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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15화 (115/171)

115화 신승(神僧)

신승(神僧) 원극대사.

나는 전생에서 그와 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었다.

사파제일인 적사월은 전생의 말년에 몇 번 마주칠 기회가 있었지만, 신승은 예외였다.

그는 내가 권력의 정점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파제일인 자리를 검성 유진휘에게 넘겨주고 은퇴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많은 나이를 먹은 그는 은퇴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격체전공으로 모든 내력을 마지막에 들인 제자에게 넘겨준 뒤 입적했다.

그러니 내가 알고 있는 신승의 정보는 기록뿐이었다.

기록으로만 알고 있는 절대고수 신승.

과연 현실에서는 어떤 인물일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형과 함께 안내역을 자처한 소림승의 뒤를 따라 걸었다.

웅장하고 거대한 소림사 본당을 거쳐 탑림을 지나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이 있는 곳으로 향한 뒤에야.

우리는 마침내 초라한 동굴 입구 앞에 도착했다.

달마동.

입구에 그렇게 한자로 쓰인 동혈 앞에 도착한 소림승이 말했다.

“태사조님! 공동파의 두 분 소협을 모셔왔습니다.”

“알겠다. 물러가거라.”

소림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변 모든 방위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육합전성.

상승의 고수들만이 사용 가능한, 여섯 방위에서 목소리를 울려 위치를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기예였다.

“네! 그럼 두 분 소협도 좋은 시간 되시길. 아미타불.”

소림승이 반장과 함께 경공을 펼쳐 사라졌다.

주변에 기척이 전부 사라진 그때.

“들어오시게.”

동굴 너머에서 신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늙은 노인보다는 젊은 청년, 아니 소년에 가까운 앳된 목소리.

신승의 목소리를 들은 유진휘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제. 내 손 잡아.]

유진휘가 내게 전음을 보내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살짝 고민하다가 사형의 손을 잡았다.

오랜만에 잡는 사형의 손은 제법 부드럽고 따뜻했다.

왠지 묘해진 기분.

[들어가자.]

사형과 함께 달마동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달마동.

소림의 개파조사이자 정종 무학의 대종사인 달마대사가 9년간 면벽 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생사경의 경지에 올랐다는 전승이 전해지는 동굴.

소림사와 정파 무림의 성지.

전생에서도 와 본 적 없던 동굴 안으로 나는 사형과 함께 발걸음을 내딛었다.

달마동 내부에는 야명주 대신 향초가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동굴의 끝, 달마대사의 석상과 향이 피어오르는 향로가 놓인 곳에서 마침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아미타불. 노납이 원극이라네. 어서 오시게. 공동의 두 소협.”

102세라는 나이가 안 믿길 정도의, 나보다도 어린 15세 소년으로 보이는 동자승이 붉은 가사를 걸친 채 염주를 손에 쥐고 한쪽 손을 들어 반장의 예로 우리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렇다.

이 자가 바로 정파제일인이자 당대의 천하제일인인 현경의 절대고수 신승 원극대사였다.

신승의 몸에는 고수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우뚝 솟은 태양혈도 없었고, 하늘을 떨어 울릴 정도로 압도적인 기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그저 외관과 맞는 15세 또래 동자승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반박귀진이로군.’

반박귀진(返璞歸眞).

화경을 넘어 현경의 경지에 도달하면 도리어 그 기도가 범인과 같아져서 구별할 수 없게 된다는 경지.

전생의 나도 도달해봐서 아주 잘 알았다.

거기에 그의 자세는 언뜻 보기에는 아무렇게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전혀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철두철미했다.

그러니까 게임에서 대놓고 비싼 장비 두르고 다니는 놈들보다 다 벗은 상태에서 팬티 한 장 입고 다니는 놈들이 더 고인물인 것과 같은 이치였다.

“정파 무림의 등불이자 영웅이신 신승 원극대사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동파의 유진휘라고 합니다.”

“공동파의 이철수라고 합니다.”

나와 사형이 공손히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강호 무림의 짬킹인 신승이다. 당연히 먼저 숙이고 들어가야 했다.

“신승이라. 강호의 동도들이 붙여준 허명일 뿐. 까마득한 후배에게 들을 공치사는 아니라네. 허례는 됐으니 앉으시게.”

신승이 자리를 권했다.

나와 사형이 자리에 앉았다. 그가 미리 준비해둔 걸로 보이는 녹차를 별 볼 일 없는 허름한 잔에 쪼르르 따랐다.

