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106화 (106/171)

106화 그녀의 결심

이철수와 검후가 실종된 사실이 항산파에 알려진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밤 산책을 나간 이철수가 복귀하지 않은 데다, 검후 역시 말 없이 처소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소검후 천소빈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부님과 이철수가 동시에 사라졌다니, 서, 설마 밀회는 아니겠죠?!’

다른 사람도 아닌, 하필 검후와 이철수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사라졌다.

그 사실을 깨달은 소검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화경의 절대고수인 검후를 해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거기에 천소빈은 이미 사부님의 일기장을 읽어서 전후사정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상황.

‘빠, 빨리 찾아야 해요! 일이 벌어지기 전에!’

사색이 된 소검후는 즉시 문파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장문제자의 권한으로 경연을 중지한 뒤에 항산파 문도를 총동원해 수색 작업에 들어갔다.

“사제! 어디에 있어!”

“이 사형, 찾고 있습니다!”

“이 바보가! 어디로 간 건가요?!”

항산 수색에 나선 건 항산파 문도들뿐만이 아니었다.

경연에 참가한 공동파 인원들, 유진휘와 서하린, 그리고 서문청하까지 전부 이철수를 찾기 위해 항산을 헤집었다.

그렇게 정오가 되도록 계속 항산 전역을 수색한 그때.

“사, 사제?!”

마침내 검후와 이철수가 발견되었다.

최초 발견자는 이철수의 사형.

유진휘였다.

절벽 아래에서 사뿐한 경공으로 올라온 검후의 품에는 잠든 듯 혼절한 이철수가 안겨 있었다.

이철수의 몸에는 피를 토한 것처럼 보이는, 핏자국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본 유진휘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졌다.

“유 공자님이군요. 다시 뵙게 되어 다행입니다.”

“검후 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검후의 인사를 들은 유진휘가 물었다.

사제.

그녀의 소중한 사제가 지금, 검후와 함께 실종되었다 피투성이로 돌아왔다.

다시는 다치게 하지 않겠다 속으로 약속했다. 천하의 모두가 적으로 돌아서더라도, 그녀만큼은 사제의 편이 되리라 맹세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를 연모하고 있었다. 불완전한 아녀자라도, 그의 곁에 있고 싶다 생각했다.

하지만 다친 사제를 본 순간, 그녀의 그 좋던 오성도 생각도 전부 정지했다.

사제가 다쳤다. 전부인 그녀의 사제가.

감정이 부글부글 끓었다. 화경의 고수인 검후가 곁에 있는데 어째서.

‘내가 한눈을 팔아버린 탓이야.’

유진휘가 고개를 떨궜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어제 사제의 곁을 지켰더라면.’

사제가 왜 검후와 함께 외출한 건지 유진휘는 몰랐다. 하지만 그녀가 대신 갔더라면.

아니.

‘내가 검후 님보다 더 강했더라면.’

검후보다 더 강했더라면. 그렇다면 사제는 다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사제, 많이 아팠지.’

사제의 얼굴을 본 유진휘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제를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천하 모두가 적이라도 사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지금에 안주해서는 안 됐다.

더 강한 힘이 필요했다.

검후보다 더 강한, 천하제일을 논할 무위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진휘는 한 가지 결심을 마음속으로 굳히면서 검후에게 포권을 취했다.

“사제가 검후 님께 신세를 졌습니다. 사제를 돌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유 공자. 저야말로 은공과 함께 사라져서 유 공자께 심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검후가 인사를 받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 홍조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아직 그때의 감촉이 검후의 입술과 혀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 입맞춤. 상공과 입맞춤해 버렸어. 내 첫 입맞춤을 사, 상공과······.’

두근.

검후의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아무리 치료 행위라고 해도 첫 입맞춤이었다.

47년 일생을 순결하게 간직하고 있던 입술이었다. 그런 입술을 처음으로 사내에게 내어준 것이다.

그것도 연모하는 사내에게.

심장이 뛰지 않을 리 없었다.

잊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직도 입술이 뜨거웠다. 혀가 아렸다.

‘어, 어떡해. 유 아주버님 앞인데도 심장이 멈추지 않아······.’

두근, 두근.

