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80화 (80/171)

80화 내조의 여왕

구화음백조는 조법. 쉽게 말해서 할퀴는 무공이다.

당연히 구화음백조의 묘리를 담은 검기 역시 날카로운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서문청하가 황급히 방어하는 과정에서 검기를 전부 막아내지 못했고, 남은 검기가 비산하면서 그녀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이다.

마치 조법처럼.

의도한 건 아닌데.

“······스, 승자 공동파의 이철수!”

MC 검룡의 승리 선언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언더 독의 승리인데도 관중석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이러면 또 내 별호가 색마가 될 거다.

그것만큼은 안 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했다

“미안하오. 내 불찰이요.”

나는 사과하면서 내 웃옷을 빠르게 벗었다.

지금까지 외공 수행과 스쿼트를 통해 키운 탄탄한 근육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그대로 벗은 웃옷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서문청하에게 스윗하게 덮어줬다.

폭넓은 남자 옷을 덮은 서문청하의 알몸이 가려졌다.

“으으으으으······. 흑흑······.”

서문청하가 내 옷으로 몸을 감싸면서 서럽게 울었다.

아니, 내가 분명 이겼는데.

왜 진 기분이지?

“······과연 쌍발색검, 중인환시리에 서문세가 아가씨의 옷을 대놓고 찢어버리다니······.”

“어머! 망측해라!”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괴협이라는 별호가 붙은 이유가 다 있구려.”

“그런데 공동괴협이 몸은 제법 좋지 않소? 근육이······.”

“어머, 어머!”

관중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한 그때.

쿠웅!

굉음이 울렸다.

지축이 흔들렸다.

뒤이어 압도적인 기파가 서문청하의 등 뒤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패도적인 기운.

진첨검왕이다.

진천검왕 서문현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 거목이 우뚝 선 모습.

진천검왕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이 승부, 인정할 수 없다! 이따위 음란한 행위로 내 딸은 물론 본가의 체면과 공개 비무 무대마저 모욕하다니······. 그게 정녕 공동괴협, 네놈의 뜻이더냐!!”

진천검왕의 내력이 실린 샤우팅과 함께, 그의 몸에서 압도적인 기세가 피어올랐다.

저번에 시험했을 때와는 다른, 화경의 절대고수가 펼쳐낸 진심이 담긴 기세.

진천검왕의 전신에 황토빛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의 근육이 단단하게 부풀었다.

하늘을 떨어 울린다는 별호처럼 좌중을 압도하는 기파가 비무대를 휩쓸면서 내게 다가왔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화경의 고수가 진심으로 내지른 기세였다. 막을 수 없다. 피해라도 최소화해야했다. 내가 내력을 끌어올리려던 그때.

“승부는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진천검왕.”

내 등 뒤에서 차분하지만 차가운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검후 은설란이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햇빛이 내려앉은 은빛 머리카락이 진천검왕이 날린 기파의 파편을 맞아 휘날렸다.

검후의 몸에서 달빛처럼 은은한 은빛 기세가 피어올랐다.

“······당신이 강호인이라면, 정당한 비무의 결과에 승복하세요.”

검후가 해방한 기도가 부드럽게 나를 감싸면서, 날카로운 송곳처럼 패도적인 진천검왕의 기세를 쳐냈다.

은색과 황토색.

양쪽 아지랑이가 허공에서 어지럽게 부딪혔다.

두 화경의 절대고수가 신경전을 벌이자 좌중이 침묵에 빠졌다.

*

“검후······. 어째서 저 애송이를 감싸는 거지? 공동파와 항산파는 그리 좋은 관계도 아닐 텐데······.”

진천검왕이 얼굴을 찌푸렸다.

사실 본인의 말이 억지라는 사실은 서문현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쨌건 결과적으로 중인환시리에 그가 가장 아끼는 서문세가의 막내딸에게 음란 행위를 한 건 이철수가 아닌가?

아버지로서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검후가 막아서리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진천검왕 서문현천의 시야에 검후의 모습이 담겼다.

진천검왕은 검후보다 두 살 어린 44세. 게다가 둘은 30년 전 그날의 용봉지회부터 아는 사이였다. 한때 후기지수 시절 진천검왕 본인이 끓는 혈기로 검후에게 도전한 적도 있었지만 패배한 전적도 있었다.

‘지금도 검후는 나보다 반 수 위의 고수.’

검후와 진심으로 충돌한다면 반드시 생사결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진천검왕은 검후를 향한 기세를 거두지 않았다.

딸이 모욕을 당한 것도 당한 거지만, 이대로면 공동파를 견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의 몸에서 피어오른 태황패력공의 압도적인 기세가 지축을 흔든다.

우르르르르릉!

하지만 검후 은설란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고고하게 자세를 유지하면서, 대월신공(大越神功)의 기세로 태황패력공의 기파를 막아내고 이철수를 지켜내며 말했다.

“지금의 저는 공동괴협 이철수 소협의 공증인입니다. 이 소협이 지명한 공증인으로서, 정당한 비무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행위는 저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상대가 설령 서문 가주님이라도요.”

