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추궁과혈(推宮過穴)
나는 서하린의 뒤를 따랐다.
원래 태양화리의 내단을 복용하려 했는데, 서하린이 영약 복용을 도와달라 했으니 정력제 복용은 잠깐 미뤄야겠다.
뭐, 사내도 아닌 사매의 부탁이니, 이 정도는 충분히 들어줄 수 있었다.
“여기입니다. 사형.”
서하린이 나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소림사에서 손님들을 위해 개방한 연공실이었다. 사방이 석벽으로 막히고 바닥에는 청석이 깔린 연공실에 도착한 나는 문을 닫았다.
그그그그.
무거운 석문이 닫혔다. 연공실 내부에 준비된 화섭자로 황촉에 불을 붙이자 어둠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대환단을 취하고 연공실 바닥에 엎드리면 되겠습니까?”
서하린의 무표정한 얼굴이 어둠 속에서 불쑥 떠올랐다.
엎드린다는 건 추궁과혈을 한다는 뜻인데······.
“추궁과혈까지는 필요 없는데······.”
솔직히 필요 없다. 그냥 진기도인만 하면 된다. 물론 추궁과혈을 해도 나쁠 건 없지만, 과잉 처방이다.
게다가 사매가 성인이라면 모를까, 아직 소녀 아닌가?
내가 거절하려던 그때.
“······해 주십시오. 추궁과혈.”
서하린이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내가 그녀를 재차 만류하려던 그때.
스윽.
그녀가 품 안에 손을 넣었다. 곧이어.
스르륵.
그녀의 발아래 붕대가 떨어졌다. 그와 함께 펑퍼짐한 무복으로도 전부 가릴 수 없는, 또래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가슴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스럽게 얼굴에 피가 몰렸다.
‘······전생에서도 가슴만큼은 천하제일이라 듣기는 했는데······.’
백도제일화 냉혼검희 서하린.
천하제일미 적사월에게 그녀가 유일하게 밀리지 않는 신체부위가 수밀도(水蜜桃), 즉 가슴이라는 소문이 강호 무림에 암암리에 돌기는 했었다.
실제로 전생에 잠깐 마주쳤던 그녀는 균형 잡힌, 폭유에 가까운 아름다운 거유의 소유자이기도 했었고.
그런데 소녀인 지금부터 이렇게 커다란 사이즈의 수밀도를 보유했을 줄은 나도 몰랐다. 붕대로······. 가리고 있었던 건가?
“······사형. 혹시 제 가슴이······. 보기 좋지 않으십니까?”
“아니. 그럴 리가. 아무튼 추궁과혈은······.”
내가 뭐라하려던 그때.
그녀가 가슴골에서 쑤욱 꺼낸 대환단을 입 안에 넣고 그대로 엎드리면서 상의를 벗었다.
그녀의 새하얀 등이 보였다. 풍만한 서하린의 가슴이 청석 바닥과 부딪혀 부드럽게 뭉개졌다.
‘어쩔 수 없군.’
정말 어쩔 수 없다. 가부좌도 아니고 이렇게 드러누워 버리면 추궁과혈 말고 다른 방법은 할 수 없다.
뭐, 이렇게 된 이상 잘 됐다.
추궁과혈.
현대식으로 풀이하자면 경락 마사지다. 현대 마사지와 차이점이라면, 기 치료가 더해졌다는 점이다. 기(氣) 치료는 내공이 없는 현대 지구에서는 사이비 유사 의학이지만, 내공이 실존하는 중세 무림에서는 엄연히 의학의 한 축으로 인정받는 분야였다.
중세 무림의 치안은 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하다. 현실과는 달리 무공 익힌 깡패들이 대낮에 버젓이 활보해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강호인 대부분은 전문 의원만큼은 아니지만, 비상시를 대비해서 어느 정도 응급 의술을 배워두는 편이었다. 안 그러면 정말 칼 맞고 응급처치를 제대로 못 해서 비명횡사할 수 있었다. 운기요상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전부 응급 의술로서의 기 치료술이다.
나는 무림인은 아니었지만, 무림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 동창 첩요 요원으로서 어느 정도 기 치료술을 배워둔 상황.
