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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72화 (72/171)

72화 1갑자

화정현 옛 사영회 장원.

뒷정리를 거의 끝낸 흑사룡의 귀에 저잣거리에 떠도는 소문이 들려왔다.

“뭐라?! 오라버니, 아니 쌍발색검이 그런 짓을?!”

“그렇습니다. 소방주님. 역시 정파인은 위선적이군요. 비무에서 소방주님께 참담한 짓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정파 주제에 난봉꾼 짓까지······!”

수하의 말을 들은 흑사룡 위소련의 뺨이 달아올랐다.

그녀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흐, 흥. 사내들이란 다 똑같은 법이지. 되었다. 나가보도록.”

“알겠습니다. 소방주님.”

탁.

미닫이문을 닫고 수하가 나간 걸 확인한 흑사룡이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녀의 입이 삐죽 나왔다.

“······빌어먹을 오라버니 같으니라고······.”

남자가 처를 두 명 두는 건 흠이 아니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 비무에서 그녀의 옷을 찢었을 때부터.

달칵.

흑사룡이 몰래 숨겨둔 동경을 꺼내 얼굴을 비췄다.

거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있었다. 사내처럼 아무렇게나 기른 검은 단발, 예쁘다보다는 잘생겼다에 가까운 외모. 여인답지 않은, 사내처럼 자란 그녀의 모습이 있었다.

용모가 준수한 사내라고 해도 믿을 정도.

도저히 여인다운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사천제일기녀 능월향이라니······. 서문세가의 검봉 서문청하라니······.’

위소련의 고개가 숙여졌다.

사실 정파라면 모를까, 사파에서 기루에 드나들거나 난봉꾼 짓은 커다란 흠이 될 수 없었다.

당장 아버지인 광마도군부터 첩실을 여럿 거느리는 것도 모자라 기루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지 않던가.

그런 환경에서 자란 위소련에게 이철수의 난봉꾼 짓은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가 신경 쓰인 부분은 이철수의 정인으로 알려진 두 여인이었다.

사천제일기녀 능월향. 차기 천하제일미라고도 불리는 그녀의 미색(美色)은 이미 사천을 넘어 천하를 위진하고 있었다.

서문세가 검봉 서문청하는 또 어떤가?

정파의 명문 세가답게 어려서부터 그녀와는 달리 금지옥엽처럼 곱게, 여인답게 자랐을 것이다.

실제로 정사지쟁 당시 서문청하를 어깨 너머에서 봤던 기억이 흑사룡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보기만 해도 기품과 여인다움이 흘러넘치는, 고귀한 명문 아가씨다웠던 그녀의 모습이 위소련의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반면에 나는······.’

여인다운 모습이라고는 단 1할도 없다.

그 사실이 흑사룡을 위축시켰다.

그런데도 그는 그녀를 여인으로 삼고 책임지겠다 선언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신경이 쓰인다.

조금은 여인답게 있고 싶었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으으으으······. 빌어먹을 오라버니 같으니······.”

위소련이 머리를 헝클었다.

그녀는 혼란에 빠진 채, 두근대는 심장을 안고 우두커니 주저앉아 있었다.

*

공동파 본산 접객당.

“사부님! 방금 또 색마 이철수의 추문을 제자가 입수했어요! 들어보세요! 글쎄······.”

소검후 천소빈에게 소문 내용을 들은 검후 은설란의 무표정한 얼굴이 살짝 굳었다.

‘청하와 상공께서 이미 통정하는 사이셨다고? 거기에 기녀인 능월향과 새로 또 정을······?’

서문청하 관련 소문은 헛소문일 터다.

이는 그녀가 서문청하의 지인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소검후 역시 마찬가지였다.

“청하가 이철수 같은 색마와 통정했다는 건 믿을 수 없어요! 이번 비무에 세인들이 멋대로 덧붙인 헛소문이 분명해요! 하지만 능월향과 정을 통한다는 건 사실일지도 몰라요! 제자가 직접 환락가로 가는 이철수를 목격했으니까요!”

