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08화 (108/171)

108화 당신은 나의 여인

‘요즘 욕구 해소를 안 해서 그런가. 이상한 망상이 떠오르는군.’

키스라니.

검후가 그랬을 리가 없다. 누구보다 정숙하고 고지식한, 정파라는 개념을 의인화한 것 같은 중세 명나라를 지배하는 유교 논리에 충실한 그녀니까 말이다.

그러니 이건 그냥 내 망상이겠지.

뭐 망상이라도 나쁘지는 않다.

언젠가는 그렇게 검후와 진득하게 딥키스를 나누고 말 거니까 말이다.

내가 괜히 아침저녁으로 혀로 앵두 열매 꼭지 매듭 묶기를 하면서 혀를 단련하는 것이 아니다.

키스야말로 상대에게 운우지락의 시작을 알리는 예전초식.

완벽한 첫키스는 곧 완벽한 운우지락으로 이어진다. 그를 위한 사전 준비였다. 무(武)의 단련에 끝이 없는 것처럼, 색도의 수행에도 끝이 없기 때문이었다.

움찔.

나는 이제 거의 반쯤 생활화된 케겔 운동을 행하면서 자연스럽게 검후 맞은편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탁자 위에는 이미 다과가 올려져 있었다.

문은 이미 나를 안내한 제자가 닫은 지 오래라, 집무실 안에는 나와 검후 둘뿐이었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전부 나았습니다. 사부님께서 검후 선배가 제게 공청석유를 내드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절세영약을 제게 양보한 검후 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이 공자는 사문의 숙원을 해결해준 은인입니다. 은공께서 쾌차할 수 있다면 공청석유보다 더 귀한 영약이라도 드렸을 것입니다.”

내 말을 들은 검후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검후 선배.”

“천만의 말씀입니다.”

쪼르르.

그녀가 대화를 나누면서 찻잔에 차를 따랐다.

고급스러운 차향이 코 끝을 스쳤다.

나는 차를 홀짝 마시면서 과자를 집어 먹었다.

“맛이 어떻습니까?”

“다과가 잘 어우러져서 맛있군요.”

검후의 말에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차는 꽤 고급 차인 것 같고, 과자도 맛있었다. 내 말을 들은 검후가 살짝 웃었다.

“다행입니다. 제가 손수 만든 다과인데, 은공의 입맛에 안 맞으면 어쩌지, 하고 고민했습니다.”

“검후 선배의 정성이 담겨서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말에 옅게 웃는 검후.

역시 내 진심이 담긴 여심 저격 멘트가 통한 게 틀림없다.

비동에서 똥줄 타도록 뛰어다닌 보람이 있었다.

“이제 곧 전대 검후님의 다비식을 거행할 예정입니다. 다비식 이후에는 교류 경연의 종료를 선언할 것입니다.”

검후가 내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검후 선배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는 용봉지회가 있습니다.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검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용봉지회는 정파 무림의 큰 행사 중 하나.

당연히 검후를 포함한 정파 무림의 주요 인사들도 참여할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강호 무림 최고의 인기남, 알파 메일로 등극할 생각이었다.

화산파의 검룡을 제물로 말이다.

내 말을 들은 검후가 웃었다.

그녀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사문의 숙원을 이루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은공.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항산파의 융숭한 손님 대접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검후와 함께 서로 인사를 나눴다.

그때.

드르륵.

문이 열렸다.

“사부님! 은공! 이제 곧 다비식이 시작될 예정이에요!”

소검후가 다비식 시작을 알렸다.

그 말을 들은 검후가 내 손을 살짝 붙잡고 나를 자리에서 일으켰다.

“그럼 은공, 이만 가시지요.”

*

타닥타닥.

비동에서 항산파 본산으로 옮겨진 전대 검후 백추설의 시신은 착관에 이어 발인 의식을 끝내고 목관에 안치된 채로 불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었다.

장작과 숯을 쌓아 만들어진, 목관을 받친 밑단에서 타오르는 붉은 불길이 푸른 하늘을 향해 넘실거리며 타올랐다.

옆에는 검후와 소검후, 그리고 나를 포함한 공동파 일행이 서 있었다.

뭐 공동파는 굳이 따지자면 도교지만, 어차피 강호 무림의 도가 문파는 왕중양이 창시한 전진교 이래로 유불도 삼교합일 사상을 받아들인 상황.

불가의 장례 의식에 굳이 참가를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손님 입장이기도 하고.

타닥, 타닥.

타오르던 불 속에서 소림승과 검후, 소검후가 석관에서 불타는 백추설의 뼈를 뒤집는 기골편(起骨篇)을 행한다.

뒤이어 불이 점차 잦아들자, 재 속에서 남은 뼈를 모으는 의식인 습골편(拾骨篇)을 행한 뒤에 모은 뼛조각과 가루를 분쇄하는 쇄골편(碎骨篇)을 행하고, 마지막으로 모든 재를 흩날리는 산골편(散骨篇)을 행한 뒤에야 다비식이 끝이 났다.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검후가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1회차에서도 전대 검후 백추설의 백골을 수습한 항산파에서는 이렇게 다비장을 통해 그녀의 시신을 화장했다.

하지만 이런 경건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전생에서 검후비동은 혈교의 음모에 이용당해 무수한 사상자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비동 내부에서 추악한 욕망 때문에 죽어나간 수많은 무림인은 물론이요, 정파 내부 분열과 사파와의 분쟁까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거행됐던 다비식이었기에 우울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운명이 바뀐 건가.’

내 손으로 바꿨다.

항산파의 운명을.

앞으로 다른 운명도 전부 내 손으로 바꿀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면서 다비식을 끝낸 뒤, 밤의 연회를 마지막으로 모든 경연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항산파를 떠나는 날 아침이 밝았다.