특히 추궁과혈은 기 치료 마사지인 만큼, 당연히 상대 몸에 직접 접촉해서 살결을 만지고 혈자리를 지압해야 했다. 여인을 상대하더라도 마찬가지.
‘추궁과혈이야말로 여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핵심 스킬이지.’
흐흐흐.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렇다. 추궁과혈이야말로 여심을 사로잡는 비법 중 하나였다. 물론 나는 색마가 아니기에 마사지로 음심(淫心)을 충족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마사지를 핑계로 여인을 희롱하는 건 색마나 하는 짓. 내가 추구하는 색도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진정한 색도의 일대종사라면 음심을 배제한 채 철저히 마사지에만 집중해서 여인을 기쁘게 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런 음심이 없더라도 남녀 사이에 신체 접촉, 특히 추궁과혈처럼 전신 접촉이 발생한다면 분위기가 묘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고는 곧바로 자연스럽게 여심을 사로잡고 운우지락 각으로 연결하여 몸도 마음도 미녀와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그것이 색도인 것이다.
이것이 내가 추궁과혈을 이론적으로 완벽히 연마한 이유였다.
물론 사매를 상대로 그럴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게는 아직 추궁과혈의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
어차피 사매가 대놓고 이렇게 드러누운 이상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렇다면 사매에게 지금까지 심상으로 수없이 수행했던 추궁과혈을 실전으로 펼쳐낼 수밖에 없다.
나는 사매의 새하얀 등 위에 살짝 올라탄 채로 신중하게 양 손끝에 내력을 집중했다. 이때를 위해 수련해온 지법이 빛을 발할 때였다.
나는 그대로 서하린의 혈자리를 꾸욱 눌렀다.
“······!!”
움찔.
서하린의 몸이 떨렸다. 나는 눈을 감고 손끝을 통해 내 내력을 그녀 안에 흘려 넣었다. 대환단의 막대한 영기(靈氣)가 서하린의 혈도를 질주하는 것이 느껴졌다.
꾸욱.
손가락으로 다시 등의 혈자리를 누른다.
“······흑!”
서하린의 입에서 신음 같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봐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조심스럽게 손을 사용해서 서하린의 말랑말랑한 등을 꾸욱꾸욱 지압하면서 내력을 주입해 진기도인으로 대환단의 영기를 인도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대환단의 영기가 내 혈자리 자극과 진기도인의 인도를 따라 서하린의 임맥으로 향했다. 쿠웅!
영기가 임맥의 문 앞에 막힌 탁기를 두드렸다.
“아파도 삼음진결의 구결을 읊으면서 참아.”
나는 사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집중력을 과다하게 사용한 탓일까? 이마에 한 줄기 땀이 흘러내렸다. 나는 진기도인을 통해 그대로 대환단의 영기를 임맥의 문에 부딪혔다.
콰광!
곧이어 임맥에 쌓인 탁기가 무너지며 영기가 봇물이 터지듯 혈도를 타고 도도하게 흘렀다.
“흐윽?!”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주륵. 노폐물이 흘러나왔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진기도인을 이어나갔다. 곧이어 영기의 노도 같은 기세가 양맥의 문까지 뚫은 순간.
“하윽!?”
남사스러운 비명과 함께 그녀의 몸에서 주르륵, 검은 노폐물이 쏟아져나왔다.
서하린이 마침내 임독양맥을 타통한 순간이었다. 깨끗해진 혈도 내부를 원활하게 순환하는 서하린의 내력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둔 물에 적신 헝겊으로 그녀 등에 있는 노폐물을 전부 닦아냈다.
“흐으으······.”
치덕치덕.
검은 노폐물을 닦아내자 서하린이 이상한 신음을 흘렸다. 움찔. 그녀의 하얀 등과 뭉개진 가슴이 떨렸다.
임독양맥을 타통하고 노폐물도 닦아냈으니, 이제 전신세맥에 잔여물처럼 남은 대환단의 약효를 서하린이 전부 흡수할 수 있도록 본격적인 추궁과혈을 할 시간이었다.
나는 사심 없이 경건하게, 색도의 일대종사의 마음가짐으로 그녀의 등을 조용히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움찔.
내 손길이 닿자 서하린의 하얀 등이 떨렸다.