엣헴.

소검후가 눈빛을 반짝이며 검후에게 말했다.

“그렇구나. 알았다.”

검후가 짧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은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능월향이라니, 상공의 불장난 상대 따위가 감히······. 정인을 자처하다니······. 흥. 상공께서 멋진 사내라는 건 또 어떻게 알아 가지고.’

검후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상공께서 잘못한 게 아니다. 불장난을 들이거나 첩실을 품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상공처럼 멋진 사내라면 여인이 꼬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감히 불장난 상대 주제에 정인을 자처한 능월향은 잘못이었다.

‘안 되겠어. 어떻게든 상공께 조금 더 다가가지 않으면···.’

검후의 은빛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런 사부의 모습을 본 소검후가 웃었다.

‘후후. 이철수. 당신 같은 색마는 절대 사부님을 이길 수 없어.’

역시 사부님께서도 이철수를 마음에 안 들어하는 게 분명했다.

소검후는 그렇게 오해하면서 웃었다.

*

같은 시각.

공동파 대연무장.

홀로 수련하는 이철수를 빼고, 이제는 공동파의 정식 제자가 된 서하린과 유진휘가 함께 수련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유진휘의 차가운 눈동자가 기초 수련을 빠르게 소화하는 서하린을 응시했다.

지금 서하린은 마보를 포함한 외공 수행과 함께 기초 검법인 삼재검과 삼재보를 수행하여 검술의 기초를 닦는 중이었다.

여인의 몸으로 견디기 힘든 수준의 외공 수행이었지만 서하린은 불평 한마디 없이 계속 견뎌냈다.

옆에서 그녀의 수행을 봐주던 유진휘는 곧바로 서하린의 재능을 알아차렸다.

그녀 본인만큼은 아니지만, 서하린도 충분히 강호 무림의 기준으로 일대기재라 불릴 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사제······.’

사제는 이걸 알고 서하린에게 입문을 권한 걸까.

유진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유 사형.”

“무슨 일이지?”

“아까 심부름 때문에 하산했을 때 묘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휘익.

서하린의 수련용 목검이 공기를 갈랐다.

무섭도록 정확한 내려치기였다.

“수행 도중에 잡담이라니······.”

“이 사형에 관한 소문입니다.”

유진휘가 서하린에게 뭐라하려던 그때.

서하린이 말허리를 잘랐다.

그녀의 말에 유진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서하린의 무기질적인 눈길은 유진휘의 동공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어떤 소문이지?”

“······이 사형이 서문세가의 검봉 서문 소저와······.”

서하린이 읊은 소문을 들은 순간.

유진휘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다.”

유진휘는 소문을 부정했다.

다른 건 몰라도 서문청하와 통정하는 사이라니. 그럴 리가 없었다. 그 누구보다 사제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유진휘였다.

사제와 서문청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면식도 별로 없는 사이다.

“능 소저와 통정한다는 소문은요?”

“그, 그건······.”

하지만 뒤이은 소문에 유진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철수와 하오문이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능월향은 기녀다. 어쩌면 하오문 소속일지도 모르는.

이철수의 거래 상대가 능월향이라면?

‘그, 그런 사마외도의 무리한테 사제를 넘길 수는 없어!’

있을 수 없다.

사마외도의 무리가 순진한 사제를 유혹한 게 틀림없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녀의 사고가 끝없이 쪼개진다. 찰나의 시간 동안 수많은 상념을 떠올리던 그때.

그녀의 귓가에 서하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사형.”

표정이 변하는 유진휘를 보면서 서하린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왜 그러지?”

“사형제끼리의 혼인은 금기가 아닌, 오히려 권장 사항이라 들었습니다.”

서하린의 하늘색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차갑게 빛났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유 사형께서 이 사형을 아낀다는 사실은 압니다. 하지만 기녀 따위에 넘기는 것보다는 역시······. 같은 사문의 식구와 맺어지는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의 곁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 서하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주어를 생략한 말이었지만, 유진휘는 서하린의 말에 담긴 진의를 알아들었다.