계속해서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면서, 검후는 무표정을 가장했다.

그런 검후를 바라보던 유진휘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은공이라고요?”

은공.

은인을 부르는 존칭이다. 유진휘 본인이 검후의 은인일 리 없으니, 이 단어는 사제를 가리키는 말일 터.

사제가 검후의 은인이라고?

유진휘의 눈동자가 혼란스러워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정말 소검후가 말한 대로 둘 사이에······.

“예. 이 공자야말로 저의, 아니 본 파 전체의 은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공자님 덕분에 사문의 숙원을 해결했으니까요.”

유진휘의 반문에 검후가 비동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입맞춤 이야기는 제외했다.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유진휘가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랬군요. 사제 덕분에······. 검후비동을······.”

유진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가 혼원검제의 전인이라는 사실은 맞다. 비동의 시험을 통과했으니까. 혼원검제의 유지에 검후비동의 위치가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그녀 본인이 혼원검제의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혼원검제의 시험을 통과한 건 사제였다. 이합신공 말고 다른 진전을 사제가 이어받았을 가능성은 오히려 높았다.

‘사제가 지금까지 그걸 함구한 건, 아직 그 세가 미약한 본 파가 아직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이라 그랬던 거겠지.’

어떤 비밀은 때로는 아군까지 속여야 하는 법이다.

본인의 성별을 숨기고 있는 유진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제를 이해했다.

그리고 혈교.

사제에게 내상을 입힌 흑막의 정체. 놈들의 잔당이 아직 살아 있었다니.

감히 그녀의 사제에게. 가장 소중한 이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유진휘는 용납할 수 없었다.

그와 함께 그녀의 결심히 더 단단히 굳어졌다.

“사제는 아직 위중한가요?”

“급한 대로 공청석유를 먹여 내상을 진정시켰습니다. 며칠 동안 정양하면 완치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검후 님.”

유진휘는 포권을 취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제 본산으로 가시지요. 다들 검후 님과 사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사제는······. 여기서부터는 제가 업겠습니다.”

검후를 바라보면서, 유진휘는 머뭇거리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유진휘의 말에 검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유진휘는 장차 아주버님이 될 사람. 게다가 상대는 사형이었다. 다른 감정을 품을 이유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유 공자. 은공을 잘 부탁합니다.”

이철수의 몸을 조심스럽게 받아든 유진휘의 심장이 뛰었다.

얼마 만에 사제와의 신체 접촉인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제의 몸은 여전히 사내답게 단단한 근육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여전히, 사제에게는 사내의 향기가 났다.

유진휘는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이철수를 조심스럽게 업었다.

곧이어 이철수를 업은 유진휘와 검후 은설란, 두 사람의 신형이 항산 절벽 위로 솟구쳤다.

실종자 수색이 종료되는 순간이었다.

*

온통 칠흑같은 어둠이 시야에 가득했다.

나는 분명 정신을 잃었는데, 여기는······.

‘의식 세계로군.’

내 의식 세계다.

나는 위도 아래도 구분되지 않는 암흑 속을 한참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윽.”

나는 투명한 벽에 가로막혔다.

“이건······.”

그리고 깨달았다.

나를 가로막은 이 벽은, 일류와 절정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었다.

강호 무림에서 고수라 칭해지는 경지는 일류부터다.

흔히 무협소설에서 무슨 문파의 고수 몇 명이 산문을 나섰다, 라고 묘사할 때의 고수란 일류의 무인을 뜻하는 말이었다.

말하자면 강호 무림에서 중산층을 담당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범인(凡人)이 도달할 수 있는 무위의 상한선이기도 했다.

일류 다음 경지는 절정.

검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한정된 상황에서는 검사(劍絲)를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경지.

본격적으로 강호 무림에서 명숙, 명사 취급받을 수 있는 경지이자 구파일방에서도 정예 전력으로 여겨지는 경지였다.

말하자면 절정은 진짜 고수, 중산층을 넘어선 상류층 초입, 5급 사무관 수준의 경지라 할 수 있겠다.

깨달음은 흔히들 벽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비유적인 의미였지만, 여기는 의념이 현실이 되는 의식세계. 절정의 벽은 진짜 물리적인 벽으로 내게 나타났다.