나는 내력이 깃든 손으로 서하린의 등을 지압하다가 부드럽게 쓸어내리면서 주무르며 혈자리를 자극했다.
“흐윽, 하아······.”
서하린의 눈동자가 살짝 풀렸다. 그녀의 입에서 기분 좋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으응······.”
나는 서하린의 나른한 신음을 들으면서 추궁과혈을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탁탁.
손을 털어내면서 나는 서하린의 등에서 내려왔다. 추궁과혈이 전부 끝났기 때문이었다.
“끝났어.”
“······감사합니다. 사형.”
내 말에 몸을 반쯤 일으킨 서하린이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보였다. 임독양맥을 타통해서 벌모세수를 끝낸 덕분인지, 한층 성숙해져서 소녀보다는 여인에 가까워진 글래머한 몸매가 시야에 보였다.
나는 봇짐에서 비상시를 대비해서 항상 준비해두는 여벌 옷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준비성이 철저한 남자가 미인과의 운우지락을 쟁취하는 법이니까.
“갈아입어. 난 뒤 돌아보고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형.”
사르륵.
옷가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옷을 입는 소리도 들려왔다. 청각의 자극이 심하다.나는 눈을 감고 속으로 애국가를 불렀다.
그렇게 애국가를 3절 후렴구까지 불렀을 때쯤.
“······다 되었습니다. 돌아보셔도 됩니다.”
서하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등을 돌리자, 내 검은 무복을 입은 서하린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 무복인데도 감출 수 없는, 부풀어 오른 검정 가슴 커튼이 시야에 보였다.
대체 얼마나 큰 거야. 적사월이랑 비슷할지도 모르겠는데.
나와 시선이 마주친 서하린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래. 다 됐으면 나가자.”
서하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소맷자락을 잡았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연공실을 나갔다.
“숙소에 도착하면 목욕 꼭 해라. 노폐물, 전부 못 닦았으니까.”
“······알겠습니다. 사형.”
내 말을 들은 서하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끄러운 모양.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시간은 어느새 저녁이 되어가는지, 빨간 노을이 소림사 경내를 물들였다. 북적이던 인파도 어느 정도 진정되었는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사람 없는 소림사 경내를 나는 내 소매를 붙잡은 서하린과 함께 걸었다.
스윽.
서하린이 소매를 넘어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가슴이 내 팔에 닿았다.
괜히 뻘쭘해진 상황이다. 절간에서 여자와 손을 잡고 이러고 다니고 있다니.
뭔가 소림사에 죄를 짓는 기분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
내 귓가에 빌어먹을 별호가 울렸다.
“공동괴협 이철수. 여기 있었군.”
그와 함께 저 멀리서 하얀 무복을 입은 미남자가 나를 응시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
“······누구신데 절 찾으시죠?”
내 말을 들은 미남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거, 내 이름을 안 밝혔군. 나는 모용세가의 모용위라고 하네.”
모용위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반사적으로 정보가 떠올랐다.
모용위.
모용세가의 대공자.
그리고 사형이 천하제일인이 되기 전에 정파 무림맹을 암중에서 장악한 이너 서클 청담회의 수장.
전생의 사형이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구파일방 육대세가 상대 비무행을 떠났을 때, 정파 내부를 선동해서 화산파, 남궁세가, 청성파, 점창파의 최고수 네 명이 사형을 급습하게 만든 사건의 진짜 배후.
미래 정파 무림의 흑막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자네가 풍류를 아주 잘 안다고 들었네. 하하하하. 염희 능 소저의 마음을 훔친 건 물론, 수많은 여인에게 지고의 쾌락을 선사해 그녀들을 극락으로 보냈다고 말일세.]
귓가에 모용위의 전음이 울렸다.
뭐지 이 새끼?
지금 나더러 색협이라고 시비 거는 건가? 수많은 여인을 어디로 보내?
이게 누굴 색마로 아나. 난 아직 한 번도 해본 적 없거늘.
내가 발끈하려던 그때.
[나는 공동괴협 바로 자네 같은 풍류공자를 찾고 있었네······. 거두절미하고 내가 이번에 자네를 직접 찾아온 이유는, 자네를······. 내일 열릴 청담회 연회에 초대하여 함께 풍류를 논하기 위해서네.]
내 귓가에 모용위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어딜 초대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