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74화 (74/171)

74화 밀당의 정석

비무첩의 내용은 저번 정사지쟁 때와 대동소이했다.

시일은 두 달 뒤. 장소는 난주에 서문세가가 마련한 비무대.

공증인 입회 하에 일 대 일의 비무를 실시한다.

패자가 승자의 몸종이 된다는 대가도 그대로 적혀 있었다.

당연히 상대는 검봉 서문청하였다.

나는 비무첩을 받아들였다.

“사부님께는 전해드렸습니까?”

“응.”

내 말에 사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도착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수행에 들어가야겠군요.”

검봉 서문청하를 상대로 발기 없이 이기려면 그녀와 같은 일류의 반열에 들어서야 했다.

심득은 이미 있다.

남은 건 수행을 통해서 경지를 올리는 것뿐이다.

두 달이라면 충분하다.

“사제. 내가 혼원공의 구결을 조금 개량했거든, 혹시 들어줄 수 있어?”

나는 사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형이 조용히 구결을 노래하듯 불렀다.

그의 청아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이전보다 훨씬 쉬워지고 진기 운용이 효율적으로 변한 혼원공.

좀 더 완성에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단기간에 이 정도 성과라고? 역시 미래의 검성, 천무지체답다.

“어때?”

“우제한테 이런 절학을 전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이 정도라면 어쩌면 발기되는 문제점도 해결되었을지도 몰랐다.

시험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정말? 사제가 그렇다니까 다행이야. 사제를 위해서 만든 무공이니까······. 이번 비무에서도 사제가 써서 이겨줬으면 좋겠어. 그 건방진 서문세가의 아가씨 말이야.”

유진휘가 배시시 웃었다.

그런데 잠깐, 건방진 서문세가 아가씨라고?

우리 바른 생활 사나이인 사형의 말이 왜 저렇게 거칠어졌지?

호의는 좋지만, 조금 무서운데.

설마, 아니지?

“사제, 왜 그래?”

뭐, 입이 조금 거칠어진 정도야.

전생과는 달리 사파 놈들과 일찍 부딪혀서 그렇게 된 거겠지.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산 아래에 볼일이 있어서······. 사부님을 접견한 뒤에 가보겠습니다.”

“응! 다녀와!”

나는 사형의 배웅을 받으면서 현천궁에 들러 전영과 대면한 뒤에 사부님의 서문세가에 보내는 친필 답신을 받은 뒤에 그대로 산 아래로 몸을 날렸다.

휘익,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화정현에 도착한 나는 늘 가던 곤화루가 아닌 다른 쪽으로 향했다.

사부에게 사마외도의 무리와 되도록 어울리지 말라고 주의받았기도 하고, 내 지시 없이 루머를 퍼뜨린 적사월이 조금 괘씸하기도 했다.

지금은 밀당에서 밀어낼 때였다.

당분간 두 번째 비무 토토를 하기 전까지는 그녀와 안 만나는 쪽이 좋았다.

‘이 근처에 버려진 관제묘가 있을 텐데.’

그래서 선택한 곳이 개방이었다.

저번 정사지쟁의 승리로 공동파의 위세가 제법 올랐으니, 개방에서도 이제 공동파를 주시할 지부를 화정현에 설치했을 터.

물론 하오문과 마찬가지로 출장소 수준이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개방 지부가 있을 만한 장소야 뻔하다.

다리 밑 움막 아니면 버려진 관제묘 둘 중 하나다.

나는 마을 외곽,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폐가로 보이는 관제묘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인 거지 떼들이 보였다.

개중에는 무공을 익힌 흔적이 보이는 거지도 있었다.

한 번 만에 찾았군. 개방 화정현 지부.

내가 관제묘 앞마당에 들어서자 거지들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공동파의 이름 높은 괴협이 아니시오. 강호에 그 이름을 떨치는 두 여인의 마음을 훔친 화화공자. 그런 분이 본 방의 분타에는 무슨 일이신가?”

대놓고 비꼬는 투.

더러운 땟물이 줄줄 흐르는 꾀죄죄하다는 말도 부족한 몰골. 머리에는 까치집을 올린 모양새인데, 20년은 안 씻은 듯한 구린내에 태연하게 이를 잡아서 손으로 터트리는 꼴이 자못 볼만했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다.

허리에 달린 세 개의 매듭. 개방 삼결제자.

이런 시골 출장소 소장을 맡기에는 조금 과분한 실력자다.

“화화공자라···.”

“아니시오? 강호에 소문이 파다하건만.”

“괴협이라고 불리는 건 맞지.”

“···맞지?”