나는 벽을 두드렸다.

쿵.

“으.”

손만 아프지 뚫리지 않는다. 하긴 당연하겠지. 나는 회귀자. 따라서 정신은 이미 완성되었지만, 육체가 아직 뒤따라오지 못한 상황.

정신과 육체, 이른바 정기신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야말로 내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기에 화경 이상부터는······. 전생과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전생의 심득으로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초절정까지다.

강기와 의념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소우주의 기틀을 잡아가는 화경부터는 새로운 심득을 얻어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했다.

일편빙심은 1회차의 내가 배운 무공에서 피어난 심득의 결정체.

2회차의 나는 1회차의 나와는 다르게 조법이 아닌 검법을, 음한지기가 아닌 음양이기를 다루는 내가기공을 수행했다.

입력값이 다르니 결과물인 심상무도 역시 당연히 전생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정 역시도 다를 수밖에 없다.

전생에 현경이었다고, 이번 생에도 쉽사리 현경이 될 수 없는 이유였다. 전생은 조법 스킬 트리, 이번 생은 검법 스킬 트리였으니까.

당연히 육성법도 각성기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가 새로운 심득을 얻어야 하는 이유였다.

‘본래 심상무도란 한 명의 무인이 얻은 심득의 결정체, 소우주의 완성체, 의념의 극의, 심상과 신념의 현실화, 인생역정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한 명의 무인은 하나의 심상무도만 가질 수밖에 없어.’

심상무도는 그 무인이 살아온 삶의 모든 궤적을 무도로 승화한 기예. 따라서 인생을 두 번 살았거나 다중인격이 아니라면 심상무도 두 개를 보유하는 건 불가능하다.

문제는 내가 인생을 두 번 살았다는 것인데, 뭐 어차피 규화보전을 배울 생각은 없으니 전생의 심상무도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얻었으니, 이제 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했다.

‘그래서 우선 절정의 벽부터 뚫어야 하는데.’

1년 뒤면 용봉지회다.

검룡의 이름을 탈환해서 강호 무림의 인기남이 되기 위해서는 절정의 경지에 올라야 했다.

지금 검룡이 절정고수니까 말이다.

의식세계에 잠긴 지금이 기회였다. 벽을 뚫어야 했다. 내가 혼원공을 끌어올린 그때.

쏴아아아아아.

등 뒤에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압도적인 영기의 파도가 벽을 향해 밀려들고 있었다.

‘누군가 영약을 먹인 건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누군가 내 내상을 치료하려고 영약을 먹였다. 그것도 꽤 강력한. 일 갑자짜리 영약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혼원공을 운용해 야생마처럼 거칠게 날뛰는 영약의 영기를 제어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거친 파도처럼 일렁이며 나를 집어삼키려던 영기의 파도가 내 통제 아래 들어왔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능히 절정의 벽을 뚫을 수 있다.

정기신의 균형을 조금 되돌릴 수 있다.

나는 그대로 손을 뻗었다.

쏴아아아아아아아!

새하얀 영기의 파도가 그대로 절정의 벽에 직격했다.

쿠-웅!

절정의 벽은 아직 단단했다. 하지만 내 시야에는 보였다. 벽이 흔들린 모습이. 나는 재차 영기를 통제해서 벽을 계속 두드렸다.

쏴아아아아아아아! 콰콰콰콰콰콰콰콰!

쿵! 쿵!

계속해서 벽에서 굉음이 울렸다. 벽에 조그마한 균열이 생겼다.

한 번 생긴 균열이 급속도로 팽창한 순간.

쩌-저-저-정!

굉음과 함께 절정의 벽이 그대로 모래알처럼 부서졌다. 압도적인 영기의 파도가 절정 너머로 부서지며 흩어졌다.

내 발목까지 영기가 찰랑찰랑 차올랐다.

전신에 충만함이, 활력이 차올랐다.

압도적인 해방감이 차올랐다.

마침내.

절정의 경지에 도달했다.

이제 검룡의 이름을 빼앗을 준비가 끝났다.

내가 웃음을 터뜨린 순간.

번쩍.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의식이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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