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63화 (63/171)

63화 정말 멋진 별호

“스, 승자! 공동파의 이철수!”

내 말에 정 뭐시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치 유령에 홀린 듯한, 대낮에 허깨비를 본 것 같은 묘한 표정.

나는 검을 거둔 뒤에 흑룡방 쪽을 바라봤다.

대기석에 앉아 있는 위소련의 얼굴이 벌레 씹은 듯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와 내 눈이 마주쳤다.

‘오 라 버 니.’

내가 입모양으로 말하자 그걸 읽은 위소련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녀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이제 곧이다.

“공동파가 이겼다고?”

“대체 어떻게······.”

“저런 보법이 공동파에 있었던가?”

“설마 공동혈사 때 실전됐다고 알려진 상승의 보신경인 행운유수?!”

관중들이 술렁거렸다.

그리고 무협소설 하면 빠질 수 없는, 실전된 무공을 알아보는 해설역 엑스트라의 목소리도 들렸다.

“너, 대체 어떻게······.”

“나는 나보다 약한 자의 말은 듣지 않는다. 다음.”

나는 정 뭐시기의 말을 무시하고 다음 타자를 불렀다.

어차피 위소련 빼고 이름 기억할 필요도 없는 엑스트라들이다.

더 말 섞고 싶지 않다.

“크윽······. 두고 보자. 대체 무슨 사술을 쓴 건지 모르겠지만, 날 쓰러뜨렸다 해서 자만하지 마라. 흑룡방에는 나보다 강한 인재가 얼마든지 많으니까!”

부들부들 떨면서 삼류 악역 대사를 내뱉는 정씨.

나는 그를 향해 손을 휘저으면서 말했다.

“어, 네가 제일 약한 거 잘 아니까 제발 내려가.”

“이 자식이!”

정씨가 발끈한 그때.

“진정해라. 아우야.”

탁.

그의 어깨에 손을 얹는 거구의 근육돼지가 있었다.

“형님!”

“그러게 아까 상대가 누구건 방심하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 이만 내려가거라.”

“······알겠습니다.”

정씨를 내려보낸 소년이 나를 바라보며 포권했다.

“흑룡방의 정적산이다. 아우가 진 신세를 갚으러 왔다.”

“공동파의 이철수다.”

정씨 형제인 모양이군.

“빨리 덤벼라.”

나는 칼을 빼든 채로 말했다.

“후회하게 해주지.”

내 말에 정적산이 엑스트라스러운 대사를 내뱉으면서 박도를 뽑아 신법을 펼쳐 돌격했다.

하여간 무식한 사파 깡패들 아니랄까 봐, 일단 박고 보는 건 여전하다.

하지만 아까 상대적으로 마른 체구였던 정씨 동생과는 달리, 눈앞의 정씨 형님은 근육질 마초 거한.

중세 무림식 표현법으로는 기골이 장대하고 타고난 신력(身力)이 장사인 놈이다.

그리고 흑룡방의 절학은 전국구 조폭 문파답게 무공 역시 힘 좋은 근육돼지에게 적합하게 설계되었다.

즉 같은 경지라도 근육돼지인 정적산은 비리비리하던 정씨 동생보다 더 강하다는 소리였다.

쿵, 쿵.

지축이 울리는 듯한 굉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정적산이 광소를 터뜨리며 도를 휘둘렀다.

번쩍.

도광과 함께 도풍이 휘몰아쳤다.

박도가 휘둘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정씨 동생의 비리비리한 도격과는 차원이 다른, 구절참룡도(九絶斬龍刀)의 진정한 위력이 내 앞에 펼쳐졌다.

커다란 동작, 하지만 그걸 커버할 정도로 압도적인 공간의 장악력. 휘몰아치는 도풍이 사방을 점거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우라면 몰라도 나한테는 그 비겁한 수법은 통하지 않는다!”

정적산이 웃었다.

내 행운유수를 파훼하기 위해 공간 전체를 도풍으로 채울 생각을 한 모양.

생긴 것과는 다르게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모양.

그런데 뭐?

“사파가 정파더러 비겁하다는 말을 하다니. 미친놈인가?”

뭐지? 내가 지금 정사역전세계에 사는 중인 것인가?

“네놈이 비겁한 수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여기 있는 강호 무림의 동도들이 모두 보았거늘! 어디서 발뺌하려는 것이더냐!”

정적산이 나보고 악을 썼다.

