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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69화 (69/171)

69화 가가(哥哥)

곤화루 특실.

이제는 너무 자주 와서 익숙해진 이 장소에서 나는 이번에는 적사월과 마주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능월향의 모습을 한 적사월과 말이다.

코 끝에 묘한 향기가 감돌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향초를 피워놓은 게 보였다.

설마 최음향 같은 건 아니겠지?

어차피 현경의 정신력 때문에 그런 건 안 통하지만······. 뭐 적사월이라면 최음향이 아니라 현대의 아로마테라피처럼 향기를 통해 심리를 느슨하게 만드는 용도로 배치했을지도 몰랐다.

복마전이 따로 없군.

“아, 앉으세요······.”

탁.

문이 닫히자 적사월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면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볼 수 없었다.

탁자 위에는 다과상이 아니라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었다.

식사시간이기는 한데······. 이 시대 대접 문화에 손님은 반드시 밥을 먹이는 문화가 있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대접을 받을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게다가 그녀가 권하는 자리는 언제나처럼 탁자를 두고 앉은 맞은편 자리가 아니라 그녀의 바로 옆자리였다.

좌석 배치까지 의도적이라니.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이건 저번처럼 나를 유혹하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믿을 수 없어.’

오랜 조정 생활로 다져진 감이 경종을 울렸다.

적사월을 조심해야 한다.

화면호검 때 내게 호감을 보이기도 했지만, 호감과 사랑은 다르다.

진정한 사랑이랑 서로 믿으며 의지하는 것.

하지만 적사월은 나를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내게 진심이라면 저 말도 안 되는 가면은 집어치우고 내게 진짜 신분과 얼굴을 알려줬겠지.

사랑이란 반드시 신뢰가 동반되어야 하는 법. 하지만 그녀는 내게 진짜 신분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내가 볼 때 적사월은 나를 사랑한다기보다는 소유욕 때문에 집착하는 것에 가까웠다.

본인의 유혹이 통하지 않는 사내에 대한 소유욕.

하오문 비밀 안가에 장식할 트로피를 그녀는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 적사월의 트로피가 될 생각이 없었다.

‘하오문 비밀 안가에 감금당해 흡정당하는 생체 인형 엔딩은 안 되지.’

나는 색도의 일대종사가 될 사나이.

적사월의 노예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러면서 자꾸 유혹하려고 하니 의심할 수밖에. 나는 적사월을 빤히 바라봤다.

“······가, 가가 뭐하세요? 앉으세요. 가가를 위해 준비한 자리랍니다.”

내가 착석하지 않자 적사월이 한술 더 떴다.

뭐? 가가?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은 건가?

가가.

중세 무림에서 연인 또는 오빠를 부를 때 쓰는 말이었다. 한국어의 오빠와 어감이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뭐?

올해로 60세인 적사월이 올해 신체나이 14세인 내게 가가라니.

독하다 독해.

물론 회귀 전 기준으로 하면 동갑에서 오빠가 맞기는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렇게까지 날 유혹하려 하다니. 절대 걸리면 안 되겠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정신무장을 단단히 한 채로 그녀 옆자리에 앉은 뒤 품에서 목패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배당금을 받으러 왔소.”

“우선 출출하신데 식사부터······.”

내 말에 적사월이 웃으면서 말했다.

면사로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움직이자 달콤한 향기와 함께 살짝 풀린 가슴 앞섬으로 풍만한 가슴골이 보였다.

언제 봐도 신이 빚은 듯한 완벽한 가슴과 허리, 엉덩이였다. 중세 무림은 물론 현대의 연예인들까지 다 합쳐도 적사월 발끝도 못 따라갈 수준.

그렇기에 더더욱 경계해야 했다.

“돈부터.”

나는 목패를 그녀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내 말에 적사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가가.”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목패를 가져가던 그때. 나와 그녀의 손이 잠깐 닿았다.

“읏······.”

적사월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녀가 목패를 가져간 뒤에 전낭 하나를 건넸다.

