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현모양처(賢母良妻)
해가 떨어지고 달이 뜬 공동산의 밤.
밤이라서 폐가가 아닌 흉가로 진화한 접객당 마당에서 이철수와 검후가 서로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밤늦게 실례가 많았습니다.”
이철수가 고개를 숙였다.
소검후의 말대로 이 시대에서 야밤에 함부로 아녀자의 방을 외간 남자가 찾는 건 무례한 일이었다.
보는 눈이 없는 공동파 본산이라서 망정이지, 보는 사람이 많은 객잔 같은 데였다면 둘이 몰래 정을 통한다는 추문이 퍼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남녀유별이 엄히 지켜지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언제건 찾아오셔도 됩니다.”
“검후 선배의 하해와 같은 배려심에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이 공자님도 편안한 밤 되시길.”
작별 인사를 나눈 이철수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검후는 그의 뒷모습을 접객당 기둥에 몸을 기댄 채로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달빛이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에 내려앉아 신비롭게 빛났다.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공동파 본산 전체를 덮은 그녀의 기감에는 이철수가 청운각으로 돌아간 기척이 감지되고 있었다.
‘상공께서 소첩이 만든 다과를 맛있다고 해주셨어!’
오늘 준비한 다과는 검후 본인이 직접 만든 것.
오랜 독신 생활 동안 소일거리로 익힌 다도 취미였다. 나름 문도들에게는 호평을 받는다 자부했다. 그런데도 상공 앞에 내놓을 때는 그녀의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혹시 상공의 입맛에 안 맞지는 않을까, 그분께서 맛없어하지는 않을까.
화정현은 난주 같은 대도시가 아닌 시골 소도시라 좋은 차를 구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상공께서는 좋다고 해주셨다.
‘상공께서는 이 얼마나 다정한 분이신가요. 소첩은 기뻐요.’
검후가 붉게 달아오른 뺨을 양손으로 감싸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상공.
그렇게 부르고 싶었다. 그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직은 아니니까. 아직 상공께서는 정인도 남편도 아닌 도전자에 불과하니까. 공동파와 항산파는 은원으로 엮여 있으니까.
항산파의 장문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공동파의 제자인 상공을 사무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들끓는 연심을 대외적으로 말할 수도, 그분에게 발설할 수도 없었다.
그 사실이 그녀를 더 애달프게 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이토록 가까이 있는데, 어째서.
‘그래도 좋아요. 상공께서 소첩을 잊지 않고 들러주셨다는 사실이.’
종일 다과를 만들면서, 온통 상공 생각만 한 검후였다.
혹시 그분께서 안 오면 어쩌지, 하고 불안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와주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공께서는 그녀에게 무려 부탁을 해주셨다.
‘상공도 참, 부부 사이에 부탁 같은 건 필요 없는데······. 명령이면 족해요.’
두근, 두근.
그녀의 풍만한 가슴 속에 있는 심장이 다시 뛰었다.
게다가 부탁의 내용도 그녀가 바라마지않던 일이었다.
‘아아, 상공이 있는 공동파 본산에, 상공과 함께 더 머무를 수 있어······!’
원래 항산파 본산으로 복귀해야 했지만, 도전자인 이철수의 병세를 살핀다는 억지 핑계로 남아 있던 검후였다.
그가 일어나면, 상공을 만난 뒤 저 먼 항산으로 떠나야만 했다.
그 사실이 검후는 슬펐다.
하지만 상공의 제안으로 그녀는 공동파의 정식 손님이 되어 당분간 더 사랑하는 상공의 곁에 머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 좋았다. 물론 제자인 소검후는 접객당의 낡아빠진 시설과 요리마저 직접 해서 먹어야하는 현실에 불평했지만, 검후는 그것마저 상관없었다.
‘요리는 현모양처의 덕목······. 후후. 상공을 위해서라면 소첩, 얼마든지 요리를 잘할 자신이 있어요!’
요리를 직접 한다고? 오히려 좋다. 상공을 위한 요리 수행이라 생각하면 되었다.
접객당의 시설이 낡은 것도 상관없었다. 상공의 곁에 머무를 수 있다면 노숙이라도 좋았다.
‘아아, 나의 상공. 얼마나······. 다정하고 상냥하고······. 예의 바르고 듬직한 분이신지······.’
그렇게 검후가 얼굴을 붉히던 그때.
“사부님!”
그녀의 등 뒤에서 소검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자의 목소리를 들은 검후는 빠르게 얼굴의 혈류를 조절해 홍조를 지워버린 뒤, 얼굴 근육을 조절해 평소의 차갑고 무표정한 냉미녀 검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무표정한 검후의 얼굴이 소검후를 향했다.