서하린의 말은 맞다.

사형제끼리의 혼인은 오히려 권장된다. 사부인 전영도 둘이 맺어진다면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유진휘는 결코 기뻐할 수 없었다.

“······수행을 계속하도록.”

“알겠습니다.”

계속 검을 휘두르는 서하린을 보면서 유진휘는 입술을 깨물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혼원공을 개량해야겠어.’

이럴 때는 무공 생각을 하는 쪽이 좋았다.

사제를 위해, 혼원공을 개량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유진휘가 눈을 감았다 떴다.

*

자금성 함복궁.

오늘도 우첩형에게 일일 보고를 듣던 태평공주 주가율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졌다.

“······그래, 알았다. 수고했다. 우첩형.”

“감사합니다. 마마.”

강호에 떠도는 이 노야에 대한 소문이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서문청하, 그리고 능월향과 이 노야의 삼각관계 소문.

하지만 주가율은 능월향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더불어 이 소문을 퍼뜨린 장본인이 누구인지도.

‘적사월······. 이 어린 년이 기어코 사고를······!’

천하제일미녀.

염왕 적사월.

진짜 얼굴을 보기만 해도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인세에 따라올 자가 없다는 미녀이자 사파제일인.

그녀가 이번 소문의 진짜 배후라는 사실을 주가율은 곧바로 꿰뚫어봤다.

‘······이 노야께서 하오문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적사월 같은 어린 년이 감히······. 감히 짐의 노야한테까지 마수를 뻗쳐 이런 건방진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구나······. 노야의 애첩 자리조차 아까운, 하룻밤 불장난 상대에 불과한 하찮은 기녀 주제에······!’

주가율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천하제일미. 물론 아무리 절색이라도 노야께서는 넘어가지 않으리라 주가율은 믿었다. 전생에도 이미 적사월과 대면한 경험이 있던 노야였다.

그때도 넘어가지 않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적사월이었다. 그 어린 년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노야의 모습을 보고 주제넘게 반해버린 게 틀림없었다.

노야는 구주팔황에서 가장 멋진 사내니까, 반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심지어 아직 이팔청춘도 되지 않은, 본인보다 46년 연하인 노야한테 가가라니······! 나이를 1갑자나 먹은 주제에······!’

가가.

감히 그녀조차 입에 담지 못했던 호칭을 먼저 불렀다는 사실이 주가율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가율 본인은 노야보다 5살이나 연하였다. 그래서 주가율 본인은 얼마든지 가가라고 사사로이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늙은이인 검후 은설란이나 염왕 적사월은 그래서는 안 됐다.

특히 적사월은 노야보다 46년이나 연상. 그런 주제에 가가라니. 주책이 따로 없었다.

‘환갑이 되도록 나이를 먹고 수치심이 없어도 정도가 있어야지! 이런 파렴치한 년을 보았나!’

그녀의 손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게다가 주가율은 알았다. 본래 노야께서 그린 그림은 하오문에 의뢰해서 비무 소문을 퍼뜨려 서문세가를 비무장에 끌고 오는 것이 끝일 것이다.

하지만 적사월이 노야의 그림을 망쳤다. 애첩, 아니 정부(情婦)에 불과한 주제에 감히 말이다.

대명제국의 정점에서 수십 년 군림한, 철혈의 황제 주가율의 압도적인 기세가 흘러나왔다.

300년 전 혈교를 무찌르고 대명을 개국한 태조 주원장의 현현을 보는 듯한 느낌.

오체투지한 우첩형의 몸이 공포로 벌벌 떨렸다.

“우첩형.”

“부르셨나이까, 마마.”

“최근 하오문의 위세가 제법이구나, 천하 질서를 위해서 놈들을 제어할 필요가 있어.”

뒤이어 주가율의 낭랑한 목소리가 궁 내부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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