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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67화 (67/171)

67화 따뜻한 눈물

이건 말도 안 된다. 대체 왜 내 별호가······.

공동파 산문에 쌓일 소저들의 팬레터도, 나를 흠모하며 밤새 잠 못 이루는 소저들의 모습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사라져버렸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럴 수는······.

“이 공자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혹시 아직 몸이······.”

귓가에 서하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다행입니다.”

서하린이 작게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 부적이 도움이 되지 못해서······. 이 공자님이 상처를······.”

서하린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창칼을 막는다는 그 부적 말인가?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부적을 믿다니, 서하린도 아직 어린애이긴 한 모양.

스윽.

나는 자연스럽게 서하린의 손을 잡으면서 품에서 부적을 꺼내 보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부적도 효험이 있었습니다. 사파제일 후기지수의 도를 맞고도 이렇게 작은 부상만 입은 것이 그 증거가 아닙니까? 전부 저를 염려한 서 소저의 마음 덕분입니다.”

내 말을 들은 서하린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소녀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가 수줍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님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비무 전에 제게 하셨던 말씀은······. 전부 진심이고 진실이셨군요.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서하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다. 감정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 탓일까? 약간 어색해 보이기도 했다.

비무 전에 있던 일이라면 그 갑자기 기정 사실을 만들겠다는 그때 말인가?

뭐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사내대장부니까, 여인의 자그마한 허물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저는 괜찮습니다. 본 파 입문은 생각해보셨습니까?”

“······네. 이 공자님께서 정신을 차리면 정식으로 공동파에 입문하기로 아버님, 전 대협과 약조했습니다.”

서하린의 말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정파제일미녀를 다른 문파로 보낼 수는 없지.

“전부 이 공자님 덕분입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서하린과 내 분위기가 좋은 그때.

덜커덕.

문이 열렸다.

“사제! 일어났어?”

곧이어 들어오는 유진휘와 그 뒤에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전영이 보였다.

“사제, 몸은 괜찮아? 이제 다 나은 거지? 그렇지?”

스윽.

내게 다가오는 사형. 들꽃 향기도 함께 코 끝에 스쳤다.

“걱정했어······!”

와락.

사형이 나를 끌어안았다.

윽.

또 포옹이라니,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미 예상한 일이지만 기분이 별로인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사제가 정말로 잘못되는 줄 알고······. 사제······.”

히끅.

사형이 어깨를 떨었다.

가슴팍에 미지근한 물기가 닿았다.

아니 눈물은 좀.

다 좋은데 이건 좀 아니지, 나는 사형을 천천히 부드럽게 품에서 떼어내며 말했다.

“사형, 아, 아픕니다······. 아직······.”

“그래? 미안해······.”

내가 아픈 연기를 하자 미안하다며 물러나는 사형.

후우.

내가 환자라서 다행이군.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사형 목소리를 들으니 이제 좀 집에 돌아온 기분이라고.

*

‘공자님······.’

사형과 해후하는 이철수를 보면서 서하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비무 전,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몸을 거래 상대로 삼는다는 발상으로 찾아간 그 날.

이철수는 그녀를 도리어 꾸짖었다.

비무의 승리로 공동파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본인의 말을 비무장에서 증명했다.

서하린은 들었다. 이철수가 흑룡방 후기지수 둘을 상대로 승리했으며, 그 흑사룡에게도 유효타를 먹였다고.

그 대가로 상처를 입었다.

그는 정말로 본인의 말을 지킨 것이다.

‘······.’

서하린의 가슴이 뛰었다.

알 수 없는 감정. 처음 겪는 호의. 처음 겪는 설렘과 생소한 감정이 그녀의 마음속에 휘몰아쳤다.

얼굴이 붉어졌다.

서하린이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께서 못 봐서 다행이야.’

서하린의 머릿속에 이철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본인의 몸을 좀 더 소중히 여기라고.

그 말을 떠올리자 심장이 더 거세게 뛰었다.

그 말대로 공동파 입문을 결정한 서하린이었다.

하지만.

‘······이 공자님, 그러고 보니 검후 님한테 비무를 청하셨다 하셨지.’

그녀의 머릿속에 다른 소식 하나가 떠올랐다.

이철수가 검후에게 비무를 청했다는 소식이었다.