“무슨 일이냐?”
“······정말 이철수의 도전을 용인해줄 생각인가요? 무려 이번 비무에서 서문세가의 검봉을 몸종으로 삼겠다고 천명한 자가 이철수라고요! 몸종이라니! 그것도 이름 높은 무림세가의 금지옥엽인 청하를 몸종으로 삼겠다니! 그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지 않나요?!”
소검후가 검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문청하. 몸종.
그 말을 들은 검후의 입가가 살짝 떨렸다.
검봉 서문청하는 소검후 천소빈과 용봉지회에서 만나 친분을 쌓은 사이. 당연히 검후도 서문청하와 안면이 있었다.
나이는 14세인 서문청하가 15세인 천소빈보다 한 살 어렸다.
둘 다 연하인 건 맞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검후가 살짝 불안해졌다.
‘······상공께서 청하한테 마음을 주면 어쩌지······.’
게다가 서문청하는 그녀보다 한참은 연하이자 상공의 또래 여인이었다.
불안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검후는 상공을 믿었다.
‘아니야. 이러면 안 돼. 상공께서는······. 성년이 되면 소첩한테 반드시 도전한다고 하셨어. 소첩을 상공의 여인으로 품는다고 하셨어.’
그날의 공개 고백을 떠올린 검후의 심장이 다시 뛰었다. 검후는 필사적으로 얼굴에 몰리는 혈류를 제어해 홍조를 억제하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어차피 배분은 내가 더 높아. 만약······. 상공께서 청하를 품더라도······. 정실부인은 내 자리야.’
무려 구파일방의 장문인이자 경천십칠주의 일좌를 차지하는 화경의 고수인 검후였다.
만약 서문청하가 상공의 여인이 되더라도, 결코 그녀는 검후를 밀어내고 정실이 될 수 없었다.
‘······영웅은 호색이라고 했어. 거기에 상공은 한창 피가 끓으실 나이니까······. 불장난 정도는 상관없어. 어차피 상공의 정실은 내 자리니까.’
검후는 속으로 웃었다.
배분으로도, 나이로도, 신분으로도 정파 무림에서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여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명제국의 공주나 그녀보다 배분이 높은 천하제일요녀 적사월이 오지 않은 이상, 정실은 무조건 그녀의 차지였다.
하지만 황실은 몰락한 공동파에 관심이 없을 테고, 적사월은 오히려 사내를 거부하며 60년 일생을 독수공방한 이해가 되지 않는 여자였다.
그러니 지금 정실은 무조건 그녀의 차지다.
그리고 검후는 거기에서 만족했다.
어차피 10년간 없던 도전자, 하염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사실상 포기했던 혼인이었다.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거기에 사내가 첩을 들이는 건 그렇게 큰 흠도 아니었다.
‘게다가 상공의 그 하, 하물을 생각하면······.’
검후의 눈앞에 그날 봤던 상공의 대물이 떠올랐다.
그 정도 크기라면 상공의 욕구 역시 보통 이상으로 왕성할 게 틀림없다.
욕구를 해소하지 않으면 고통스러울 것이다. 상공이 고통받는 게 싫었다.
불장난은 필연이었다.
게다가 잘생기고, 나이도 어리고, 전도유망한 고수가 상공이었다. 주변에 여인이 꼬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아, 죄송해요. 상공······. 소첩이 상공의 욕망을 받아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서······.’
검후의 무표정한 얼굴에 살짝 그늘이 졌다.
그녀는 얼마든지 상공의 욕망을 받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항산파 장문인이라는 본인의 신분과 30년 전 용봉지회의 선언을 원망했다.
부인 된 몸으로 상공의 욕망을 해소해줘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상공께서 성년이 되어 소첩과의 비무에서 승리한다면, 그날 밤······. 소첩은 상공의 품에서 여인이 될 거예요.’
두근.
검후의 심장이 뛰었다.
46년을 넘게 간직한 처녀였다. 상공께서 성년이 되는 날 밤, 처소에서 그분의 품에 안겨 신혼 첫날밤을 보내는 상상만 해도 너무 좋았다.
‘······마, 망측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지? 그, 그래도 그때가 되면 소첩은 상공의 여인이니까······.’
밤새도록 상공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
그날을 위해서는 지금 참아야 했다.
상공께서는 아직 성년이 아니니까.
‘소첩, 상공께서 성년이 되어 소첩을 구하러 오는 날을 기다리겠어요.’
검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속마음과는 달리 싸늘한 말투와 무표정한 얼굴로 소검후에게 말했다.