나와 사형, 사매, 그리고 서문청하와 사부님까지.

총 5명인 공동파 일행을 배웅하기 위해, 검후와 소검후를 비롯한 항산파 제자들이 산문 너머 항산파 입구까지 우리를 안내했다.

“은공! 내년 용봉지회, 기다리세요! 소녀가 반드시 마음을 전달할 테니까요! 흥!”

여전히 연기를 지지리도 못 하는 소검후의 배웅 인사부터.

“먼 길, 조심히 가시길. 무슨 일 있으면 언제건 연락하세요. 은공. 그럼 내년까지 계속 기다리겠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배웅하는 검후까지.

모두의 배웅이 들렸다.

나는 나를 배웅하는 은발 미녀, 검후를 바라보면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내년에 뵙겠습니다. 검후 선배. 저 말고 다른 도전자는 받으면 안 됩니다. 검후 선배는 제 여인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내가 그렇게 말한 순간.

소검후는 물론 항산파 제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 사제······.”

옆에서도 당황한 사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했지만, 내 면상에는 이미 철판을 깐 상태기 때문에 나는 당당하고 뻔뻔했다.

물론 검후에게 도전하는 사내가 지금까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내가 없는 사이 다른 놈이 검후에게 도전이라도 한다면?

나는 그걸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검후는 미래의 내 여자니까.

나 말고 다른 사내에게 내어줄 수 없다.

내 말을 들은 검후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잠깐의 침묵 끝에, 검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은공을 제외한 다른 도전자는 받지 않겠습니다. 은공의 도전은······. 아직 진행 중이니까요.”

좋아.

역시 검후비동을 누빈 보람이 있었다.

내가 만약 항산파의 은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검후가 저렇게 말하지도 않았으리라.

오늘도 착실히 쌓여가는 삼처사첩의 빌드업에 나는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들,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안녕히 계시길.”

“대접 감사했습니다. 검후 님.”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영이 공동파를 대표해 검후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의례적인 인사를 몇 번 주고받은 뒤, 우리는 항산파를 떠났다.

항산파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럼 사부님. 사제, 사매. 그리고 서문 소저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저는 이제 강호 독보행을 떠나겠습니다.”

유진휘가 의젓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우리에게 작별을 고했다.

완전한 이별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일 붙어다니던 사형이 없다 생각하니 뭔가 허전하고 시원섭섭한 기분이다.

사부에게 인사를 올린 유진휘가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지금만큼은 나도 유진휘의 포옹을 거절하지 않았다.

“사제. 나 없어도 잘 있어야 해. 수행도 꼬박꼬박, 빼먹지 말고. 나, 강해져서 돌아올 테니까······. 기다려줘. 내년 용봉지회까지.”

“알겠습니다. 사형.”

나는 사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면서 전음으로 말했다.

[이건 제가 직접 쓴 소개장입니다. 이걸 들고 하오문에 방문한다면 사형을 문전박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마워! 사제.]

사형이 전음으로 답하면서, 내가 준 소개장을 소중히 품 안에 넣으며 말했다.

“그래. 사제가 그렇게 대답하니까 안심이야. 사제는 허튼 말은 안 하는 성격이니까.”

유진휘가 내 품에서 떨어지면서 배시시 웃었다.

“그럼 내년 용봉지회에서 뵙겠습니다. 사형도 건강 꼭 챙기시고 강호행 동안 무탈하시길.”

“응! 잘 있어! 사제! 모두!”

아까 나처럼 손을 흔들면서 유진휘가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산서성에서 유진휘와 헤어져 공동파 본산으로 복귀했다.

이제 올해 큰 행사는 끝났다.

남은 건······. 내년 용봉지회에서 검룡의 이름을 탈환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뿐이다.

*

항산파 본산.

이철수가 본산으로 돌아간 뒤, 처소에 홀로 남은 검후는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침대에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꺄아아아아아!’

그녀의 입 안에 소리 없는 아우성이 맴돌았다.

항산파에서 그분과 함께 지냈던 짧은 며칠 사이의 시간이 검후의 머릿속에 끝없이 계속 떠올랐다.

두근.

검후의 심장이 계속해서 뛰었다.

그분과 입맞춤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충분히 분에 넘치는 행복이었다.

그렇게 여겼는데.

‘다른 도전자라니, 후후. 소첩은 처음부터 상공 이외의 다른 도전자를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답니다.’

그분께서는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뜨겁게 마음을 고백해주셨다.

다른 도전자를 받지 말라고. 반드시 본인의 여자로 만들겠다고 또다시 마음을 확인해준 상공이었다.

어찌 안 사랑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 내년 용봉지회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까지 했다.

‘그때까지 몸가짐을 조심히 하지 않으면······.’

검후는 일 년 뒤, 더 늠름해질 상공의 모습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일 년 뒤면 상공도 이팔청춘이다. 열 다섯의 나이에도 벌써 청년처럼 멋있어진 상공이었다. 열 여섯의 상공은 얼마나 멋있어질까.

감히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이미 후기지수 꼬리표는 25년 전에 벗어던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설렜다. 47년 평생 이렇게 용봉지회를 기대한 건 처음이었다. 30년 전, 소검후였던 시절에도 용봉지회를 이리 기대하지는 않은 검후였다.

일 년 뒤를 떠올리는 검후의 얼굴이 붉어졌다.

검후의 머릿속에 자꾸만 상공과 함께 나눴던 입맞춤이 떠올랐다. 그날, 동굴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검후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두근.

심장이 고장난 것처럼 계속해서 뛰었다.

같은 시각.

소검후는 처소에서 검후와는 반대로 이를 뿌득뿌득 갈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