서하린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텅 비었다.

‘어째서······. 소녀의 청혼은 거절하셨는데······. 어째서······.’

왠지 모를 야속함이 올라왔다.

음심을 느끼지 않는다.

분명 이 공자는 그리 말했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반신반의 했었다. 천하에 보기 드문 절색이라 평가받던 그녀였다. 사내가 음심을 품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하지만 검후에게 청혼하는 것으로 이렇게 훌륭히, 최악의 형태로 이철수가 본인의 말을 증명할 줄은 서하린은 꿈에서도 몰랐다.

‘어째서······.’

서하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역시 공자님께선 성숙한 여인이 좋은 것일까······.’

검후와 그녀의 차이는 하나. 검후가 성숙한 성인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내가 조금 더 자라면······.’

서하린의 눈동자가 사형과 해후를 나누는 이철수를 향했다.

다행히 사형제 사이의 혼인은 금지되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장려하는 문파도 몇 군데 있었다.

더군다나 이제부터 입문하면 항상 붙어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성년이 되면, 이 공자님이 반드시 소녀를 보게 만들 거예요.’

어떻게든.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다.

서하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공허한 눈동자에 탁한 빛이 차올랐다.

*

서하린의 배사지례는 빠르게 마무리됐다.

내가 입문했을 때처럼 주천검부에서 개파조사의 위패에 세 번, 사조의 위패에 세 번, 사부에게 절을 세 번하고 문적(文籍)에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서하린은 1회차 때처럼 공동파 제자가 되었다.

그렇게 주천검부에서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나는 다음 계획을 설명했다.

“······그렇게 서문세가와 비무를 할 예정입니다.”

서문세가에서 검봉 서문청하와 있던 일과 비무를 약조한 것을 약간의 각색을 통해 설명하자 전영이 침음을 흘렸다.

“흐음······. 그렇구나. 철수야. 하지만 상대는 검봉 서문청하다. 사파제일기재라 칭해지던 흑사룡만큼은 아니지만 용봉(龍鳳)의 칭호를 받은 유망한 후기지수지. 이길 수 있겠느냐?”

“질 거라 생각하면 비무를 하자 제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정사지쟁의 승리로 본 파는 강호 무림에 부활을 천명하였습니다. 서문세가가 이제 막 날개를 편 본 파를 견제할 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당연한 이치. 그들이 본 파에 손을 쓰기 전에 본 파가 먼저 서문세가를 견제해야 합니다.”

나는 서문세가 견제의 필요성을 말했다.

부활을 선언한 공동파지만 진짜 부활했다기에는 아직 많은 것이 부족했다.

실제로 이번 비무에서 대승했는데도 서문세가의 압력 때문에 감숙의 대형 표국과 상단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기껏해야 몇몇 중소 표국과 상단이 공동파에 기부금을 바친 정도.

이래서는 안 된다.

공동파에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정력제를 통째로 사들일 정도의 돈이.

“······좋다. 이미 약조했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네 뜻이 그렇다면 허락하겠다. 비무첩을 또 쓰게 생겼구나.”

“감사합니다.”

“수행을 게을리하지 말도록. 그럼 나는 하린이를 지도하러 가겠다. 가자꾸나.”

“네, 사부님.”

전영이 서하린을 데리고 나가자, 주천검부에는 나와 사형 둘만 남았다.

“······사제.”

사형이 내게 다가왔다.

“서문세가와의 비무라니······. 너무 혼자 무리할 필요 없어. 다음부터는······.”

사형이 입술을 깨물었다.

잘생긴 얼굴 때문에 CF의 한 장면 같은 모습. 나는 그의 말에 손을 저으며 비즈니스 스마일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사형. 그리고 저도 이제 홀로 서야 할 때입니다. 이번 비무에서 제가 본 파의 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것입니다.”

나는 사형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 빌어먹을 괴협 호칭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와 상반되는 행보를 보여야 했다.

역시 그때 비무 도중 발기가 문제였던 게 틀림없다.

다음부터는 자제해야겠다. 다행히 서문청하는 위소련 정도의 상대는 아니니 무리하지 않고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빨리 경지를 일류로 올려야겠군.’

일류.