“소빈아. 그건 검봉이 먼저 제안했다고 하지 않았더냐?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하, 하지만······. 맞아요! 그리고 저, 아까 화정현에 다과 재료를 사러 갔다가 이철수가 화정현 암흑가의 환락가로 들어가는 모습도 봤어요! 이, 이래도 이철수의 도전을 용인할 건가요?! 이철수는 기루나 드나드는 색마가 틀림없다고요!”
소검후가 검후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기루나 드나드는 망나니 따위! 비무 도중 음란한 광경을 보인 색마 따위! 사부님의 남편으로 절대 인정할 수 없어!’
소검후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철수.
소검후 천소빈은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히 모든 강호 여인의 우상이자, 그녀의 우상인 사부님에게 도전한 것부터가 그랬다.
거기에 정사지쟁 도중 보여준 색마에 가까운 추태도 그랬으며, 벗인 서문청하와 몸종을 두고 내기했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사부님께 감히 도전한 주제에 환락가를 찾은 것도 싫었다.
사부님께서 이철수 따위에게 패배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 소검후였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가 이기면······.
‘······이철수가 사부(師父)님의 남편이 된다면······. 내가 이철수를 사부(師夫)님으로 모셔야 하잖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예에 따라 남자 사부의 부인을 사모(師母)님이라고 부르며 어머니의 예로 대하는 것처럼, 여자 사부(師父)의 남편도 사부(師夫)님이라 부르며 아버지의 예로 모셔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철수가 15세인 그녀보다 한 살 연하인 14세라는 사실이었다.
소검후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 새아버지가 덜컥 생기는 걸, 소검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럴 일말의 가능성조차 남겨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 사부님께서도 기루에나 드나드는 여색을 밝히는 망나니는 싫어하겠지!’
숨겨뒀던 구명절초를 쓴 소검후 천소빈이 속으로 웃고 있던 그때.
“기루라······. 그렇구나. 그게 뭐 어때서 그러느냐?”
검후의 싸늘한 시선이 소검후에게 꽂혔다.
‘아아, 미안해요. 상공. 소첩이 욕구를 풀어주지 못해서.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으면······. 기루를······.’
검후는 이철수가 기루를 가건 말건 상관이 없었다.
그 정도로는 그녀의 눈에 씌워진 콩깍지를 벗겨낼 수 없었다.
“하, 하지만 여색만 밝히는 망나니······.”
“혈기왕성한 사내가 기루를 가는 건 그렇게 큰 흠이라 볼 수 없다. 정파에 이름 높은 공자치고 기루를 드나들지 않는 공자가 몇이나 되겠느냐? 그리고 나는 단 한 번도 도전자의 자격을 정파 무림의 사내에서 바꾼 적이 없다. 이 공자 역시 정파 무림의 사내. 그러니 그의 도전은 아직 유효하다. 이미 도전자의 자격 요건을 30년 전에 천명했거늘, 이제 와서 말을 바꾼다면 내 체면이 크게 상하여 천하 사람들이 웃음거리로 삼을 것이다.”
“······.”
검후의 논리정연한 말에 소검후가 침묵했다.
검후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없었다.
검후가 요구하는 결혼 비무 도전자 자격은 정파 무림에 몸담은 사내일 것. 딱 하나뿐이었다.
30년 동안 그 조건은 변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말을 바꾸어 이철수의 도전을 내친다면, 검후의 체면은 물론 항산파의 위신에까지 손상이 갈 것이다.
체면 때문이라도 검후는 말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소싯적에 사부는 이 공자보다 더한 망나니······. 의 도전도 받았고, 이겼느니라. 그러니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검후의 말을 들은 소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에도 사부님은 이길 거야.’
소검후는 사부를 믿기로 했다.
30년 동안 불패였던 검후였다. 이제 와서 소검후인 그녀보다 한 살 어린 후기지수 소년에게 패배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이번에도 감히 주제도 모르고 그녀에게 도전한 망나니 이철수를 응징할 것이다.
잠시나마 존경하는 사부님을 믿지 못한 꼴이 되었다. 부끄러웠다.
소검후의 뺨이 수치로 붉게 물들었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주제넘은 걱정이었네요. 죄송합니다.”
“아니다. 날이 차구나. 먼저 들어가 자거라.”
“알겠습니다. 사부님.”
소검후를 먼저 들여보낸 검후는 휘영청 뜬 달과 저 멀리서 기감을 통해 느껴지는 이철수의 기척을 감지하면서 생각했다.
‘죄송해요. 상공. 상공을 망나니라 말해버려서······. 이 벌은 나중에 꼭······. 상공께 몸으로 갚을 거예요.’
