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14화 (114/171)

114화 귀여운 영령이

내 말을 들은 당영령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녀가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와 양팔을 허리에 얹고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빠. 지금 뭐라 그랬어. 귀여운 영령이더러 돌팔이라 그런 거야?”

당영령의 말에 나는 어이가 하늘로 날아가는 걸 느꼈다.

뭐?

귀여운? 영령이?

올해로 지천명인 이 노괴가 날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어이없는데 3인칭화도 모자라 스스로 귀엽다고 하다니.

노망이 난 게 틀림없다.

게다가 자기가 돌팔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저 모습도 뻔뻔하다.

전생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 환골탈태 사기 처방전을 받은 이후.

전생의 나는 당영령에게 충분한 보상을 했다. 황제의 이름으로 황금 10관을 하사하는 건 물론 명예 벼슬까지 하사했다.

게다가 환골탈태 이후 양물이 안 자라나서 처방전이 사기라고 들통난 이후에도 나는 그녀에게 내린 상과 하사품을 거두지 않았다. 이 얼마나 자비로운 처사란 말인가?

그런데도 뻔뻔하게 돌팔이라는 한마디로 저렇게 흥분하다니.

“아, 말이 헛나왔나 봅니다. 고자도 못 고치는 어떤 돌팔이가 생각나서······. 영령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는 모습을 보니 선배가 바로 의술이 하늘에 닿아 화타와 편작에 견준다는 당대 천하제일의원 당영령 선배로군요. 신의 당 선배를 만나서 영광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지천명에 이른 분이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저한테 오빠라니요. 면구스럽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한 발 빼면서 당영령에게 정중히 포권하면서 말했다.

물론 나이도 많으면서 어린 나에게 오빠라고 부르니까 좋냐? 라는 말을 빙빙 돌려서 정중하게 말하는 건 덤이었다.

내 말을 들은 당영령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그녀가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면서 팔짱을 끼며 말했다.

“흐, 흥. 그래. 오빠 말이 맞아. 영령이가 바로 천하제일의원! 신의 당영령이야! 호호호호호호호!”

신의라는 별호를 듣고 기분이 좋아진 당영령.

하긴 당영령은 괴의라는 별호를 별로 마음에 안 들어했다.

강호 무림에서 괴(怪)라는 문자는 또라이를 의미하는 문자. 본인 보고 또라이 미친놈이라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뭐, 당영령이 괴의라고 불리는 건 자업자득이지만.

어차피 고자도 못 고치는 돌팔이다. 괴의라는 별호도 아깝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

“······사제!”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락.

곧이어 내 품에 안기는 익숙한 감촉. 1년 만에 보는 사형이었다.

“사제······. 보고 싶었어······.”

내 이럴 줄 알았다.

예상대로 내 품에서 훌쩍이는 사형. 코 끝에 사형 특유의 들꽃 향기가 스쳤다.

원래라면 기겁했을 사형의 포옹.

하지만 사형의 성별이 여자일 일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와 너무 오래 지내서 미운정이 들었다가,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일까.

옛날처럼 그렇게 기겁할 것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사형의 등을 토닥여주면서 말했다.

“우제도 사형이 보고 싶었습니다.”

“응. 잘 지냈어?”

“잘 지냈습니다. 사형은 어떻습니까?”

나는 사형을 품에서 떼어내면서 말했다.

“나도 잘 지냈어! 후후. 사제가 보고 싶어서 정말 혼났어!”

사형이 눈물을 소맷자락으로 닦아내면서 내게 전음을 날렸다.

[사제. 나 드디어 화경의 경지에 올랐어. 당분간 대외적으로는 비밀로 할 거지만, 사제만 알고 있어. 그리고 본 파의 무학도 지난 1년 동안 강호행을 하면서 조금 개량해봤어. 조금 있다가 숙소에서 구결 알려줄게.]

사형의 전음을 들은 나는 내심 놀랐다.

뭐?

화경이라고?

열일곱 살에 화경이라니. 전생의 검성 유진휘보다 더 빠른 무공 성취였다.

전생의 검성 유진휘는 스물다섯에 화경의 경지를 돌파하여 강호 무림에 그 이름을 떨쳤다.

그때도 이례적인 속도이기에 천재 중의 천재라고 강호 무림이 떠들썩했는데.

이번 생에서는 십대에 화경이라니?

나처럼 미래에서 과거로 회귀한 회귀자가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과연 천무지체로군.’

역시 검성 코인 저점 풀매수는 옳았다.

벌써 상한가라니. 어디까지 치고 올라갈지 두려워졌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형에게 전음을 보냈다.

[사형. 대공을 이루신 걸 경축드립니다. 본 파에도 드디어 천하를 오시할 절대고수가 탄생했다니, 우제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사제, 죽으면 안 돼! 사제가 강호 무림에서는 본신 전력의 삼 할을 숨겨야 한다고 했으니, 당분간은 경지를 숨기고 다닐게. 지금 전력을 드러내봤자 본 파를 향한 견제와 시기만 늘어날 테니까. 사제만 알고 있어.]

