로 꾸며졌던 장원 마당은 순식간에 임시 비무대로 탈바꿈해 있었다.

용봉지연에 참가한 정파 금수저들은 여아홍을 들면서 나와 남궁청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일전의 약조대로 소협과 본 공자가 천 소저를 놓고 서로의 무를 겨룰 차례요. 승자가 천 소저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이오!”

남궁청의 말과 함께 연회장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아니, 누구 맘대로 소검후 따위의 마음을 건다는 거지? 나는 사전에 동의한 적 없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적 없다고 나서봤자 주변의 비웃음만 살 뿐이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테지. 오히려 역효과다.

뭐 나쁘지 않다.

소검후가 날 안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대외적으로는 나를 연모하고 있다고 다들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는 그걸 역이용해서 망나니에게서 자기 여자를 지키는 상남자 이미지를 구축할 때다.

어차피 소검후가 날 진짜 좋아하는 것도 아니니, 그녀를 이용했다는 양심의 가책 따위는 느낄 필요도 없고.

소검후도 남궁청도 검룡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으로 사용해주지.

나는 그런 원대한 야망을 품으면서 자연스럽게 사형과 소검후 사이의 팔짱에서 빠져나와 행운유수의 묘리를 응용한 발걸음으로 최대한 우아하게 걸었다.

용봉지연에 참가한 수많은 정파 무림 유망주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모두의 관심을 받는 이 자리에서 나는 반드시 상남자의 이미지를 구축해야 했다.

“흐흐흐흐흐흐흐. 좋다. 옥기린. 네 도전을 받아들이지. 하지만 너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천 소저를 위해서라도, 이 비무에서 반드시 이길 테니까 말이다. 사내답게 패배에 승복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

“이 남궁 모가 패배한다면 당연히 결과에 승복할 것이오. 소협은 어떻소.”

“물론 나도 승복할 것이다. 더 이상의 허례허식은 의미가 없으니 검을 뽑아라. 옥기린.”

스르르릉.

나는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멋진 각도와 자세, 웃음과 표정을 지으면서 검을 천천히 간지 나게 뽑았다.

“······무인은 검으로 말하는 법. 내 오늘 공동의 검으로 남궁의 검을 꺾을 것이다.”

내 도발을 들은 옥기린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풍류공자라고는 하나, 그는 본질적으로 남궁세가의 대공자. 백도제일세가. 달리는 정파제일검가라 불리는 남궁세가다. 검(劍)에 있어서는 무당파와도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무학을 보유한 세가의 후계자가 옥기린이다.

내 도발을 그냥 넘길 수 없을 것이다.

“공동에 복마가 돌아왔다고 들었소. 소문대로 공동의 복마가 대단한지 이 소협께서 한 수 보여주셨으면······. 좋겠구려.”

남궁청의 표정이 드물게 진지해졌다. 그가 검을 뽑아든 순간.

무한하면서 압도적인 기세가 순식간에 임시 비무대를 장악했다.

창궁무애검(蒼穹無涯劍).

무한한 하늘을 일검에 담은 남궁세가의 개세절학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남궁청을 바라보면서 상남자의 웃음을 지었다.

흐흐흐.

두고 보라고.

최고의 승리를 따내서 내가 검술하는 섹시한 남자라는 사실을 반드시 정파 무림에 증명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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