고수(高手) 호칭을 듣는 최저 커트라인이자, 검기를 한정적인 상황에서 사용 가능한 경지.

용봉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경지에 올라야 한다.

그래야 용봉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 괴협이라는 별호도 바꾸고 정파 무림의 미녀들에게 인기도 얻을 것이 아닌가?

이번 서문세가와의 비무는 내후년, 내 나이가 이팔청춘이 된 시점에서 열릴 용봉지회를 위한 포석인 셈이다.

내 용봉지회에서 반드시 별호를 공동검룡으로 갈아치우고 말리라.

검룡이라니!

이 얼마나 듣기만 해도 여심(女心)을 홀리는 별호란 말인가?

검술하는 섹시한 남자, 검섹남을 상징하는 별호가 바로 검룡이다.

검룡의 칭호를 딴다면 단번에 강호 무림의 인기 아이돌이 될 게 틀림없다.

나는 그리 생각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마. 사제.”

“알겠습니다. 사형. 흑사룡은 어디 있습니까?”

“화정현 옛 사영회 장원에 머무르고 있는데, 왜?”

사형의 말에 나는 웃었다.

“······대가를 좀 받아야 하거든요.”

자, 이제 사파제일 후기지수 흑사룡 님에게서 내기의 대가를 받을 차례다.

*

나는 사부에게 외출 허가를 맡은 뒤 사형이 따라오겠다는 걸 만류하고 홀로 화정현으로 내려갔다.

흑사룡을 만나는 것뿐만 아니라 비무 토토 배당금도 오늘 받아야 했다.

복사된 은자를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떨린다.

오늘따라 귓가에 스치는 바람 소리도 상쾌했다.

공동산을 순식간에 내려간 나는 곧바로 위소련이 머무르고 있다던 옛 사영회 장원으로 향했다.

사영회라는 간판마저 떼버린 장원 앞에는 흑룡방 무사로 보이는 흑도 무인 둘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네놈은?!”

나를 보고 인상이 일그러지는 무사.

뭐 그럴 수밖에 없겠지.

절대 질 수 없는 비무를 졌으니.

그들의 감정이야 어쨌건 내 알 바는 아니다.

“공동파의 이철수다. 흑사룡한테 볼일이 있어 왔다.”

“······쌍발색검! 네놈이 대체 무슨 낯짝으로 여기를!!”

하지만 뒤이은 말에 나는 표정 관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쌍발색검(雙勃色劍)?

시발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별호야?

“쌍발색검? 그거 설마 날 가리키는 말이냐?”

“그럼 여기에 너 말고 누가 더 있단 말이냐? 중인환시리에 소방주께 그런 무례를 저지르다니······. 네놈이 정녕 그러고도 공명정대를 자처하는 정파의 제자라 할 수 있단 말이더냐?!”

“······이 개새끼들이 아침부터 자꾸 혈압을 오르게 하는군. 그럼 내가 정파지 사파냐? 오늘 그 쌍발색검한테 한번 맞아볼래?”

괴협까지는 그래도 참았다.

아무튼 협(俠)이 들어가니까.

또라이기는 하지만 협객이라는 뜻이 아닌가?

그런데 뭐? 색검? 이 사파 개새끼들이 진짜. 감히 색도의 일대종사에게 색마를 연상시키는 별호를 붙이다니!

나는 양물이 뇌를 지배하는 색마가 아니다.

하지만 저런 끔찍한 별호와 거짓 소문이 계속 강호 무림에 나돈다면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천하의 여인들이 색도의 일대종사인 나를 채화음적으로 오해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오해가 쌓이면 용봉지회에서 별호를 검룡으로 바꾸어 강호 무림의 카사노바가 되겠다는 내 원대한 계획도 물거품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내 영웅호색 십년대계에 찬물을 끼얹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건 중대 사항이다.

내가 검병에 손을 얹은 그때.

“소방주께서 들라 명하셨다. 영광으로 알도록.”

끼익.

대문이 열리며 무사 하나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 두고 보자.”

나는 위사를 향해 눈을 부라린 뒤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좋아.

이제 그 오만하고 자존심 높은 사파제일 후기지수 흑사룡 위소련에게 오라버니 소리를 들을 차례군.

오라버니라.

언제 들어도 설레는 호칭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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