“소일거리로 직접 키운 차라네. 부디 두 시주의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군.”

“대접 감사합니다.”

나는 공손하게 인사하면서 녹차를 들이켰다.

맛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객잔에서 후식으로 내오는 싸구려 녹차와 비슷한 수준.

하지만 나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찻잔을 전부 비웠다.

“저희를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십 년 전, 공동파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지. 아미타불.”

신승의 말과 함께 달마동 한쪽 구석 바닥에 박힌 항아리가 두둥실 떠올라 탁자 위에 얹어졌다.

허공섭물이었다.

하여간 무림 고수들 내력 낭비하는 건 알아줘야 한다.

딸칵.

그가 항아리 뚜껑을 열자 비급 하나가 나왔다.

혼원일기공.

공동파의 실전된 최상승 내가기공이자 이합신공에 입문하려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세 가지 내가기공 중 하나였다.

혼원일기공의 비급을 본 유진휘가 살짝 놀랐다.

“이건······.”

“혼원일기공의 비급일세. 반쪽만 남았으나.”

스윽.

신승이 조심스럽게 비급을 꺼냈다. 뒷부분이 타버려 불완전한 비급서의 모습이 보였다.

“오십 년 전, 노납이 공동파에 당도하였을 땐 이미 혈사가 끝난 다음이었지. 마교의 약탈이 끝난 이후였기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이 비급이라도 구한 것이 천운이었네.”

신승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전생에서 입수한 정보로 이미 알던 이야기였다.

뒷부분이 타버려 불완전한, 구결이 삼분지 일만 남은 혼원일기공은 익히면 무조건 주화입마를 초래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신공절학이기 때문에 수많은 이리 떼가 혼원일기공을 차지하려 음모를 꾸밀 것은 명약관화했다.

불완전한 혼원일기공은 몰락한 공동파에는 약이 아니라 독이다.

그러니 살아남은 공동파의 제자이자 공동파 장문인이 된, 우리에게는 사조이며 전영에게는 사부인 임백천과 신승은 약조를 맺었다.

공동파가 충분히 일어설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되기 전까지, 혼원일기공을 신승이 보관해두기로 말이다.

물론 그 판단을 내릴 권리는 장문인과 신승 양쪽 모두에게 있었다. 당대 장문인인 전영은 아직 재건 준비가 덜 끝났다고 판단되어 혼원일기공을 되찾지 않았던 모양.

하지만 신승의 판단은 달랐다.

“노납이 보기에 지금의 공동파는 충분히 혼원일기공을 감당할 수 있네. 장문 제자인 유 소협의 성취가 화경에 이르렀으니, 불완전한 혼원일기공을 완성시킬 수도 있겠지. 하여, 이제 오랜 세월 노납이 짊어졌던 짐, 마음의 빚을 내려놓고자 하네.”

신승이 조심스럽게 삼분지 일만 남은 혼원일기공의 비급서를 들어 유진휘에게 건넸다.

“가져가게나. 유 소협.”

“감사합니다.”

“노납한테 감사할 필요는 없네. 사필귀정. 노납은 그저 물건을 맡아뒀을 뿐. 비급은 본래 귀 파의 물건일세. 단지 원래 자리로 돌아갔을 뿐이니.”

사형이 비급서를 소중히 받아서 품 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뭐, 혼원일기공의 비급서를 신승이 건네는 건 1회차에서도 있던 일이었다.

차이점이라면 그때 사형의 경지가 화경이 아닌 초절정이었다는 것 정도?

화경의 벽에 막혀 있던 사형은 혼원일기공의 비급을 연구하며 구결을 복원하다 화경의 벽을 돌파하게 된다.

“감사합니다.”

“허허허허.”

사형의 감사 인사에 허허 웃는 신승.

15세 소년의 외형에 걸맞지 않는, 노친네 같은 웃음소리였다.

그런데 혼원일기공만 돌려줄 거라면, 대체 왜 나도 같이 보자고 한 거지?

내가 공동파의 제자기는 하지만, 사형과는 지위가 차이가 났다.

사형은 장차 공동파를 물려받을 장문제자. 장문인 부재인 지금 상황에서는 사형이 공동파의 장문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나는 없어도 상관이 없었다.

실제로 전생에서 신승과 사형은 일대일 대면을 했다. 서하린은 신승과의 만남에 사형과 동행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굳이 나를 불렀다는 건, 신승이 내게 볼일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볼일이 뭐지?