중년 거지의 이마가 꿈틀거린다.

나는 입가를 비틀었다.

“물론 나는 공동파 제자 괴협 이철수다. 하지만 그 뒤의 쓰레기 같은 별명은 내 것이 아니지. 개방이 그걸 모르는 건 아닐 테고···.”

“···음.”

개방은 공동파와 같은 정파지만, 굳이 따지자면 적에 가까운 입장이다.

당대 감숙 무림의 패자는 서문세가니까.

당연히 감숙성의 모든 문파는 서문세가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건 개방 역시 마찬가지다.

개방 감숙 분타주가 진천검왕과 든든한 꽌시로 맺어져 있는 상황이니, 오히려 공동파 입장에선 하오문보다 못 믿을 놈들인 것이다.

“설마하니 까마득한 무림의 말학후진 후배와 기싸움까지 벌이시려고 그러시는 건지?”

살짝 존대를 섞어주니 거지놈의 얼굴이 구겨진다.

흥. 말싸움을 걸 거면 다른 놈한테 걸었어야지.

“이 말학후진에게 이름자나 좀 알려주셨으면 하는데.”

“···임단룡이다. 강호의 동도들에게 홍취개(紅取丐)라고 불리고 있지.”

면상을 보니 왜 그런 별호가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대낮에 술기운에 절어서 시뻘건 낯짝. 매일 같이 술과 보신탕을 먹는 개방이라 다행이지, 다른 문파면 이 지랄을 하고 있다간 그냥 파문당했을 거다.

그나저나, 임단룡이라.

‘기억에 없는 이름이군.’

홍취개라는 별호도 그렇고, 별 볼 일 없는 놈이었던 모양이다.

임단룡이 말했다.

“공동파의 괴협이 혓바닥까지 칼날처럼 벼렸을 줄은 몰랐군. 그래서, 용건이 뭐지?”

사실상 더 다투기 싫다는 뜻.

바로 용건으로 들어간다.

“서문세가에 본파에서 보내는 답신을 전하러 왔다. 그 외에 개인적인 의뢰도 할 겸.”

“개인적인 의뢰?”

“일단 들어가지.”

주객이 전도되었다.

홍취개가 얼굴을 구겼다. 하지만 그도 날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기싸움을 포기하고는 관제묘 안으로 나를 안내했다.

관제묘 내부는 흉가 같은 공동파의 접객당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이런 데서 친숙함을 느끼다니.

나와 홍취개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았다. 당연히 거지 소굴인 만큼 다과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그딴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래서 개인적인 의뢰가 뭐요?”

불퉁한 말투는 대충 들어 넘겼다. 기분이 나쁠 테니 그렇겠지.

어차피 기싸움에선 내가 이겼다.

‘어떻게 할까···. 역시 마음에 걸리는데.’

황상의 회귀.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다. 그저 정황 증거만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내가 운이 미치도록 좋아서 동창이 하오문을 견제하려는 움직임 덕분에 어부지리를 취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확인해야했다.

정말 황상이 회귀한 게 맞는지.

그리고 그 확인할 수단은 하나뿐이었다.

“노예 상인 왕삼과 북경의 엄공 장이현. 이 두 사람의 생사여부를 알아봐 줬으면 하는데.”

엄공 장이현.

내 유이한 복수 대상.

언젠가는 북경에 가서 조져야 할, 왕삼과의 커넥션으로 어린 소년들을 납치해 그곳을 잘라 황궁에 팔아먹는 고자 브로커.

극악무도한 악당.

놈이 만약 내가 손도 대지 않았는데, 1회차와는 달리 죽어버렸다면.

‘그건 회귀한 황상이 한 일일 터.’

회귀한 황상이 개입했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다. 나를 고자로 만든 엄공 장이현과 노예상인 왕삼에 대한 이야기는 오직 황상에게만 털어놨었으니까.

황상이라면 회귀하자마자 나를 찾기 위해 왕삼과 장이현의 행방을 수소문했을 터이다.

그리고 내 복수를 대신하겠다며 장이현을 죽였을 테지.

왕삼은 내가 죽였고.

반면에 장이현이 죽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운 좋게 동창의 작전 수행에 얻어 걸렸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기막힌 우연이겠지.

심증은 황상의 회귀를 가리켰지만, 물증이 필요했다.

이제 물증을 입수해야 했다.

“왕삼, 장이현? 그자들은 왜 찾는 거지?”