그분께서 성년이 되면 반드시 상공의 손에 쓰러져, 그분의 여인이 되리라.
검후는 언젠가 도래할 그날을 떠올리면서, 아무도 없는 접객당에서 녹아버린 표정으로 배시시 웃었다.
*
이철수가 퍼뜨리라고 한 서문세가와의 비무 소문은 적사월이 퍼뜨린 능월향과 이철수의 연애 소문과 합쳐지면서 사람들의 입에서 더 자극적으로 변형되었다.
“자네, 그거 들었는가? 글쎄 공동괴협 이 소협이 이번에 비무로 서문세가의 금지옥엽인 검봉 서문 소저를 시비로 삼는다고 천명했다네!”
“아, 그 소문 말인가? 이건 내가 내 사촌의 벗이 단골인 객잔 점소이에게 들은 소문인데, 실은 검봉 서문 소저와 이 소협은 서로 사모하여 몰래 정을 통하고 있던 사이라고 들었네! 그런데 이 소협이 서문 소저한테 이별을 통보하고 능 소저와 정을 통하기 시작하였으니, 거기에 질투한 서문 소저가 몸종을 대가로 걸고 비무를 청했다고 하더군!”
“아니 그런 비밀이! 허어······. 이미 떠나간 정인을 붙잡기 위해 비무를 청하다니······. 서문 소저가 가엾구만. 여인을 울리다니······. 이 소협은 무슨! 사파 놈들이 붙인 별호인 쌍발색검이 더 맞는 별호일세!”
“맞네! 감히 서문 소저와 능 소저 둘 모두의 마음을······. 용납할 수 없네!”
“그 주제에 심지어 검후 님께도 도전장을 던지지 않았는가! 능 소저의 마음을 훔친 주제에 말이야! 여색을 어디까지 탐할 것인지 모르겠군!”
“화화공자가 따로 없어!”
사실 검봉 서문청하는 이철수와 서로 몰래 사귀던 사이였다. 하지만 공동파와 서문세가는 견원지간이었기에 아슬아슬한 비밀 연애를 이어가다가 결국 이철수가 서문청하에게 이별을 통보한 뒤 능월향과 새로 사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철수를 잊지 못한 서문청하는 이철수를 붙잡기 위해 비무를 신청했다.
거기에 능월향과 사귀면서도 혼인은 기녀인 능월향이 아닌 검후와 하겠다는 소문까지. 온갖 자극적인 소문이 연일 강호 무림을 위진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너무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였기 때문에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하오문을 당황하게 할 정도로 빨랐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문이 서문세가의 높은 담장을 넘어 장본인인 검봉 서문청하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뭐라고요! 내, 내가 이철수 그놈이랑 통정했는데, 그놈이 나를 차서 내가 이철수한테 매달린다고요?!”
“그, 그렇습니다. 아가씨.”
말도 안 되는 소문의 내용을 들은 서문청하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대체 어디서, 누가 이런 헛소문을 퍼뜨린 지 모른다.
하지만 강호 전역에 퍼져나간 소문은 이제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고, 그녀는 이미 이철수의 옛 정인이 되어 있었다.
“참을 수 없어요!”
이철수가 부린 수작이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확실했다. 이런 치사한 수작을 부리다니.
용서할 수 없다.
비무 도중 음란한 행위를 해서 감숙 무림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검후 님에게 건방지게 도전장을 던졌을 때도 그녀는 이철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력은 그녀의 예상 밖이었지만, 그뿐.
품위나 예의범절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내였다.
‘비무라니, 그래. 잘 됐어요! 이번 기회에 이철수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줘야겠어요!’
비무에서 보여준 실력으로 미루어봤을 때. 이철수는 아직 그녀보다 하수였다.
강호 무림에서 사룡오봉의 일좌로 인정받은 검봉인 그녀였다. 방심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이철수에게 패배할 리 없다.
그리고 비무에서 이철수의 실력을 본 지금, 서문청하는 방심하지 않고 전력으로 그를 상대할 생각이었다.
아니, 비무를 안 하면 안 된다. 가만히 있으면 소문이 진짜로 사실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철수의 옛 정인이라니! 그건 죽어도 싫다.
그러니 비무로, 강호의 방식으로 해결해서 이 빌어먹을 헛소문을 잠재워야 했다.
아니, 비무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이철수의 빌어먹을 얼굴에 한 방 먹여주고 싶었다. 비무를 통해 합법적으로.
서문청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씩씩대며 가주전으로 향했다.
“아버님! 지금 당장 공동파로 보내는 비무첩, 써 주세요!”
바야흐로 이철수의 서동요 작전이 목표를 초과달성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