정파제일인이 나에게 관심을 가질 일이라면, 하나뿐이다..

‘혈교 때문이로군.’

혈교.

그게 아니라면 신승이 나도 같이 부를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신승은 정파제일인이자······.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모인 고수들이 강호 무림의 그림자에 숨어 혈교에 대적하는 신비세력, 천지회(天地會)의 수장이니까.

물론 이것도 전생의 동창에서 알아낸 사실이었다.

‘천지회라.’

천지회(天地會).

혈교로부터 중원을 지키는 신비세력.

물론 그런 거창한 타이틀과는 달리 전생에서는 혈교의 발호가 없었기에 천지회도 하는 일 없이 노강호들이 모여 농담 따먹기나 하는 친목 모임이다.

동창은 그렇게 파악하고 있었다.

물론 300년이 넘게 이어진 신비조직답게 동창의 힘으로도 천지회 조직원 전부를 밝혀내는 건 무리였지만.

뭐 불순한 목적도 아니고 국적 혈교와 대적한다는 명분에다가 실제로 불온한 움직임을 보인 적도 없으니 전생의 나는 딱히 천지회에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다르다.

실제로 혈교가 암중에서 나타났다. 그렇다면 어쩌면, 천지회 또한 암중에서 혈교와 싸우고 있던 게 아닐까?

아무튼 그런 천지회의 회주인 신승이다. 나와 독대할 이유는 충분했다.

지금의 무림에서 혈교와 직접 마주친 사람은 검후와 나, 둘뿐이니까.

이러면 검후가 굳이 외부 숙소를 잡지 않고 소림사 객당으로 들어온 것도 이해가 된다.

신승은 검후도 아마 만났거나 만날 예정일 것이다.

“그럼 유 소협은 일단 물러가게나. 이 소협과 둘이서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따로 할 이야기, 말씀입니까?”

신승의 말을 들은 사형이 반문했다.

그가 내 손을 꼬옥 잡았다. 사형의 들꽃 향기가 코 끝에 스쳤다.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단단히 잡은 손을 본 신승이 말했다.

“······검후비동의 일 때문이네. 허허. 노납을 너무 경계할 필요 없네. 이 소협과는 그저 이야기만 나누고자 할 뿐이니.”

“······알겠습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신승의 해명을 들은 유진휘가 내 손을 놓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사제. 무슨 일 있으면 꼭 나한테 전음 보내야 돼!]

뒤이어 사형의 전음이 들렸다.

하여간, 누굴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안다니까.

그래도 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전생에서나 현생에서나 누군가 나를 걱정해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있어봤자 황상 정도일까. 하지만 황상은 내가 돌보던 가족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황상이 걱정해도 그냥 여동생이 애교 부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형은 달랐다.

고작 1년 안 봤다고, 뭐라고 해야 할까. 제법 형다워졌다. 남자에게 이런 표현을 쓸 줄은 몰랐지만.

누군가에게 걱정을 받다니.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알겠습니다. 사형. 꼭 그리하겠습니다.]

[응, 알았어. 그럼 이야기 잘 끝내고 다시 봐.]

전음 교환을 끝낸 사형이 달마동 밖으로 나갔다.

사형의 기척이 사라진 순간.

후루룩.

신승이 녹차를 마셨다.

탁. 그가 찻잔을 내려놓은 그때.

번쩍.

신승의 양쪽 눈동자에서 황금빛 광망이 피어올랐다.

“그래서, 그대는 누구인가?”

펄럭!

신승의 붉은 가사가 바람이라도 맞은 듯 펄럭였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신승의 몸에서 황금빛 기도가 피어올랐다. 그의 등 뒤로 황금빛 연꽃과 법륜(法輪)이 환영처럼 솟아올랐다.

“노납은 천안통(天眼通)으로 똑똑히 보았네. 그대의 혼백에 서린 역천명(逆天命)의 기운을······. 그러니 노납한테 제대로 해명해야 할 걸세. 이 소협. 자네는 대체 누구인가?”

아, 그래.

내 이럴 줄 알았다. 뭐, 놀랍지도 않다.

황금빛 광망이 내게 쏟아진 순간.

나는 조용히 여유롭게 찻주전자를 들어 찻잔에 맛없는 녹차를 따른 뒤, 한 모금 머금었다.

자.

이제 수작 좀 부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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