“내가 공동파에 입문하기 위해 감숙으로 이동했을 때, 왕삼이라는 노예 상인한테 납치당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야음을 틈타 왕삼의 구속에서 탈출했지만, 그때 탈출하기 전 왕삼이 엄공 장이현이라는 자를 통해서 소년들을 납치 후 거세해 궁에 환관으로 팔 거라는 이야기를 몰래 엿들었지. 내가 만약 탈출하지 않았다면 환관으로 팔렸을 터.”

쿵!

감정이 고조된 나는 관제묘의 바닥을 내리쳤다.

낡은 관제묘 나무 바닥이 부서지며 조각이 튀어올랐다.

“무고한 어린 소년들을 납치해서 거세해 궁에 판다니, 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삼생에 걸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인가!”

그래 이 나쁜 새끼들.

뭣도 모르는 어린애들을 속여서 양물을 잘라서 황궁에 팔아먹어?

천참만륙을 내도 시원찮다.

그때 사정없이 번뜩이던 칼날에 썩둑 잘려 나가던 내 소중한 양물을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흘렀다.

그때 양물만 안 잘렸어도!

주르륵.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나 이철수, 의협을 기치로 내건 공동파의 제자로서 그런 극악무도한 자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내가 이제 장성하였으니, 놈들의 소재를 파악하여 나중에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다.”

나는 연기, 아니 진심이 담긴 샤우팅을 내질렀다.

그래.

감히 내 양물을 자르고 어린아이를 팔아먹는 극악무도한 쓰레기들은 마땅히 청소해야 옳다.

만약 장이현이 죽지 않았으면, 내가 직접 놈의 저승사자가 되리라.

내 말에 홍취개의 눈빛에 이채가 떠올랐다.

개방은 구파일방 중에서 의협(義俠)을 가장 중시하는 문파.

내 진심이 담긴 샤우팅에 감동받은 게 틀림없다.

“세간에서 화화공자라 불리는 자의 발언치고는 의외로군. 거기다 꽤 진심인 듯 보이고. 이거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걸지도 모르겠군. 알겠소.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협력해드리지. 더불어 아까 시비에 대해서도 정식으로 사과하겠소.”

임단룡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사과의 표시.

나는 그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되었다. 정파 무림의 동도로서 그런 사사로운 일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니, 정보료는 얼마면 되나?“

“어려운 일도 아니고, 은자 반 냥 정도만 내시오.”

나는 품에서 만금전장 출장소에서 환전한 은자 한 냥을 꺼낸 뒤 거스름돈을 받았다.

“답신 전달은 삼 일. 왕삼과 장이현의 정보는 칠 일 정도 걸릴 것이오.”

“알겠소.”

나는 개방에서의 일을 마친 뒤에 관제묘를 나왔다.

일주일이라.

딱 좋다.

그동안 수련하다가, 다시 비무 토토를 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관제묘를 나와 다시 산 위로 몸을 날렸다.

*

공동산에 도착한 나는 내 개인 수련장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개인 수련장이라고 해 봤자, 폐가들 사이에 있는 황량한 공터였지만 말이다.

공동파 본산은 구파일방의 일원이었던 명문대파였으니만큼 턱없이 넓었다. 3명, 아니 이제는 4명이 된 문도들이 거주하기에는 차고 넘칠 정도로.

그래서 수행할 공간도 많았다.

나는 그중 공터 하나를 차지한 뒤, 언제나처럼 케겔 운동과 스쿼트를 통해 기초 정력 다지기를 끝내고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어 사형이 새로 개량한 혼원공을 점검하려 했다.

물론 양물은 꼿꼿이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상황이었다.

자고로 발기는 억지로 가라앉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가라앉게 놔둬야 정력이 좋아지니까.

개인 수행은 항상 세워두고 했다.

그때.

내 기감에 인기척이 걸렸다.

뭐지?

개인 수행을 한다는 사실을 사부인 전영은 물론 사형과 사매 서하린에게도 알렸을 터.

그러니 당분간은 내게 접근하는 사람이 없어야 정상이다. 실제로도 그렇고.

강호 무림에서 개인 수행은 훔쳐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왜.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누구지? 나와라. 이미 기척을 감지했으니, 숨어도 소용없다.”

내가 내공을 실어 목소리를 퍼뜨린 그때.

빼꼼.

무너진 폐가 근처에서 신비로운 은빛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뒤이어 얼굴을 살짝 붉힌 20대 중반처럼 보이는 미녀가 폐허 너머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죄송해요. 공자.”

그렇다.

내 수행을 훔쳐본 장본인은 바로 검후 은설란이었다.

잠깐.

검후는 화경의 고수잖아.

화경에 도달한 절대고수의 기척이 고작 이류 끝자락인 내 기감에 걸렸다고?

뭐지?

설마 일부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