놈의 도풍과 칼날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놈의 말대로 행운유수를 사용해서 회피하기에는 여의치 않은 상황.

사실 하려면 못 할 것도 없긴 하다. 하지만 여기는 생사결이 아닌 어디까지나 비무 현장.

진정한 스타라면, 여심을 사로잡는 협객이 되기 위해서는 관중들의 시선도 신경 쓰는 쇼맨십이 필요했다.

2연속 잠행술로 슥삭 승리를 한다면 내 별호가 흑심추귀(黑心醜鬼) 같은 음험하고 졸렬한 별호로 결정될지도 몰랐다.

속이 검은 추한 귀신이라니. 그런 끔찍한 별호는 사양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그딴 별호가 붙는다면 중원 여인들의 여심을 얻기는커녕, 매도와 경멸의 시선만 받을 것이다.

삼처사첩 계획에도 애로사항이 꽃피겠지.

의외의 1승은 거뒀다.

그러니 두 번째 승리는 정정당당하면서도 모두에게 충격을 주는 방법으로 거둬야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하나뿐이다.

“발뺌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나는 공동파의 제자, 그리고 오늘은······.”

나는 삼음진결과 소양심법을 동시에 운용했다.

우웅.

삼음진결의 음기와 소양심법의 양기가 동시에 일어났다.

본래 음양이기를 동시에 운용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상극의 진기가 체내에서 부딪혀 폭발해서 주화입마에 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뭐 나 정도의 내공 컨트롤이라면 주화입마까지는 안 갈 자신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조용히 사형이 만든 혼원공의 구결을 속으로 읊었다.

충돌하려던 음양이기가 혼원공의 통제 아래 들어왔다.

콰콰콰콰콰콰콰콰!

하지만 사형이 말한 대로 아직 미완성의 무공이기에 완전한 통제는 불가능했다. 그저 약간의 방향 컨트롤만 가능한 수준.

하지만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현경의 심득이 내력 컨트롤을 보조한다. 공동파 무공의 근간은 음양전도. 자연의 섭리와는 반대로 음기를 위로 양기를 아래로 역전하는 것. 그리하여 수승화강으로 순극생기를 완성하는 것.

즉, 궁극의 정력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리고 나는 혼원공으로도 충분히 음양전도를 이룰 수 있었다.

혼원공의 구결을 따라 혈도를 통해 음기를 백회혈로, 양기를 회음혈로 인도한다. 혈도를 타고 머리로 올라간 음기가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국부로 몰려간 양기가 몸을 뜨겁게 달구는 순간.

온몸에 활력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음양전도를 통해 수승화강을 완성한 순간이었다.

찰나의 순간 넘쳐나는 활력과 증폭된 내력을 얻은 나는 웃었다.

이것이 바로 공동파 무학이 추구하는 수승화강!

그 말대로 정력이 강해지고 하물이 단단해지는 느낌이 실시간으로 들었다.

지금이라면 이틀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고 절세미녀 두 명과 운우지락을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은 충만함이 온몸에 타올랐다.

음기로 차갑게 식은 머리와 양기로 남자답게 뜨겁게 타오르는 하반신.

그야말로 섹스 그 자체.

운우지락의 극의를 언뜻 엿본 기분이었다.

역시 공동파에 들어오길 잘했어.

나는 검을 들었다.

“공동에 복마가 돌아왔음을 사해에 천명하는 날이다!”

“복마라고? 헛소리를······!!”

콰콰콰콰콰콰!!

역혈을 통해 흐르는 진기가 점점 폭증했다.

음양전도를 통해 발생한 폭발적인 내력을 검에 쏟아붇는다.

우우우우우우우웅!

내력을 받아들인 검이 진동했다.

“검명이라니!”

“저 경지에!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탄성을 내지르는 관객들.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검에 집중했다.

사실 전생의 나는 조법의 고수였던 관계로, 검에 대해서는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물론 검법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동창의 첩보를 수행하려면 무기를 가리면 안 되니까. 다른 무기도 일단은 적당한 수준까지 다룰 줄은 알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달랐다. 검과 내가 온전히 이어진 느낌. 검이 수족처럼 느껴졌다.

제법 괜찮은 감각.

나는 그 감각 그대로 복마검법을 펼쳤다.

번쩍.

정적산이 장악한 공간에 한 줄기 검광이 번쩍였다. 가득찬 도풍이 갈라졌다.

쐐애애애애애애액!

곧이어 휘몰아치는 검풍이 정적산의 도풍을 갈갈이 찢었다.