[알겠습니다.]

제법 강호에서 굴러먹은 티가 나는 사형의 전음까지.

역시 소개장과 함께 강호 무림 꿀팁 모음집을 같이 준 보람이 있었다.

내 전음을 들은 사형이 배시시 웃은 그때.

“은공. 오랜만입니다.”

귓가에 또 다른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그녀가 있었다.

신비로운 은발과 은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묘령처럼 보이는 여인. 검후였다.

“소빈이도 여기 있었구나. 찾았단다.”

“사부님!”

스윽.

검후가 도착하자마자 검후 뒤로 빠르게 이동하는 천소빈.

그런 제자의 모습을 보며 내게 다시 말을 걸려던 검후의 시선이 당영령을 향했다.

액면가로만 따지면 그녀보다 한참 연하처럼 보이는 당영령을 보던 검후가 말했다.

“당 언니? 여기에는 어쩐 일로······.”

“누, 누구 말한 거야? 서, 설마 영령이?!”

언니라고 불린 당영령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당영령의 올해 나이 50세, 반면 검후는 올해 나이 48세.

당연히 검후보다 당영령이 두 살이나 연상이었다.

게다가 둘 다 같은 정파 무림의 고수이니만큼 서로 안면과 친분이 있는 사이.

검후가 당영령을 언니라고 부르는 이유는, 당영령의 남동생과 검후가 동갑이기 때문이었다.

“네. 여기에 언니 말고 다른 언니가 누가 있겠어요?”

후후.

옅게 웃으면서 당영령을 바라보는 검후. 그 모습을 본 당영령이 유진휘 뒤로 숨으면서 말했다.

“떽!! 누가 언니래?! 영령이는 검후 언니 언니가 아니거든?! 그렇지 유 오빠?!”

“그, 그걸 제게 물으시면······.”

졸지에 정파 무림의 어른 둘 사이에 끼어든 형국이 된 사형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돌팔이 년. 당황한 모습이 아주 꼴이 좋다.

역시 검후.

내 미래의 와이프답다.

“유 공자님께서 곤란해하시잖아요. 언니. 이제 장난은 그만 하세요.”

“쳇. 그래도 언니 아니야.”

검후 말을 듣고 입이 댓 발 나온 채로 유진휘에게서 떨어지는 당영령.

검후에게는 쪽도 못 쓰는 모습이다.

그렇게 사태를 능숙하게 수습한 검후가 나를 바라보면서 인사했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은공.”

“저야말로 반갑습니다. 검후 선배.”

나는 그녀에게 마주 포권하면서 말했다. 내 인사를 받은 검후가 옅게 웃었다.

일 년 전, 무표정했던 때보다는 표정이 제법 풍부해진 검후가 내게 말했다.

“은공께서는 어디서 머무를 예정인가요?”

용봉지회에 참석하는 문파는 구파일방 육대세가만이 아니다.

정파 무림에서 방귀 좀 뀐다는 중견기업 이상의 문파들이 자파의 후기지수와 고수들을 보내 참석했다.

용봉지회만큼 강호 무림에서 이름을 떨치기 좋은 기회가 없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용봉지회 개최 문파에서는 이들의 숙식을 전부 제공해줘야 했다. 구파일방 육대세가의 체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문파가 용봉지회 기간 동안 제공 숙소에 머무르는 건 아니었다.

용봉지회에 참여하는 구파일방 육대세가는 또 아랫것들과는 섞이고 싶지 않아했기 때문에 제공 숙소를 정중히 거절하고 고급 객잔이나 장원을 통째로 빌려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꼭 명문 정파가 아니더라도 돈이 많거나 위상이 제법 높은 중견 문파라면 그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보통 제공 숙소, 이 경우에는 소림사 객당에 머무르게 되는 문파들은 돈이 없거나 위상이 낮은 좋소 쩌리 문파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공동파 역시 당연하게도 아직 돈도 빽도 없는 좋소 문파였기 때문에 소림사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소림사 객당에 머무를 예정입니다.”

소림사는 정파제일문답게 강호 무림에서 최대 규모의 접객당을 운용하는 문파.

용봉지회에 오는 수많은 손님을 충분히 수용 가능했다.

절간에 들어가서 향내를 맡으며 풀떼기뿐인 절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눈물이 나지만, 문파에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그동안 모은 재정은 식단 개선과 전각 재건에 대부분 소모되는 형편이라 더더욱 그렇다.

“그렇군요. 우연이네요. 저희도 이번에는 소림에 머무르기로 결정했답니다.”

내 말을 들은 검후가 살짝 웃었다.

검후 뒤에 숨은 소검후 천소빈이 입술을 살짝 삐죽였다.

우연?