나는 전낭을 풀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만금전장의 은자 200냥짜리 전표였다.

“은자 200냥은 무거우실 것 같아서 전표로 준비했어요. 원하신다면 현금으로 다시 융통해드릴 수 있어요.”

“아니. 됐어.”

화정현에도 만금전장의 출장소가 존재하니, 거기서 환금받던가 계좌를 개설하던가 하면 되겠지.

돈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가 전낭 입구를 다시 묶은 뒤에 품에 넣은 그때.

스르륵.

적사월이 면사를 벗었다.

사천제일기녀 능월향의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 적사월의 본래 얼굴보다 못하지만, 검후의 미모를 수월하게 능가할 정도.

그녀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웃었다.

“아~ 하세요. 가가.”

그녀가 탕초리척 한 점을 들어 내 입 앞에 들이댔다.

돼지고기라.

그러고 보니 탁자 위에는 온통 돼지고기 요리뿐이었다. 저 유명한 동파육부터 오향장육, 목수육 등등.

······돼지고기면 어쩔 수 없지.

나는 그녀가 내미는 탕초리척을 덥석 받아먹었다.

우물우물.

탕초리척은 맛있었다.

“어떠세요, 가가?”

“맛있네. 그런데 왜 자꾸 날 가가라고 부르지?”

내가 연하인데.

내 말을 들은 적사월이 움찔했다. 그녀의 뺨이 떨렸다.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 그건······.”

“설마 아무 손님한테나 다 가가라고 부르는 건 아니겠지?”

예기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적사월도 기녀 출신.

가무(歌舞)만 선보이는 예기는 현대의 아이돌이나 연예인 같은 직종이지만, 팬서비스를 위해서 손님에게 가가라고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건 아니에요!”

내 말에 발끈하는 적사월.

“소, 소녀는 아무한테나 가가라고 부르지 않아요. 소녀가 인정한 공자님한테만 그렇게······.”

발끈한 게 부끄러운지 다시 앉으면서 머리를 넘기며 웃는 적사월.

그녀의 뺨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 정도는 아니지만 신들린 연기가 틀림없었다.

“그래? 그럼 굳이 그렇게 안 불러도 되는데······.”

“가가.”

꼬옥.

그녀가 내 말허리를 자르면서 손을 잡았다.

손을 빼내려 시도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소녀는 이 공자님을 가가라고 부르기로 결정했어요. 누가 뭐래도······.”

스윽.

적사월이 내 곁에 붙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팔에 뭉개졌다. 감촉은 제법 좋았다. 14세의 신체가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구주팔황에 소녀의 가가는 오직 이 공자님밖에 없으니까요. 가가라면 언제건 곤화루의 특실로 와도 좋답니다. 가가를 위해서라면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적사월이 달콤하고 끈적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그녀가 가슴 앞섬을 자연스럽게 풀었다. 신이 빚은 완벽한 가슴이 드러났다. 새하얀 한 쌍의 수박 같은 거유가 훤히 드러났다. 그 아래로 가느다란 허리와 탐스러운 엉덩이가 보였다.

적사월이 요염하게 퇴폐적인 미소를 만면에 띄웠다.

“정말 뭐든지?”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사실 오늘 단순히 토토 배당금만 받으러 온 건 아니다.

다른 용무도 있었다.

오직 하오문만 할 수 있는 일 말이다. 원래는 정보를 판 매매금으로 의뢰하려고 했는데.

뭐든지 해준다니까.

“대가 없이?”

“네. 가가의 마음을 받을 수 있다면, 소녀는 그걸로 족하답니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나를 옆에서 꼬옥 안았다.

적사월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향초에서 피어오르는 향기와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가 뒤섞여 코 끝을 스쳤다.

얇은 나삼 너머로 느껴지는 부드럽고 푹신한 여체의 감촉이 느껴졌다.

달콤하면서도 몸이 편안해지는 듯한 향기.

미염공을 안 쓰고, 그저 환경 조성만으로 이 정도로 사내를 홀릴 수 있다니.