복마검법은 강검의 극한이며 공동파를 대표하는 진산절학.

고작 사파 나부랭이의 도법 따위에 부러지지 않는다.

“?!”

정적산의 눈빛에 당황이 감돌았다.

그래.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

저 애송이 수준에서는 처음 보는 검일 테니까.

“저, 저 검은?!”

“저 검공은 50년 전 공동혈사에서 실전됐다 알려진 공동파의 진산절기인 복마검법이 아닌가!!”

“공동에 복마가 돌아왔다는 이 소협의 말이 진실이었단 말인가!”

“복마검법을 다시 볼 줄이야! 무량수불!”

“정말로 복마가 돌아왔구나. 이는 정파 무림의 홍복이 틀림없도다. 아미타불.”

중인들의 대화와 빠질 수 없는 해설 엑스트라 대사를 들으면서 나는 복마검법의 검로를 따라 검을 찔렀다.

우우우우우우웅!

검명과 함께 내력이 깃든 싸구려 철검이 놈의 목젖으로 향했다.

“이, 이런! 크윽!”

낭패를 봤다 여긴 건지 놈이 박도를 휘둘렀다. 황급히 휘두른 칼부림, 급히 펼쳐 빈틈이 많은 놈의 도법을 파훼하는 건 더 쉬웠다.

채채채채챙!나는 도영을 모조리 쳐내면서 그대로 놈의 목젖을 향해 검을 찔러갔다.

모든 수가 파훼당한 놈이 눈을 질끈 감은 순간.

나는 내력을 거뒀다.

툭.

내력을 거둬 힘을 잃은 검이 놈의 목에 닿는다. 날카로운 검봉이 놈의 목젖에 생채기를 내며 피가 한 방울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꿀꺽.

놈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생사결이었다면 놈은 이미 죽었다.

승점자판기 수준하고는.

“······승자! 공동파의 이철수!”

이번에도 당황한 서문표가 한 박자 늦게 내 승리 선언을 했다.

나는 검을 거뒀다.

쿠웅.

정적산의 거구가 무너졌다.

다리가 풀린 그가 꼴사납게 주저앉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공동파가 두 번째 승리를 가져갔다!!”

“사마외도로부터 감숙 무림의 의기를 공동파가 지키는구나!”

“공동파에 복마가 돌아왔다!”

“복마귀환!!”

“이철수 소협의 검 봤소? 그게 실전됐다던 공동파의 상승절학 복마검법이구려!”

“복마검법을 되찾았다니! 공동파가 먼저 비무첩을 보낸 이유를 알 것 같구려!”

“이철수 소협!”

내 뒤쪽, 정파 관중이 앉은 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좋아.

이거지.

이 정도 화려한 무대는 되어야 중원 전역에 내 명성이 퍼지지 않겠는가?

그동안 공들여서 정사지쟁 빌드업을 한 보람이 있었다.

이 정도 임팩트는 있어야지. 이게 바로 스타의 데뷔라는 거다.

이제 내 별호도 흑심추귀가 아니라 복마검협이나 공동검협 같은 멋진 별호로 붙을 거다.

별호는 역시 협(俠)이 붙어야 한다. 그래야 강호 여인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지.

나는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서문표와 표정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진천검왕.

얼굴을 붉히며 흥분한 장문인 전영과 눈을 빛내는 사형 유진휘.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당문, 청성, 아미의 장로들을 포함한 구파일방과 무림세가의 귀빈들.

그리고 얼굴이 붉어졌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마른세수를 하는 검후까지.

그래.

이 순간만큼은 내가 주인공이다.

반면에 맞은편의 사파 진영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예상치 못한 2패를 얻어맞았으니 정신을 차리기 힘들겠지.

“크, 크윽. 두고 보자! 나, 나는 수행이 부족하여 이렇게 패배했지만 소방주께서는 결코······.”

정적산이 부들부들 떨면서 분에 못이겨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게 뭐라하려던 그때.

“내려와라. 적산.”

사파 진영에서 침묵을 깨고 여자치고는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 소방주님!”

“패배에 변명을 덧붙여봤자 더 추해질 뿐이다. 그만 내려와라.”

“조, 존명!”

정적산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일으켜 비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곧이어 비무대 위로 그녀가 올라왔다.

펄럭.

은빛 실로 흑룡이 수놓아진 흑색 장포를 휘날리는 흑색 단발의 미소녀.