그녀의 시야가 이철수를 담았다.

정확히는 상의를 벗어 드러난 상반신에 머물렀다.

그야말로 하늘이 빚은 듯한 완벽한 상반신 근육이 그녀의 눈에 비쳤다.

두근.

검후의 심장이 뛰었다.

두근, 두근.

검후는 필사적으로 얼굴의 혈류를 제어해서 홍조를 지워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상공······. 소첩 너무 부끄러워요······.’

상공의 몸은 언제 봐도 완벽했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사내의 몸 그 자체.

‘소첩이 30년만 젊었더라면······.’

30년 전 용봉지회에서 상공을 만났다면, 그랬다면.

오늘의 서문청하처럼 상공의 검에 무조건 패했으리라.

그래서 서문청하처럼 상공의 겉옷을 입었으리라. 검후의 손이 떨렸다.

‘······내가 저 자리에서 상공의 검에 쓰러졌어야 했는데.’

서문청하. 저 어린 것 대신 그녀가 저 자리에 있었어야 했다.

저 어린 것 대신 그녀가 상공의 검에 쓰러졌어야 했다.

상공의 겉옷을 그녀가 받았어야 했다.

그래서 상공과 백년가약을 맺고, 그분의 부인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후후. 소첩, 성년이 된 상공한테 오늘처럼 반드시······. 겉옷을 받아내고 말 거예요.’

하지만 시간은 아직 충분했다. 상공이 성년이 된다면, 그래서 상공과의 비무에서 패배한다면.

오늘의 서문청하처럼 상공의 검을 옷으로 받아내어 옷을 찢은 뒤에 상공의 겉옷을 받아내리라.

검후는 그렇게 다짐하면서 서문청하와 진천검왕을 노려보았다.

진천검왕 서문현천.

그 역시 30년 전에 그녀에게 도전했다 패한 고수 중 하나였다.

그때도 지금도 검후는 서문현천처럼 우락부락한 사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감히.

‘상공이 사문을 위해서 애써 가져온 승리를 빼앗으려 하다니······.’

검후의 눈동자에 안광이 번쩍였다.

그녀도 항산파라는 대문파의 장문인인 만큼, 이번 비무가 공동파와 서문세가 양측에 가지는 의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번 비무에서 공동파가 승리한다면 서문세가는 당분간 공동파에 아무런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서문청하가 이철수의 몸종이 된다는 건, 공동파에서 서문세가의 막내 아가씨를 인질로 삼는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

앞으로 서문세가는 공동파 견제가 거의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철수의 승리에 거품을 물 만한 일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딸을 아끼는 감정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소첩, 상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상공한테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소첩은 너무 기뻐요.’

공동파가 정사지쟁의 승리로 위세가 올랐다고 하나, 감숙 무림의 패자는 여전히 서문세가였으니까.

서문현천이 계속 강하게 나온다면 기껏 상공이 비무에서 승리하고도, 그 결과가 무효로 돌아갈 위험성이 있었다.

그러니까 항산파의 장문인이자 검후이며 화경의 고수라는 권위를 지닌 그녀가 상공의 승리를 지켜야 했다.

상공의 부인으로서, 내조는 당연한 의무니까.

“허울뿐인 공증인이라는 자리에 그토록 얽매일 줄은 몰랐군. 하, 설마 저 반갑자나 어린, 여색이나 밝히는 애송이한테 반하기라도 한 건가? 천하의 검후가?”

그 모습을 본 진천검왕이 비아냥댔다.

그의 말을 들은 검후가 살짝 멈칫했다.

‘감히 상공을 여색이나 밝히는 애송이라고 하다니······! 산도적 주제에!’

검후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천하에서 가장 멋진, 장차 그녀의 지아비가 될 사내가 바로 상공이었다.

그런데 여색이나 밝히는 애송이라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계속 부드럽게 응대하니 내가 만만한 줄 알고 본녀한테 모욕을 주는구나. 현천아.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현천아. 30년 전 용봉지회에서 나한테 반해 도전했다 일검에 패배했던 기억은 벌써 머리에서 지웠느냐? 그럼 공동파의 공증인이 공동파의 편을 들지, 너희 서문세가의 편이라도 들 줄 알았느냐?”

검후가 진천검왕을 노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검후의 말에 진천검왕이 헛바람을 삼켰다.

30년 전 용봉지회에서 그가 검후에게 도전한 건 사실이기는 했다.

일검에 패배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의 패배에 절치부심해서 무공을 절차탁마하여 지금의 경지에 오른 진천검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마음을 깨끗이 접고 감숙제일표국인 천산표국의 아가씨와 결혼해서 백년해로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 이제 와서 30년 전의 치욕적인 이야기를 꺼낸다고?

벌써 주변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진천검왕이 검후에게 구애하다가 패배했다!

집에서 마누라가 긁을 바가지가 두려워졌다.