강적이다.

내가 정말 사파 놈들 말대로 쌍발색검이라는 별호를 단 색마였다면 여기서 눈이 돌아가서 적사월을 덮쳤겠지.

“가가께서 원하시는 건 전부······. 소녀가 향기 없는 모란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가께 증명하겠어요.”

적사월이 눈웃음을 흘렸다. 말끝을 흐리는 적사월.

하지만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욕망이 아닌 차가운 이성이 뇌를 지배했다. 현경의 심득이 정신력을 보조했다.

진정한 알파 메일이라면 여자와 성욕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본인이 여인을 끌리게 해야 했다.

게다가 지금의 적사월은 본캐의 정체를 스스로 밝히지도 않았으니 완전히 믿을 수 없다.

물론 여기서 본캐의 정체를 밝히라고 내가 말하는 건 하수 중의 하수다.

내가 강제로 밝히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녀가 스스로 밝혀야 의미가 있다.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정(情)을 통할 준비가 된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색도에 어긋나는, 공허한 육체적 교합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적사월은 교묘하게 끈끈한 거미줄처럼 나를 옭아매어 그녀의 품에 나를 가뒀다.

교미가 끝난 뒤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 거미가 생각난다.

“그렇다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무슨 부탁인가요? 가가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강호 무림 전체에 소문을 내줬으면 좋겠군.”

내 말에 적사월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어떤······.”

“서문세가의 검봉 서문청하와 공동파의 괴협 이철수가 패할 시 서로의 몸종이 되는 걸 대가로 비무하기로 약조했다는 소문이다.”

내 말을 들은 적사월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녀의 품에 안긴 채로 동파육을 한 점 집어먹었다.

작전명 서동요.

삼국시대 조상님의 지혜를 빌려 기획한 이번 작전은, 비무를 피할 게 분명한 서문세가를 공개 비무로 끌어내기 위한 수작이었다.

감숙 무림, 아니 강호 무림 전체에 비무 소문을 퍼뜨린다면, 서문세가는 체면을 위해서라도 비무에 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전과는 달리 공동파의 위상은 정사지쟁의 승리로 상승세에 접어든 상황. 공증인을 구하러 갔을 때처럼 함부로 무시할 수 없다.

이번 비무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도전자 공동파와 디펜딩 챔피언 서문세가의 감숙 챔피언 결정전 구도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진천검왕도 끌려나올 수밖에 없다.

마치 서라벌에서 밤마다 본인이 선화공주와 서로 합방한다는 루머를 퍼뜨려 선화공주와 결혼한 백제 무왕처럼 말이다. 차이점이라면 나는 루머가 아닌 팩트로 승부한다는 점이었다.

내 말을 들은 적사월의 눈가가 떨렸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그, 그건······.”

“해줄 거지?”

나는 자연스럽게 적사월의 머리에 손을 얹어서 쓰다듬었다.

움찔.

내 쓰담쓰담을 받은 적사월의 몸이 떨렸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네, 네에······. 가가의 부탁이라면······.”

“고마워. 향매.”

아무 대가도 없다고 해서, 정말 날로 먹으면서 철벽만 치면 곤란했다.

그랬다가는 완전한 집착녀로 흑화한 적사월이 정말로 나를 하오문 비밀 안가로 납치 감금해서 생체 장난감으로 만드는 배드 엔딩이 뜰 수가 있었다.

그러니 밀당을 해야 했다.

그녀가 진심을 내보이고 나를 완전히 신뢰하며 집착을 버릴 때까지.

나는 그녀의 유혹에 아주 조금 넘어간 척 연기했다. 향매라는 애칭 또한 그 일부였다.

내 말을 들은 적사월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거, 걱정마세요! 가가의 부탁은 반드시 이루어질 테니까요!”

나는 적사월의 대답을 들으면서 살짝 웃었다.

한 건 해결됐으니 마음이 좀 놓인다.

일단 돼지고기부터 전부 먹어야겠다.

이게 다 정력제니까.

흐흐.

서문세가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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