사파제일 후기지수.

흑사룡 위소련이 올라서자 사파 진영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흑사룡!”

“사파제일 후기지수!”

“소방주님! 저 위선자 정파 놈들을 도륙내주십쇼!”

“이번에는 진짜 끝이다! 역겨운 정파의 개들아!”

어느새 상황은 정파와 사파의 자존심 싸움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정사지쟁이라 이름 붙이기는 했지만, 정파 쪽에서는 하오문에서 퍼뜨린 소문 때문에 어쩔수 없이 안 참가하기에는 체면에 손상이 가서 머리채 잡혀 반강제로 끌려 나온 것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공동파와 흑룡방 중에 돈을 걸라면 무림맹주라도 흑룡방 승리에 돈을 배팅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승점을 2점 따오자 정파 쪽에서도 점점 공동파의 승리를 점치는 인원이 늘어났고, 끝내 함성까지 나오며 공동파를 응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에 승점을 2점 내준 흑룡방과 사파는 예상치 못하게 수세에 몰려서, 그만큼 절박했다.

지금의 비무대는 정파와 사파 양 진영의 강호인들이 뿜어내는 흉흉한 기세가 허공에서 교차하고 있었다.

현대에서는 흔히 무대에 서면 압박감이 느껴진다고들 비유하는데, 여기는 비유가 아니라 진짜 무림인들의 기도 때문에 물리적 압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정파 쪽의 기세가 더 강렬했다.

원래 사람이라면 심정적으로 강팀보다는 약팀의 승리, 언더독의 반란, 자이언트 킬링을 응원하기 마련.

정파 무림인들 역시 약자인 공동파에 몰입해서 응원하고 있었다.

언더독 공동파의 반란이라는 내가 설계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구면이니 통성명은 생략해도 되겠지?”

위소련의 차가운 시선이 이쪽을 훑었다.

스르릉.

그녀가 도를 뽑았다.

아까 두 정씨 형제의 도와는 철의 질부터 달라 보이는 깔끔하게 닦인 도가 햇빛을 받아 빛났다.

“비무에 앞서, 먼저 인정하지. 너희 공동파의 검을. 그리고 사과하지. 너희를 얕본 내 오만함을.”

위소련이 이쪽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도 인정해서 다행이군.”

“하지만 그래도 너는 나보다 하수다. 그러니 고수로서 선공을 양보해주겠다. 와라. 이철수.”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웃었다.

좋아.

드디어 위소련이 나왔다.

모두가 보는 앞, 상대는 흑룡방의 소방주.

모든 조건이 완벽하다.

이제 내 협객 전설의 마침표를 찍을, 졌지만 잘 싸운 비운의 협객 이철수를 연기할 시간이었다.

흑사룡에게 이길 자신은 있지만, 여기서 이기면 자칫하다가는 내 명성이 너무 커질 위험이 있었다.

‘그러면 안 돼.’

내가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적당한 명성. 사형보다 조금 낮은 수준의 명성이었다.

그리고 그 명성은 이미 흑룡방에서 2승을 거둔 것으로 달성했다.

그런데 흑사룡을 쓰러뜨려 삼대떡을 완성해서 내 명성이 사형을 능가한다면? 사부는 내게 공동파 장문인을 맡기려고 할 것이다. 사형이 천무지체이기는 하지만 무학을 제외한 다른 분야의 재능은 평균 이하다. 그러니 내가 공동파 장문인을 맡아 내정을 관리하고 사형이 공동파의 무력을 담당하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문파 최고수가 장문인이 아닌 문파도 제법 많으니까.

‘장문인이라니.’

그런 책임지는 자리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원하는 건 책임 없는 쾌락이지 책임 있는 쾌락이 아니다.

그러니 장문인은 사형을 시키고, 나는 뒤에서 비선실세이자 천하제일인의 사제로서 책임 없는 쾌락을 누리며 꿀만 빤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져야 했다.

하지만 그냥 패배는 안 된다.

아주 장렬하게 패배해야 했다. 모두의 기억에 남아 천하에 영원히 회자되도록.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이미 한 편의 무협 영화처럼 장렬한 패배 시나리오가 전부 짜여 있었다.

나는 비무가 끝난 뒤 구주팔황에 퍼질 내 별호와 내 이야기를 듣고 팬레터를 쓸 정파 무림의 미녀들을 상상하면서 바닥을 박차고 위소련을 향해 뛰었다.

흐흐흐.

다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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