항산파 정도 되는 대문파가 따로 숙소를 안 마련하고 소림사에 머무른다고?

이거 설마 그린라이트인가?

‘아니면 신승한테 볼일이 있다던가, 이쪽이 더 정확하겠군.’

벌써 그린라이트가 켜질 리가 없으니, 이쪽이 정확할 것이다.

뭐 그래도 나야 좋다. 검후와 자주 마주쳐서 호감을 쌓아올리는 쪽이 편하니까.

“검후 선배와 함께 머무를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은공과 함께 머무를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

내가 포권을 취하자 옅게 웃으며 화답하는 검후.

그렇게 우리 둘 사이에 훈훈한 분위기가 피어오르던 그때.

“흥! 사부님! 이제 가요!”

스윽.

천소빈이 검후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공자님도 뭐 해요?! 이제 숭산에 입산해야죠!”

반대편에서는 서문청하가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분위기 조금 좋아지려고 하는데.

쯧.

나는 혀를 차면서 서문청하의 손에 끌려가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검후 선배.”

“네, 은공.”

검후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항산파 일행과 헤어진 뒤 숙소에 입실하기 위해 숭산을 올랐다.

*

숭산.

중원 오악 중 중악(中嶽)에 속하는 명산. 숭산에는 세 개의 봉우리가 존재했으니, 각각 태실봉과 준극봉, 소실봉이라 했다.

소림사는 소실봉 정상에 있었다.

하여간 구대문파는 왜 전부 이런 접근성 낮은 산골짜기에 있는지 모를 노릇이다.

나와 공동파 일행, 서문청하와 당영령까지 합류한 우리는 한참을 등반한 끝에 마침내 소실봉 꼭대기에 있는 소림사 일주문에 도착했다.

“뭐야. 이 오빠. 벌써 지친 거야? 완전 허접이네. 허접. 허접.”

내 앞에서 깐죽거리는 당영령.

소검후처럼 딱밤을 때릴 수도 없고.

“안 지쳤습니다. 선배. 그런데 선배는 왜 저희한테 합류한 겁니까?”

나는 당영령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영령은 당이라는 성씨에서 알 수 있듯 사천당가 출신의 고수이자 당가의 최고수다.

현 당가주인 독절(毒絶) 당천기가 그의 남동생이었다. 용봉지회에 당가가 참석 안 한 것도 아닌데 당가주 누나 주제에 대체 왜 자꾸 따라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그야, 영령이는 유 형(兄)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스윽.

당영령이 유진휘의 팔짱을 끼면서 웃었다.

나는 오빠고 유진휘는 형? 대체 무슨 기준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아까 유진휘도 오빠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하긴 별호에 괴(怪) 자가 붙은 강호 무림 공인 또라이 돌팔이의 심리를 굳이 알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내 머리만 아파진다.

뭐 천무지체가 마음에 들어서 같은 이유겠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당 선배가 저희 일행에 합류하겠다면, 본 파의 규율을 따라주셔야 합니다.”

“그러지 뭐! 흥. 영령이는 유 형 말 잘 들어!”

이제 저 빌어먹을 말투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당영령을 데리고 용봉지회 참석자로 발 디딜 틈 없는 소림사 일주문에 도착했다.

“아미타불. 만나서 반갑소이다. 손님들께서는 어디서 오셨소?”

한쪽 팔만 사용해서 인사하는 소림사 특유의 반장과 함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계인을 머리에 찍은 소림승이 우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앞에는 명부가 놓여 있었다. 참석자와 숙소 입실자 명단을 기록하는 모양.

“공동파의 이철수입니다. 이쪽은 제 사매와 사형입니다.”

내 말을 들은 소림승의 표정이 멈칫했다.

“공동파의 이 소협과 유 소협이군요. 잠깐만 기다리고 계십시오. 두 분 소협이 오면 전갈을 넣어달라고 상부에서 그래서.”

그가 붓을 내려놓은 뒤에 일주문 안으로 경공을 펼쳐 빠르게 사라졌다.

전갈을 넣어달라는 사람?

대체 누구지?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차올랐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일주문에서 아까보다 배분이 제법 높아 보이는 온몸이 근육질인 소림승이 나왔다.

그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와 사형을 바라보며 반장하면서 말했다.

“아미타불. 태사조(太師祖)께서 공동파의 이 소협과 유 소협. 두 분을 뵙고자 하시오.”

그의 말을 들은 나는 멈칫했다.

소림사에서 태사조라는 거창한 호칭이 붙을 정도로 배분이 높은 인물은 단 한 명밖에 없다.

당대 정파제일인.

올해로 102세에 접어든 현경의 절대고수.

전전대 천마를 오대산 혈전에서 처단하여 오십년 전 정마대전을 정파의 승리로 이끈 영웅.

강호 무림에서 배분이 가장 높은, 모든 정파인이 존경하는 위인.

신승(神僧) 원극대사.

그가 나를 부르고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