“감숙에서의 위세만 믿고 비무 결과를 무효로 하고 싶은 네 마음은 잘 알겠으나, 나한테는 너희 가문의 위세가 통하지 않는다. 억지 명분을 내세우지 말고 얌전히 비무 결과에 승복하거라.”

검후의 시선이 서문청하를 향했다.

“그리고 비무 과정에 옷이 찢어지는 건 강호 무림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 아니더냐? 청하도 나도 여인이기 이전에 강호인이다. 강호인이 실전에서 옷이 찢어졌다고 주저앉아 울 셈이냐? 사마외도는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그깟 의복이 뭐라고 이러는지 모르겠구나.”

서문청하의 몸이 움찔했다.

그녀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없었다.

정파에서 비무를 여는 이유는 결국 실전을 위한 연습.

그리고 실전에서는 옷이 찢어졌다고 해도 봐주지 않는다.

그러니 여인이라더라도 의복이 찢어지는 것에 동요하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당연히 승리는 공동파의 이 소협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도 계속 나와 다툴 셈이라면······. 30년 전에 못다한 승부를 지금 내보던가. 나도 체면이라는 게 있으니,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스르릉.

검후가 고월검을 뽑아들었다. 고월검의 투명한 검신이 햇빛을 받아 빛났다.

고월검의 칼날 위로 은빛 빛무리가 피어올랐다.

밤하늘의 별빛이 검후의 칼에 깃들었다.

화경의 고수부터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무엇이건 잘라내는 기예인 검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검후의 차가운 눈빛이 진천검왕을 응시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진천검왕은 서문세가의 가주이자 이미 가정이 있는 유부남. 그녀에게 절대 도전할 수 없다.

게다가 화경의 끝자락에 달한 그녀와는 달리, 진천검왕의 실력은 아직 화경 초입.

비무건 생사결이건 무조건 그녀가 승리한다. 아니 검후는 처음부터 이철수 이외의 사내에게는 절대로 질 생각이 없었다.

‘빌어먹을······.’

여유로운 검후와는 반대로 진천검왕은 속으로 욕을 내뱉고 있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이제 와서 30년 전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꺼내는 것도 모자라 도전이라니.

가정을 가진 유부남인 그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도전이 아니라도 불가능했다.

화경의 고수, 그것도 같은 정파 무림 고수끼리의 비무는 단순한 비무가 아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동반되는 정치 행위에 가깝다.

그러니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검후의 말대로 무엇보다 중요한 명분이 공동파 손에 있었다.

어쨌거나 이철수가 승리한 건 사실이다. 딸의 옷이 벗겨진 건 화가 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강호 무림의 비무에서 옷이 찢어지는 경우는 허다했다.

서문세가 쪽이 억지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검후만 안 나섰다면 서문세가의 권세로 이번 비무를 무효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진천검왕의 유일한 오판은 검후가 비무까지 불사할 정도로 공동파를 감싸리라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한 거였다.

검후가 저렇게 강력하게 공동파를 비호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억지 명분으로 밀어붙이는 건 무리다.

자칫하다가는 서문세가 본가에 타격이 갈 수도 있었다. 억지 명분을 내세워서 비무에 승복하지 못한, 정파답지 못한 가문이라며 말이다.

그런 소문은 서문세가에게 치명적이었다. 안 그래도 짧은 역사 때문에 다른 무림세가에게 근본 없는 졸부라며 은근히 무시당하던 서문세가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역시 근본 없는 가문이라며 세간에서 손가락질할지도 몰랐다.

진천검왕은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아무리 딸이 소중해도, 가문의 전부를 걸고 검후와 생사결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까지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 결과를 받아들이도록 하지.”

미안하다, 청하야.

진천검왕은 딸에게 속으로 사과하면서 눈물로 결과에 승복했다.

그 모습을 본 검후가 속으로 웃었다.

‘소첩! 현모양처답게 상공의 승리를 지켜냈어요! 후후.’

꺄아.

목구멍까지 올라온 비명을 간신히 참으면서, 검후는 사랑스러운 상공을 시야에 담았다.

상공께서도 분명 기뻐할 거다.

상공뿐만이 아니다.

아주버님인 유 공자, 아가씨인 서 소저도 기뻐할 거다.

공동파는 이제 시댁이나 마찬가지니, 시댁의 승리는 곧 그녀의 승리나 다름없었다.

검후는 그렇게 조용히 속으로 기쁨을 만끽했다.

‘진천검왕을 정면에서 제압하고, 사문의 체면까지 지키다니! 역시 사부님이야!’

옆에서 그녀를 바라보던 소검후가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검후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그날 비무는 공식적으로 공동파의 승리로 끝났고.

“이보게나, 글쎄 이번 비무에서 공동괴협 이 소협이 서문세가의 검봉을 상대로 승리했다고 하네!”

“그 소식은 나도 들었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검봉 소저의 옷을 이철수가 갈기갈기 찢어버렸다지? 공동괴협은 무슨! 공동색협이 아닌가?”

이철수에게는 공동색협이라는 다른 별호가 추가되었다.

그가 알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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